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불꽃의 방패, 뇌전의 사냥개
붉은 레이저 스캔선이 경훈의 피 묻은 오른손을 락온하는 순간, 아린의 단검이 허공을 갈랐다.
“앵앵거리는 기계 파리 놈들이 감히 주인님을……!”
아린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 궤적이 급강하하던 드론 한 마리를 정확히 두 동강 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수직 통로 ‘라이트닝 로드’의 거대한 천장 해치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폭 드론 군단 ‘하이브’의 수는 어림잡아도 수백 마리에 달했다. 좁은 변전실 내부를 메운 기계 사냥개들의 앵앵거리는 구동음이 사방의 철벽에 반사되어 고막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경고: 시스템 관리국 기계 사냥꾼 ‘자칼’이 침입자 섬멸 프로토콜을 개시합니다.]
[자폭 드론 군단 ‘하이브’의 락온이 완료되었습니다. 격발 카운트다운 15초.]
붉은 레이저 조준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민경훈의 온몸을 옭아맸다. 특히 역류 전격으로 인해 장갑이 타버리고 살점이 짓무른 그의 오른손 손바닥은 붉은 광선 아래에서 처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3도 화상의 극심한 통증이 신경계를 타고 올라와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냈지만, 경훈은 어금니를 악물며 의식을 붙잡았다.
“지수 씨, 제 등 뒤로 더 붙으세요. 태희 씨, 정면 방어막!”
“경훈 씨! 하지만 그 손은……!”
태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경훈이 지수를 구하기 위해 대신 역류 전류를 맞아가며 얻은 처참한 상처를 보며, 그녀의 가슴속에서 자괴감과 무거운 분노가 동시에 끓어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 동맹 금지 패널티로 인해 두 사람의 신체 주변에는 여전히 천근만근의 붉은 감쇄 오라가 흐르고 있었다. 마력이 50%나 차단된 상태였지만, 태희는 이를 악물며 대검 아스칼론을 전방으로 치켜세웠.
“하앗!”
태희가 검신에 남아 있는 마력을 쥐어짜 내며 푸른 전격 오라를 전방에 펼쳤다. 급강하하던 드론 세 마리가 장벽에 부딪히며 요란한 폭음과 함께 자폭했다. 폭발의 반동으로 엄청난 화염과 금속 파편이 방어벽을 때렸다. 좁은 방 안에서의 자폭은 그 자체로 치명적이었다. 연쇄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태희의 어깨 중갑 파편이 비산했고, 그녀의 얼굴에 미세한 그을음과 자상이 새겨졌다.
“태희 씨, 무리해서 베면 안 됩니다! 베인 드론들이 공중에서 연쇄 자폭을 일으키면 그 파편과 열기가 이 좁은 방 전체를 휩쓸어 우리 모두 통구이가 될 겁니다!”
경훈이 왼손으로 센티넬 패드를 조작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패드의 화면에 표시된 배터리 잔량은 단 35%. 메인 칩셋은 과부하 해킹의 여파로 뜨거운 열을 내뿜으며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쓸 수 있는 자원도, 시간도 극도로 부족했다.
‘직접적인 무력으로는 이 수백 마리의 자폭 군단을 막을 수 없어. 단 한 번의 광역 무력화가 필요하다.’
경훈의 머릿속에서 오버클럭 뇌파가 가동되며 주변의 시간 흐름이 극도로 느려졌다. 쏟아지는 드론들의 붉은 안광, 태희의 흔들리는 검신, 죄책감에 울먹이는 지수의 눈망울이 프레임 단위로 쪼개져 보였다. 경훈은 차가운 이성으로 주변 지형을 스캔했다.
‘변전소의 고전압 배선망, 그리고 지수가 분해해 둔 발전기 부품들…… 그래, 전자기 펄스(EMP)다. 기계들의 무선 동조 주파수를 일시에 마비시키는 강력한 전자기 충격을 발생시켜야 해.’
경훈은 떨리는 왼손으로 지수의 공구 가방을 낚아챘다. 오른손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고통의 덩어리였기에, 오직 왼손과 입바늘만을 이용해 부품들을 조합해야 했다.
“지수 씨! 정신 차리세요. 저를 살리고 싶다면 지금 제 지시대로 부품을 건네야 합니다. 고밀도 구리 코일과 고압 콘덴서 칩셋, 그리고 아까 수거한 경비 드론의 장갑판 조각을 꺼내세요!”
