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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늪지대의 밤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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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늪의 밤은 소리 없이 찾아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운몽택(雲夢澤)의 썩은 진흙과 억새풀 사이로 차갑고 무거운 자줏빛 안개가 낮게 내려앉았다. 한낮의 열기가 식어 내린 수면 위로 유황의 지독한 악취가 감돌았고, 사방은 척척한 어둠에 짓눌려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이 늪지대의 밤은 길을 아는 사공들에게도 죽음의 덫이었으나, 길을 잃은 사냥개들에게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무덤이었다.


“조, 조장님……? 장평! 어디 있나?”


갈대밭 너머에서 횃불을 끈 채 은밀히 움직이던 철검문(鐵劍門) 이류 무사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어둠을 불렀다.


그들의 발밑은 이미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진흙 늪이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무거운 강철 갑옷이 진흙 속에 박혀 쩍쩍 소리를 냈고, 가뜩이나 부족한 내공이 늪을 탈출하기 위해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조용히 해라, 이 바보 놈아! 독수신의가 이 근처에 숨어 있다. 소리를 내면 놈의 침독에 뇌가 녹아내릴 것이다!”


또 다른 무사가 어둠 속에서 낮게 윽박질렀지만, 그 목소리 역시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철마웅(鐵馬雄)의 정예 척후병들이었다. 일류 고수인 타주를 보좌하며 운몽택을 수없이 헤집고 다녔던 이류 고수들이었으나, 지금 그들의 눈에는 극도의 공포와 편집증이 서려 있었다. 어둠과 안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아군의 숨통을 끊어놓는 ‘독수신의’의 존재가 그들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었다.


스스스슥.


미세한 갈대의 마찰음이 안개 속을 스쳤다.


“누구냐!”


무사 한 명이 황급히 도를 빼어 들고 허공을 향해 내질렀다. 가공할 철검문의 진기가 도 끝에 실려 얇은 검망을 형성했으나, 검이 가른 것은 오직 자욱한 안개뿐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억새풀 뒤에는 오직 어둠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 시각, 척후병들이 가로막고 서 있는 갈대밭 바로 아래, 차가운 진흙 물속에 백무한(白慕寒)이 엎드려 있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진흙과 안개에 덮여 분간하기 어려웠고, 오른손은 여전히 하얀 붕대에 꽁꽁 묶인 채 가슴팍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직 왼손만이 진흙 위로 가늘게 솟아오른 갈대 줄기를 잡고 있었다.


‘쿨럭…….’


가슴속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듯한 기침 발작이 치밀어 올랐다. 백골 시독의 잔여 독기가 그의 망가진 폐맥을 사정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여기서 기침 소리가 단 한 자락이라도 새어 나간다면, 일류 고수 철마웅과 정예 무사들의 철퇴가 이 자그마한 뗏목과 그의 육신을 흔적도 없이 으깨버릴 터였다.


무한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을 감았다.


‘호흡 제어 맥박 조절(息脈調律).’


그는 과거 화산파의 노도인 송학도인에게 전수받은 비전 조식법을 전개했다. 들이쉬는 숨을 극단적으로 길게 늘이고, 내쉬는 숨의 주기를 1분당 단 3회 이하로 낮추었다.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쿵, 쿵, 하고 요동치던 맥박이 이내 차가운 수면의 파동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체온이 급격히 내려가며 그의 기척이 주변의 썩어가는 진흙과 완벽하게 동화되었다. 내공이 한 톨도 없는 무맥(無脈)의 상태였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적들의 예리한 기 감지망은 무한이 바로 발밑에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한낱 썩어가는 수초(水草)로 인지하고 비껴갔다.


하지만 기침을 억지로 참아내느라 뒤틀린 폐맥에 가해진 부하는 가혹했다. 목구멍으로 끈적하고 뜨거운 핏물이 치밀어 올랐다. 무한은 입술을 꽉 깨물어 피를 삼켰다. 그의 하얀 손수건이 소리 없이 검붉은 피로 물들어갔으나, 그의 왼손 끝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아칠, 신호를 보내라.”


