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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스캔망의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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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의 철골 틈새로 붉은색 탐지 광선들이 마치 살아있는 거미줄처럼 폐기장 바닥을 훑으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숨어!”


녹슨 강철 다리를 부드럽게 까딱이던 고물상 안드로이드 마크가 육중한 기계음을 내지르며 거대한 자기장 크레인의 조종간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쿠웅! 쿠우웅! 머리 위 허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크레인의 자석 패드가 작동하며, 족히 수십 톤은 나가 보이는 크롬 합금 철판 세 장을 도현과 제로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낙하시켰다.


눈앞이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철판들이 어지럽게 겹쳐지며 도현의 시야를 가로막았지만, 완벽한 차단은 아니었다. 철판들이 엇갈린 미세한 틈새 사이로 칼날보다 예리한 붉은색 레이저 광선이 스며들어 어두운 흙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경고: 제국 치안국 광역 생체 스캐너 작동 중. 탐지 주파수 14.2MHz. 생체 펄스 동조율 89%... 92%...]


도현의 오른손에 쥐여진 제네틱 컴퍼스가 비명 같은 경고음을 울리며 붉은빛을 뿜어냈다. 이대로 가다간 락온된다. 아이언 세이버가 가동한 광역 스캐너는 하층 구역의 미세한 유기체 신호마저 샅샅이 잡아내도록 출력이 최대치로 조정되어 있었다.


도현은 마비되어 감각이 없는 왼팔을 가슴팍으로 끌어당기며, 오른손으로 흉부에 이식된 자가 발전식 생체 박동 조율기 ‘바이오 페이서’의 터치 패치를 깊게 눌렀다. 지금 쓸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생존 수단은 뇌로 가는 산소 공급을 극한으로 줄여 체온과 심박수를 낮추는 ‘생체 휴면 기술(Bio-Dormancy)’뿐이었다.


“제로, 열 신호를 차단해.”


도현이 입을 틀어막으며 속삭였다. 제로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자신의 거대한 티타늄 바디를 도현의 전면에 밀착시켰다. 25%밖에 남지 않은 배터리 잔량 속에서도 제로는 자신의 외부 장갑판의 냉각 소자를 활성화하여 도현에게서 방출되는 미세한 체온마저 물리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생체 휴면 돌입. 심박수 분당 30회 고정.”


도현이 눈을 감고 호흡을 멈추자, 바이오 페이서가 그의 심장 근육에 미세한 억제 전류를 방송했다. 쿵... 쿵... 심장 박동이 시체와 다름없는 속도로 느려졌다. 전신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극심한 오한이 도현의 척수를 타고 흘러내렸다. 입술이 푸르게 변하고, 전신 피부가 백색 서리를 맞은 것처럼 창백해졌다. 뇌가 산소 부족으로 비명을 지르며 극심한 편두통을 유발했지만, 도현은 이성적인 정신력을 쥐어짜 내며 의식을 붙잡았다.


스우우우웅—


붉은색 탐지 광선이 철판의 틈새를 천천히 쓸고 지나갔다. 도현의 코앞 10센티미터 거리까지 붉은 광선이 다가왔을 때, 제네틱 컴퍼스의 경고등이 황색 노이즈로 흐려졌다. 스캐너의 인공지능은 도현의 극도로 낮아진 생체 신호를 주변의 차가운 금속 고철더미의 일부로 오인하고 지나쳤다.


스캐너의 붉은 열기가 멀어지자마자, 마크가 자석 크레인을 들어 올려 철판을 치웠다.


“치안대의 지상 정찰조가 벌써 4번 구역 입구 격벽을 폐쇄했다. 아이언 세이버의 중장갑 장갑차가 이리로 오고 있어. 더는 내 폐기장도 안전하지 않다. 환기구로 가라!”


마크의 경고에 도현은 생체 휴면을 해제하며 바닥으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급격히 혈류가 공급되자 뇌가 터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고, 마비된 왼쪽 어깨는 여전히 얼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제로가 노련하게 도현의 오른팔을 자신의 기계 어깨에 걸치며 그를 부축했다.


두 사람은 폐기장 구석, 고철 쓰레기 산 밑에 숨겨진 좁고 어두운 환기구 입구로 기어 들어갔다. 직경 1미터 남짓한 환기 터널 내부는 상층 크롬 시티에서 배출된 황산 안개와 미세 금속 먼지로 가득 차 있었다. 도현은 마크가 준 고밀도 탄소 섬유 필터를 장착한 마스크를 고쳐 쓰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필터가 산성 가스를 걸러내지 않았다면 그의 유기체 폐는 벌써 녹아내렸을 것이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갑자기 환기구 내부의 강철 파이프라인을 타고 날카로운 고주파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감시 드론 접근 중. 열감지 스캔 감지.]


드론 부대장 크로우가 조종하는 제국의 정찰 드론 세 대가 환기구의 좁은 통로를 붉은 광학 렌즈를 번뜩이며 빠른 속도로 좁혀오고 있었다. 도현의 전자기적 공감각이 공중에 흐르는 드론들의 전파 궤적을 시각화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무선 신호선들이 좁은 강철 벽면을 기하학적인 거미줄처럼 뒤덮고 있었다.


도현은 오른손으로 제네틱 컴퍼스를 조작해 드론의 무선 주파수를 조율하며 ‘바이오-시그널 해킹’을 시도했다. 놈들의 제어권을 일시적으로 빼앗아 드론들을 정지시켜야 했다. 그러나 단말기 화면에 차가운 오류 메시지가 점멸했다.


[접속 거부. 제국 보안 프로토콜: 10분 주기 양자 암호 주파수 무작위 변경 적용 중.]


