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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늪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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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적채 외곽의 수로를 포위했다는 전령의 다급한 외침은 석실의 무거운 침묵을 단숨에 깨뜨렸다. 장철손의 골수독을 정화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석실 안에는 여전히 비릿한 피비린내와 검은 독혈이 타들어 가며 내뿜는 유황취가 가득했다.


“맹주님! 철검문 삼분타의 철갑방패병 조장 곽대패(郭大覇)가 대형 전선 열두 척을 이끌고 외곽 수문을 부수며 진입하고 있습니다! 수문장 배필두가 이끄는 하급 무사들은 이미 방패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났습니다!”


전령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그의 목소리는 일류 고수의 군세가 가해오는 압도적인 무력 앞에 완전히 질려 있었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장철손은 자신의 구리빛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며 새로이 솟구치는 일류의 진기를 체감했다. 뼛속까지 썩어 들어가던 골수독이 완벽히 씻겨 나간 그의 신형은 폭풍 전야의 거인처럼 거대해 보였다. 장철손은 침상 옆에 놓여 있던 거대한 보도 묵룡도(墨龍刀)를 움켜쥐며 흉포하게 이를 갈았다.


“쇳덩이를 두른 개같은 놈들이 감히 내 안방까지 기어들어 오는구나. 의원님, 내 이 몸으로 저 곽대패의 철가면을 쪼개버리고 오겠소.”


장철손이 거친 살기를 뿜어내며 걸음을 옮기려 하자, 뒤에서 가냘픈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쿨럭, 쿨럭…….”


백무한은 하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가볍게 몸을 떨었다. 손수건 위로 붉은 선혈이 점점이 배어 나왔다. 장철손의 골수독을 해독하기 위해 인체 12사혈을 은침으로 찔러 누르고 전신 기맥을 조율하느라 무한의 쇠약한 몸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게다가 그의 오른손은 만독식심고를 억제한 대가로 세 손가락이 검게 마비되어 하얀 붕대에 꽁꽁 묶인 채 품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직 왼손가락 끝만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기다리시오, 장 맹주.”


무한은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안색으로 장철손을 응시했다.


“정면 대결은 개죽음일 뿐이오. 곽대패가 이끄는 철갑방패병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거운 현철 중갑을 두르고 거대한 현철방패로 대형을 이루는 자들이오. 그들의 철벽방패진법은 일류 고수의 강맹한 도검조차 퉁겨내지. 아무리 맹주의 내공이 회복되었다 한들, 좁은 수로에서 그 무지막지한 강철의 무게를 정면으로 받아내다간 묵룡도가 먼저 부러질 것이오.”


“그렇다면 앉아서 당하란 말이오? 수로가 완전히 막히면 이 수적채는 고립사할 뿐이오!”


마삼 역시 거대한 강철 철퇴를 꽉 쥐며 얼굴 왼쪽의 깊은 칼흉터를 일그러뜨렸다.


무한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공의 진기가 한 톨도 없는 무맥(無脈)의 상태였기에, 무한은 오히려 전장의 기류와 수로의 흐름을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독파하고 있었다.


“지형을 역용해야 하오. 장 맹주, 수적들에게 즉시 명령하여 모든 전선과 뗏목을 수적채 내부에서 빼내어 수로 서쪽의 안개늪(안개늪) 깊숙이 후퇴시키시오.”


“안개늪 말이오?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방향 감각을 잃고 늪바닥으로 가라앉는 죽음의 미로요. 게다가 수심이 얕아 대형 전선이 움직이기 힘든 곳인데…….”


장철손이 의아한 듯 물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곳이 저들의 무덤이 될 것이오.”


무한은 품속에서 말린 독사의 가죽으로 감싸인 기괴한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는 과거 철검문이 도륙한 유민들의 시체가 썩어가던 공동묘지, 백골총(白骨총)에서 채취한 검붉고 끈적한 진액이 들어 있었다. 피부에 닿는 즉시 살을 부식시키고 뼈까지 녹여버리는 살상력의 극독, 백골 시독(白骨 屍毒)이었다.


“저들의 철갑은 단단하지만, 갑옷을 이어붙인 가죽 끈과 이음새는 결국 썩기 마련이오. 안개늪의 좁은 수로에 저들을 가두고, 이 시독을 상류에 방류할 것이오. 무거운 쇳덩이를 두른 자들이 물속에서 살이 녹아내릴 때, 과연 그 단단한 현철방패가 무슨 소용이 있겠소?”


