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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잿더미와 붉은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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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타워 최하층 코어의 비상 락다운 사이렌이 붉은 핏빛으로 지하 공동을 물들이던 그 순간, 도현은 마비된 왼팔을 움켜쥐고 달렸다. 대뇌 피질이 타버릴 듯한 극심한 전뇌전의 여파로 코와 눈가에서 흐른 피가 입술을 타고 비릿하게 스며들었다.


“동반자 도현. 후방 300미터 지점, 아이언 세이버의 중장갑 전차 진입 중. 타격대장 타이탄의 신호 역시 락온되었습니다.”


제로의 음성은 평소보다 한참 무겁고 탁했다. 가슴 장갑판이 반쯤 뜯겨 나가 푸른 나노 회로가 스파크를 튀기는 제로의 잔여 배터리는 단 5.8%. 서보 모터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하수구 벽면에 둔탁하게 반사되었다. 도현은 절뚝거리는 오른쪽 발목의 산성 화상 통증을 이악물고 참아내며, 아버지가 남겨둔 은빛 제네틱 컴퍼스를 오른손에 꼭 쥔 채 K가 일러준 비상 환기구 해치를 향해 몸을 던졌다.


“해치 개방 주파수 동조... 완료!”


도현이 머릿속으로 뇌파를 뿜어내며 해치를 강제 개방했다. 아이언 세이버의 전차 포신이 그들을 겨냥하기 직전, 도현과 제로는 수직 환기 갱도로 슬라이딩하듯 미끄러져 내려갔다.


***


숨을 헐떡이며 도달한 곳은 스팀 슬럼 4번 구역의 외딴 골목 깊숙이 숨겨진 신기율의 지하 공방이었다.


“형! 제로 아저씨! 세상에, 얼굴이 왜 그래요?”


공방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율이 도현의 피투성이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달려왔다. 기율은 급히 낡은 수건으로 도현의 비강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려 했다.


“괜찮아... 전뇌전의 일시적인 부작용일 뿐이야.” 도현은 오른손으로 기율의 어깨를 짚으며 간신히 숨을 골랐다. “그것보다 기율아, 아버지가 남기신 ‘코어 아르카나’의 좌표를 확보했다. 그리고 제국의 양자 방화벽을 우회할 일회성 암호 해독 키까지 내 단말기에 백업해 뒀어. 이제 이 연료와 위조 신분 칩을 셔틀에 이식하고 탈출하면 돼.”


“진짜요? 정말 해내신 거군요!” 기율의 커다란 눈망울에 희망의 빛이 서렸다.


하지만 도현은 공방 내부를 둘러보다가 위질감을 느꼈다. 늘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난민 청년 스네이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도현에게 기계 마비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진 후, 기율의 공방에 임시로 얹혀살던 자였다.


“기율아, 스네이크는 어디 갔지?”


“아, 스네이크 형이요? 형이 다칠 걸 대비해서 블랙마켓에 응급 약품을 구하러 가겠다고 한 시간 전에 나갔어요. 곧 돌아올 텐데...”


도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오른손에 쥔 제네틱 컴퍼스가 갑자기 비정상적인 전자기 주파수를 감지하며 광폭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컴퍼스의 액정 위로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경고: 반경 100미터 이내, 제국 치안국의 다중 양자 스캐너망 급속 전개 중. 군용 중전차 엔진 주파수 감지.]


“배신당했어.” 도현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스네이크가... 우리 위치를 치안국에 넘긴 거야.”


“네? 그럴 리가... 스네이크 형은 우리 덕분에 살았잖아요!” 기율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 순간, 귀를 찢는 듯한 폭음이 공방 전체를 뒤흔들었다.


콰아아아앙—!


공방의 두꺼운 철골 천장이 외벽 포격에 무참히 뜯겨 나가며 거대한 먼지 폭풍을 일으켰다. 기율이 제작해 둔 정밀 배양 장비들과 나노 백신 인큐베이터가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 더미 아래로 깔려 순식간에 찌그러지고 파괴되었다. 공방 내부를 가득 채우던 온기 어린 아날로그 백열등의 빛이 일제히 꺼지고, 오직 붉은색 비상 사이렌 조명만이 연기 속에서 기괴하게 회전했다.


“쿨럭! 형! 콜록!”


기율이 먼지 속에서 각혈을 하며 쓰러졌다. 도현은 마비된 왼팔을 붙잡은 채 기율을 끌어안아 무너지는 철골을 피했다.


