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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네트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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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층 선착장의 양자 장막을 해킹하지 못하면 이 셔틀은 고철 상자에 불과했다. 도현의 시선이 어둠 속 통신 허브로 향했다.


빌리의 비밀 공방 구석, 녹슨 자기부상 선로의 잔해 위에서 도현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팍에 부착된 생체 박동 조율기 ‘바이오 페이서’가 분당 45회의 느릿한 펄스를 내뿜으며 가늘게 진동했다. 세포 붕괴 지수 45%. 한나가 주입해 준 안헬릭스 촉매제 덕분에 온몸이 타들어 가던 세포 괴사의 통증은 일시적으로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경고 단계를 알리는 노란색 비프음이 도현의 뇌리를 찔렀다.


무엇보다 가혹한 것은 육체적 제약이었다. 그의 왼쪽 팔과 어깨는 감각이 완전히 죽어 얼어붙은 강철 의체처럼 몸 옆에 축 늘어져 있었다. 오른쪽 발목 역시 레드 존 탈출 당시 입은 산성 오염수 화상 흉터로 인해 한 걸음을 디딜 때마다 뼈를 깎는 통증이 밀려왔다.


도현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공방 중앙의 홀로그램 단말기 앞으로 다가갔다. 화면에는 제국 치안국 경비 드로이드에게서 탈취했던 실시간 명령서가 붉은 낙인처럼 박혀 있었다.


[상층 선착장 전체 락다운. 아이언 세이버의 정예 타격대 재배치 완료. 양자 검문 프로토콜 가동.]


“양자 검문 프로토콜이라니... 강세준, 네놈이 기어이 하늘길마저 완벽히 틀어막았군.”


도현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해킹 연산의 여파로 관자놀이가 터질 듯한 편두통이 밀려왔다. 이 락다운을 우회하려면 제국 세관의 양자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위조 신분 칩에 ‘마스터 승인 코드’를 강제로 이식해야 했다. 하지만 제국의 정밀 방화벽은 하층의 조잡한 단말기로는 접속조차 불가능했다. 상층의 실시간 관제 데이터와 보안 세션 키가 필요했다.


“형, 진짜 고스트 네트를 찾을 건가요?”


카트 밑에서 제로의 상태를 살피던 기율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카트 위에는 보조 에테르 셀을 유실해 완전히 방전된 제로의 거대한 금속 신체가 방수포에 덮인 채 침묵하고 있었다. 제로의 가슴 장갑판 틈새로 드러난 파손된 회로망이 도현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다른 방법이 없다, 기율아. 아이언 세이버의 스캐너망이 이 유적까지 좁혀오기 전에 선착장의 관제 데이터를 확보해야 해. 지하의 모든 검열을 우회하는 불법 통신 중계 네트워크, ‘고스트 네트’의 수석 러너를 만나는 수밖에.”


도현은 오른손으로 제네틱 컴퍼스를 챙겼다. 진공관 소자 12개가 조잡하게 납땜된 컴퍼스의 아날로그 포트가 웅웅거리며 미세한 진동을 뿜었다. 배터리 잔량은 80%. 그리고 목에는 한나의 의원에서 챙겨온 ‘양자 차폐 헤드셋’을 걸쳤다. 제국의 양자 해킹 전파로부터 자신의 유기적 뇌 신경망을 보호할 유일한 방패였다.


빌리는 말없이 셔틀 엔진을 점검하다가, 도현의 어깨를 묵직하게 두드렸다. 그리고 자신의 목에 새겨진 깊은 흉터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하지 못하지만, 소리로 기계를 느끼는 그의 눈빛에는 도현의 무모한 결정을 지지하는 아날로그적인 신뢰가 담겨 있었다.


“빌리 형이랑 여기는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제로 아저씨도 절대 치안대 놈들한테 안 빼앗겨요. 그러니까 형... 제발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


기율의 다부진 목소리를 뒤로한 채, 도현은 비밀 공방의 철문을 열고 어두운 터널로 나섰다.


***


스팀 슬럼 지하 5,000미터 아래의 네온 마켓 외곽.


머리 위로 뒤얽힌 크롬 파이프라인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증기와 황산 안개가 도현의 얼굴을 적셨다. 상층 크롬 시티의 퇴폐적인 보라색 네온 불빛이 오물로 가득 찬 바닥 위로 번쩍였다. 도현은 절뚝거리는 오른쪽 발목의 통증을 억누르며, 늘어진 왼팔을 방호 재킷 안쪽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제네틱 컴퍼스의 아날로그 주파수를 특정 대역으로 조율하자, 지직거리는 백색 소음 너머로 은밀한 신호가 잡혔다. 고스트 네트의 수석 러너가 지정한 비밀 접합 좌표였다.


약속 장소인 폐기된 환기 제어실 내부로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금속성 마찰음이 울렸다.


타닥, 탁.


