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치명적인 시험
저 멀리 상류 숲 너머에서, 기괴한 쇳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철갑병들이 대형을 이루어 낙엽당 방향으로 행진하는 웅장한 진동이 대지를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강가에 서 있던 설화정은 맑아진 벽류천의 물결과 행진해 오는 철갑병들의 살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안색을 굳혔다. 그녀의 허리춤에 매달린 아미파의 은방울들이 바람도 불지 않는데 미세하게 공명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설 의원.”
백무한이 피가 묻은 하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침을 쿨럭일 때마다 그의 창백한 안색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갈비뼈의 내상과 발목의 염좌로 인해 그의 신체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정파의 의협심을 보여줄 때요. 이 치료된 유민들을 데리고 우회 수로를 통해 대피하시오. 저 철갑병들은 나를 노리고 오는 것이니, 당신들이 여기 있으면 개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하지만 당신 몸으로 저 무자비한 군세를 어떻게 막겠다는 건가요? 무공도 없는 몸으로…….”
설화정은 은색 시약병 세트를 다급히 챙기며 무한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방금 전 벽류천을 정화한 그의 초월적인 약리 지식에 대한 깊은 경외감과 함께, 이 병약한 청년의 목숨에 대한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의원은 사람을 살리는 자요. 내 걱정은 말고 어서 움직이시오.”
무한의 단호한 일침에 설화정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살아난 어민들을 이끌고 갈대밭 사이의 음밀한 수로로 신속히 몸을 숨겼다.
무한은 아칠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이는 다리로 낙엽당(落葉堂)으로 향했다.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이 밀려왔으나 머릿속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조귀웅이 보낸 철갑병들이 당도하기 전에, 품속에 안전하게 보관된 혈룡사(血龍蛇)를 이용해 철마웅을 굴복시킬 ‘혈인독’의 정제 기틀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낙엽당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무한은 전신을 얼려버릴 듯한 기이한 기운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약방 내부는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아매(阿매)는 약탕기 뒤편 구석에 주저앉아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고, 약방 안에는 자스민 향기와 썩은 부패취가 기묘하게 뒤섞인 이국적인 약향(藥香)이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두운 약실 한가운데, 보라색 비단 천으로 얼굴을 가린 가냘픈 체구의 소녀가 앉아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보랏빛 베일 너머로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눈동자가 무한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녀의 허리춤에는 만 가지 독충의 기운을 담고 있는 은색 방울인 만독령(萬毒령)이 매달려 있었다. 오독교(五毒教)의 성녀, 남궁란(南宮蘭)이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온몸에 뱀 문신을 새긴 붉은 가죽옷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살을 파먹는 독이 발려 있는 붉은 가죽 채찍이 쥐어져 있었다. 오독교의 악명 높은 적사대장, 적사(赤蛇)였다.
“네가 벽류천의 철독을 단숨에 정화했다는 그 ‘독수신의’인가?”
남궁란의 목소리는 맑고 청아했으나, 그 안에 담긴 살기는 뼛속을 파고들 만큼 차가웠다.
무한은 기침을 가볍게 토해내며 오른손의 하얀 붕대를 질끈 쥐었다.
“오독교의 귀한 분들이 이 누추한 약방까지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철검문의 조잡한 철독을 깬 실력은 가상하다만, 그것이 잔재주인지 진짜 신묘한 의술인지 내 직접 시험해 보아야겠다.”
남궁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딸랑.*
그녀의 허리춤에 매달린 만독령이 기괴한 주파수의 소리를 내며 울렸다. 그 순간, 남궁란의 가냘픈 소매 끝에서 검붉은 빛을 띠는 번뜩이는 무언가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그것은 오독교의 비전 고충이자 전설적인 극독 생물인 ‘만독식심고(萬毒食心蠱)’의 변종이었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투명한 붉은 벌레가 무한의 드러난 왼쪽 손목 피부를 뚫고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윽……!”
무한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무릎을 꿇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극통이 전신을 강타했다. 고충이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향하는 주맥인 궐음심포경(厥陰心包經)을 따라 기어오르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심장이 불타는 인두로 지져지는 듯했고, 폐맥이 뒤틀려 입안 가득 비릿한 검은 피가 솟구쳤. 무한은 가슴을 쥐어짜며 각혈했다.
“의원님!”
아칠이 비명을 지르며 다가오려 했으나, 적사가 채찍을 가볍게 휘두르자 벼락같은 파공음과 함께 바닥이 갈라지며 아칠은 뒤로 튕겨 나갔다.
“방해하지 마라, 꼬맹이. 성녀님의 시험을 방해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사지를 찢겠다.”
적사의 붉은 채찍이 뱀처럼 뼘을 치며 무한을 위협했다.
무한은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헐떡였다. 그의 눈가에 핏줄이 기괴하게 솟아올랐고 전신이 오한으로 떨렸다. 고충이 심장 벽을 이빨로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무한은 가슴 안주머니에서 급히 일반 해독 알약을 꺼내 삼키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고충은 해독 약물의 성분을 오히려 영양분으로 흡수하여 더욱 미친 듯이 심장 판막을 물어뜯었다.
