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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의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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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당의 창지문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욱한 안개를 뚫고 흘러드는 밤공기 속에서 쇠사슬이 부딪히는 불길한 쇳소리와 붉은 가죽 채찍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오독교(五毒教)의 정예 암살단 적사대(赤蛇隊)와 철검문 삼분타의 행동대장 조귀웅이 이끄는 철갑병들이 약방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성녀.”


백무한은 각혈한 검은 피를 하얀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베일을 벗은 남궁란을 향해 낮게 읊조렸다. 그의 오른손은 만독식심고(萬毒食心蠱)를 임시 봉인하는 대가로 검지, 중지, 약지가 시커멓게 죽어 굳어버린 상태였다. 오른손을 쓸 수 없는 불구의 몸. 그러나 그의 눈동자만큼은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하게 빛났다.


“바깥의 적사대는 당신의 수하들이니, 그들의 칼날을 멈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요. 하지만 조귀웅의 철갑병들까지 물러서게 하려면 더 큰 명분이 필요하겠지.”


남궁란은 무한의 마비된 오른손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심장 역시 교주가 심어둔 고왕(蠱王)의 맥동으로 고통받고 있었기에, 무한의 기상천외한 의술은 그녀에게 유일한 구원의 밧줄이었다.


“걱정 마라, 독수신의. 적사대는 내 명령 하나로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하지만 철검문의 사냥개들은 내 권역 밖의 일이지. 그들이 이 약방을 들이치기 전에 퇴로를 열어야겠군.”


그때, 낙엽당의 지하 밀실 바닥이 묵직하게 흔들렸다. 나무 판자가 들리며 거구의 사내가 솟아올랐다. 키가 7척에 달하고 온몸에 칼흉터가 가득한 사내, 바로 운몽택 수적 연맹(雲夢澤 水賊聯盟)의 호위부장 마삼(馬三)이었다.


“의원님!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맹주님께서…… 맹주 장철손 형님께서 사경을 헤매고 계십니다!”


마삼의 거친 숨결에서 비릿한 피비린내와 썩은 골수의 악취가 풍겼다. 무한은 즉각 상황을 간파했다. 장철손의 고질적인 골수독(骨髓毒)이 마침내 임계점에 달해 그의 심맥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궁란, 약방의 전면은 당신이 맡으시오. 나는 지하 수로를 통해 장철손에게 가겠소.”


무한은 마비된 오른손을 하얀 붕대로 단단히 동여매어 품에 고정하고, 오직 왼손만으로 백옥은침통(白玉銀針筒)을 챙겼다. 아칠이 다급히 무한의 쇠약한 몸을 부축했다. 마삼은 무한과 아칠을 이끌고 낙엽당 지하의 비밀 수로로 뛰어들었다. 뒤편에서 남궁란의 차가운 목소리가 적사대를 통제하는 소리가 멀어졌다.


***


장강의 물줄기가 늪지대의 썩은 진흙과 만나는 곳,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리는 수적채(水賊寨)의 심장부는 음울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횃불이 붉게 타오르는 석실 안쪽, 거대한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장철손의 풍채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구리빛 피부는 군데군데 검게 부패하여 진물이 흘러내렸고, 뼛속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악취가 석실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주변에 서 있던 수적 의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비켜라! 독수신의를 모셔왔다!”


마삼이 석실 문을 거칠게 밀치며 들어섰다. 수십 명의 수적 조장들이 칼자루를 쥔 채 백무한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불신과 살기가 가득했다. 기침을 쿨럭이며 아칠의 부축을 받는 창백한 안색의 청년이, 천하의 장철손을 살릴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스릉!*


마삼이 갑자기 자신의 거대한 철퇴를 바닥에 내려놓고, 품에서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 무한의 목덜미에 들이댔다. 차가운 칼날이 무한의 목 경동맥을 가볍게 눌렀다.


“독수신의. 내 비록 장 형님의 명령으로 너를 호위해 왔으나,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엔 네놈의 해독술을 믿지 못하겠다. 만약 치료에 실패하거나 장 형님의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긴다면, 그 즉시 네 목을 베어 늪지의 고기밥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석실 안의 기류가 얼어붙었다. 아칠은 공포에 질려 숨을 멈췄고, 수적들의 살기가 무한의 쇠약한 전신을 압박했다.


그러나 무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하얀 입술 끝에 비웃음에 가까운 옅은 미소가 걸렸다.


“무식한 수적 놈들이 사람을 살리는 의원 앞에서 칼날을 들이대는군.”


무한은 목덜미를 누르는 칼날을 무시한 채, 침상 위의 장철손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동자가 깊고 고요하게 가라앉으며 ‘심안진맥(心眼診脈)’을 가동했다.


기를 쓰지 않는 무맥(無脈)의 상태였기에, 무한은 장철손의 거친 호흡 소리와 맥박의 진동, 그리고 피부 아래로 미세하게 흐르는 내공의 주파수를 객관적인 3차원 지도로 그려낼 수 있었다.


‘골수독이 이미 기경팔맥(奇經八脈)의 뿌리인 독맥(督脈)과 임맥(任脈)을 침범했다. 게다가…….’


무한은 장철손의 무릎과 척추 주변에 남겨진 붉은 뜸 자국을 포착했다.


“어리석은 돌팔이 놈들이 열독을 빼낸답시고 뜨거운 뜸을 떠서 독을 뼈 속 깊은 곳까지 밀어 넣었구나. 골수독은 음(陰)의 극독인데, 여기에 양(陽)의 열기를 가했으니 독성이 뼛속에 고착되어 썩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지.”


무한의 날카로운 일침에 석실 구석에 있던 수적 의원들이 사색이 되어 바닥에 엎드렸다. 마삼의 눈동자 역시 크게 흔들렸다. 진맥도 하지 않고 오직 육안과 청각만으로 이전의 오진을 단번에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렇다면 살릴 방법이 있는가?”


