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낙엽당의 등불
불길은 등 뒤에서 밤하늘을 붉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허파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백무한은 가슴을 쥐어짜며 밭은기침을 토해냈다. 늪지의 축축한 진흙은 발을 디딜 때마다 발목까지 무겁게 잡아당겼고, 부러진 갈비뼈가 가슴을 찌르는 통증은 매 순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의원 양반, 정신 붙잡게! 조금만 더 가면 수로에 숨겨둔 뗏목이 있네!"
임노인이 소녀 임소희를 한쪽 어깨에 짊어진 채, 다른 한 손으로 무한의 팔을 거세게 잡아끌었다. 전직 포교 출신답게 그의 발걸음은 늪지에서도 빠르고 단단했다. 무한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단전에서 기가 한 톨도 흐르지 않는 폐맥지체의 몸뚱이는 이럴 때마다 족쇄나 다름없었다. 평범한 삼류 무사조차 가볍게 펼치는 경공 한 자락이 그에게는 목숨을 깎아 먹는 사투였다.
철검문 조장 고팔의 추격대가 지른 불길을 피해, 그들은 안개가 자욱한 운몽택의 지하 수로로 기어 들어갔다. 썩은 물비린내와 습한 냉기가 전신을 감싸 안았다. 임노인이 미리 숨겨두었던 작은 뗏목에 몸을 싣고 나서야 무한은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소희야, 소희야 정신 차려라!"
뗏목이 어두운 동굴 수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나아가자, 임노인이 뗏목 바닥에 소희를 눕히며 울부짖었다. 무한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소녀의 오른손 끝을 바라보았다. 가운뎃손가락 끝마디에서부터 시작된 검푸른 독선이 이미 손목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운몽택 동쪽 절벽 밑에서 채취했다는 희귀 독초, '혈룡사(血龍蛇)'의 독이었다.
무한은 품속에서 가죽 침통인 백옥은침통을 꺼냈다. 하얀 붕대로 칭칭 감긴 그의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과거 약초를 채취하다 얻은 화상 흉터를 가리기 위해 감아둔 붕대였지만, 지금은 만성적인 기력 소모로 인한 손끝의 떨림을 숨겨주는 방패이기도 했다. 무한은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미세 근육 제어술(微細筋 制御).'
붓 끝에 온 정신을 실어 찰나의 힘을 조율하던 선대 명의들의 필법을 떠올렸다. 무한의 손가락 마디마디의 미세한 근육들이 일제히 긴장하며 떨림을 멈추었다. 대리석처럼 굳어버린 손가락 끝으로 침통의 백옥 문양을 돌리자, 길이와 굵기가 다른 서른다섯 자루의 은침이 솟아올랐. 그중 가장 가늘고 예리한 은침 한 자루를 왼손으로 뽑아 쥐었다.
"노인장, 소희의 어깨를 꽉 누르십시오. 독이 심장으로 통하는 주맥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무한의 목소리는 차갑고 가라앉아 있었다. 임노인이 다급히 손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무한은 소희의 손목 안쪽에 위치한 내관혈(內關穴)과 팔꿈치 안쪽의 곡택혈(曲澤穴)을 향해 은침을 날카롭게 찔러 넣었다. 내공이 실리지 않은 순수한 물리적인 타격이었으나, 인체의 급소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찌르는 침술이었다. 침 끝이 경혈에 박히는 순간, 미세한 파공음과 함께 소희의 전신이 가볍게 떨렸다.
"끄응……."
소녀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손목을 향해 기어오르던 검푸른 독선이 내관혈 자리에 박힌 은침에 가로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멈춰 섰다. 맥박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수축시켜 독성의 확산을 물리적으로 지연시킨 것이다.
"일단 독의 전신 확산은 막았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해독하려면 낙엽당에 도착해 정밀한 약재를 배합해야 합니다."
무한의 말에 임노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뗏목의 삿대를 거세게 저었다. 동굴 수로는 점점 더 깊고 어두운 늪지 안쪽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
수로의 끝자락, 자욱한 안개 속에 허름한 목조 전각 하나가 등불도 없이 서 있었다.
