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의 지옥
쿵, 쿵, 쿵.
두꺼운 해치 철판 너머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신을 전투용 중갑 기계로 대체한 네오 에덴 치안국의 사냥꾼, 아이언 세이버가 다가오고 있다는 죽음의 예고였다. 해치 표면이 둔탁하게 찌그러지며 기괴한 마찰음을 냈다.
“동반자 도현, 해치 외부 압력 감지. 차단벽의 물리적 한계까지 남은 시간은 180초입니다.”
제로의 목소리는 이미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가슴 장갑판이 완파되어 푸른 나노 회로가 노출된 그의 흉부에서는 불안정한 불꽃이 튀었고, 배터리 잔량은 5.8% 미만이라는 경고등이 그의 황색 안구 센서 구석에서 붉게 깜빡였다.
도현은 각혈한 검붉은 피를 오른손 소매로 닦아내며 기율을 부축했다. 마비된 왼쪽 팔은 차가운 납 덩어리처럼 옆구리에 무력하게 매달려 있었다. 오른쪽 발목의 산성 화상 부위는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뼈를 깎는 통증을 유발했다.
“가야 해.” 도현이 쉬어터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안개 속으로.”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하 핵융합 발전소 폐허, 기계 제국의 전뇌망조차 기피하는 금지 구역인 ‘레드 존’의 심연이었다. 공기 중을 떠도는 미세한 수증기들이 원자로 차단벽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고농도 방사선과 반응하여 기괴하고 푸른 체렌코프 광원(Cerenkov Light)을 뿜어내고 있었다. 축축하고 뜨거운 유기적 오염과 차가운 전자기적 파멸이 공존하는 푸른 안개의 지옥이었다.
스우우우웅—
그들이 레드 존의 통로로 한 걸음 들어서는 순간, 도현이 입은 유기 전자기 방호 재킷의 경고음이 비명처럼 울렸다.
[경고: 주변 전자기 방사선 수치 허용 한계치 400% 초과. 전면 차폐막 과부하.]
“윽!”
도현은 재킷 내부의 차폐막 출력을 최대치로 올리기 위해 오른손으로 제어 패널을 조작하려 했다. 하지만 지난 타이탄 부대와의 격렬한 교전 도중 어깨 장갑판에 발생한 미세한 찢김 틈새가 문제였다. 그 작은 틈으로 스며든 고주파 방사선 입자들이 재킷 내부의 미세 정밀 회로를 직격했다.
파지직!
강렬한 청색 스파크가 도현의 어깨에서 튀며 차폐막 제어 회로가 순식간에 단선되어 버렸다. 재킷의 스캐너 교란 루프가 꺼지자, 도현의 전신 유기 세포들이 아무런 방패도 없이 고농도 방사선에 직접 노출되기 시작했다. 척수를 타고 뇌하수체까지 관통하는 듯한 지독한 오한과 함께, 전신의 장기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생리적 통증이 밀려왔다.
동시에 기계인 제로에게도 즉각적인 재앙이 닥쳤다.
“센서... 노이즈... 임계치 초과... 연산... 지연...”
제로의 황색 안구 센서가 지직거리며 빛을 잃었다. 방사능이 방출하는 강렬한 전자기 노이즈가 제로의 미세 양자 프로세서를 직접 교란한 것이다. 시각을 잃은 제로의 거대한 금속 신체가 중심을 잃고 벽면에 부딪혔다. 그의 서보 모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배터리 잔량은 이제 4.2%였다. 이대로 가다간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완전 셧다운될 판이었다.
“형! 제로 아저씨가 움직이지 않아요! 제 스캐너도 완전히 먹통이 됐어요!”
기율이 고글을 붙잡고 절박하게 소리쳤다. 기율이 메고 있는 장비 배낭 속에서도 미세한 기계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뒤편의 대형 해치가 마침내 찢어지듯 열리며, 아이언 세이버가 이끄는 중장갑 전차의 엔진 굉음이 레드 존 입구를 짓밟았다. 스캐너 전파가 방사능 노이즈에 가로막혀 그들을 정밀 조준하지는 못했지만, 붉은색 광학 센서의 불빛들이 푸른 안개 너머에서 그들의 실루엣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물리적 시각도, 기계적 센서도 모두 상실한 완벽한 어둠과 푸른 안개의 지옥.
도현은 터질 듯한 편두통으로 시야가 흐려지는 와중에도 이를 악물었다. 그의 이성은 여전히 차갑고 날카롭게 작동하고 있었다.
‘기계들은 실시간 센서 피드백에만 의존한다. 센서가 마비된 제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그렇다면...!’
“기율아!” 도현이 소리쳤다. “네 다목적 나노 드라이버를 꺼내! 제로의 목 뒤에 있는 보조 동력 제어 단자에 물리 유선 케이블로 연결해!”
“유선 연결이요? 하지만 제로 아저씨의 코드가...”