보안 분석관 다이애나가 하층 구역에 실시간으로 배포한 보안 패치 때문이었다. 무선 해킹이 원천 차단당한 절체절명의 순간, 선두의 드론 한 대가 모퉁이를 돌며 도현과 제로의 형상을 락온했다.


“오염원 식별 완료. 사격 시퀀스 시동.”


드론 하부의 플라즈마 총구가 푸른빛으로 충전되는 찰나, 환기구 천장의 어두운 배수관 틈새에서 갈색 작업용 오버올을 입은 마른 체구의 소년이 번개처럼 불쑥 나타났다. 소년의 머리 위에는 개조된 확대경 고글이 얹혀 있었다. 신기율이었다.


“이쪽이야, 엎드려!”


기율이 앳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외치며 드론들을 향해 조잡하게 얽힌 고철 뭉치를 던졌다. 그것은 소년이 쓰레기 더미에서 수거한 화학 전지와 아날로그 부품을 결합해 만든 ‘전자기 교란 고철 폭탄(간이 EMP)’이었다.


파지직—!


강렬한 고전압 스파크가 좁은 환기구를 가르며 드론의 광학 센서를 직격했다. 펑! 소리와 함께 선두 드론의 카메라가 백색 소음으로 가득 차며 먹통이 되었고, 제어력을 잃은 드론은 벽면에 충돌해 화염을 내뿜었다.


동시에 기율은 환기구 벽면에 설치된 고열 난방 파이프의 비상 수동 밸브를 발로 차서 개방했다. 슈우우우—! 고온의 증기가 환기구 내부를 가득 채우며 자욱한 장막을 형성했다. 드론들의 열감지 센서가 급격한 온도 상승으로 오작동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갈팡질팡 흩어졌다. 크로우의 스캔망에 거대한 열적 노이즈가 주입된 것이다.


“빨리 날 따라와! 놈들이 경로를 재계산해서 경보를 울리기 전에!”


기율은 환기구 바닥의 비밀 해치를 열고 도현과 제로를 아래로 이끌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곳은 스팀 슬럼 환기 갱도 구석에 숨겨진 ‘기율의 지하 공방’이었다. 사방의 벽면에는 불법 개조된 기계 부품들과 정전기가 가득한 낡은 모니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도현은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생체 휴면 기술을 한계 시간 동안 유지한 대가로, 그의 오른손가락 끝은 하얗게 동상에 걸려 감각이 없었고, 전신에는 극심한 오한과 함께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가슴속 바이오 페이서가 그의 불규칙한 심장 리듬을 잡기 위해 미세한 충격 전류를 방출하며 웅웅거렸다.


“너... 너 진짜 기계 의체를 하나도 안 쓴 100% 순수 유기체 인간이구나?”


기율이 이마 위의 고글을 내리며 도현의 창백한 얼굴과 각혈 자국이 묻은 호흡기 마스크를 경악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소년의 눈동자에는 하층 구역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생명체에 대한 신기함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다 소년의 시선이 도현의 오른손에 굳게 쥐여진 제네틱 컴퍼스에 꽂혔다.


“잠깐, 그 장치... 대체 뭐야?”


기율은 자석에 이끌리듯 도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소년이 자신의 다목적 나노 드라이버 스캐너를 가동해 컴퍼스를 비추자, 공방의 낡은 모니터 화면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수십만 개의 데이터 스트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구세대 진공관 소자랑 초고대 양자 메모리가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동조되어 있는 거지? 제국의 기술 아카데미에서도 이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하이브리드 설계는 불가능하다고 가르쳤어! 이건... 이건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야!”


기율의 눈동자가 천재 기계공 특유의 지적 흥분과 광기로 번뜩였다. 소년은 도현의 먼지 묻은 연구원 가운 자락을 움켜쥐었다.


“이 도면의 주파수 정렬 공식을 나한테 가르쳐 줘! 그러면 제국의 치안망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탈출 셔틀 부품이랑, 네 방호 장비 개조를 내가 목숨 걸고 도와줄게. 약속해!”


도현은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 속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발휘했다. 기율의 뛰어난 아날로그 개조 기술과 이 공방의 자원은 제국의 감시망을 무력화할 방호 재킷을 제작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도현은 오른손으로 제네틱 컴퍼스의 양자 메모리 포트를 기율의 간이 모니터에 연결했다.


위이잉—


모니터 화면 위로 아버지가 남겨둔 고대 설계 구조의 일부가 은빛 입체 홀로그램 수식으로 아름답게 떠올랐다.


“이게 내가 너에게 제안하는 첫 번째 공식이다.”


도현의 목소리는 낮고 창백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지적 권위는 단호했다. 기율은 홀로그램의 완벽한 수학적 대칭 구조에 완전히 매료되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계 제국의 차가운 효율성 아래에서 억압받던 소년의 천재성이 도현의 고대 과학 유산과 만나는 운명적인 동맹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지적 전율이 공방의 공기를 채우기도 전에.


삐이이이—! 삐이이이—!


공방 벽면에 걸린 낡은 감시 모니터가 비명 같은 경고음을 지르며 붉은색 경고등을 점멸하기 시작했다.


“뭐야? 벌써 찾아낸 거야?”


기율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모니터 스크린에는 지상 도로의 두꺼운 철판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다가오는 육중한 검은색 티타늄 중갑 전차—아이언 세이버가 탑승한 제국 치안국의 중장갑 전투 장갑차가 비치고 있었다. 장갑차 전면에 달린 거대한 붉은색 가로형 광학 스릿 센서가 번뜩이며, 기율의 비밀 공방으로 이어지는 환기구 입구를 정확히 겨냥한 채 무한궤도를 틀어 다가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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