무한이 전음조차 낼 수 없는 극도의 호흡 통제 속에서 입술의 움직임만으로 지시했다.


갈대밭 외곽, 뗏목 뒤편에 숨어 있던 조수 소년 아칠(阿七)이 무한의 의도를 알아채고 품속에서 작은 부싯돌과 마른 억새 뭉치를 꺼냈다. 아칠은 소리 없이 불을 지펴 안개 너머 멀리 떨어진 수로 방향으로 불빛을 희미하게 흔들었다.


화르르.


자욱한 자줏빛 안개 너머로 주황빛 불꽃이 아른거렸다.


“저기다! 저쪽에 불빛이 있다! 독쟁이 놈의 은신처다!”


철마웅의 척후병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불빛이 흔들린 방향을 향해 거친 발걸음을 옮겼다. 늪지대의 깊이를 망각한 채, 탐욕과 조급함에 눈이 먼 맹수의 질주였다. 그가 다른 동료들과 세 걸음 이상 떨어져 고립되는 순간, 무한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심안진맥(心眼診脈).’


무한의 머릿속에 적의 전신 기맥 순환도가 삼차원 푸른 선으로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적이 내딛는 발걸음의 무게, 불규칙한 호흡 주파수, 그리고 진기를 검 끝으로 모으기 위해 경맥이 수축하는 찰나의 틈새가 너무나 명백하게 보였다.


무한은 왼손 손목을 안쪽으로 꺾으며 소매 속 탄성 사출기(袖中 彈性 射出機)의 미세한 강철 실을 당겼다.


*툭.*


아무런 파공음도 없었다. 당칠옹이 주조한 특제 사출기는 스프링의 마찰음마저 무한의 옷자락 마찰 소리에 묻어버렸다. 어둠을 뚫고 날아간 한 자루의 백옥은침이 안개 속을 일직선으로 갈랐다.


*푹.*


무사히 앞서가던 척후병의 목덜미 깊숙한 곳, 기와 혈이 교차하는 치명적인 사혈인 아문혈(啞門穴)에 은침이 2촌 깊이로 정확히 박혀 들어갔.


“으…… 윽?”


무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목구멍의 성대 근육이 즉각적으로 경직되며 바람 빠지는 소리만이 흘러나왔을 뿐이었다. 그의 단전에서 온몸으로 흐르던 진기가 은침의 자성 자극에 의해 급격히 차단되었고, 전신 신경이 마비된 그의 거구는 진흙 속으로 소리 없이 고꾸라졌다.


철벅.


더러운 늪물이 그의 얼굴을 덮었으나,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완벽한 무음(無音)의 살상이었다.


“어이! 장평! 대답해라! 장평!”


뒤에 남겨져 있던 두 명의 무사가 동료의 기척이 단 한 순간에 지워진 것을 깨닫고 자리에 멈춰 섰다. 그들의 등 뒤로 소름 끼치는 오한이 서렸다.


“없어……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어. 방금 전까지 내공의 파동이 느껴졌는데…….”


“귀신이다…… 운몽의 귀의가 안개 속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남은 두 무사는 서로의 등을 맞댄 채 사방의 안개를 향해 미친 듯이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와라! 이 비겁한 독쟁이 놈아! 나와서 정면으로 싸우자!”


*휘이이잉!*


그들이 휘두르는 도 끝에서 서슬 퍼런 검기가 방출되며 주변의 갈대들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이류 고수들의 광포한 진기 방출이 대기를 찢는 파공음을 냈다.


무한은 갈대밭의 바위 그늘 뒤로 신형을 더 바짝 밀착시켰다. 적들이 무차별적으로 방출하는 검기의 파동이 그의 뺨을 스치며 차가운 바람을 일으켰으나, 무한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적들이 광포하게 진기를 소모할수록 그들의 경맥이 과부하에 걸려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지금이다.’


무한은 다시 한번 왼손가락 끝을 튕겼다. 소매 속 사출기에서 두 자루의 은침이 동시에 사출되었다.


