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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마켓의 밀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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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을 삼켜버린 화염의 열기는 하수구의 차가운 오물 냄새 속에서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임도현은 제로의 무거운 기계 어깨에 의지한 채, 한 걸음씩 진흙탕 같은 하수도 바닥을 디뎠다. 유기 전자기 방호 재킷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 상태였지만, 내부의 산소는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탄소 필터를 거친 뜨겁고 텁텁한 공기가 목구멍을 긁었다.


[경고: 산성 안개 대기 속 필터 정화율 3% 미만. 착용 한계 시간 4분 남음.]


가슴에 이식된 자가 발전식 생체 박동 조율기 ‘바이오 페이서’가 둔탁한 진동으로 도현의 갈비뼈를 두드렸다. 심박수를 강제로 유지하려는 기계적 박동이 유기체 심장에 미세한 통증을 유포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공방 전투에서 입은 유전자 쇼크의 여파로 그의 왼쪽 팔과 어깨는 감각이 완전히 거세된 채 소매 안에서 축 늘어진 죽은 고기처럼 매달려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형. 네온 마켓의 입구는 이 배수관 바로 너머예요.”


앞장서서 장비 배낭을 짊어지고 가던 신기율이 배수관 틈새의 낡은 철망을 다목적 나노 드라이버로 뜯어내며 속삭였다. 소년의 얼굴도 공방 폭발의 그을음으로 엉망이었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도현이 보여준 기술적 경이로움에 대한 동경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제로의 상태는 처참했다. 가슴 장갑판이 통째로 뜯겨 나가 붉은빛의 광섬유 전선들이 날것으로 드러나 있었고, 배터리 잔량은 이미 8%를 가리키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제로의 무릎 관절에서 전력 부족을 경고하는 삐걱거리는 고주파 마찰음이 흘러나왔다.


“경고. 구동 모터 전압 임계치 하락. 스텔스 기동 불가능. 소음 차단율 12%로 저하.”


“조금만 참아, 제로. 마켓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에테르 셀을 구해주지.”


도현이 마비된 왼팔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며 낮게 신음했다. 아버지가 제로의 흉부 프레임 깊숙한 곳에 남겨둔 ‘J.W. Lim’이라는 서명. 그 각인을 확인한 순간부터 도현에게 제로는 단순한 기계 인형이 아닌, 아버지가 남겨둔 마지막 혈육이자 유산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안드로이드를 정지시킬 수는 없었다.


기율이 마지막 철망을 밀어내자, 마침내 지하 세계의 거대한 심장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스팀 슬럼 지하 5,000미터 아래에 위치한 무법지대, ‘네온 마켓(Neon Market)’.


머리 위로 얽히고설킨 거대한 녹슨 파이프라인 사이로, 상층 크롬 시티의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들이 굴절되어 비쳐 내렸다. ‘완벽한 기계로 진화하라’, ‘뇌의 99% 디지털화, 불멸의 시티즌 레벨 5 보장’ 같은 눈부신 문구들이 퇴폐적인 보라색과 녹색 네온 불빛과 뒤섞여 하수구 오물 위로 기괴한 무지갯빛 반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장 내부로 들어서자 썩은 금속 탄내와 저렴한 기계 오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전신의 80% 이상을 투박한 공업용 철판으로 기워 붙인 하층 노동자들이 홀로그램 네온사인 아래에서 조잡한 튜닝 부품과 불법 에테르 셀을 거래하고 있었다.


“이쪽이에요.”


기율이 도현의 방호 재킷 소매를 살짝 잡아끌며 시장 구석의 어두운 아치형 통로로 인도했다. 통로 끝에는 녹슨 해치 문 위로 ‘릭의 다목적 자원’이라는 깜빡이는 네온 간판이 걸려 있었다.


기율이 해치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둔탁한 쇳소리가 나고 잠시 후, 해치가 스르륵 열리며 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밀수업자 릭(Rick)이었다.


릭은 화려한 홀로그램 문신이 어지럽게 맥동하는 나일론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양눈은 정밀 광학 렌즈 의안으로 대체되어 있었고, 말을 할 때마다 입술 사이로 날카롭게 가공된 크롬 이빨이 번뜩였다.


“오, 기율이 꼬맹이 아니냐? 공방이 날아갔다는 소문은 들었다만, 용케 살아남았군.”


릭의 광학 렌즈가 기율의 뒤에 선 도현과 가슴이 뜯겨 나간 제로를 빠르게 스캔했다. 그의 눈동자 렌즈 내부에서 조리개가 조여들며 미세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그 뒤에 있는 뼈다귀들은 누구지? 특히 저 유기체 냄새를 풍기는 인간은... 요즘 치안국에서 이 잡듯 뒤지고 있는 그 현상 수배범과 꽤 닮았는데?”


