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된 녹색의 방주
테스의 크롬 마스크에 반사된 네온 불빛이 기괴하게 일렁이는 순간, 도현은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에 입술을 깨물었다.
마비된 왼팔은 허리춤에서 무력하게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 끝의 유기 신경은 릭의 단말기에 혈류 동기화를 시도한 대가로 까맣게 죽어 감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방호 재킷 내부의 산소가 희박해져 가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이산화탄소가 가득 찬 뜨거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지이이잉—
품 안의 제네틱 컴퍼스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도현이 오른손으로 컴퍼스를 꺼내자, 액정 화면 위에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이며 실시간 세포 상태를 표시했다.
[세포 붕괴 지수: 38% — 경고 단계 (Collapse Index: Warning)]
[증상: 극심한 이명, 시야 협착, 말초 신경 마비. 즉각적인 유기 촉매 주입이 필요합니다.]
눈앞이 번쩍이며 시야의 좌우가 검은 장막을 친 것처럼 좁아졌다. 귓가에는 고주파의 금속성 이명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이대로 가다간 셔틀을 타기도 전에 몸 안의 미완성 백신 유전자가 폭주하여 전신 세포가 스스로를 갉아먹어 자멸할 터였다.
“형, 괜찮아요? 숨소리가 너무 거칠어요.”
옆에서 무거운 연료통을 짊어진 기율이 도현의 창백한 안색을 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가슴 장갑판이 뜯겨 나간 제로 역시 황색 안구 센서를 깜빡이며 도현의 바이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신했다.
“동반자 도현. 심박수 분당 110회로 급증. 체온 38.8도. 호흡 리듬 붕괴 중. 현재 전력 잔량 6%로 물리적 응급 처치 불가능.”
“괜찮... 다.”
도현은 각혈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삼키며 제네틱 컴퍼스의 아날로그 다이얼을 돌렸다. 컴퍼스의 홀로그램 바늘이 네온 마켓의 화려한 불빛을 벗어나, 스팀 슬럼 4번 구역의 가장 깊고 어두운 하부 갱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제국의 기계들이 ‘오염 구역’이라 부르며 접근을 꺼리는 침수된 지하 수로였다. 그리고 그 수로의 끝에는, 기계화를 거부한 채 자연의 흙과 생명을 지키는 자연주의 종파의 비밀 성소이자, 아버지가 남긴 고대 수경 재배 온실이 숨겨져 있었다.
세 세력의 눈을 피해 도현 일행은 어두운 증기 파이프라인을 따라 하부 갱도로 내려갔다. 뜨겁고 축축한 가스 안개를 뚫고 도달한 곳은 거대한 철골 격벽 앞이었다.
그곳에는 거친 마직 수녀복을 입은 한 여성이 침묵 속에 서 있었다. 자연주의 종파의 지도자, 베아트리스 수녀였다. 그녀는 흙이 잔뜩 묻은 손으로 구형 씨앗 보관함을 매만지며, 기계식 의안 대신 맑은 유기체 눈동자로 도현을 가만히 응시했다.
“기계의 세례를 거부한 길 잃은 양이여. 기어이 이곳까지 찾아왔군.”
“베아트리스 수녀님... 온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제 몸 안의 생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도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간청했다. 베아트리스는 도현의 목에 부착된 바이오 페이서와 그의 마비된 왼팔을 훑어보았다.
“그곳은 침수된 수경 재배 온실로 통하는 수로요. 기계의 눈이 닿지 않지만, 인간의 살점을 녹이는 독액이 흐르지. 기계 인형과 어린 소년은 들어갈 수 없소.”
그녀의 말대로 격벽 아래의 수로는 상층 크롬 시티에서 배출된 산성 정화수가 고여 흐르는 죽음의 통로였다. 제로의 손상된 의체나 기율의 나약한 몸으로는 버틸 수 없는 지옥이었다.
“제로, 기율. 너희는 여기서 대기해라.”