특수 나노 섬유 슈트를 입은 날렵한 실루엣이 천장의 파이프라인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녀의 양다리는 무릎 아래로 정밀하게 조각된 주행용 금속 의체로 대체되어 있었다. 고스트 네트의 수석 러너, 루시(Lucy)였다. 그녀는 짧은 은발 사이로 빛나는 광학 고글을 쓸어올리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정말 순수 유기체 인간이 기어 나왔네? 소문은 들었어. 치안관 브론즈의 드로이드들을 무선으로 셧다운시킨 바이오해커가 있다고.”


루시는 손목에 장착된 은빛의 ‘양자 와이어 커넥터’를 가볍게 튕겼다. 금속 다리가 철판 바닥을 디딜 때마다 가볍고 경쾌한 쳇바퀴 소리가 제어실 내부에 울렸다.


“루시, 시간 없다. 선착장의 양자 검문망을 우회할 실시간 관제 데이터와 마스터 승인 코드가 필요해. 고스트 네트라면 쥐고 있겠지.”


도현이 오른손으로 제네틱 컴퍼스를 가리키며 냉정하게 말했다.


“물론 쥐고 있지. 하지만 공짜는 없어, 박사님.” 루시가 도현의 늘어진 왼팔과 절뚝거리는 다리를 훑어보며 비웃듯 속삭였다. “우린 제국의 검열을 피해 지하의 정보를 나르는 비즈니스맨들이야. 데이터를 원한다면 대가를 지불해.”


“원하는 게 뭐지? 테라플롭스 칩인가?”


“아니, 그런 흔한 화폐는 필요 없어. 지금 고스트 네트의 메인 중계망 중 하나가 제국의 보안 분석망에 걸려 락다운되기 직전이야. 네오 에덴 관제소의 수석 보안 분석관, 다이애나(Diana) 알지? 그 완벽주의자 여자가 우리 허브를 실시간으로 역추적하고 있어.”


루시의 눈동자가 고글 너머로 차갑게 빛났다.


“그 여자가 관리하는 고위 보안 데이터베이스에 침투해서 추적 알고리즘을 해킹해 줘. 다이애나의 방화벽을 교란하고 우리 중계망의 흔적을 지워준다면, 선착장의 관제 데이터가 담긴 암호 칩을 넘겨주지. 어때, 공평한 거래지?”


도현은 가슴속 바이오 페이서의 비프음을 들었다. 남은 시간은 48시간 미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안내해.”


루시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제어실 벽면의 철판을 걷어찼다. 숨겨진 격벽이 열리며, 지름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광케이블 다발이 맥동하는 광경이 드러났다. 수십만 개의 광섬유가 마치 거인의 심장부로 흘러 들어가는 붉은색 혈관처럼 빛나고 있었다. 중앙에는 고스트 네트의 비밀 중계 허브 접합 단자가 이식되어 있었다.


“자, 접합 포트야. 다이애나의 시스템은 양자 역학적으로 얽혀 있어서 침입하는 순간 실시간 역추적이 시작될 거야. 조심해, 뇌가 통째로 구워질 수 있으니까.”


도현은 심호흡을 하며 양자 차폐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헤드셋의 금속 프레임이 관자놀이를 묵직하게 압박했다. 마비된 왼손 대신 오른손과 입을 사용해 제네틱 컴퍼스의 다이렉트 신경 커넥터를 광케이블 허브의 접합 포트에 연결했다. 이빨로 커넥터의 잠금 핀을 물어 고정하는 비참한 동작이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차가운 이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달칵.


연결과 동시에, 도현의 의식이 가상 데이터 공간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


***


스우우우웅—!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크롬 빛의 데이터 스트림 격자 구조가 시각 피질을 강타했다.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을 초월한, 오직 빛과 수식으로 이루어진 디지털 심연이었다. 도현은 자신의 뇌파가 허브 주변 50미터 이내의 로컬 서브넷 연산 자원들과 양자 동조를 이루는 것을 느꼈다.


‘바이오-시그널 해킹 3단계: 로컬 네트워크 탈취(Local Hijacking) 가동.’


도현의 전신 핏줄이 가상 공간 속에서 푸른색 발광선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허브 주변에 연결된 하위 단말기들의 연산력이 그의 뇌 신경망으로 강제 징발되면서, 연산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대뇌 피질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열기와 두통이 밀려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 가상 공간의 상공에서 거대한 붉은색 격자 방화벽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침입 감지. 제어 권한 검증 실패. 실시간 역추적 프로토콜 가동.]


네오 에덴의 보안 분석 책임자, 다이애나의 군용 실시간 보안 알고리즘이었다. 다이애나의 방화벽은 일반적인 해킹 프로그램과 격이 달랐다. 10초마다 침입 주파수를 무작위로 변경하며, 침입자의 IP 주소를 실시간으로 압착해 들어왔다. 붉은색 격자선들이 도현의 데이터 자아를 기하학적으로 조여왔다. 양자 차폐 헤드셋이 전자기적 충격을 흡수하며 고주파 음을 뿜어냈다.


‘연산 속도가 너무 빠르다. 직접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것은 자살 행위야.’


