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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침묵, 인간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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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천장의 녹슨 환기구 틈새로 제국 치안국의 푸른색 스캔 광선이 가늘게 새어 들어와 도현의 얼굴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차가운 크롬 빛이 눈꺼풀을 찌르자, 도현은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허파 꽈리마다 서린 방사능의 잔열이 가래처럼 끓어올랐지만, 그는 신음조차 삼켰다. 왼쪽 팔은 감각이 완전히 죽어 얼어붙은 강철처럼 수술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오른쪽 발목의 산성 화상 흉터가 맥박에 맞춰 욱신거렸다. 세포 붕괴 지수 45%. 한나가 주입한 안헬릭스 촉매제 덕분에 임계점은 넘겼으나, 여전히 온몸의 유기 신경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경고 단계였다.


“움직이지 마.” 한나가 낮게 읊조리며 도현의 가슴을 한 손으로 눌렀다. 그녀의 오른쪽 눈에 장착된 정밀 스캔 의안이 거칠게 회전하며 천장의 환기구를 노려보았다. “치안국의 수색 드론이다. 내 의원의 전력망이 노출된 게 분명해.”


바닥에 굴러떨어진 은빛 제네틱 컴퍼스가 보였다. 도현은 마비되지 않은 오른손을 필사적으로 뻗었다. 손가락 끝이 차가운 금속 표면에 닿는 순간, 그의 대뇌 피질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전자기적 공감각이 각성하며 시야가 순식간에 흑백의 대역으로 반전되었다. 공기 중에 흐르는 드론의 양자 스캔 주파수가 붉은색 격자선이 되어 시각 피질에 투사되었다.


‘드론의 탐지 주파수는 4.2GHz 대역. 아날로그 차폐 장벽이 필요하다.’


도현은 오른손으로 컴퍼스의 수동 다이얼을 움켜쥐고 한나의 수술대 옆에 놓인 구형 의료용 심전도 단말기를 향해 지향했다. 그리고 컴퍼스 내부에 직조된 아날로그 진공관 소자들을 공명시켜 역위상 전파를 방출했다. 지직, 하는 아날로그 전기 노이즈가 수술실 내부에 가득 차며 드론의 푸른색 스캔 광선을 물리적으로 굴절시켰다. 환기구 그릴을 통과하려던 스캔 광선이 도현의 몸 바로 옆 콘크리트 바닥을 비춘 채 허무하게 흔들렸다. 드론의 인공지능은 아날로그 잡음에 가로막혀 도현의 유기체 생체 신호를 인지하지 못하고, 이내 엔진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휴우...” 기율이 수술실 구석에서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주저앉았다.


“경보는 피했지만 여기도 더는 안전하지 않아.” 한나가 단분자 메스를 보관함에 집어넣으며 차갑게 말했다. “드론이 광역 스캔 패턴을 변경하면 이 조잡한 아날로그 교란도 뚫린다. 당장 내 의원에서 나가.”


도현은 수술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선이 옆방 수술대 위에 쓰러져 있는 제로에게 닿았다. 가슴 장갑판이 참혹하게 뜯겨 나간 채, 황색 안구의 빛을 잃고 셧다운된 제로의 거대한 금속 신체.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에테르 셀을 뽑아내던 제로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부채감과 형용할 수 없는 연민이 솟구쳤다.


‘제로... 내 목숨을 깎아서라도 널 반드시 다시 깨우겠다.’


도현은 이빨을 악물며 다짐했다. 기율이 제로의 무거운 강철 신체를 낡은 이동식 카트 위에 싣고 방수포로 덮었다. 한나는 도현에게 남은 안헬릭스 촉매제의 화학 성분이 기록된 데이터 패치를 건넸다. “네 피 속에 숨겨진 임진우 박사의 설계... 그 백도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찾아내라. 살아남는다면 말이지.”


의원의 비밀 배수구를 통해 네온 마켓 외곽으로 탈출한 세 사람의 앞길은 험난했다. 도현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카트를 밀었고, 기율은 주변의 감시 눈초리를 경계했다.


“형, 이 행성을 탈출하려면 셔틀이 필요해요.” 기율이 도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블랙마켓의 밀수선들은 이미 치안관 브론즈의 감시망에 걸려 있어요. 하지만 제게 방법이 있어요. 고대 지하 철도 유적 구석에 구형 셔틀을 숨겨둔 괴짜가 있어요.”


“그게 누구지?”


“빌리(Billy) 형이에요. 목에 상처가 있어서 말은 전혀 못 하지만, 기계의 미세한 진동과 소리만으로 모든 결함을 찾아내는 천재 엔진 튜너예요. 그 형이라면 제로 아저씨의 동력 계통을 수리하고 셔틀을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네온 마켓의 소란스러운 홀로그램 네온 빛을 뒤로하고, 제국의 감시 카메라가 닿지 않는 어둡고 축축한 고대 지하 철도 유적으로 향했다. 무너진 아치형 터널과 녹슨 자기부상 선로가 얽혀 있는 그곳은 기괴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유적 입구에 도달했을 때, 기율이 도현의 소매를 급히 잡아끌며 벽 뒤로 몸을 숨겼다.