마삼의 칼날이 미세하게 떨리며 뒤로 물러섰다. 무한은 대답 대신 품속에서 백옥은침통을 꺼냈다. 마비된 오른손 대신, 오직 피나는 수련으로 단련된 왼손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미세 근육 제어술(微細筋 制御).’


왼손가락의 떨림을 완벽히 죽인 무한은 침통에서 일반 은침보다 3배는 굵고 단단한 특제 한철 장침(長針)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그 침 끝에는 미세한 홈이 파여 있어 체내의 독혈을 외부로 배출하기에 최적화된 도구였다.


“노인장, 맹주의 척추와 무릎을 단단히 고정하시오. 이제부터 뼈를 뚫을 것이니, 단 일 푼의 움직임도 허용치 않소.”


무한의 지시에 마삼이 다급히 장철손의 거구를 침상에 짓눌렀다.


무한은 왼손에 장침을 쥐고 장철손의 무릎 슬안혈(膝眼穴)을 향해 내리꽂으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장철손의 체내에 잠복해 있던 강력한 일류(一流)의 진기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여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장철손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광폭한 혼원강기(混元罡氣)가 석실 전체를 진동시키며 무한의 가냘픈 신체를 날려버리려 했다. 일류 고수의 내공 폭주는 무공이 없는 무한에게 즉사급의 물리적 충격이었다.


“의원님!”


아칠이 비명을 질렀다. 마삼 역시 폭주하는 진기에 밀려 뒤로 주춤했다.


그러나 무한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미 이 순간을 예상하고 있었다.


‘인체 12사혈 봉인(12死穴 封印).’


무한은 소매 속 사출 장치를 가동하지 않고, 오직 왼손의 초정밀 침술만으로 장철손의 단전 입구이자 기맥의 중심인 기해혈(氣海穴)과 관원혈(關元穴)을 포함한 12개의 치명 사혈을 번개처럼 타격했다.


*팍! 팍! 팍!*


내공이 실리지 않은 순수한 물리적 타격이었으나, 정확히 기의 흐름이 꺾이는 절점을 관통하는 침술이었다. 장철손의 몸에서 푸른빛의 진기 파동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미친 듯이 폭주하던 내공의 흐름이 단숨에 정지되었다. 굳어버린 침묵이 석실을 지배했다.


“지금이다.”


무한은 망설임 없이 특제 장침을 장철손의 슬안혈과 척추의 명문혈(命門穴)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뼈와 뼈 사이의 관절 틈새를 정확히 관통하는 감각이 왼손 끝을 타고 전해졌다.


*푸욱!*


침 끝이 골막을 뚫고 들어가 장철손의 뒤틀린 골수 기맥의 뿌리에 닿았다.


그 순간, 장철손의 몸이 격렬하게 뒤틀렸다. 침 끝에 파인 미세한 홈을 타고, 뼛속 깊은 곳에 고여 있던 썩어 들어가는 검붉은 독혈이 압력 차를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석실 바닥으로 쏟아지는 독혈은 지독한 악취와 함께 검은 연기를 피워 올렸다. 뼛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음의 극독이 마침내 체외로 배출되는 광경이었다. 장철손은 전신의 뼈가 깎여 나가는 듯한 극통 속에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그의 비명소리가 수적채 전체를 흔들었다. 장철손은 침상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한 바가지의 검은 피를 허공에 토해냈다. 그 피가 바닥에 닿자마자 목조 판자가 부식되어 녹아내렸다.


마삼은 공포와 경악에 질려 칼을 떨어뜨렸다. 수적 조장들 역시 무릎을 꿇은 채 숨을 죽였다. 무공이 전혀 없는 병약한 의원이, 침 한 자루와 손끝의 제어력만으로 일류 고수의 내공 폭주를 잠재우고 뼛속의 극독을 뽑아내는 신기를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검은 피를 토해낸 장철손의 호흡이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피부를 덮고 있던 검은 부패의 흔적들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고, 그의 흐릿했던 눈동자에 형형한 신광(神光)이 돌아왔다. 막혔던 기혈이 통하며 일류 초입의 강맹한 진기가 전신 경맥을 부드럽게 순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철손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뼛속을 짓누르던 가혹한 통증이 완벽히 사라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침상에서 내려와, 백무한의 앞에 섰다. 거구의 장철손이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장철손, 독수신의 백 의원님을 뵙습니다. 제 뒤틀린 골수를 살려내고 이 수적채의 몰락을 막아주셨으니, 이 은혜는 평생 뼈에 새기겠습니다.”


마삼을 비롯한 수십 명의 수적 조장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향해 절했다. 석실 안은 오직 백무한을 향한 절대적인 경외감으로 가득 찼다.


무한은 심한 기침을 토해내며 하얀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왼손 침술의 극의를 전개하느라 손가락 관절에 심각한 무리가 가 오한 발작이 밀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수적채 전체를 지배하는 군주처럼 오만하게 빛났다.


“장 맹주. 은혜를 갚고 싶다면, 바깥의 사냥개들을 치울 방패가 되어 주시오.”


“걱정 마십시오, 의원님. 철검문의 철갑방패병 놈들이 이 수로를 넘지 못하도록, 우리 수적 연맹의 모든 배와 목숨을 바쳐 무력 방패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동맹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무공이 없는 의원이 운몽택 물길의 진짜 지배자들을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바로 그때, 석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전령 수적이 헐떡이며 들이닥쳤.


“맹주님! 큰일났습니다! 철검문 삼분타의 철갑방패병 조장 곽대패(郭大覇)가 대형 전선들을 이끌고 수적채 외곽 수로를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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