도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형! 혼자 가기엔 너무 위험해요!”
“내 방호 재킷은 전자기 차폐뿐만 아니라 미세한 산성 저항도 가능하다. 그리고 내겐 시간이 없어. 제로, 기율을 부탁한다.”
제로는 황색 안구를 조용히 깜빡이며 도현의 결정을 분석했다.
“동조 완료. 잔여 전력 5.8%로는 수로 침투 시 완전 방전 위험 존재. 도현의 판단이 생존 확률을 극대화함. 입구에서 대기하며 제국 치안국의 통신 신호를 도청하겠음.”
베아트리스가 낡은 수동 레버를 당기자, 육중한 철제 격벽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그 너머로 시퍼런 증기와 썩은 황산 냄새가 풍기는 탁한 녹색의 수로가 드러났다.
도현은 심호흡을 한 뒤, 차가운 산성 오염수 속으로 몸을 던졌다.
푸스스스—!
오염수에 몸이 잠기는 순간, 유기 전자기 방호 재킷 표면의 크롬 합금 소자들이 산성 물질과 반응하며 미세한 불꽃을 튀겼다. 재킷의 차폐막이 산성을 중화하느라 급격히 마모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도주 중 찢겼던 오른쪽 발목 부위의 천 틈새로 차가운 오염수가 스며들었다.
“아아악...!”
살점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화상 통증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물속이라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차가운 오염수와 산성 독기가 온몸의 신경을 자극하자, 체내의 미완성 백신 유전자가 격렬한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제네틱 컴퍼스의 액정이 붉은색 노이즈로 격렬하게 진동했다. 세포 붕괴 지수가 순식간에 임계점을 향해 치솟았다.
도현은 마비된 왼팔을 허우적대며, 오직 오른손 하나로 물속의 녹슨 파이프를 붙잡고 전진했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어둠 속에서, 그는 오직 전자기적 공감각에 의지해 온실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아날로그 전력 신호의 흐름을 쫓아 헤엄쳤다.
허파가 찢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 마침내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 도현은 거칠게 기침을 토해냈다. 입술 틈새로 검붉은 유기체 혈액이 뿜어져 나와 물을 적셨다.
“허억... 헉...!”
도현은 물가로 기어올라 가 방호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그곳은 네오 에덴의 그 어떤 곳과도 다른 세계였다.
사방이 거대한 크롬 기둥 대신, 수백 년 동안 자라난 울창한 이끼와 구형 곰팡이류, 그리고 천장의 깨진 틈새로 흘러드는 미세한 빛을 받고 자란 푸른 넝쿨 식물들로 뒤덮여 있었다. 습하고 따뜻한 유기적 생명의 온기가 지하 5,000미터 아래의 썩은 공기를 정화하고 있었다.
[침수된 수경 재배 온실 진입 완료.]
도현은 비틀거리며 온실 중앙의 콘크리트 벽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연두색 빛을 내뿜으며 자생하는 특이한 이끼 군락이 보였다. 백신 유전자의 면역 거부 반응을 완화해 줄 유일한 천연 유기 촉매, ‘순수 이끼 추출 유기물’이었다.
도현이 오른손을 뻗어 이끼를 채취하려던 찰나, 온실 벽면에 매달려 있던 구형 생체 단말기가 붉은색 안구 센서를 번뜩이며 가동되었다.
위이이잉—!
“미승인 유기체 침입 감지. 고대 지구 연합 보안 규격 가동. 살상 가스 정화 프로토콜을 개시합니다.”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천장의 녹슨 정화 밸브들이 열리며 백색의 독성 가스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현은 급히 주머니에서 초극단파 아날로그 송신기를 꺼내 제로에게 무선을 시도했다.
“제로! 들리나? 제로...!”
치이이이—
송신기에서는 오직 둔탁한 백색 소음만이 흘러나왔다. 온실을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고대 납 차폐벽이 모든 전파를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외부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가스가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도현의 숨통을 조여왔다. 피부가 찌릿하게 마비되기 시작했다.
