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의 목덜미
파산동 지하 폐광의 공기는 무겁고 축축했다. 천장 틈새로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 소리만이 불규칙하게 정적을 깨뜨리는 밀실. 횃불의 주황색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동굴 벽면에 드리워진 두 사내의 그림자가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철마웅은 횃불을 높이 들어 눈앞에 선 창백한 청년을 응시했다. 허약하기 그지없는 체구, 먼지와 피가 뒤섞인 청색 의원 의복,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른손에 감겨 있는 하얀 붕대. 가문을 이끌 무학의 재능이 없어 낙엽곡의 평범한 의원으로만 치부되던 존재.
“네놈…… 백무한이렷다?”
철마웅의 흉포한 얼굴에 한 줄기 기괴한 조소가 번졌다.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껄껄 웃기 시작했다. 거대한 웃음소리가 폐광의 좁은 갱도를 뒤흔들며 먼지를 흘려보냈다.
“낙엽곡의 멸망 속에서 살아남은 쥐새끼가 누구인가 했더니, 겨우 단전에 기 한 톨도 모으지 못하는 폐물 의원 놈이었단 말이냐! 네놈이 그 알량한 성대 모사 역용술로 내 아들 무진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나를 이 지옥 구덩이로 유인했단 말이지?”
철마웅은 옆구리를 움켜쥐며 침을 뱉었다. 지병인 신장 부전의 극통이 수시로 그의 허리를 옥죄었지만, 눈앞의 적이 무공이 전혀 없는 약골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오만함이 통증을 압도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덫을 놓아 보았자, 일류 무인의 힘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 네놈의 대가리를 이 파천철퇴로 으깨어 낙엽곡 늙은이들의 곁으로 보내주마!”
철마웅이 전신의 진기를 끌어올리며 100근짜리 흑철 파천철퇴(破天鐵槌)를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쉬이이이익!*
공기를 찢는 가공할 파공음과 함께 거대한 강철 덩어리가 무한의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일류 고수의 내력이 실린 철퇴의 풍압만으로도 동굴 벽의 바위들이 쩍쩍 갈라져 나갔다. 무공이 없는 자라면 그 풍압에 질식해 뼈가 먼저 부러질 일격이었다.
무한은 차가운 눈으로 날아오는 철퇴의 궤적을 응시했다. 그의 단전은 텅 비어 있었으나, 머릿속은 얼음보다 차가운 연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콜록! 콜록!”
무한은 급격히 치밀어 오르는 피기침을 토해냈다. 그 순간, 기침의 반동으로 몸의 무게중심이 무너지며 그의 신형이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송학도인에게 배운 ‘기침 회피 보법(咳避步)’이었다. 무한의 가냘픈 몸은 철퇴가 그리는 파멸의 궤적 바로 아래로 미끄러지듯 쓰러졌다.
*쾅!*
철퇴는 무한의 머리칼 끝을 스치며 뒤편의 화강암 벽을 산산조각 냈다.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철퇴가 뿜어낸 일류의 강맹한 진기 풍압까지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바작!*
“윽……!”
무한은 왼쪽 어깨에 가해진 충격에 비명을 참아냈다. 어깨뼈가 탈골되며 어긋나는 극심한 고통이 뇌리를 강타했다. 가슴속 갈비뼈 부위에서도 삐걱이는 통증이 도졌다. 무한은 입가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하얀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왼손 끝은 고통 속에서도 백옥은침통(白玉銀針筒)을 움켜쥔 채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쥐새끼가 제법 날랜 몸놀림을 가졌구나! 하지만 다음도 피할 수 있겠느냐!”
철마웅은 기만당했다는 분노에 휩싸여 단전에 기를 모았다. 그의 구리빛 피부가 순식간에 어두운 금속성 광채를 띠기 시작했다. 철검문 정통의 외공 보호 장막인 ‘철포삼(鐵布衫)’이었다. 일류 무인의 진기가 전신 피부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은침이나 암기 따위는 닿는 즉시 부러져 나갈 방어막이었다.
“내 철포삼을 뚫을 무기도 없는 놈이 감히 내 앞을 가로막다니!”
철마웅이 대지를 디디며 무한의 안면을 향해 거대한 주먹을 내질렀. 주먹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권풍이 동굴 안의 먼지를 일시적으로 밀어냈다.
그 찰나의 순간, 무한은 깊고 고요한 심연 속으로 침잠했다.
‘심안진맥(心眼診脈).’