무한의 가혹하고도 정밀한 계책에 장철손과 마삼은 등 뒤로 서늘한 오한을 느꼈다. 무공이 없는 병약한 의원의 머릿속에서 나온 전술은, 수십 년간 수중 수색을 치러온 그 어떤 노련한 장수보다 잔인하고 완벽했다.


“좋소! 의원님의 지시대로 움직이겠소! 마삼, 즉시 조장들에게 전령을 보내 수적채의 보급품을 챙겨 안개늪 방향으로 퇴각하라 하라!”


장철손의 호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적채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뗏목과 쾌속선들이 소리 없이 어둠을 틈타 수 서쪽의 자욱한 안개늪 속으로 스며들었다. 무한 역시 아칠의 부축을 받으며 마삼이 모는 낡은 어선에 몸을 실었다.


***


철검문 삼분타의 행동대장 조귀웅(趙貴雄)은 대도 쇄골도를 어깨에 메고 대형 전선의 갑판 위에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거대한 현철방패를 땅에 쿵 내려놓으며 위압감을 풍기는 철갑방패병 조장 곽대패가 우뚝 서 있었다.


“조 대장, 수적 놈들이 싸우지도 않고 수로 서쪽의 안개늪으로 기어들어 가고 있소. 맹주 장철손이 골수독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문이 진짜인 모양이오.”


곽대패가 거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비웃었다. 그의 전신을 감싼 중갑옷은 은침이나 암기가 절대 뚫을 수 없는 철벽과 같았다.


“흥, 장철손이 죽어가니 잔당들이 갈팡질팡하는 것이지. 안개늪은 수심이 얕고 안개가 자욱해 대형선이 진입하기 까다롭지만, 우리 방패병들의 중장갑 돌격 앞에서는 한낱 진흙탕일 뿐이다. 전선들을 진입시켜 싹 쓸어버려라!”


조귀웅의 잔인한 명령과 함께 철검문의 대형 전선들이 자욱한 환각 안개가 흐르는 안개늪 내부로 조심스럽게 기수를 돌렸다.


늪지대에 진입하자마자 사방을 가득 메운 백색의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물길은 미로처럼 꼬여 있었고, 바닥의 썩은 진흙이 배 밑창을 긁는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곽대패의 철갑방패병들은 거대한 철방패를 전면에 세우고 촘촘한 대형을 유지한 채 수색을 펼쳤다.


그들의 전선이 안개늪의 가장 좁고 물살이 휘도는 와류 구역에 도달했을 때였다.


저 멀리 안개 너머, 낡은 뗏목 위에 서 있는 창백한 안색의 청년이 보였다. 푸른빛이 도는 얼굴에 오른손을 하얀 붕대로 동여맨 사내, 백무한이었다. 무한은 왼손에 가느다란 명주실을 쥔 채, 소리 없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놈이다! 저놈이 바로 사도걸 태상장로님께서 찾으시던 낙엽곡의 쥐새끼다!”


조귀웅이 무한을 발견하고 쇄골도를 치켜들었다.


“방패병들, 돌격하라! 저 쥐새끼의 사지를 잘라 삼분타주님께 바쳐라!”


곽대패의 철갑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전선에서 늪지 물속으로 뛰어내렸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늪지 물을 밟으며 그들이 무적의 철벽방패 대형을 유지한 채 뗏목을 향해 좁혀왔다. 수적들의 화살이 그들을 향해 쏟아졌으나, 두꺼운 현철방패에 부딪혀 무력하게 튕겨 나갈 뿐이었다.


“하하하! 무공도 없는 벌레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강철을 뚫을 수는 없다!”


곽대패가 광포하게 웃으며 방패를 앞세워 돌진했다.


그 순간, 무한의 하얀 입술이 가볍게 열렸다.


“어리석은 쇳덩이 인형들이 스스로 무덤으로 걸어 들어왔구나.”


무한이 왼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뗏목 뒤편에 숨어 있던 아칠이 상류 수문의 비밀 밸브를 힘껏 잡아당겼다. 대나무 통들이 깨어지며, 그 안에서 보관되어 있던 백골 시독의 검붉은 진액이 흑수연의 조류를 타고 하류로 급격히 흘러내려 갔다.


검붉은 독액이 맑은 늪지 물과 섞이는 순간, 물빛이 기괴한 녹색으로 변하며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어? 이게 무슨 소리…… 악! 내 발! 내 발이!”