과거 운몽택 주민들의 존경을 받던 늙은 의원 심학도(沈學道)가 은거하며 병자들을 돌보던 약방, '낙엽당(落葉堂)'이었다. 심학도가 세상을 떠나며 낙엽곡의 생존자인 무한에게 물려준 유일한 은신처이자, 철검문의 감시를 피해 독을 연구할 수 있는 완벽한 요람이었다.
뗏목이 낡은 선착장에 닿자, 무한은 임노인과 함께 소희를 안고 낙엽당 안으로 들어섰다. 사방에서 말린 약초의 씁쓸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여 풍겨왔다. 약방 한구석에 소희를 눕힌 무한이 약재함을 뒤적이려던 찰나, 어둠 속에서 조용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무한은 경계하며 소매 속 사출 장치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둥근 등불 하나가 켜지며 나타난 얼굴을 본 순간, 그의 손끝이 멈추었다.
"……아매?"
하얀 무명 옷을 입고 목덜미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늙은 여인. 낙엽곡의 살림을 도맡았던 벙어리 하녀 아매(阿妹)였다. 학살의 밤, 혀가 잘린 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운몽택으로 흘러들었던 그녀가 이곳 낙엽당에 먼저 도착해 무한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매는 무한의 창백한 얼굴과 피 묻은 의복을 보는 순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거친 손으로 무한의 뺨을 어루만지던 그녀는 다급히 약탕기 앞으로 가 불을 지피고 따뜻한 보양 약선을 달이기 시작했다. 가문이 멸망한 폐허 속에서 유일하게 다시 만난 일상의 온기였다.
그때, 낙엽당의 낡은 목조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고요한 늪지를 흔들었다.
쿵! 쿵! 쿵!
"의원님! 신의님! 제발 문 좀 열어주십시오! 사람이 죽어갑니다!"
임노인이 즉각 허리의 쇠사슬을 움켜쥐며 경계했다. 무한은 가슴의 통증을 누르며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흙탕물과 진흙을 온몸에 뒤집어쓴 굶주린 고아 소년 아칠(阿七)이 서 있었다. 소년의 등 뒤에는 전신이 마비되어 굳어버린 한 유민 환자가 들것에 실려 쓰러져 있었다.
"의원님, 제발…… 이 형을 살려주십시오. 갑자기 몸이 바위처럼 굳어지더니 숨을 쉬지 못합니다. 읍내의 돌팔이 의원들은 전염병이라며 성 밖으로 버리라고만 했습니다."
아칠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무한은 쓰러진 환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끝은 이미 검게 물들어 있었고, 호흡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불규칙했다.
무한의 마음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외면해라. 너는 복수를 위해 살아남은 귀신이다. 무고한 빈민들을 치료하느라 귀중한 약재와 체력을 소모할 여유는 없다. 철검문의 추적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품속에 안긴 부친 백소문의 유골함이 묵직한 무게감으로 그의 심장을 짓눌렀. 가문의 준엄한 가훈이 뇌리를 스쳤다.
'어떠한 경우에도 환자를 가려 받지 말라. 사람을 살리는 침으로 세상을 구하라.'
무한은 지독한 도덕적 갈등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흔들렸다. 복수자로서의 잔혹함과 의원으로서의 양심이 그의 영혼을 반으로 찢어발기는 듯했다. 하지만 쓰러진 환자의 목덜미 경동맥이 미세하게 파르르 떠는 모양새를 본 순간, 그의 손가락 끝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안으로 들여라."
무한은 환자를 약방 중앙의 평상에 눕히고, 환자의 몸에 직접 손을 대지 않은 채 그의 호흡 소리와 맥박의 미세한 진동만을 귀로 들었다.
'심안진맥(心眼診脈).'
환자의 오장육부가 어떻게 뒤틀려 있는지, 기경팔맥의 어느 지점에서 진기가 정체되어 혈관을 막고 있는지 삼차원 입체 지도가 무한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것은 단순한 역병이 아니다. 기맥의 흐름을 강제로 역행시키는 광물성 독물이 체내에 침투한 것이다."
일반적인 뜸 치료나 탕약 처방은 통하지 않았다. 이미 환자의 위장은 독소로 굳어 있어 처방한 탕약을 삼키지 못하고 토해낼 터였다. 오직 경맥의 중심을 정확히 타격해 막힌 기류를 소통시키는 침술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무한은 아칠에게 명했다.