‘생각해라, 임도현.’
도현은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통증 속에서도 이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 온실은 제국 수립 이전, 구시대 지구 연합의 과학자들이 건설한 비상 기지였다. 그렇다면 제국의 양자 암호 해킹 기술은 통하지 않는다. 이곳의 보안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은 디지털 코드가 아니었다.
오직 조작자의 ‘순수 유기적 DNA’뿐.
도현은 오른손 검지 끝의 피가 흐르는 상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단말기 하단에 위치한 구형 아날로그 스캔 포트로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내 몸 안의 피가... 진짜 열쇠다.”
도현은 제네틱 컴퍼스를 단말기 센서에 접촉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상처 입은 검지 손가락을 스캔 포트에 직접 문질렀다. 붉은 선혈이 투명한 유리 포트 위로 번지며 스캐너의 레이저가 그의 DNA 염기서열을 실시간으로 판독하기 시작했다.
[유전자 정렬 스캔 중...]
[타입-오리진(Type-Origin) 분석 완료. 일치율 99.8%.]
[가문 수호 권한 승인.]
푸슈우우웅—!
천장의 정화 밸브들이 일제히 닫히며 독성 가스 배출이 중단되었다. 동시에 온실 벽면을 뒤덮고 있던 넝쿨 식물 사이로 녹색 빛줄기들이 회로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수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온실 전체의 무균 전원이 복구되며, 중앙에 위치한 고대 유전자 보존 챔버가 웅웅거리는 진동과 함께 녹색 배양액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르카디아 가동을 환영합니다, 창조주의 후계자여.”
온실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 노이즈 섞인 녹색 디지털 격자 얼굴이 나타났다. 임씨 가문의 비밀 연구 시설을 수호하도록 설계된 생체 컴퓨터 지성, 아르카디아(Arcadia)였다.
“아르카디아... 내 몸의 유전자 붕괴를 막아라.”
도현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며 수경 재배 벽면에서 채취한 순수 이끼 추출 유기물을 보존 챔버의 투입구에 넣고, 스스로 챔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스르륵—
따뜻한 무균 배양액이 도현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이끼에서 추출된 유기 촉매가 그의 피부를 통해 흡수되며 폭주하던 미완성 백신의 독성을 부드럽게 중화하기 시작했다. 뇌를 찢을 듯한 편두통이 가라앉았고, 세포 붕괴 지수가 안전 단계로 서서히 하락했다.
그때, 온실 외부의 전자기 파동을 감지한 아르카디아의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제국의 광역 탐지 위성이 온실의 전력 복구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전자기 방출 추적 중.”
[대책 수립: 수경 재배 증류수막 가동. 외부 방출 주파수 물리적 차단.]
온실 천장의 특수 파이프에서 엄청난 양의 증류수가 흘러나와 온실 전체를 거대한 수막으로 감쌌다. 물과 납 차폐벽의 이중 차단 효과로 인해 제국의 양자 스캐너 전파는 온실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도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챔버 안에서 눈을 감으려 했다.
그 순간, 아르카디아의 합성 음성이 온실 내부에 엄숙하게 울려 퍼졌다.
“임진우 박사의 후계자, 타입-오리진 확인. 2차 봉인 프로토콜을 해제합니다.”
그 목소리가 신호탄이었다.
도현이 쥐고 있던 제네틱 컴퍼스가 갑자기 강렬한 청색 빛을 뿜어내며 스스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컴퍼스 내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극비 파티션이 해금되며, 온실의 습한 공기 위로 푸른색 노이즈가 섞인 반투명한 홀로그램 인격이 투사되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백발, 그리고 낡은 연구원 제복을 입은 중년 남성의 모습.
그것은 도현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제국에 의해 처형당한 그의 아버지 임진우 박사의 잔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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