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류천의 검은 피
절벽 위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며, 무한은 절뚝이는 다리로 밧줄을 다시 움켜쥐었습니다. 동굴 내부에서 소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고 침술을 펼치느라 전신의 기력이 밑바닥까지 긁힌 상태였다. 부러진 갈비뼈가 가슴을 찌를 때마다 창백한 입술 사이로 비릿한 핏물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무한은 멈출 수 없었다. 지상에서 들려오는 저 비명소리는 철마웅의 군대가 유민들을 도륙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기에.
“의원님, 다리가…….”
소희가 울먹이며 무한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녀의 오른팔에는 여전히 무한이 꽂아둔 두 자루의 은침이 박혀 있었다. 전갈의 독성이 심장으로 향하는 것을 임시로 막아둔 상태였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약방으로 돌아가야 해.”
무한은 왼손으로 밧줄을 단단히 쥐고, 발목의 극심한 염좌 통증을 억누르며 절벽을 기어올랐다. 소희의 부축을 받으며 숲을 헤치고 낙엽당(落葉堂) 지하 약실로 복귀했을 때, 무한의 전신은 이미 진흙과 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무한은 숨을 헐떡이며 품에서 채취한 혈룡사(血龍蛇) 상자를 열었다. 붉은 뱀처럼 꿈틀거리는 독초의 줄기에서 미세한 즙액을 짜내어, 미리 준비해 둔 완충 약재와 배합했다.
“소희야, 이 약을 마셔라.”
소희가 약을 마시자마자 손목의 검푸른 독선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무한은 떨리는 왼손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그녀의 팔에 꽂혀 있던 두 자루의 은침을 무음으로 회수했다. 은침통의 은침은 이제 다시 서른 자루(30자루)가 되었다. 소희의 몸속 독성이 완전히 정화된 것을 확인한 순간, 약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아칠(阿七)이 들이닥쳤다.
“의원님! 큰일 났습니다! 벽류천(碧流川)이…… 벽류천이 검게 변하고 있습니다!”
아칠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벽류천은 운몽택 피난민들과 어민 수천 명의 생명줄이자 유일한 식수원이었다. 무한은 뒤틀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기침을 뱉어냈다.
“조귀웅이 움직였군.”
철검문의 행동대장 조귀웅(趙貴雄). 철마웅의 오른팔이자 잔인무도한 살인귀인 그자가 마침내 유민들을 말살하기 위해 가장 비열한 수단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무한은 임노인과 아칠의 부축을 받으며 벽류천 하류의 어민 정착지로 향했다.
강가에 다다랐을 때, 무한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
맑고 푸르러야 할 벽류천의 물줄기가 기름진 검은 빛깔로 썩어가고 있었다. 강물 표면에는 불쾌한 금속성 광채가 감돌았고, 지독한 유황과 녹슨 철의 냄새가 진동했다. 강변에는 이미 물을 마신 아이들과 어민 수십 명이 쓰러져 전신을 비틀고 있었다. 그들의 피부 아래로 검은 핏줄이 기괴하게 솟아올랐고, 사지가 녹슨 철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는 전신 마비 증세를 보이며 검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안 돼! 제발 정신 차려라!”
강가 한가운데에서 하얀 비단 마포를 입은 여인이 절규하고 있었다. 아미파의 속가 제자이자 천재 여의원인 설화정(薛華貞)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은색 시약병들을 바닥에 펼쳐놓고, 쓰러진 아이의 가슴에 침을 꽂으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설화정의 정교한 아미파 침술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의 체내로 침투한 광물성 철독(鐵毒)이 혈관 속에서 급격히 경화되어, 은침을 찌르는 순간 쇳소리와 함께 침 끝이 튕겨 나가거나 휘어져 버린 것이다.
“독이…… 독이 경맥을 굳혀 침이 들어가지 않아! 어째서 이런 사악한 독을……!”
설화정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품에서 아미파 비전의 영약인 자하단(紫霞丹) 가루를 꺼내 물에 풀었다. 정통 도가 약재로 독성을 밀어내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멈추시오! 자하단을 풀면 안 되오!”
무한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자하단의 성분이 강물 속의 철독과 만나는 순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기괴한 검은 침전물이 형성되며 유독한 기체가 뿜어져 나왔다. 약물이 오히려 철독의 산성 성분과 반응하여 독성을 수십 배로 강화시킨 것이다. 물을 마신 환자들이 더 가혹한 발작을 일으키며 각혈했다.
“당신은 누군데 내 처방을 가로막는 건가요?”
설화정이 붉어진 눈으로 무한을 쏘아보았다. 무한은 대답 대신 절뚝이는 걸음으로 강가로 다가갔다. 그는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안진맥(心眼診脈).’