선두에 서 있던 철갑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가죽 장화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검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액은 가죽 이음새를 순식간에 부식시키고, 강철 갑옷 틈새를 파고들어 무사들의 살점을 직접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살이 녹는다! 뼈가 녹아 들어간다!”


사방에서 철갑병들의 처절한 비명이 안개늪을 가득 메웠다. 백골 시독의 가공할 부식력은 현철 중갑조차 종잇장처럼 부식시켰고, 피부에 닿는 즉시 근육을 녹여 하얀 뼈를 드러내게 만들었다.


곽대패 역시 자신의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극심한 부식통에 비명을 질렀다.


“이, 이 사악한 독쟁이 놈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곽대패는 어떻게든 내공을 끌어올려 전신을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한이 파놓은 두 번째 덫으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였다.


무한은 왼손으로 소매를 가볍게 휘둘렀다. 소매 끝에서 미세한 약향 장막 가루와 함께 기맥역행산(氣脈逆行散) 분말이 안개 기류를 타고 철갑병들의 호흡기로 침투했다.


“쿨럭! 커헉! 내, 내공이…… 단전의 기가 역류한다!”


조귀웅을 비롯한 무사들이 경공을 전개해 늪지를 벗어나려 진기를 끌어올리는 순간, 그들의 체내에 침투한 기맥역행독이 활성화되었다. 진기가 흐르는 경맥들이 급격히 수축하며 혈관을 안에서부터 찢어발겼다. 무사들은 허공으로 도약하지도 못한 채, 입과 코로 검은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늪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털썩! 털썩!*


전신이 마비되고 살이 녹아내리는 극통 속에서, 무거운 중갑옷은 이제 무사들을 지키는 방패가 아닌 그들을 심연으로 끌어내리는 저주의 사슬이 되었다. 철갑병들은 무거운 갑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소리 없이 안개늪의 검은 흙탕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조장 곽대패 역시 자신의 녹아내린 헬멧 안에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질식하여, 검푸른 늪지 밑바닥으로 영구히 수장되었다. 무적이라 자부하던 철검문의 정예 방어 대형이, 무한의 약리적 인과율과 지형 역용 앞에 단 한 순간에 완전한 전멸 상태로 전락한 것이다.


“이, 이 괴물 같은 놈들……!”


갑판 위에서 이 참상을 목격한 조귀웅은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었다. 수백 명의 철갑병들이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물속에서 녹아내려 가라앉는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조귀웅은 쇄골도를 내팽개치고 소형 뗏목에 올라타 미친 듯이 노를 저으며 퇴각하려 했다.


무한은 뗏목 위에서 비틀거리며 심한 기침을 토해냈다.


“콜록! 쿨럭……!”


공기 중에 기화된 백골 시독의 미세한 독기가 그의 쇠약한 폐맥을 자극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의 입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고 전신이 무너져 내리려 했다.


‘아직…… 한 놈이 남았다.’


무한은 흐려지는 정신을 이성으로 붙잡으며,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소매 속에 장착된 강철 탄성 사출기가 미세하게 빛났다.


*지잉.*


무한의 왼손가락 끝이 미세 근육 제어술로 완벽히 고정되었다. 도망치는 조귀웅의 등 뒤, 목덜미의 아문혈(啞門穴)이 무한의 심안진맥에 붉은 점으로 포착되었다.


*핏!*


아무런 파공음도 없이, 백옥은침통에서 사출된 가느다란 은침 한 자루가 안개를 뚫고 날아갔다. 은침 끝에는 기맥역행산의 변종 지연성 극독이 발려 있었다.


*푸욱!*


은침은 조귀웅의 목덜미 사혈에 소리 없이 박혔다. 조귀웅은 모기에 물린 듯한 가벼운 통증에 목을 긁었으나,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공포에 질려 안개 너머 삼분타 방향으로 노를 저어 달아났다. 그 침이 자신의 목줄을 쥘 가혹한 사슬이 될 것임을 그 비겁한 사냥개는 알지 못했다.


“의원님!”


아칠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무한의 몸을 다급히 부축했다. 무한은 검은 피로 물든 하얀 손수건을 쥔 채, 혼절 직전의 쇠약한 전신을 아칠의 어깨에 기댔다. 그의 입술 끝에는 차가운 복수의 미소가 여전히 걸려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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