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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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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이식된 바이오 페이서의 붉은 경고음이 차가운 하수구 공동을 찢어발기듯 울려 퍼졌다. 삐—————.


단조롭고 날카로운 기계음이 축축한 콘크리트 벽면에 부딪혀 반사될 때마다 신기율의 심장도 함께 멎는 것만 같았다. 기율은 이빨을 악물고 마비된 임도현의 몸을 끌어안았다. 레드 존의 푸른 방사선 안개는 벗어났지만, 스승의 육체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피부 밑으로 솟구친 푸른색 유기 발광선들이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꿈틀거리며 세포를 괴사시키고 있었다. 세포 붕괴 지수 60% 돌파. 임계 단계였다.


“형! 제발 정신 차려봐요! 제발...!”


기율의 외침은 공허했다. 도현의 고개는 무력하게 꺾여 있었고, 입술은 피폭의 여파로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제로였다. 도현을 엄호하며 마지막 출력을 쥐어짜던 제로는 배터리 잔량 1.2%를 기록하며 완전히 전원이 꺼진 채 차가운 고철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누워 있었다. 2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금속 신체와 완전히 의식을 잃은 인간의 육체. 이 둘을 이끌고 하층 구역의 삼엄한 추격망을 뚫는 것은 하층민 소년인 기율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고문이었다.


기율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며 단말기를 켰다. 화면 위로 한 박사의 일지에서 추출했던 하층 구역의 비밀 좌표들이 지직거리며 떠올랐다.


[블랙 캘리퍼(Black Caliper) 안전 가옥 - 무허가 외과의 한나의 의원. 스팀 슬럼 4번 구역 외곽 지하 300미터.]


“여기야... 여기만 가면 살 수 있어.”


기율은 다목적 나노 드라이버의 와이어를 제로의 고정 고리에 걸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도현의 오른팔을 목에 감아 부축했다. 질질 끌리는 금속 마찰 소음이 어두운 하수구 통로에 무겁게 울렸다. 산성 안개가 기율의 목구멍을 태울 듯 들이닥쳤지만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발목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나와 장화를 적셨지만, 스승을 살려야 한다는 집념 하나가 소년의 나약한 근육을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하수구 막다른 골목, 녹슨 파이프라인들이 얽힌 벽면 사이에 붉은색 캘리퍼 문양이 새겨진 강철 해치가 나타났다. 불법 의체 시술자 연합인 ‘블랙 캘리퍼’의 표식이었다.


쿵! 쿵! 쿵!


기율은 마비되지 않은 오른손으로 해치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한나 의사님! 제발 문 열어주세요! 사람이 죽어가요! 제발!”


정적이 흐르고, 기율의 절망이 극에 달해 주저앉으려던 찰나, 해치의 관측창이 스르륵 열렸다. 그 너머로 차가운 푸른빛의 스캔 광선이 흘러나왔다. 한나의 오른쪽 눈에 장착된 정밀 스캔 의안(Optical Eye)이 기율과 도현, 그리고 제로의 신체를 빠르게 훑었다.


스으으웅—


“미등록 유기체 오염물과 불량 안드로이드라. 내 병원은 쓰레기 처리장이 아니다, 꼬맹이.”


해치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의안의 조리개가 찰칵거리며 회전했다.


“이 남자는 타입-오리진 유전자를 지닌 제국의 일급 수배자잖아. 이런 거물을 들였다간 치안국의 장갑차가 내 병원뿐만 아니라 이 구역 전체를 플라즈마로 녹여버릴 거다. 당장 내 구역에서 꺼져.”


“의사님이시잖아요! 제발요, 이대로 두면 형의 심장이 멈춰요! 바이오 페이서가 꺼지고 있다고요!”


기율이 울부짖으며 도현의 가슴팍에서 울리는 붉은 경고등을 해치창에 들이밀었다. 하지만 한나의 차가운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해치가 덜컥거리며 완전히 잠기려 하자, 기율은 해치 틈새에 자신의 나노 드라이버를 강제로 끼워 넣었다.


“블랙 캘리퍼의 규칙은 환자의 신원을 묻지 않는 거라고 들었어요! 대가는 뭐든 지불할게요!”


해치가 다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열렸다. 핏자국과 약품 얼룩이 가득한 수술용 앞치마를 입은 한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왼손에는 고주파 진동을 일으키는 단분자 메스(Monomolecular Scalpel)가 들려 있었고, 그것은 제로의 광학 렌즈 코앞에서 멈췄다.