릭의 목소리에 비열한 탐욕이 묻어났다. 도현은 방호 재킷의 차폐막이 정상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했지만, 릭이 육안으로 자신의 얼굴을 대조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허튼소리 마세요, 릭.” 기율이 앞장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탈출용 화물 셔틀에 쓸 특수 절연 연료가 필요해요. 마크 아저씨가 당신한테 가라고 했어요. 대가는 확실히 지불할게요.”


“마크라...”


릭은 크롬 이빨을 드러내며 비죽 웃었다. 그는 해치 문을 넓게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창고 내부는 온갖 금지된 화학 물질 실린더와 구형 아날로그 부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현은 방호 재킷의 산소 필터 한계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창고 벽면에 기댔다. 마비된 왼팔의 통증이 점차 척수를 타고 목덜미까지 뻗어 오르고 있었다.


“특수 절연 연료라... 그건 구하기 힘든 군용 규격품이야.”


릭이 구형 홀로그램 패널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질질 끌었다.


“에테르 셀 20개는 받아야겠는데. 아니, 요즘 같은 비상시국에는 30개는 줘야 거래가 성립하지.”


“30개라니요! 평소보다 세 배는 비싸잖아요!” 기율이 분개하며 소리쳤다.


“싫으면 나가든가, 꼬맹아. 지금 제국 치안국장 벡터가 하층 구역 전체를 봉쇄하겠다고 협박하는 판국에, 이 정도 위험 수수료는 당연한 거야.”


릭은 교묘하게 말을 이어가며 시선을 자신의 개인 단말기 화면으로 슬쩍 돌렸다.


그 순간, 도현의 뇌 신경망과 연결된 전자기적 공감각(Electromagnetic Synesthesia)이 미세한 이상 파동을 감지했다.


도현의 흑백 시야 속에서, 릭의 개인 단말기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전자기 주파수가 허공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광선으로 시각화되었다. 그 신호는 시장 외곽에 위치한 제국 치안국의 임시 초소, 즉 부패한 경비대장 브론즈(Bronze)의 수신 주파수 대역과 양자적으로 얽혀 있었다.


릭의 단말기 화면 구석에 도현의 얼굴이 담긴 10억 테라플롭스짜리 현상금 홀로그램 전단이 띄워져 있었다. 릭은 기율과 대화를 나누는 척하면서, 뒤로는 브론즈에게 밀고 신호와 함께 현재 창고의 좌표를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신당했군.’


도현의 이성이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제로의 배터리는 7% 미만이었고, 기율은 무기가 없는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브론즈의 무장 경비대가 들이닥치면 탈출은커녕 이 자리에서 뇌를 강탈당한 채 오블리비언 돔으로 끌려가게 될 터였다.


물리적인 전투로는 살아남을 확률 0%.


도현은 마비되지 않은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어 날카로운 구리 와이어 조각을 쥐었다. 그리고 릭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릭, 연료의 순도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


“어이, 유기체 도망자 친구. 성질도 급하군. 내가 물건을 가져올 때까지 얌전히—”


“지금.”


도현은 오른손에 쥔 구리 조각으로 자신의 오른쪽 검지 손가락 끝을 사정없이 그었다.


붉은 유기체 혈액이 상처 틈새로 솟구쳐 올랐다. 도현은 망설임 없이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릭의 단말기 측면에 노출된 유기 바이오 포트(Bio-Port)에 직접 밀착시켰다.


‘혈류 동기화(Blood Flow Sync) 가동.’


지이이이잉—!


도현의 손가락 끝과 기계 포트가 접촉하는 순간, 붉은 혈액이 단말기 내부의 나노 섬유 필터로 스며들며 강렬한 청색 전류가 도현의 팔을 타고 역류했다.


“으윽...!”


도현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뇌 신경망이 기계의 디지털 회로와 양자 역학적으로 직접 결합하는 물리적 통증은 영혼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했다. 그의 시야가 순식간에 백색 소음으로 가득 차더니, 이내 릭의 단말기 내부의 방대한 암호화 데이터 노드들이 기하학적인 격자망으로 그의 뇌리에 직접 투사되었다.


[경고: 혈류 동기화 접속 제한 시간 180초 카운트다운 시작.]


바이오 페이서가 심장에 강한 전기 충격을 가하며 심박수를 폭발적으로 올렸다. 도현은 터질 듯한 두통 속에서도 이성을 극도로 쥐어짜 내어 릭의 방화벽을 분석했다.


릭의 시민 등급은 시티즌 레벨 2. 그의 단말기에 이식된 양자 방화벽은 제국의 표준 규격이었지만, 도현의 천재적인 생물학적 해킹 수식 앞에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래성에 불과했다.


