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맹수들의 진격
안개늪의 밤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운몽택의 수로는 여전히 비릿한 피비린내와 썩어가는 진흙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전날 밤 수백 명의 철갑방패병들이 백골 시독에 녹아내려 가라앉은 검은 물 위로 차가운 아침 햇살이 비쳤다.
뗏목 모퉁이에 기대앉은 백무한은 하얀 손수건을 입가에서 떼어냈다. 수수했던 백색 면포는 이미 검붉은 선혈로 무참히 얼룩져 있었다. 백골 시독의 미세한 기체를 흡입한 대가는 가혹했다. 뒤틀린 폐맥이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가슴뼈가 부서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고, 목구멍에서는 끊임없이 핏덩이가 치밀어 올랐.
“의원님, 제발 몸을 추스르셔야 합니다.”
약방 조수 아칠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한의 쇠약한 어깨를 부축했다. 그의 손에는 차가운 벽류천 약수를 적신 수건이 들려 있었다.
무한은 대답 대신 품속에서 백옥은침통(白玉銀針筒)을 꺼냈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남궁란의 만독식심고를 억제하는 과정에서 얻은 마비로 인해 하얀 붕대에 꽁꽁 묶여 품속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직 왼손가락 끝만이 살아 움직였다. 무한은 왼손으로 침통의 백옥 문양을 돌려 가장 가늘고 예리한 은침 한 자루를 뽑아냈다.
‘미세 근육 제어술(微細筋 制御).’
무한은 호흡을 멈추고 손가락 끝의 신경을 극단적으로 확장했다. 오른손을 쓸 수 없는 한계 속에서, 왼손의 정밀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침 끝이 허공에서 미세한 떨림 하나 없이 멈추었다. 무한은 자신의 가슴 한가운데에 위치한 단중혈(膻中穴)과 왼쪽 팔꿈치의 곡택혈(曲澤穴)을 향해 거침없이 은침을 찔러 넣었다.
*치익.*
내공이 없는 폐맥지체(廢脈之體)의 순수한 물리적 타격이었으나, 침 끝이 정확한 경혈의 중심을 뚫고 들어가자 폭주하던 폐맥의 기혈 흐름이 일시에 억제되었다. 가슴을 짓누르던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으며 기침이 멈추었다. 무한은 길게 숨을 내쉬며 흐려지던 눈동자를 다시 차갑게 빛냈다.
“장 맹주, 철마웅의 움직임은 어떠하오?”
무한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갑판 한편에서 보도 묵룡도를 닦고 있던 수적 두목 장철손이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장철손의 눈빛에는 무공이 전혀 없는 이 병약한 청년을 향한 절대적인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하룻밤 만에 철검문의 무적이라 불리던 철갑 부대를 몰살시킨 의술과 지략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철마웅 그 무식한 멧돼지 놈이 완전히 미쳐 날뛰고 있소. 곽대패와 정예병들이 안개늪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고는, 삼분타의 모든 무사를 긁어모아 운몽택 전체를 쓸어버리겠다고 포효했다더군. 지금 삼분타 연무장에는 쇳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소.”
장철손이 이마의 흉터를 일그러뜨리며 덧붙였다.
“놈이 직접 100근짜리 쇠사슬 철퇴를 들고 선봉에 섰소. 일류 고수의 내공을 지닌 자가 모든 군세를 이끌고 밀고 들어온다면, 아무리 안개늪의 지형이 험난하다 해도 우리 수적들의 힘만으로는 정면에서 막아내기 힘드오.”
무한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멧돼지가 미쳐 날뛸 때는 정면에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가혹한 함정으로 유인해야 하는 법이오. 놈의 눈과 귀가 되어줄 자가 곧 움직일 터이니, 우리는 그저 길을 열어주면 되오.”
***
같은 시각, 철검문 삼분타(鐵劍門 三分打)의 거대한 연무장에는 폭풍 같은 살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독수신의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 황금 백 냥을 주겠다! 운몽택의 물을 전부 빼내서라도 그 쥐새끼의 뼈마디를 갈아버려라!”
삼분타주 철마웅(鐵馬雄)의 포효가 연무장 천장을 뒤흔들었다. 구리빛 얼굴에 흉포한 인상을 지닌 거한은 전신에 무거운 철갑옷을 두른 채, 가공할 무게의 흑철 쇠사슬 철퇴를 허공에 사정없이 휘둘렀. 철퇴가 지나갈 때마다 가공할 내공의 풍압이 대기를 찢는 굉음을 냈다.