“커헉……!”
더 큰 각혈과 함께 무한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무한의 뇌리는 오히려 차갑게 각성했다.
‘고충은 생물이다. 생물은 시술자의 진기(眞氣) 파동과 동조하여 움직인다. 시술자의 맥을 읽으면 고충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
무한은 품속에서 가느다란 명주실 한 가닥을 왼손 끝으로 꺼냈다. 그의 오른손은 마비와 화상 흉터로 떨리고 있었기에, 오직 피나는 수련으로 단련된 왼손의 감각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무한은 손가락을 튕겨 명주실을 남궁란을 향해 날렸다. 실 끝이 바람을 뚫고 날아가 남궁란의 왼쪽 손목 경혈에 정확히 감겼다.
‘현사진맥(懸絲診脈).’
직접적인 접촉 없이 실의 미세한 떨림만으로 상대의 오장육부와 내공 상태를 완벽히 진단하는 낙엽곡의 비전 맥진술이었다. 실을 타고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이 무한의 초감각적인 뇌내 연산 장치로 흘러들었다.
그 순간, 무한의 머릿속에 과거 혈룡사 군락지 동굴의 인공 석벽에서 보았던 오독교 선대 교주의 고대 묘족 문자 주석들이 삼차원 입체 지도로 떠올랐.
*‘만독식심고는 시술자의 심맥 고동 소리를 이정표 삼아 심장을 파먹는다. 시술자의 심맥 주파수를 역산하여 그 반대 주파수로 경혈을 차단하면 고충은 길을 잃고 마비된다.’*
선대 교주의 주석을 완벽히 해독해 낸 무한은 현사진맥을 통해 남궁란의 심맥을 독파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무한은 경악스러운 진실을 발견했다.
남궁란의 손목을 타고 흐르는 맥상 깊은 곳에, 그녀의 심장을 옥죄고 있는 또 다른 거대한 고충의 박동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것은 현재 오독교주가 그녀를 지배하기 위해 심어둔 ‘고왕(蠱王)’의 파동이었다. 성녀라 불리는 그녀 역시 교주의 가혹한 장기말에 불과하다는 명백한 의학적 증거였다.
무한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약점을 잡은 것이다.
그는 백옥은침통에서 가장 굵고 단단한 특제 은침 한 자루를 왼손으로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 정중앙에 위치한 백회혈(百會穴)과 심장 주변의 극문혈(隙門穴)을 향해 주저 없이 은침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푸욱!*
침 끝이 뼈를 긁는 소리와 함께 경혈 깊숙이 박혔다.
그 순간, 남궁란의 진기 파동과 동조하여 무한의 심장을 파먹던 만독식심고가 뇌의 제어 신호가 차단되자 즉각 활동을 멈추고 굳어버렸다. 심장을 찢어발기던 극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무한은 굳어버린 고충을 심장 벽 한구석에 안전하게 고착화시키는 ‘만독식심고 변종 배합법’의 침구 수식을 완성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고충의 신경 지배 신호를 강제로 차단하는 과정에서, 무한의 오른손 손가락 세 개가 검게 변하며 영구적으로 마비되었다. 이제 그는 평생 오른손으로 침을 쥘 수 없는 신체적 불구가 된 것이다.
무한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동자는 심연처럼 깊고 차가웠다.
“성녀님.”
무한이 남궁란을 똑바로 응시하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시험은 통과한 것 같군. 그리고…… 현사진맥을 통해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소.”
남궁란의 매혹적인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슨 소리지?”
“당신의 심장 깊은 곳에서도 나와 똑같은 울음소리가 들리더군. 오독교주가 심어둔 고왕의 울음소리가 말이오. 천하의 성녀라 불리는 당신 역시, 교주의 발밑에서 해독약을 구걸하는 사냥개에 불과하지 않소?”
“이놈이……!”
적사가 대노하며 붉은 가죽 채찍을 치켜들었다. 채찍 끝에 서린 맹독의 기운이 무한의 목을 찢어버릴 듯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채찍이 무한의 목에 닿기 직전, 보랏빛 잔영이 허공을 가르며 적사의 채찍을 강하게 가로막았다. 남궁란이 자신의 벽라신보를 전개하여 적사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멈춰라, 적사.”
남궁란의 목소리에 전에 없던 경탄과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보라색 베일을 천천히 벗어던졌다. 베일 뒤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나, 그 눈동자에는 교주를 향한 깊은 증오와 복수심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내 심장의 비밀을 손도 대지 않고 알아채다니…… 너는 진짜 신의(神醫)로구나.”
남궁란이 무한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나를 도우라. 내 심장의 고왕을 제어할 방법을 찾아준다면, 오독교의 모든 약재와 힘을 너에게 주겠다. 나와 함께 교주의 목을 베지 않겠느냐?”
무한의 심장에 심겨진 고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침술로 봉인된 채 조용히 박동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기묘하고도 치명적인 비밀 동맹이 맺어지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낙엽당 바깥의 숲속에서 기괴한 쇳소리와 함께 오독교 본산에서 보낸 정예 암살단 ‘적사대’의 살기가 약방 전체를 포위하듯 무겁게 짓눌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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