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장막을 짜다
쿠구구궁—!
머리 위 5,000미터 상공에 위치한 상층 크롬 시티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이 스팀 슬럼의 축축한 강철 격벽을 타고 내려와 기율의 지하 공방 전체를 흔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낡은 구리 전선들이 어지럽게 흔들리며 스파크를 튀겼고, 녹슨 나사못들이 빗방울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상 도로에 아이언 세이버의 장갑차가 진입했어.”
신기율이 기름때 묻은 모니터를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화면 속 붉은색 격자선 위로 육중한 궤도 차량의 열원이 선명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놈들이 이 환기구 구역을 완전히 밀폐하고 압박해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임도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벽에 몸을 기대었다. 생체 휴면 기술을 한계 시간 동안 가동한 대가는 가혹했다. 왼쪽 팔과 어깨는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채 시체처럼 늘어져 있었고, 오른손가락 끝은 동상으로 인해 퍼렇게 질려 미세하게 떨렸다. 대뇌 피질에 가해진 산소 부족으로 관자놀이가 터질 듯한 편두통이 밀려왔지만, 도현은 이성적인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기율아, 넋 놓고 있을 시간 없다. 마크에게서 얻은 부품들을 가져와.”
도현의 목소리는 마스크 내부의 고밀도 탄소 섬유 필터에 걸러져 쉭쉭거리는 쇳소리로 변해 흘러나왔. 기율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작업대로 달려갔다.
작업대 위에는 마크의 고물 폐기장에서 수거한 크롬 합금 소자들이 은은한 은빛을 내뿜으며 널려 있었다. 제국의 정예 집행관들이 사용하는 군용 의체 장갑판에서 추출한 희귀 금속 파편들이었다.
“이 크롬 합금의 분자 구조는 일반 금속과 달라.”
도현이 오른손으로 제네틱 컴퍼스를 조작해 합금 표면을 스캔하며 설명했다. 컴퍼스의 홀로그램 화면에 불규칙한 원자 격자가 투사되었다.
“무정형 결정 구조(Amorphous Structure)지. 제국의 생체 스캐너가 방출하는 고주파 전자기파가 이 표면에 닿으면, 반사되지 않고 분자 격자 내부의 미세한 양자 루프에 갇히게 돼. 그리고 아주 미미한 열에너지로 변환되어 소멸하지. 즉, 전파를 완벽히 흡수하는 거다.”
“진짜 천재적이네요...”
기율의 눈동자가 다시금 지적 열망으로 빛났다. 소년은 도현이 3화에서 하수구 쓰레기 산에서 수집했던 12개의 구세대 진공관 소자들을 가져와 공방의 낡은 아날로그 모니터 회로에 능숙하게 납땜하기 시작했다.
치익, 치익—
납땜 연기가 피어오르며 진공관의 필라멘트가 따뜻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기율이 제작한 이 아날로그 노이즈 필터는 제국의 디지털 양자 스캔 전파를 아날로그 주파수 대역의 잡음으로 상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었다. 제네틱 컴퍼스가 기율의 모니터 시스템과 동조되자,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주파수 그래프가 서서히 하나의 일직선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이제 방호복 본체에 이 크롬 합금 소자들을 직조해야 해.”
도현은 마비된 왼손 대신 오른손과 입을 사용해 특수 고무 재킷의 안감을 고정했다. 이빨로 전도성 크롬 와이어의 피복을 벗겨내고, 오른손의 정밀 핀셋으로 마이크로 회로망을 크롬 합금 스케일 사이에 엮어 나갔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마스크 안쪽을 적셨지만, 도현은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회로의 정렬이 0.01mm라도 어긋나면 스캐너 전파를 흡수하는 역위상 자기장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작업이 중반부에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공방 내부의 백열등이 격렬하게 깜빡이더니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다. 오직 진공관의 오렌지빛만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날 뿐이었다.
위이이잉—
공방 한구석에 놓인 구형 고압 용접기가 힘없이 회전을 멈추며 붉은색 전력 부족 경고등을 켰다.
“안 돼! 하층 구역의 전력 배전반이 과부하로 차단됐어! 이대로 용접이 중단되면 합금 분자 배열이 고정되지 않아서 차폐 성능이 완전히 깨져요!”
기율이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쳤다. 제국의 장갑차가 위에서 수색망을 좁혀오는 상황에서 전력 차단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때, 묵묵히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제로가 무거운 금속성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인간 임도현의 생존 확률 연산 중. 현재 잔여 구동 배터리 25%. 전력 공급 장치가 차단되었을 때의 생존 확률은 3% 미만으로 하락.”