철마웅의 이마에는 굵은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 때문만은 아니었다. 허리 뒤편에서 뼛속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신장 통증이 그의 전신을 옥죄고 있었다. 천기자가 제공한 가짜 영약 ‘빙련단’의 부작용으로 인한 신장 부전 지병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매일 밤 고통에 신음하던 그에게, 곽대패의 전멸 소식은 단순한 패배가 아닌 죽음의 공포로 다가왔다.
“타주님, 고팔 조장이 정탐을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하급 무사의 보고에 철마웅이 철퇴를 바닥에 쿵 내려놓았다. 대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비굴한 표정으로 연무장에 들어선 조장 고팔은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죽 갑옷 안쪽, 그의 목덜미 피부 아래에는 검푸른 독선이 기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무한이 심어둔 기맥역행산(氣脈逆行散)의 흔적이었다. 해독약을 받지 못하면 7일 만에 심맥이 터져 죽는다는 공포가 그의 영혼을 완벽히 지배하고 있었다.
“고팔! 안개늪의 독쟁이 놈의 거처를 알아냈느냐?”
철마웅이 고팔의 멱살을 잡아채며 윽박지렀다. 일류 고수의 압도적인 무력 기운이 고팔의 기맥을 위축시켰다.
“히, 힉! 예, 예! 타주님! 그 사악한 독수신의가 운몽택 깊은 곳, 심학도 노의원이 쓰던 낡은 약방인 낙엽당(落葉堂)에 은신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놈은 오른손을 크게 다쳐 침 한 자루 제대로 쥐지 못하는 약골이었습니다!”
고팔은 미리 무한에게 전수받은 대로 거짓 정보를 침착하게 읊조렸다.
“오른손을 다쳤다고? 하하하! 침술을 쓰지 못하는 의원 놈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지! 당장 전 대원을 소집해 낙엽당으로 진격한다!”
“하오나 타주님, 낙엽당으로 통하는 수로는 미로처럼 복잡하고 곳곳에 수적들의 매복이 깔려 있습니다. 병력을 하나로 모아 진격했다가는 안개 속에서 보급선이 차단될 위험이 있습니다.”
고팔이 슬그머니 철검문의 정밀 순찰 지도를 바닥에 펼쳐 보이며 유인책을 제시했다.
“이 세 갈래 수로를 통해 병력을 나누어 포위 진격하신다면, 수적들의 매복을 분산시키고 낙엽당의 배후를 단숨에 장악할 수 있습니다.”
철마웅은 지도를 내려다보며 붉게 충혈된 눈을 번뜩였다. 그의 신장 통증이 다시금 발작하듯 옆구리를 찔러왔다. 지병의 고통과 복수심에 눈이 먼 맹수는, 이 지도가 자신을 파멸로 이끌 거대한 덫의 설계도임을 깨닫지 못했다.
“좋다! 병력을 셋으로 나눈다! 내가 직접 선봉대를 이끌고 가장 빠른 물길을 뚫을 것이니, 너희는 좌우 수로를 차단하라!”
***
어둠이 내린 운몽택의 갈대밭 경계선.
아칠은 고팔이 몰래 건네준 삼분타의 최종 진격 경로 지도를 받아 들고 소리 없이 낙엽당의 지하 밀실로 복귀했다. 무한은 등불 아래에서 지도를 펼쳤다. 그의 창백한 얼굴 위로 노란 등불 빛이 내려앉았다.
‘심안진맥(心眼診脈).’
무한은 눈을 감았다. 내공이 전혀 없는 무맥 상태였기에, 그의 오감은 오히려 대기의 미세한 진동을 소리 없이 읽어내고 있었다. 멀리 수로 너머에서 철검문 함선들이 물길을 가르는 조류의 파동과, 철마웅이 내뿜는 조잡하고 광포한 진기의 흐름이 무한의 머릿속에 삼차원 입체 지도로 그려졌다.
“놈이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진격하기 시작했소.”
무한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옆에 서 있던 장철손이 묵룡도를 꽉 쥐었다.
“그렇다면 계획대로 움직이겠소. 수적 대원들에게 명령하여 좌우 수로의 보급선을 차단하고 물길을 완전히 어지럽혀 놓겠소. 놈들이 늪지 안쪽에서 고립되도록 말이오.”