연기 장막을 뚫고, 육중한 티타늄 중갑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높이가 2미터에 달하는 거구, 제국 최정예 중보병이자 특수 타격대장인 ‘타이탄(Titan)’이었다. 그의 양어깨에는 소형 EMP조차 통하지 않는 초합금 마스터 실드가 전개되어 있었고, 가로형 붉은 센서가 도현의 유기체 생체 신호를 정확히 조준했다.


“오염원 식별 완료. 즉시 무력화한다.”


타이탄의 육중한 음성과 함께 그의 오른팔에 장착된 대장갑 플라즈마 캐논이 충전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번뜩이는 찰나, 제로가 소리쳤다.


“동반자 도현, 대피하십시오!”


제로가 마지막 남은 배터리 출력을 쥐어짜며 전방 실드 발생기를 가동해 도현과 기율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타이탄의 캐논에서 격발된 반물질 포탄은 압도적이었다.


쾅—!


눈을 멀게 할 듯한 백색 폭발과 함께 제로의 실드 발생기 자체가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분쇄당했다. 제로는 강한 충격에 뒤로 밀려나며 벽면에 부딪혔고, 그의 전신 금속 프레임에서 거친 청색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잔여 전력이 급감하는 경고음이 제어실에 울려 퍼졌다.


퇴로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타이탄의 중장갑 보병들이 공방의 유일한 출입구를 메우고 총구를 겨눴다. 무력적인 정면 대결은 자멸뿐이었다. 도현은 뇌 해마 영역의 통증으로 머리가 깨질 듯한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생존 공식을 암산했다.


‘타이탄의 장갑은 전자기파를 차단하는 패러데이 차폐막이다. 하지만 외벽의 고압 전력선이 노출되어 있어. 직접적인 물리 전류라면...!’


도현은 오른손으로 허리춤의 나노 인젝터 건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가스 권총을 개조한 인젝터의 약실에 나노 백신 실린더 대신, 공방 벽면에서 흘러나오는 초고전압 전력 케이블의 도선 접합부를 조준했다.


타이탄이 포신을 다시 충전하며 한 걸음 다가온 순간, 도현이 트리거를 당겼다.


타아앙—!


인젝터 건에서 발사된 고강도 나노 바늘이 벽면의 고압 전력선 접합부를 정확히 꿰뚫었다. 단선된 고압 케이블이 미친 듯이 춤을 추며 타이탄의 초합금 마스터 실드 표면으로 떨어졌다.


지이이이이잉—! 파지직!


50,000볼트의 가공할 물리 전류가 타이탄의 전도성 합금 장갑을 타고 그대로 흘러 들어갔다. 전자기파 차단막은 직접적인 초고전압 역류 전류를 막지 못했다. 타이탄의 전신 의체 내부에서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의 정밀 전술 연산 장치가 강제로 마비되며 거대한 강철 신체가 제자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지금이야! 뛰어!”


도현은 기율을 부축하고 제로의 부축을 받으며 공방 뒤편의 굳게 닫힌 붉은색 해치로 달렸다. 그 해치 너머는 스팀 슬럼의 금지 구역이자, 기계들조차 센서 마비를 우려해 기피하는 지하 핵융합 발전소 폐허, ‘전자기 방사선 누출 지대 레드 존’이었다.


도현은 오른손 손가락 끝을 해치의 생체 포트에 밀착시켰다.


“바이오-시그널 해킹... 개방 프로토콜 송출!”


도현의 뇌파가 무선 주파수를 타고 해치의 제어 칩을 강타했다. 찰칵 하는 육중한 쇳소리와 함께 해치 문이 열리며,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괴하고 차가운 푸른색 체렌코프 방사광이 도현의 얼굴을 비추었다.


뒤편에서는 전압 마비에서 풀려난 타이탄의 보병들이 포격을 재개하려 하고 있었다. 도현은 주저 없이 기율과 제로를 이끌고 푸른 안개가 소용돌이치는 레드 존의 심연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해치가 쾅 소리를 내며 등 뒤에서 잠겼다.


동시에, 고농도 방사능 안개가 그들의 온몸을 덮쳐왔다. 제로의 안구 센서가 지직거리며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고, 도현이 입은 유기 전자기 방호 재킷 표면의 차폐 회로가 과도한 방사선 피폭에 비명을 지르며 붉은색 경고등으로 미친 듯이 깜빡였다. 가슴의 바이오 페이서 역시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억제하기 위해 미세한 충격 전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전신 세포가 급격히 무너져 내리는 지독한 오한 속에서, 도현은 해치 너머 복도에서 울리는 아이언 세이버의 육중한 강철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사냥꾼이 바로 문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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