제로는 자신의 왼쪽 가슴팍의 티타늄 장갑판을 스스로 거칠게 뜯어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의 복잡한 광섬유 전선들과 붉은빛으로 박동하는 고농축 에테르 셀이 외부로 노출되었다.
도현의 눈이 제로의 열려진 흉부 프레임 안쪽을 향했다. 먼지와 기름때로 뒤덮인 티타늄 프레임의 가장 깊은 구석, 인위적으로 새겨진 정교한 나노 각인이 전자기적 공감각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제국의 규격화된 제조 일련번호가 아니었다. 부드러운 넝쿨 모양의 고대 지구 수호단 ‘가이아’의 문양, 그리고 그 옆에 음각된 희미한 이니셜.
*J.W. Lim.*
‘J.W. 임... 임진우 박사? 아버지가... 이 안드로이드를 직접 설계하셨던 건가?’
도현의 심장이 바이오 페이서의 통제를 벗어나 격렬하게 요동쳤다. 아버지가 처형당하기 전, 자신을 위해 지하 세계에 남겨둔 수호자가 바로 이 제로였을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인과관계가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그 경이로운 발견에 전율할 시간조차 제국은 허락하지 않았다.
“내 에테르 셀 커넥터를 용접기 동력선에 유선 연결한다. 연산 코어의 과부하 리스크 발생하지만, 임도현의 생존을 최우선 프로토콜로 설정.”
제로가 자신의 주 배터리 케이블을 뽑아 용접기의 고압 입력 단자에 직접 찔러 넣었다.
지지지직—!
강렬한 청색 전류가 제로의 결합부에서 뿜어져 나왔다. 제로의 황색 안구 센서가 과전압으로 인해 미친 듯이 깜빡였고, 그의 내부 연산 장치에서 열폭주를 경고하는 고주파 비프음이 울렸다. 제로의 잔여 배터리 수치가 25%에서 18%, 12%로 폭포수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로, 멈춰! 네 코어가 타버릴 수도 있어!”
도현이 소리쳤지만, 제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용접 전원 복구 완료. 작업을 재개하십시오, 창조주의 후예여.”
도현은 입술을 깨물며 오른손의 플라즈마 용접기를 쥐었다. 제로가 자신의 생명을 깎아 가며 공급해 주는 전력이었다. 단 한 방울의 에너지도 낭비할 수 없었다. 도현은 기율과 함께 크롬 합금 소자들을 방호 재킷의 외부 표면에 한 땀 한 땀 용접해 나갔다.
치이이익—!
마침내 마지막 크롬 스케일이 재킷의 칼라 부분에 완벽하게 안착되었다.
유기 전자기 방호 재킷의 완성 사양이 갖춰진 순간이었다. 어두운 회색의 질긴 탄소 섬유 원단 위로, 크롬 합금 조각들이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미세한 은빛을 내뿜으며 촘촘히 덮여 있었다.
도현은 마비된 왼쪽 팔을 먼저 소매에 억지로 기워 넣은 뒤, 오른손을 사용해 재킷의 전면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목덜미를 감싸는 칼라 부분의 스캐너 교란 루프를 활성화하자, 미세한 주파수 공명음이 도현의 귀를 때렸다.
동시에 기율의 모니터 화면이 순식간에 깨끗해졌다.
“말도 안 돼...”
기율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듯 속삭였다.
“형의 생체 신호가... 완전히 사라졌어요. 열감지, 심박, 전자기 펄스까지 전부 다요. 모니터에는 그냥 먼지 쌓인 구형 철판 하나가 서 있는 걸로 보여요!”
성공이었다. 유기 전자기 방호 재킷은 제국의 광역 스캐너 전파를 완벽하게 흡수하여 도현을 디지털 세계의 완전한 ‘투명인간’으로 재창조했다.
그러나 기쁨은 찰나에 불과했다. 재킷 내부의 공기 순환이 차단되자마자 도현의 마스크 안쪽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경고: 산성 안개 대기 속 필터 교체 주기 도달. 잔여 정화율 5%. 착용 한계 시간 20분.]
가슴의 바이오 페이서가 호흡 한계를 경고하며 둔탁한 통증을 보냈다.
위이이잉—!