“장 맹주, 철마웅의 선봉대와는 절대 정면에서 검을 섞지 마시오. 놈의 일류 내공은 조급함과 결합해 폭발적인 파괴력을 가졌소. 수적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놈의 선봉대를 진흙 구덩이 지형으로 유인하는 것이 핵심이오.”
“걱정 마시오, 의원님. 우리 수적들은 이 늪지대의 진흙 한 줌까지 제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소.”
장철손이 호방하게 웃으며 마삼과 함께 석실을 빠져나갔.
무한은 홀로 남아 백옥은침통을 매만졌다. 그의 마비된 오른손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다. 남궁란의 고독이 심맥을 자극하는 시간 제한이 점점 좁혀오고 있었다. 하지만 무한의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투명했다.
‘철마웅, 네놈의 무공이 아무리 강한들 인체의 기혈을 움직이는 의원의 눈에는 언제든 파괴할 수 있는 불균형한 병증에 불과하다. 네놈이 내 아버지를 철퇴로 때려죽였던 그 죄를, 이 늪지의 진흙 구덩이 속에서 뼈저리게 속죄하게 만들어 주마.’
***
*철그렁, 철그렁.*
철마웅이 이끄는 삼분타의 선봉대 전선들이 자욱한 안개를 뚫고 진격하고 있었다. 수로 양옆의 빽빽한 갈대밭에서는 기괴한 벌레 울음소리만이 들려왔다.
“타주님! 좌측 수로로 향했던 제2조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수적 놈들이 수중 함정을 발동해 보급선 두 척을 수장시킨 모양입니다!”
전령의 다급한 보고에 철마웅이 거칠게 이빨을 갈았다. 옆구리의 통증이 다시금 옥죄어와 그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쓸모없는 놈들! 연락이 끊겼든 말든 상관없다! 낙엽당의 위치가 코앞이다. 척후병들을 선두에 세우고 속도를 높여라!”
철마웅이 쇠사슬 철퇴를 들어 올리며 진격을 재촉했다.
그러나 선두에 서서 기척을 탐지하던 일류 무사들이 갑자기 코를 쥐어짜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 자스민 향기와 썩은 부패취가 기묘하게 뒤섞인 이국적인 향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맹독수가 일러준 늪지 독충들의 배합 향기였다. 기척 감지 무사들의 후각과 신경이 마비되며 그들의 내공 탐지망이 완벽히 무력화되었다.
“어, 어라? 사방의 안개가 갑자기 붉게 변하는 듯한…….”
무사들이 방향 감각을 잃고 비틀거리는 찰나, 선두의 전선이 거대한 진흙 구덩이 지형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콰과과광!*
“타주님! 배 밑창이 늪지의 진흙 구덩이에 박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무사들의 비명소리가 안개 속에서 터져 나왔다. 철마웅이 황급히 갑판을 딛고 허공으로 신형을 날리려 했으나, 옆구리의 신장 기맥이 비틀리며 단전의 진기가 급격히 위축되었다. 일류 고수의 몸이 허공에서 중심을 잃고 늪지 한가운데의 깊은 진흙 구덩이로 추락했다.
*푸학!*
철마웅의 무거운 강철 갑옷이 진흙 속에 박히며 그의 신형이 허리까지 가라앉았다. 주변의 삼분타 무사들 역시 무거운 무기를 쥔 채 늪 속에서 허우적대며 비명을 질렀.
그때, 자욱한 안개 너머 갈대밭 사이로 낡은 뗏목 한 척이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뗏목 위에는 하얀 붕대로 오른손을 동여맨 창백한 안색의 청년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무한이었다. 그의 왼손 끝에는 밤하늘의 별빛보다 차가운 백옥은침들이 미세하게 자성을 뿜어내며 쥐어져 있었다.
“독수신의…… 네놈이 정녕 낙엽곡의 쥐새끼로구나!”
진흙 속에 갇힌 철마웅이 이성을 잃고 포효하며 쇠사슬 철퇴를 들어 올리려 했다.
무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원수의 목덜미를 응시하며, 왼손의 탄성 사출 장치에 가만히 힘을 실었다.
“철마웅, 네놈의 그 가혹한 무력이 이 깊은 늪지 속에서 어떻게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똑똑히 지켜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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