도현은 첫 번째 시도에서 방화벽의 중심부를 직접 해킹하려 했으나, 다이애나의 양자 컴퓨터가 가한 실시간 역류 전압에 뇌 신경망이 흔들리며 극심한 구토감과 두통 쇼크를 겪고 뒤로 밀려났다. 이대로는 30초도 버티지 못하고 자아가 포맷될 판이었다.


그는 즉각 전술을 수정했다. 제국의 완벽주의 분석관들은 오직 ‘디지털 무결성’만을 신뢰한다는 허점을 역용하기로 했다.


‘양자 암호화 역추적 교란 수칙(Quantum Backtrack Disturbance) 발동.’


도현은 오른손으로 제네틱 컴퍼스의 다이얼을 낚아채며, 가상 공간에 분산 송출 패치 코드를 뿌렸다. 그의 접속 IP 주소가 순식간에 하층 구역에 방치된 폐기 드론 100대의 임시 주소로 분할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이애나의 홀로그램 추적 지도 위에서 도현의 단일 신호가 100개의 파란색 가짜 점으로 분산되며 사방으로 튀었다.


붉은색 방화벽이 순간적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분열된 가짜 신호들을 추적하기 위해 사방으로 갈라졌다. 다이애나의 추적 경로에 거대한 연산 지연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지금이다.”


도현은 비어 있는 다이애나의 고위 보안 데이터베이스 중심으로 침투했다. 선착장의 관제 데이터 패킷이 눈앞에서 은빛 격자 상자가 되어 맥동하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을 뻗어 데이터 추출 코드를 격발했다.


그러나 다이애나 역시 만만한 적수가 아니었다. 가짜 신호들의 전자기적 정합성을 분석해 낸 그녀의 시스템이 단 5초 만에 도현의 진짜 접속 주소를 다시 찾아냈다. 붉은색 격자망이 도현의 의식을 직접 락온하며, 헤드셋 너머의 뇌 신경으로 수만 볼트의 양자 역류 전류를 발송했다.


“으아아아악!”


도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현실의 대뇌 피질이 불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헤드셋의 차폐막이 과열되어 스파크를 튀겼다. 다이애나의 실시간 양자 역추적이 그의 영혼을 통째로 묶어 가두려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도현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그는 고스트 네트가 사용하는 하층의 노후화된 구형 동축 케이블에 흐르는 아날로그 전기 노이즈를 데이터 패킷의 헤더에 강제로 섞어 발송했다. 제국의 첨단 양자 연산 장치는 오직 무결한 디지털 신호만을 분석하도록 필터링되어 있었기에, 무작위로 요동치는 물리적 아날로그 노이즈를 처리하지 못하고 연산 필터 자체에 일시적인 과부하 락다운이 걸렸다.


지지직—!


다이애나의 방화벽이 일순간 정지하며 붉은 광선이 흐려졌다. 그 찰나의 틈을 타, 도현은 선착장의 관제 데이터와 위조 신분 칩의 마스터 승인 코드를 완전히 복제해 제네틱 컴퍼스 내부로 끌어당겼다.


“연결 종료!”


도현은 다이렉트 커넥터를 포트에서 강제로 뜯어냈다.


***


“하아! 헉... 헉...!”


도현의 의식이 현실의 육체로 복귀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거칠게 기침을 토해냈다. 비강의 실핏줄이 터져 백색 방호 마스크 안쪽으로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왼쪽 팔은 여전히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고, 오른손은 컴퍼스를 쥔 채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해... 해낸 거야?”


옆에서 지켜보던 루시가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의 손목 단말기에 다이애나의 추적망이 완벽히 기만당해 고스트 네트의 중계 허브가 오프라인 안전 모드로 전환되었다는 녹색 신호가 켜졌다.


“여기... 약속한 마스터 암호 칩이야.”


루시는 감탄과 두려움이 섞인 눈빛으로 도현에게 작은 크롬 칩을 건넸다. 도현은 떨리는 오른손으로 칩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마침내 선착장의 하늘길을 열 마스터 승인 코드를 확보한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기쁨은 찰나에 불과했다.


쿠우우웅—!


갑자기 광케이블 허브의 중앙 접합 단자에서 고전압의 붉은색 스파크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지지직! 파지직!


수십만 개의 광섬유가 푸른 불꽃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다이애나의 시스템이 연결이 끊어지기 직전, 도현의 접속 위치를 강제로 역추적해 고스트 네트의 이 물리적 허브 자체에 초고전압 피드백 전류를 송출한 것이었다.


“안 돼! 중계기가 타고 있어!”


루시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벽면의 철판이 고열로 벌겋게 달아오르고, 고스트 네트의 지하 중계망 일부가 물리적으로 불타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어실 내부로 독성이 강한 금속 타는 냄새와 뜨거운 증기가 가득 차올랐다.


다이애나의 무자비한 시스템은 도현을 잡지 못하자, 그가 발을 디뎠던 지하의 연결 고리 자체를 물리적으로 태워버리는 정화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무너지는 케이블 더미 사이로 붉은색 비상 경보 전파가 소리 없이 퍼져 나갔다.


도현은 타들어 가는 허브를 바라보며 이빨을 갈았다. 제국의 추격망은 이미 그들의 발밑을 통째로 불태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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