그때, 공방 천장의 환기구 강철 파이프를 타고 날카로운 기계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열원 탐지 완료. 구역 내 고전압 방전 흔적 식별. 드론 부대 진입.”
드론 부대장 크로우가 보낸 제국의 군집 정찰 드론 세 대가 용접 과정에서 발생한 미세한 열 불꽃과 전자기 노이즈를 포착하고 환기구 그릴을 부수며 공방 내부로 침투한 것이었다. 드론들의 붉은색 광학 렌즈 센서가 사방을 상시 스캔하며 전투 조준선을 정렬했다.
“터렛 가동해! 막아야 돼!”
기율이 다급하게 공방의 자동 방어 터렛 콘솔의 수동 스위치를 올렸다.
하지만 선두의 드론이 방출한 전자기 방해 전파(EMP)가 공방의 전력선을 먼저 직격했다. 파지직! 하는 폭음과 함께 터렛의 제어 보드가 푸른 불꽃을 뿜으며 까맣게 타버렸다.
“안 돼! 제어 장치가 완전히 죽었어요!”
드론 세 대가 일제히 하부의 고열 레이저 용접 장치를 충전하기 시작했다. 푸른색 고열 에너지가 총구 끝에 모여들며 공방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엎드려!”
도현이 소리치는 순간, 드론들이 쏘아 보낸 세 줄기의 고열 레이저 용접선이 공방의 얇은 강철 격벽을 찢어발기며 들이닥쳤. 녹아내린 철 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했고, 공방 내부의 가구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배터리 잔량이 10% 이하로 급감해 경고음을 울리던 제로가 도현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제로의 손목에서 희미한 에너지 실드가 전개되었지만, 전력 부족으로 인해 실드는 유리가 깨지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경고. 실드 유지 시간 12초. 물리적 파괴 위협 감지.”
도현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전자기적 공감각이 각성하며, 자욱한 연기와 레이저 불꽃 사이로 흐르는 드론들의 무선 통신 주파수 궤적이 머릿속에 3차원 입체 지도로 선명하게 그려졌다.
‘저 드론들은 개별적으로 생각하지 않아. 중앙의 대장 드론이 보내는 고주파 동조 신호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있어.’
도현의 시선이 천장 구석에서 세 개의 안테나를 미친 듯이 까딱이며 다른 드론들을 통제하고 있는 대장 드론에 꽂혔다.
“제로! 11시 방향, 안테나가 달린 대장 드론의 무선 수신 모듈을 저격해! 나노 커터 최대 출력으로 단 한 번만!”
도현의 외침과 동시에, 제로는 자신의 남은 모든 전력을 오른팔의 고출력 나노 커터에 집중했다.
스사사사삭—!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동음과 함께, 보이지 않는 초고주파 모노 와이어가 허공을 갈랐다. 예리한 궤적이 정확히 대장 드론의 중앙 안테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팅!
안테나가 잘려 나가며 대장 드론의 광학 렌즈가 순식간에 황색 오류 신호로 뒤덮였다. 중앙 통제력을 잃은 나머지 두 대의 드론들이 비행 궤도를 잃고 사방의 벽면에 충돌하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앙!
드론들의 연쇄 폭발로 인해 노후화된 지하 환기구 천장의 대형 철골 구조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들이 공방 바닥을 덮치며 자욱한 먼지 폭풍을 일으켰다.
“쿨럭! 쿨럭! 이곳은 이제 끝났어.”
도현이 찢어진 방호복 틈새로 들어오는 먼지를 막으며 기율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이언 세이버의 본대가 이 폭발음을 듣고 3분 이내에 들이닥칠 거다. 장비를 챙겨, 기율아.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
기율은 자신의 다목적 나노 드라이버와 제네틱 컴퍼스를 가방에 급히 쑤셔 넣었다. 무너진 격벽 틈새로 스팀 슬럼 하부의 더럽고 어두운 하수구 통로가 드러났다.
“네온 마켓으로 가야 해요.”
기율이 무너진 환기구 잔해를 넘어 도주로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곳의 블랙마켓이라면 제국의 스캐너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구역이 있어요! 릭의 밀수 창고로 가야 탈출선 연료를 구할 수 있어요!”
도현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제로의 부축을 받으며 어두운 하수구 입구로 몸을 던졌다. 등 뒤로 공방의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제 그들에게는 더 이상 돌아갈 집도, 숨을 수 있는 안전한 안식처도 없었다. 오직 네온사인이 비린내 나게 흐르는 무법지대의 심장부로 향하는 처절한 도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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