지하 주차장의 기적
DMC 벤처 타운 지하 3층 주차장의 차가운 공기가 허파 깊숙이 박혀왔다. 연구소에서 들이마신 매캐한 화학 연기 때문에 목구멍이 타들어 갈 듯 아팠지만, 정하윤은 멈출 수 없었다. 비상구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려와 도달한 콘크리트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숨을 헐떡이며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는 하윤의 앞으로, 갑자기 요란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눈을 멀게 할 듯한 백색광 너머로, 검은색 세단 석 대가 타이어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퇴로를 완벽히 가로막았다. 쾅, 쾅, 쾅. 육중한 차 문이 일제히 열리더니 검은 마스크를 쓴 사내들이 내렸다. 그들의 손에는 쇠파이프와 무거운 크로우바가 들려 있었다. 그 선두에는 방화범 김성곤이 서 있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손끝에 밴 화약 냄새와 특유의 살기 어린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정하윤 대표님.”
김성곤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그는 크로우바 끝을 콘크리트 바닥에 긁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쇳소리가 지하 주차장의 높은 천장에 반사되며 소름 끼치는 공명을 만들어냈다.
“더는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얌전히 가방이랑 목에 걸고 있는 그거, 넘기시죠. 한정혜 이사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하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주차장의 거대한 원형 기둥 뒤로 몸을 숨기려 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날뛰었다. 그녀는 슬쩍 고개를 돌려 등 뒤의 비상구 계단 철문을 바라보았다. 아까 내려오기 직전, 혹시 몰라 비상구 계단으로 다시 도망치려 했으나 김성곤의 부하들이 미리 철문을 바깥에서 쇠사슬로 잠가두어 꼼짝없이 가로막혔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철저한 덫이었다. 적들은 이미 그녀의 탈출 동선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잡히면 아빠의 특허도, 우진 씨의 눈을 멀게 한 그 비디오 칩도 전부 빼앗겨.’
하윤은 셔츠 안쪽, 가슴뼈를 차갑게 누르고 있는 마이크로 SD 카드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붉은색 실크 실로 단단히 묶어 목에 걸어둔 칩은 아직 안전했다. 하지만 사내들이 좁혀오는 속도는 빨랐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막힌 지하 주차장. 적들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머릿수로도 압도적이었다. 육탄전으로는 0.1%의 승산도 없었다.
이성적인 뇌가 미치도록 회전을 시작했다. 확률을 계산해야 했다. 적들이 무전기와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주차장의 모든 조명과 차량의 전자기기가 디지털 회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그녀의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하윤은 백팩 안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 넣었다. 손끝에 닿는 것은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 케이스. 대학 시절 연구용 초소형 커패시터와 스마트폰 보조배터리를 개조해 자체 제작한 ‘휴대용 고출력 전자기 펄스(EMP) 발생기’였다. 버튼 하나로 반경 5미터 이내의 모든 디지털 회로를 한순간에 먹통으로 만들 수 있는 일회성 무기.
“가까이 오지 마.”
하윤은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기둥 뒤에서 한 걸음 걸어 나왔다. 한 손은 백팩 속에 고정해 둔 채였다. 김성곤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겁먹은 엔지니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얌전히 넘기면 신체 부위 중 한두 군데는 멀쩡하게 걸어 나가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약속, 임태식 팀장도 동의한 건가?”
하윤이 일부러 시간을 벌기 위해 임태식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김성곤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적들이 흔들리는 찰나의 순간, 하윤은 백팩 안에서 EMP 발생기의 안전핀을 거칠게 뽑았다. 손가락 끝으로 차가운 고리 핀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목걸이 칩은 이중 차폐 알루미늄 케이스 안에 들어 있으니 영향이 없을 거야. 제발 작동해 줘.’
하윤은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며 발생기 전면의 붉은색 버튼을 2초간 길게 눌렀다.
치지직— 콰아앙!
눈이 멀 것 같은 푸른색 전자기 스파크가 하윤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발생기 내부의 고압 커패시터가 방전되며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 충격이 하윤의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벼운 화상 같은 저릿한 통증을 남겼다.
그와 동시에, 지하 주차장 전체가 기적적인 암전 속으로 빠져들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수십 개의 형광등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일제히 터져 나갔다. 하윤을 비추던 세단 석 대의 고휘도 헤드라이트가 뚝 끊기며 꺼졌고, 사내들의 손에 들려 있던 스마트폰과 무전기 액정이 찌르르 소리를 내며 암전되었다. 한순간에 찾아온 완벽한 칠흑.
“어, 뭐야! 불 꺼!”
“무전기가 안 터져! 야, 손전등 켜!”