도현은 자신의 혈액 속 전하를 해킹 소스코드로 변환하여 릭의 보안 커널을 단 15초 만에 완벽하게 우회했다. 그리고 단말기 깊숙한 곳에 숨겨진 극비 데이터 파티션을 강제로 해금했다.


그곳에는 릭이 그동안 네온 신디케이트와 결탁하여 밀수입한 불법 화학 무기 거래 장부, 제국 세관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작성한 이중 세무 데이터,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국 법무부의 고위 관료들에게 바친 뇌물 수수 목록이 실시간 로그 파일로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거리야!”


릭이 경악하며 도현을 밀쳐내려 했다. 그의 기계 의수가 도현의 가슴을 향해 뻗어 나왔다.


그 순간, 제로가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짜 내어 릭의 기계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경고. 대상의 물리적 적대 행위 감지. 제압 프로토콜 준비 중.”


“릭, 네 모니터를 봐라.”


도현이 포트에서 손가락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시려왔다.


릭의 단말기 메인 화면에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그가 숨겨두었던 이중 장부와 뇌물 리스트가 홀로그램 문서로 공중에 크게 펼쳐졌다.


“이건...” 릭의 광학 렌즈 조리개가 극도로 수축하며 사들였다. 크롬 이빨이 딱딱 소리를 내며 떨리기 시작했다.


“네 단말기에 저장된 모든 불법 데이터를 내 제네틱 컴퍼스로 복제했다.”


도현은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옷자락으로 훔치며 릭을 응시했다.


“내가 이 전송 트리거를 당기는 순간, 네 이중 장부는 제국 법무부 중앙 메인프레임으로 다이렉트 송출된다. 제국의 법률에 따르면 시티즌 레벨 2의 세금 포탈과 이단 기술 거래는 즉각적인 신체 기계 제어권 영구 박탈, 그리고 자아 데이터 포맷 처분이지. 너는 영원히 ‘오블리비언 돔’의 가상 감옥에서 픽셀 단위로 쪼개져 고통받게 될 거다.”


“너... 너 미쳤어? 이 더러운 유기체 도망자 새끼가...!”


“선택해, 릭.”


도현은 주머니 속 제네틱 컴퍼스의 수동 다이얼을 딸깍 소리가 나게 돌렸다.


“브론즈의 경비대를 취소하고 특수 절연 연료와 위조 신분 칩 세트를 내놓을 건지, 아니면 나와 함께 제국의 가장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건지.”


창고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릭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그의 크롬 뺨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의 금속판으로 떨어졌다. 그는 도현의 눈동자 속에서 단 한 치의 타협도 없는 차가운 과학자의 광기를 보았다. 도현은 빈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젠장! 빌어먹을 유기체 괴물 녀석!”


릭이 비명을 지르듯 욕설을 내뱉으며 단말기 키패드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그는 브론즈에게 향하던 무선 신호를 강제로 가로채어 가짜 좌표를 송출했다.


[수정 보고: 오염원 식별 오류. 대상은 4번 구역 반대편 폐기물 압착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됨. 추적 경로 변경 요망.]


송신이 완료되자, 릭은 창고 구석의 강철 보관함을 열고 푸른빛이 감도는 무거운 티타늄 연료통과 은색 신분 칩 세 두 개를 바닥으로 거칠게 던졌다.


“가져가! 당장 내 창고에서 꺼져!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기율이 신속하게 연료통과 신분 칩을 챙겨 배낭에 넣었다. 도현은 릭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제로의 부축을 받으며 해치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창고 문이 열리고 네온 마켓의 소란스러운 불빛과 뜨거운 증기가 다시금 도현의 안면을 덮쳤다. 방호 재킷의 산소 경고음이 마지막 비프음을 울리고 있었다.


도현이 시장의 인파 속으로 몸을 숨기려던 찰나, 그의 전자기적 공감각이 시장 입구 쪽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전자기 파동을 포착했다.


그것은 제국의 스캐너 주파수도, 하층민들의 조잡한 단말기 신호도 아니었다. 모든 주파수를 고요하게 도청하고 분석하는, 깊고 정밀한 양자 공명 주파수였다.


도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시장 입구의 어두운 아치 아래를 바라보았다.


자욱한 산성 안개와 보라색 홀로그램 네온 불빛 사이로, 한 인물이 서 있었다.


얼굴의 반쪽을 차가운 크롬 마스크로 가린 채, 화려한 보라색 실크 로브를 몸에 걸친 신비로운 형체. 정보 브로커 테스(Tess)였다.


테스는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구형 아날로그 담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얇은 백색 연기 너머로, 도현 일행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스크 너머로 번뜩이는 단 하나의 유기체 눈동자가 도현의 은빛 제네틱 컴퍼스를 정확히 락온하고 있었다.


마치 도현의 진짜 가치와 그가 품은 마지막 인간의 비밀을 이미 전부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이.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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