“내가 직접 동조 신호를 보낼 테니, 너는 내 지시에 따라 드라이버의 아날로그 다이얼로 제로의 관절 모터를 수동으로 견인해! 아날로그 조작은 방사능 노이즈에 간섭받지 않아!”
기율은 떨리는 손으로 배낭에서 나노 드라이버를 꺼내 제로의 목 뒤 단자에 케이블을 꽂았다.
도현은 오른손에 쥔 제네틱 컴퍼스를 자신의 뇌파와 동조시켰다. 뇌 해마 영역이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파왔지만, 그는 자신의 특수 감각인 ‘전자기적 공감각(Electromagnetic Synesthesia)’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스우우우웅—
순식간에 도현의 물리적 시야가 흑백의 무채색으로 반전되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공기 중에 가득 찬 고농도 방사선 입자들과 전자기 파동들이 거대하고 입체적인 실버와 블루 빛의 실선 그물망이 되어 사방에서 흐르고 있었다. 원자로 폐허의 붕괴된 철골 더미와 납 차단벽 잔해들이 방사선을 굴절시키며, 미세하게 전하가 옅어지는 ‘안전한 물리적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었다. 도현의 시야에 그 안전한 경로들이 푸른 빛줄기의 궤적으로 선명하게 시각화되었다.
“기율아, 내 목소리만 들어! 제로의 왼쪽 무릎 모터 전압을 1.2볼트 올려! 그리고 오른쪽으로 15도 꺾어!”
도현의 지시에 따라 기율이 드라이버의 다이얼을 수동으로 돌렸다.
위이잉—
시각을 잃고 굳어 있던 제로의 왼쪽 다리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도현은 마비된 왼팔을 질질 끌며, 오른손으로 기율의 어깨를 짚고 그들을 인도했다. 은빛으로 빛나는 죽음의 방사선 입자 그물망 사이로, 단 10센티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초정밀 포복 전진이 시작되었다.
파지직! 콰아앙!
그들이 전진하는 통로 천장의 좁은 틈새에서, 방사능 피폭을 견디지 못한 제국의 구형 경비 드론들이 내부 연산 코어의 열폭주로 인해 무작위로 자폭했다.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튀는 날카로운 금속 파편들이 도현의 뺨을 스쳤고, 제로의 파손된 가슴 장갑판에 부딪혀 불꽃을 일으켰다. 제로의 보조 메모리가 물리적 충격과 노이즈로 인해 15% 추가 손상되었다는 경고음이 도현의 컴퍼스 화면에 지직거리며 나타났다.
“형! 필터가... 필터가 녹아내리고 있어요!”
기율의 방호 마스크 필터 역시 방사능 나노 입자들의 부식성 공격에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도현의 호흡기에서도 뜨거운 피가 섞인 기침이 터져 나왔다. 세포 붕괴 지수가 실시간으로 요동치며 그의 유기체 장기들을 파괴하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불규칙하게 요동쳤고, 가슴 중앙에 이식된 바이오 페이서가 그의 심장 근육에 강한 전기 자극을 가하며 웅웅거렸다.
하지만 도현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전자기적 공감각은 소행성대 하수구 외곽 통로와 연결되는 마지막 비상 해치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마지막 한 걸음이다! 기율아, 제로의 양쪽 스러스터 출력을 아날로그 수동으로 동시 개방해!”
기율이 드라이버의 트리거를 강하게 당겼다. 제로의 발목 보조 노즐에서 마지막 불꽃이 튀며, 그들의 신체가 붕괴된 차단벽 잔해를 넘어 마침내 레드 존의 출구 해치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쿵—!
그들이 해치 바깥의 차가운 하수구 콘크리트 바닥으로 쓰러지는 순간, 등 뒤의 레드 존 내부에서 불타오르던 푸른 체렌코프 광원이 멀어졌다. 제국의 추격대 역시 레드 존의 극단적인 방사능 전자기 노이즈에 가로막혀 더 이상 그들의 신호를 추적하지 못하고 소행성대 반대편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기율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해치 제어반의 아날로그 레버를 당겨 문을 완전히 잠갔다. 제로는 배터리 잔량 1.2%를 기록하며 완전히 전원이 꺼진 채 차가운 철골처럼 바닥에 누워 있었다.
“해냈... 어요... 형...”
기율이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도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전신 피부 밑으로 푸른색 발광선과 함께 검붉은 혈관들이 터져 나오듯 솟구치고 있었다. 세포 붕괴 지수가 60%를 완전히 돌파하며 그의 유기체 신경망 전체가 물리적인 붕괴 단계(Critical Stage)로 급속히 추락한 것이다.
삐———————!
도현의 가슴 중앙에 부착된 자가 발전식 생체 박동 조율기 ‘바이오 페이서’에서 심장이 정지했음을 알리는 날카롭고 절박한 적색 경고음이 차가운 하수구 공동에 울려 퍼졌다. 도현의 동공이 풀리며, 그의 은빛 제네틱 컴퍼스가 바닥으로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