어둠 속에서 사내들이 당황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디지털 장비에 의존하던 적들은 갑작스러운 시각 차단에 완벽하게 무력화되었다. 하윤은 어둠 속에서 기둥을 짚으며 출구 방향으로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기를 마신 허파가 비명을 질렀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때였다.
지하 3층 주차장 저편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듯한 우렁찬 엔진 굉음이 울려 퍼졌다. 헤드라이트조차 켜지 않은 거대한 그림자가 어둠을 찢으며 돌진해 오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epoxy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음이 고막을 찢었다.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을 질주해 온 차량은 우진의 전용 방탄 벤츠 S클래스 세단이었다. 차량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김성곤 일당이 타고 온 세단의 측면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쾅—!
귀를 찢는 금속 마찰음과 함께 적들의 차량이 밀려나며 주차장 통로에 거대한 틈이 생겼다. 방탄 벤츠의 우측 펜더가 찌그러졌지만, 군사용 장갑판으로 무장한 차체는 끄떡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베테랑 이 경호원의 정교한 핸들링이었다.
“타요!”
벤츠의 조수석 문이 거칠게 열리며 묵직한 목소리가 어둠 속을 뚫고 하윤에게 닿았다.
하윤은 본능적으로 열린 차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 순간, 뒤에서 정신을 차린 김성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그녀의 옷자락을 낚아채려 했다.
“잡아!”
하지만 차 문 안쪽에서 뻗어 나온 단단한 손이 하윤보다 빨랐다.
덥석—!
하윤의 손목을 움켜쥔 것은 굵고 단단한 사내의 손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오직 하윤의 가쁜 호흡 소리와 체온을 나침반 삼아 허공을 가르고 뻗어 나온 손. 바로 강우진 전무였다. 우진은 거칠게 하윤의 손목을 잡아당겨 그녀의 몸을 방탄 차량 내부로 끌어올렸다. 그의 악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해서 하윤의 손목에 붉은 압박 흔적을 남길 정도였다.
쾅!
하윤의 몸이 조수석 시트에 처박힘과 동시에 이 경호원이 조수석 문을 닫고 차문을 걸어 잠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김성곤이 휘두른 크로우바가 방탄 유리를 강타했다. 깡!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지만, 3cm 두께의 방탄유리는 미세한 흠집조차 남지 않았다.
“출발해.”
우진의 낮고 서늘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경호원은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벤츠 S클래스는 적들의 차량 포위망을 밀쳐내며 지하 주차장 경사로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솟구쳐 올라갔다.
차량 내부의 미등만이 은은하게 빛나는 밀폐된 공간. 하윤은 시트에 등을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심장 고동 소리가 차 안의 정적을 채웠다. 옆자리를 보니, 우진은 여전히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한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관자놀이에는 긴장감으로 인한 미세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하윤 씨, 무사합니까?”
우진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나직하게 울렸다. 그의 손은 여전히 하윤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그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과 미세한 떨림이, 방금 전까지 죽음의 문턱을 헤매던 하윤의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네, 무사해요. 우진 씨 덕분에.”
하윤은 그의 손을 쳐다보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난입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기묘한 감정의 일렁임이 시작되었다. 단순한 환자와 엔지니어의 관계를 넘어선, 생명을 공유한 동맹의 온기였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하윤은 떨리는 손으로 백팩에서 휴대용 광학 조율기를 꺼냈다. 조율기의 전원을 켜자 어두운 차 안이 신비로운 푸른 빛으로 가득 찼다.
“우진 씨, 지금 바로 첫 번째 동기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제 눈을 빌려 드릴게요.”
하윤은 스마트폰 단말기를 조작해 우진의 오른쪽 안구에 장착된 스마트 렌즈의 고유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했다. 삑, 삑 하는 비프음과 함께 푸른 레이저 라인이 조율기 화면 위에 황금빛 파형을 그리며 솟구쳤다.
우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지직, 지지직—
우진의 오른쪽 안구 내부에서 미세한 전기 자극이 일어났다. 칠흑 같던 그의 암흑 세계 위로,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밝은 녹색 레이저 격자선들이 번쩍이며 그려지기 시작했다.
[동기화 1단계: 망막 레이아웃 매핑이 시작됩니다.]
하윤의 스마트폰 화면에 푸른색 알림창이 뜨는 것과 동시에, 우진의 시야에 차 내부의 대시보드, 운전대를 잡은 이 경호원의 실루엣, 그리고 바로 옆자리에서 조율기를 쥔 채 자신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는 하윤의 아름다운 신체 윤곽선이 녹색 레이저 실루엣으로 오버레이되며 펼쳐졌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재벌가의 황태자에게, 여자의 천재적인 기술이 마침내 세상의 첫 번째 빛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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