“규칙을 잘 아는군, 꼬맹이. 하지만 내 위험 수당은 아주 비싸다. 이 정도 거물을 치료하는 대가는 최소 고농축 에테르 셀 5개, 혹은 5,000테라플롭스 상당의 정품 연산 칩이다. 무등록 하층민인 네가 가질 수 없는 액수지. 대가가 없으면 거래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건...”


기율의 얼굴이 절망으로 무너져 내렸다. 공방이 파괴되면서 가진 자원을 모두 잃은 소년에게 그런 거액의 에너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도현의 바이오 페이서 경보음은 점차 주기를 늦추며 죽음의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삐... 삐... 이제 남은 시간은 몇 분도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완전히 방전되어 회색빛으로 죽어 있던 제로의 황색 안구 센서가 지직거리며 아주 미세한 호박색 불빛을 흘려보냈다.


위이이잉—


기계 관절이 윤활유 없이 마찰하는 끔찍한 소음과 함께, 제로의 육중한 상체가 천천히 일으켜 세워졌다. 그의 가슴 장갑판 내부 깊숙한 곳에서 비상 예비 동력 1.2%가 쥐어짜 지고 있었다.


“동반자... 도현의... 생존 확률... 4.8%... 프로토콜... 수호 가동...”


제로는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며 자신의 깨진 가슴 장갑판 사이로 오른손을 밀어 넣었다. 티타늄 손가락이 내부 회로를 헤집을 때마다 거친 청색 스파크가 그의 얼굴을 때렸다. 한나의 의안이 경악으로 크게 확장되었다.


“미쳤어? 스스로 메인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건가?”


지이이이잉—


제로는 대답 대신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박혀 있던 마지막 보조 에테르 셀(Auxiliary Ether Cell)을 수동으로 뜯어냈다. 동력선이 강제로 끊어지며 분출된 고전압 전류가 제로의 전신 외골격을 하얗게 태웠다. 제로는 그 눈부신 파란색 에너지 셀을 쥔 채,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 한나의 녹슨 수술대 위에 툭 올려놓았다.


“이것으로... 대가는... 충분... 할... 것...”


스르륵.


제공된 에너지 셀의 빛이 수술실을 푸르게 밝히는 순간, 제로의 황색 안구는 완벽한 암흑으로 돌아갔다. 그의 육중한 강철 신체는 더 이상 아무런 진동도, 소리도 내지 않는 완전한 침묵 속으로 침잠했다. 자신의 기계적 생명을 완벽히 희생하여 인간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한나는 수술대 위에 놓인, 순도가 극도로 높은 군용 규격의 에테르 셀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이성적인 의안이 복잡한 연산 기호를 뿜어내며 깜빡였다. 효율과 이익만을 따지던 차가운 기계 도시에서, 영혼이 없다고 믿었던 안드로이드가 보여준 비논리적이고 숭고한 헌신. 그것은 한나의 냉소적인 세계관을 관통하는 거대한 충격이었다.


“...바보 같은 기계 인형이군.”


한나가 메스를 내려놓고 에테르 셀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방금 전의 냉소는 지워져 있었다.


“좋아. 거래는 성립했다. 꼬맹이, 저 남자를 수술대 위로 올려.”


기율은 울음을 터뜨리며 도현의 몸을 수술대 위로 밀어 올렸다. 마음이 급해진 기율이 자신의 배낭에서 휴대용 간이 충전기를 꺼내 도현의 바이오 페이서 단자에 직접 연결하려 했다.


“기다려! 형의 조율기를 강제로 켜야 해요!”


“손 치워, 이 머저리 자식아!”


한나가 기율의 손을 거칠게 때려냈다. 그 충격으로 충전기 커넥터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도현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유기체 수술의 기본도 모르는 건가? 저 남자는 신체의 99%가 순수 유기 세포로 이루어진 ‘타입-오리진’이다. 기계 장치처럼 불안정한 고전압 전류를 심장에 직접 흘려보냈다간, 그 나약한 유기 신경망이 세포 수준에서 통째로 타버려 즉사할 거다!”


한나의 일침에 기율은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한나는 신속하게 수술실의 조명을 낮추고, 아날로그 주파수 조율 패널을 가동했다. 그녀는 도현의 가슴 중앙에 이식된 바이오 페이서의 표면을 소독액으로 닦아낸 뒤, 전자기적 노이즈를 상쇄할 나노 조율 핀을 조율기의 미세 포트에 정밀하게 삽입했다.


위이이잉—


그녀의 손끝에서 미세한 전류가 흐르며 도현의 뇌파와 심장 근육의 고유 진동수를 실시간으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화면 위로 도현의 심박수 그래프가 불규칙한 노이즈 전파처럼 지직거리며 나타났다.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세포 내 나노 물질들이 미쳐 날뛰고 있어. 자율신경계가 전자기 주파수 동조를 잃은 상태다. 고전압 충격이 아니라, 약물 주입을 통한 세포 수준의 안정화가 필요해.”