내공이 없는 그의 뇌내에, 검게 물든 강물의 미세한 파동과 환자들의 숨소리가 삼차원 입체 지도로 그려졌다. 황산 성분과 고농도의 쇳가루가 결합된 철독의 화학적 약리 공식이 그의 머릿속에서 역산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독이 아니오. 철검문의 조귀웅이 상류 광산에서 추출한 산성 철독가루를 방류한 것이오. 정파의 정통 해독약인 자하단은 강한 알칼리 성질을 띠고 있어, 이 광물성 산성 독과 만나면 격렬한 상극 반응을 일으켜 혈관을 완전히 녹여버리는 가스독으로 변하오.”
무한의 냉철하고 정교한 분석에 설화정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침으로 막을 수 없다면, 약리적 상극(相極)으로 독을 가라앉혀야 하오.”
무한은 즉석에서 ‘벽류천 정화 처방전’을 설계했다. 그는 아칠과 임노인에게 소리쳤다.
“아칠! 약방 창고에 있는 은어 비늘(銀魚 鱗) 가루를 전부 가져와라! 임 노인장, 약초 채집인들을 동원해 상류의 유입로를 차단하고 뇌격목 숯(雷擊木 炭) 필터를 설치해야 합니다!”
은어 비늘에 함유된 미세한 칼슘 성분과 뇌격목 숯의 다공성 탄소 성분을 결합하여, 산성 철독을 무해한 입자로 흡착시켜 강바닥으로 가라앉히려는 계산이었다. 또한 완충제로 쓰일 벽류천 약수(碧流川 藥水)를 배합해야 했다.
유민들이 필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류로 향하던 임노인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밀려났다.
“의원님! 조귀웅의 무사들이 상류를 지키고 있습니다! 접근하는 자들을 가차 없이 베어버리고 있어요!”
상류 숲속에서 쇄골도를 쥔 조귀웅의 부하들이 살기를 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해독제를 방류하려는 움직임을 원천 차단하려는 지령이었다. 무공이 없는 무한과 늙은 유민들로서는 저들의 칼날을 뚫을 방법이 없었다.
무한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길을 열겠소.”
그는 절뚝이는 몸을 이끌고 상류 숲의 경계선으로 걸어 나갔. 적의 무사들이 무한을 발견하고 대도를 치켜들었다.
“쥐새끼가 겁도 없이 기어 나오는구나! 죽어라!”
무한은 소매를 가볍게 털었다.
‘약향 장막(藥香帳幕).’
그의 소매 끝에서 미세한 약초 가루가 바람을 타고 살포되었다. 무색무취의 가루는 숲속의 안개와 섞여 순식간에 적들의 시야와 후각을 덮쳤. 무사들이 가루를 들이마시는 순간, 전신의 신경이 마비되고 눈앞에 기괴한 환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끄악! 눈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사방에 뱀들이 기어 다닌다!”
적들이 허공에 대도를 휘두르며 서로를 공격하는 혼란이 벌어졌다. 무한의 정교한 기만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지금입니다! 은어 비늘 가루를 투하하십시오!”
무한의 지시에 따라 임노인과 채집인들이 뇌격목 숯 필터를 통과한 벽류천 약수와 은어 비늘 가루를 상류 물길에 일제히 쏟아부었다.
*치이이이익!*
강물 속에서 미세한 기포가 일며 기적 같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은어 비늘의 칼슘 성분이 산성 철독을 급격히 중화시키며 중금속 입자들을 무거운 회색 플러그로 뭉치게 만들었다. 뇌격목 숯 필터가 유독 가스를 흡착하는 사이, 검붉게 썩어가던 벽류천의 물줄기가 상류에서부터 맑고 투명한 빛깔을 되찾으며 하류로 흘러내려 갔다.
강바닥으로 가라앉은 독소들은 모래 속에 갇혀 무해한 침전물로 변했다. 하룻밤 만에 강 전체가 정화되는 기적이 연출된 것이다.
강물을 마시고 숨을 몰아쉬던 아이들과 유민들이 차례로 각혈을 멈추고 안정을 되찾았다. 생명의 온기가 벽류천 전체에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설화정은 맑아진 강물과 살아난 환자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무한을 응시했다. 무공이 전혀 없어 기침을 쿨럭이며 서 있는 이 병약한 청년이, 아미파의 정통 의술로도 풀지 못한 대규모 역병을 오직 약리의 상극 반응만으로 완벽히 해결해 낸 것이다.
“당신……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요? 평범한 떠돌이 의원이 이런 처방을 내릴 수는 없어요. 설마 낙엽곡의…….”
설화정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상류 숲 너머에서, 기괴한 쇳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철갑병들이 대형을 이루어 낙엽당 방향으로 행진하는 웅장한 진동이 대지를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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