*슈욱!*


두 자루의 은침은 공기 중의 습기를 뚫고, 검기를 휘두르느라 어깨 경맥이 극단적으로 팽창해 있던 무사들의 손목 관절 경혈(내관혈)을 정확히 타격했다.


“아, 악!”


“내, 내 손이……!”


검기를 방출하던 진기의 흐름이 침 끝에 가로막혀 갈 길을 잃고 역류했다. 무사들은 자신들이 방출하려던 강력한 진기가 스스로의 손목 뼈와 경맥을 부러뜨리는 가혹한 역류 충격을 받았다. 쩍 소리와 함께 그들의 손목 관절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고, 쥐고 있던 보도들이 진흙 속으로 떨어졌다.


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기도 전에, 무한은 뗏목 위로 가볍게 신형을 일으키며 왼손 끝으로 그들의 목줄기를 향해 비침술(飛針術)을 시전했다. 소리 없이 날아간 장침들이 그들의 숨통을 완벽히 끊어놓았다.


철벅, 철벅.


세 명의 정예 척후병들이 안개늪의 차가운 진흙 바닥에 차례로 누워 검게 변해갔다. 그들의 전신 경맥은 무한의 은침에 의해 완벽하게 폐쇄되어 있었다.


무한은 뗏목 난간을 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을 옥죄는 통증에 하얀 손수건을 다시 입에 대자, 이번에는 덩어리진 핏자국이 묻어 나왔다. 오른손 손가락 세 개가 영구 마비된 여파로 왼손만으로 초정밀 침술을 집도하는 것은 그의 병약한 육체에 상상 이상의 기력 소모를 강요하고 있었다.


“의원님, 괜찮으십니까?”


아칠이 다급히 다가와 무한의 허리를 받쳤다. 무한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철마웅이…… 오고 있다.”


저 멀리 안개 너머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무겁고 광포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쩍, 쩍, 쩍!


진흙을 밟아 뭉개며 다가오는 거인의 발소리였다. 일류 고수의 압도적인 진기 파동이 안개늪의 자줏빛 연기를 밀어내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철검문 삼분타주 철마웅이었다.


“장평! 조귀웅! 어디 있느냐! 대답해라!”


철마웅의 포효가 갈대밭 전체를 뒤흔들었다. 옆구리의 신장 부전 통증 때문에 그의 걸걸한 목소리에는 기괴한 신음이 섞여 있었으나, 전신을 두른 무거운 강철 갑옷과 손에 쥔 100근짜리 흑철 쇠사슬 철퇴의 위압감만큼은 천하를 오시할 듯 강맹했다.


철마웅은 진흙을 헤치며 진격하다가, 이내 발밑에 걸리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횃불을 높이 들어 바닥을 비추었다. 주황빛 불꽃 아래로, 자신이 가장 아끼던 정예 척후병 세 명의 시체가 검게 변한 채 진흙 속에 반쯤 잠겨 있는 참혹한 광경이 드러났다. 그들의 목덜미와 손목에는 밤하늘의 별빛처럼 차가운 백옥은침들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내 정예병들이 흔적도 없이…….”


철마웅의 눈동자가 극도의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졌다. 무공이 전혀 없는 병약한 의원 놈이 안개 속에서 귀신처럼 자신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는 사실이, 일류 고수인 그의 자존심과 영혼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주변의 안개가 마치 살아있는 괴물의 눈동자처럼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지독한 편집증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독쟁이 쥐새끼 놈아아아! 어디 있느냐! 나와라!”


철마웅은 광포하게 소리를 지르며 허공을 향해 거대한 흑철 쇠사슬 철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그가 휘두른 파천철퇴(破天鐵槌)가 가공할 일류의 진기를 뿜어내며 사방의 빽빽한 갈대밭과 안개 장막을 흔적도 없이 으깨버리기 시작했다. 폭풍 같은 권풍과 강철의 파괴력이 어두운 안개늪 전체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대지를 뒤흔들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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