한나는 수납장에서 은색 실린더에 담긴 안헬릭스 활성 촉매제(Anhelix Catalyst)를 꺼냈다. 하층 구역의 블랙마켓에서도 구하기 힘든 극비 면역 거부반응 억제제였다. 그녀는 정밀 나노 주사기에 촉매제를 충전한 뒤, 도현의 왼쪽 목덜미에 흐르는 굵은 경동맥을 정확히 겨냥했다.


“자율신경 주파수 동조 약물 주입을 시작한다. 기율, 저 남자의 상체를 꽉 눌러. 발작이 올 거다.”


기율이 도현의 어깨를 누르는 순간, 한나가 주사기의 피스톤을 밀어 넣었다. 에메랄드빛의 고농축 촉매 액이 도현의 투명한 피부 밑 혈관을 타고 푸르게 번져 나갔다.


“끄으... 으아아아아윽!”


의식을 잃었던 도현의 전신이 활처럼 팽팽하게 꺾이며 비명을 질렀다. 마비되었던 왼쪽 팔의 근육들이 통제 불능의 경련을 일으켰고, 입술 사이로 뜨거운 증기와 함께 각혈이 튀었다. 세포 내에서 기계 바이러스의 활동 주파수와 안헬릭스 촉매제가 격렬하게 충돌하며 전신의 유기 신경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거동 반응이었다.


“조율기 주파수 동조, 45Hz 고정! 심박수 강제 하강 유도!”


한나는 차분하게 바이오 페이서의 다이얼을 돌렸다. 자극 전류가 부드러운 아날로그 파동으로 변환되어 도현의 심장 근육을 미세하게 자극했다. 격렬했던 도현의 발작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불규칙하게 날뛰던 심장 박동이 일정한 리듬을 찾으며 안정적인 주파수로 수렴했다.


[세포 붕괴 지수: 45% (경고 단계로 하락 완료)]


바이오 페이서의 붉은 경고음이 꺼지고, 부드러운 청색 대기 불빛이 점등되었다. 도현의 호흡이 깊고 차분해졌다. 위기를 넘긴 것이다.


기율은 그제야 긴장이 풀려 수술실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한나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도현의 팔에 연결된 혈액 분석 단말기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실시간으로 분석되는 도현의 유전자 염기 서열 구조가 홀로그램 화면 위로 복잡하게 펼쳐졌다.


그런데 데이터를 확인하던 한나의 스캔 의안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이 경악과 의구심으로 차갑게 굳어졌다.


“이건... 말도 안 돼.”


“의사님? 왜 그러세요?” 기율이 불안하게 물었다.


한나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도현의 혈액 데이터를 확대했다. 특정 아미노산 배열 주위에 기계 세포의 침투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고대 지구 규격의 나노 차폐 사슬이 완벽한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 남자의 DNA... 이건 단순한 자연주의 유기체가 아니야. 제국의 그 어떤 기술력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극단적인 인위적 유전자 조작의 흔적이다. 세포가 스스로 길을 찾고 진화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 마치... 처음부터 기계 세포를 정화하기 위한 ‘백신’ 그 자체로 태어난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에덴-오리진 프로젝트... 임진우 박사의 서명이 이 혈류 데이터 깊은 곳에 백도어로 각인되어 있어. 기계 제국이 왜 이 남자를 전 우주를 동원해 쫓고 있는지 이제야 알겠군.”


도현의 육체는 단순한 도망자의 몸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가운 기계 우주의 종말을 막기 위해 아버지가 일생을 바쳐 설계한 마지막 인류의 설계도였다. 그 진실의 무게가 수술실의 무거운 공기 속에 가라앉았다.


도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마침내 천천히 열렸다. 옅은 은빛이 감도는 그의 맑은 동공이 천장의 흐릿한 아날로그 조명을 비추었다.


“여기는...”


도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기율이 그의 손을 잡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삐- 삐- 삐- 삐-!


수술실 한구석에 놓인 한나의 불법 의료 단말기가 광폭한 경고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모니터 전면에 붉은색 스캔 레이더망이 격렬하게 회전하며 가쁜 비프음을 울렸다.


[경고: 상부 환기구 반경 50미터 이내, 제국 치안국 소속 고주파 수색 드론의 전자기 펄스 스캔 감지.]


한나의 의안이 붉은색 경고등으로 락온되며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정적을 깨고, 병원 천장의 환기 그릴 너머로 기분 나쁜 기계식 드론의 웅웅거리는 모터 소음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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