"아칠이라 했느냐. 화로의 탄을 더 피우고, 저기 선반 위에 있는 냉천수 항아리에서 '독사 쓸개즙(毒蛇 膽汁)'을 희석한 약수를 가져오너라."
아칠은 영민한 눈빛으로 즉각 지시를 따랐다. 소년은 약방의 매캐한 매연 속에서도 정확하게 약병을 찾아내 무한의 앞에 바쳤.
무한은 은침 한 자루를 뽑아 쥐었다. 전신 골절의 통증이 그의 오른손을 흔들려 했으나, '미세 근육 제어술'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손가락 끝의 떨림을 완벽히 죽였다. 백색 붕대 사이로 드러난 그의 손가락 끝이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스윽.
무한의 은침이 환자의 가슴 한가운데인 단중혈(膻中穴)과 목덜미의 아문혈(啞門穴)을 향해 파고들었다. 정확히 0.3촌의 깊이. 내공이 없는 무한의 침술이었으나, 기맥의 흐름이 막힌 정확한 결절점을 찌르는 침 끝은 일류 고수의 타격보다 예리했다.
치익!
침이 박히는 순간, 환자의 몸에서 탁하고 검붉은 피 한 방울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환자의 목구멍에서 기괴한 가래 끓는 소리가 나며 막혔던 숨통이 트였다.
"흐읍!"
환자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눈을 부릅떴다. 마비되었던 그의 팔다리에 미세하게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숨죽여 지켜보던 아칠과 임노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기존의 돌팔이 의원들이 전염병이라며 포기했던 환자를, 무한은 단 두 자루의 은침과 정교한 기맥 타격 기술로 단숨에 회생시킨 것이다.
그 순간, 침 끝을 타고 검붉은 독성 물질이 미세하게 역류하여 무한의 손가락으로 침투하려 했다. 무한은 당황하지 않고, 아칠이 가져온 독사 쓸개즙 희석 약수에 손을 신속히 담갔다. 쓸개즙의 신경 마비 성분이 역류하던 독성과 상극 반응을 일으키며 침투를 완벽히 차단했다.
"후우……."
치료를 마친 무한은 전신의 기력이 급격히 소모되어 심한 편두통과 이명을 겪었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며 기침이 터져 나왔다. 아매가 급히 다가와 보양 약선 탕약을 그에게 건넸다. 약탕을 들이켜며 무한은 겨우 몸을 지탱했다.
그는 평상 위에 떨어진 환자의 검붉은 독혈을 자금약저 끝으로 묻혀 유심히 관찰했다. 약저 끝이 즉각 검붉은 색으로 변하며 기괴한 금속성 냄새를 풍겼다.
무한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이 독은 자연적인 역병이 아니다. 철검문이 광산에서 채굴한 흑철의 쇠독과 사파의 약재를 인위적으로 배합해 유포한 독성 물질이다.'
단순한 역병인 줄 알았던 운몽택의 괴질은, 사실 철검문 삼분타가 이 지역의 유민들을 말살하고 영토를 독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유포한 가혹한 생화학적 학살극이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숙부 백소우, 즉 천기자의 음모가 얽혀 있음이 분명했다.
"의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아칠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눈물을 흘렸다. 문밖에서는 약방의 등불을 보고 모여든 운몽택 약초 채집인 조합의 빈민들이 낙엽당의 신묘한 의술에 감탄하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무한은 어둠이 가득한 약방 밖의 늪지를 바라보았다. 낙엽당의 작은 등불이 흔들리며 어두운 늪지를 비추고 있었지만, 그 너머에는 더 거대하고 잔혹한 피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아칠이라 했느냐."
무한이 차가운 눈빛으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예, 의원님!"
"앞으로 이곳의 약재를 썰고 탄을 피우는 일을 맡거라. 그리고…… 늪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문과 철검문의 움직임을 나에게 보고해라."
"목숨을 바쳐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굶주린 사냥개 같은 눈빛을 한 소년 아칠을 수하로 거두며, 백무한은 낙엽당의 어두운 다락방 안에서 철검문을 향한 처절한 복수의 첫 번째 장기판을 조용히 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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