터널 입구에는 부패한 치안대장 브론즈의 부하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밀수꾼들을 잡기 위해 선로 바닥에 파란색 전류가 흐르는 고전압 감전 트랩을 촘촘히 매설해 둔 상태였다. 이족 보행 경비 드로이드 두 대가 붉은색 광학 렌즈를 번뜩이며 입구를 상시 순찰하고 있었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해요. 제로 아저씨도 정지해 있는데...” 기율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현은 숨을 고르며 제네틱 컴퍼스를 가동했다. 전자기적 공감각을 통해 감전 트랩의 주파수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의 이성은 차갑게 작동했다.


“기율아, 가방에서 크롬 합금 주입 와이어를 꺼내.”


도현은 오른손으로 와이어 발사기를 쥐고, 감전 트랩의 주 전력선이 노출된 선로 분기점을 향해 정밀하게 와이어를 발사했다. 슈욱, 소리와 함께 날아간 크롬 와이어가 전력선에 정확히 감겼다.


지이이잉—!


와이어를 타고 흐르는 고전압 전류를 도현이 컴퍼스의 접지 프로토콜을 가동해 하수구 바닥의 오염수 속으로 강제로 흘려보냈다. 파란색 불꽃이 하수구 바닥에서 사방으로 튀며 감전 트랩의 전력이 순식간에 방전되어 소멸했다.


그 진동을 감지한 경비 드로이드 한 대가 바리케이드 너머로 다가왔다. 드로이드의 붉은 광학 렌즈가 도현 일행이 숨은 모퉁이를 향해 회전했다.


도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바이오-시그널 해킹 2단계: 장치 동기화를 발동했다. 그의 눈동자가 은빛으로 미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무선 주파수를 통해 다가오는 드로이드의 자율 주행 칩에 직접 신경망 주파수를 동조시켰다.


‘제국의 경비 기계들은 과부하 위험 시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전원을 차단하는 안전 우선 프로토콜을 탑재하고 있다. 그 맹점을 찌른다.’


도현은 드로이드의 네비게이션 연산 영역에 끝없는 소수 계산을 반복하게 만드는 무한 연산 루프를 강제로 주입했다. 기계 오작동 강제 트리거였다. 드로이드의 머리 부분에서 위잉 하는 고주파 소음과 함께 서보 모터가 급격히 과열되기 시작했다. 열폭주가 일어나기 직전, 드로이드의 안전장치가 작동하며 시스템이 강제 오프라인 상태로 돌입했다.


터덜, 하며 드로이드의 무릎 관절이 꺾이려는 찰나, 어둠 속에서 낡은 가죽 코트를 입은 청년이 번개처럼 나타났다. 천재 엔진 튜너 빌리였다. 빌리는 말 한마디 없이 굳어가는 드로이드의 목 뒤에 달린 수동 비상 전원 밸브를 단숨에 차단했다. 쿵 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완벽하고 고요한 침묵 속의 무력화였다.


빌리는 도현의 얼굴과 그의 오른손에 쥔 제네틱 컴퍼스를 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목에 새겨진 깊은 흉터를 가리킨 뒤,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유적 깊숙한 곳, 무너진 철도 차량의 잔해를 용접해 만든 빌리의 비밀 공방에는 먼지 쌓인 구형 탈출 셔틀이 조용히 안착해 있었다. 빌리는 카트 위에서 침묵하는 제로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그의 티타늄 손가락이 제로의 손상된 동력선을 만질 때마다, 빌리의 눈동자가 미세한 진동을 느끼듯 떨렸다. 빌리는 제로의 상태를 듣고 있었다. 기계의 비명을 손끝으로 느끼는 천재의 감각이었다. 빌리는 수리가 가능하다는 듯 도현을 향해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금 전 해킹했던 제국 경비 드로이드의 데이터 코어에서 추출한 실시간 치안국 전송 로그를 단말기에 띄웠다. 강세준이 설계한 보안 프로토콜을 해독하는 도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화면에 해독된 제국의 극비 명령서가 붉은색 글씨로 한 줄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명령: 행성 외곽 상층 선착장 전체 락다운 및 치안관 아이언 세이버의 정예 타격대 재배치 완료. 양자 검문 프로토콜 가동.]


화면을 들여다보던 제로의 동력 제어 장치 잔여 메모리가 일시적으로 공명하며 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내뿜었다.


“...아이언... 세이버...”


도현의 가슴이 얼어붙는 듯한 절망감으로 가득 찼다. 상층 선착장이 완전히 잠겼다. 위조 신분 칩만으로는 통과할 수 없는 양자 검문망이 가동된 것이다. 탈출을 위한 셔틀을 구하더라도, 하늘길 자체가 제국의 가장 무자비한 사냥꾼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었다는 가혹한 진실이 그들의 눈앞에 들이닥쳤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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