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으며, 철마웅의 거대한 신체가 투명한 경맥의 지도로 전환되었다. 붉고 푸른 기의 흐름이 전신을 순환하는 형태가 무한의 뇌리에 삼차원 입체 지도로 선명하게 그려졌다.
완벽해 보이는 철포삼의 강철 장막. 하지만 무한의 눈에는 그 장막의 치명적인 균열이 보였다.
철마웅의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 즉 신장 경맥의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꼬여 있었다. 천기자가 제공한 가짜 영약 ‘빙련단’의 부작용으로 인해 신장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올리자, 신수혈(腎兪穴) 부근의 진기가 흐르지 못하고 거대한 웅덩이처럼 정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정체된 틈새가 바로 철포삼의 유일한 사혈(死穴)이자 파문(破門)이었다.
“네놈이 복용한 빙련단은 영약이 아니라 심맥을 갉아먹는 마약이다. 그것도 모르고 내공을 폭발시키다니,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무한은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피를 삼키며 왼손을 움직였다. 영구 마비된 오른손 대신, 오직 피나는 수련으로 단련된 왼손 손가락 끝이 대리석처럼 떨림을 멈추었다.
‘미세 근육 제어술(微細筋 制御).’
*툭!*
무한은 왼손가락 끝을 튕겨 소매 속 탄성 사출기(袖中 彈性 射出機)를 가동했다. 아무런 파공음도 없이, 백옥은침통에서 뽑아낸 초정밀 은침 한 자루가 사도명의 손목 안쪽 내관혈(內觀穴)을 향해 날아갔다.
“하찮은 침 따위가 내 철포삼을 뚫을 성싶으냐!”
철마웅이 비웃으며 주먹에 힘을 실었다. 그의 피부에 닿은 은침이 금속음과 함께 튕겨 나가려 했다. 외공의 힘이 은침의 침투를 거부하는 순간이었다.
무한은 이미 그 반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신형을 앞으로 던지며 왼손에 쥐고 있던 자금약저(紫金藥箸)의 끝부분을 철마웅의 허리 뒤편, 정체된 기가 고여 있는 신수혈에 정확하고 강하게 내리꽂았다.
*퍽!*
“으윽!”
철마웅의 입에서 단발마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자금약저의 자성과 무한의 정교한 급소 지압이 정체되어 있던 신장 경맥의 웅덩이를 강제로 터뜨려 버린 것이다. 그 순간, 철마웅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철포삼의 단단한 강철 장막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며 해제되었다.
방어막이 사라진 찰나, 철마웅의 손목 내관혈에 박혀 있던 은침이 피부를 뚫고 경맥 깊숙이 1촌 깊이로 파고들었다.
“아, 안 돼…… 내 진기가……!”
철마웅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었다.
주먹을 내지르기 위해 단전에서부터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던 일류의 진기가, 손목의 내관혈에 박힌 은침의 도도한 기맥 차단 장벽에 가로막혔다. 갈 곳을 잃은 가공할 내공의 힘이 갈래갈래 찢어지며 그의 심맥과 단전을 향해 역방향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진기 역류 유도 (眞氣 逆流).’
“끄아아아아악!”
철마웅의 입에서 동굴 전체를 찢어발길 듯한 처절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의 목덜미와 가슴 주변의 경맥들이 기괴하게 검푸른 색으로 부풀어 오르며 핏줄이 터져 나갔다. 평생을 쌓아 올린 강력한 일류의 진기가 스스로의 기맥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가장 파괴적인 칼날이 되어 그의 장기를 파괴했다. 철마웅은 100근짜리 파천철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육중한 흑철 덩어리가 동굴 바닥에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쿵!*
철마웅은 전신이 굳어가는 극심한 통증 속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자결할 힘조차, 철퇴를 다시 쥘 힘조차 빼앗긴 완벽한 무력화였다.
무한은 탈골된 왼쪽 어깨의 통증에 신음하면서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꿇어앉은 철마웅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 차갑고 잔인한 미소가 흔들리는 횃불빛 아래에서 기괴하게 피어올랐다.
무한은 품속에서 서서히 백옥은침 한 자루를 더 꺼내 들었다. 그 침 끝에는 운몽택 동굴 깊은 곳에서 목숨을 걸고 채취한 붉은 뱀 모양의 독초, 혈룡사(血龍蛇)의 진액이 검푸른 빛을 발하며 끈적하게 묻어 있었다.
원수의 목덜미가, 무한의 침 끝 바로 아래에서 공포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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