“네, 네! 스승님!”
지수가 눈물을 훔치며 공구 가방을 뒤엎었다. 지수의 손가락이 떨렸지만, 경훈의 단호한 눈빛에 연동되어 놀라운 속도로 부품들을 분류해 냈다. 과연 잠재력 S급의 정밀 정비 재능이었다.
경훈은 왼손으로 스패너를 쥐고, 이빨로 구리 전선의 피복을 벗겨내며 콘덴서 칩에 억지로 감아붙였다. 오른손의 화상 흉터가 쓰라릴 때마다 뇌를 찌르는 편두통이 심화되어 미각 상실과 청각 마비가 그의 감각을 갉아먹었지만, 경훈은 개의치 않았다. 오직 이 덫을 완성해야만 사랑하는 이들을 살려 벙커 제로로 돌아갈 수 있었다.
[특수 트랩: ‘포터블 EMP 지뢰’의 급조 조립을 시작합니다.]
[해킹 코드를 기판에 이식 중…… 배터리 잔량 30%로 하강.]
“아린 씨!”
경훈이 완성된 조잡한 은빛 금속 뭉치를 아린을 향해 던졌다. 아린이 날렵하게 공중에서 그것을 낚아채며 경훈의 발밑에 착지했다. 그녀의 목덜미에 새겨진 화상 흉터가 붉은 레이저 조준선 아래에서 더욱 선명하게 돋보였다.
“주인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그림자 습격을 가동해 저 자폭 드론 군단의 정확한 중심부, 상공 5미터 지점까지 도약하세요. 도약하는 순간 이 지뢰를 그 한가운데에 던지고, 즉시 태희 씨의 마력 장벽 뒤 그림자 속으로 수직 강하하여 은신해야 합니다. 타이밍은 단 0.3초입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아린이 붉은 입술을 깨물며 매혹적인 고양이 같은 눈매로 경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자신을 구원해 준 유일한 주인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광신적인 집착과 충성심만이 가득 차 있었다.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지옥의 끝이라도 날아오르겠습니다.”
샤아앗!
아린의 신체가 검은 연기처럼 흐려지며 순식간에 천장을 가득 메운 드론 군단의 그림자 속으로 흩어졌다. 자칼의 드론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어 아린의 잔상을 향해 붉은 레이저를 발사하려던 그 찰나, 아린은 공중의 사각지대에서 실체를 드러내며 경훈이 준 포터블 EMP 지뢰를 군단의 심장부를 향해 강하게 던졌다.
“지금이다, 주인님!”
아린이 지뢰를 던짐과 동시에 수직으로 낙하하며 태희의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경훈은 왼손가락으로 센티넬 패드의 격발 스위치를 강하게 내리눌렀다.
콰르르릉————!
격발과 동시에, 급조된 EMP 지뢰의 전자기 코어가 변전소의 잔류 전력과 공명하며 눈이 멀 것 같은 푸른색 전자기 폭풍을 뿜어냈다. 그것은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푸른 전자기 뱀들이 미로의 좁은 철골 통로를 따라 번개처럼 사방으로 굽이치며 연쇄적으로 전파를 찢어발기는 시각적 대참사였다.
파지지직! 퍽! 퍽! 퍽!
공중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백 마리의 자폭 드론들이 전자기 펄스 충격에 직격당해 내부 회로가 일제히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앵앵거리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멈추고, 붉은 안광들이 차례로 꺼졌다. 수백 개의 차가운 강철 덩어리들이 마치 죽은 곤충 떼처럼 변전실 바닥으로 투두둑 소리를 내며 무더기로 쏟아져 내렸다.
“해, 해냈어…….”
지수가 무릎을 꿇으며 멍하니 바닥의 기계 잔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경훈은 쉴 틈이 없었다. 그의 시야에 붉은색 경고등이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자칼의 자폭 드론 본대는 무력화했으나, 라이트닝 로드 전체의 전압이 오버플로우를 일으키며 변전실 전체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막대한 에너지를 지금 연결하지 않으면 모든 희생이 수포로 돌아갈 터였다.
“으윽……!”
경훈은 오른손의 타들어 가는 화상 극통과 머리를 도끼로 찍어누르는 듯한 뇌 오버클럭의 반동을 억누르며, 변전 콘솔 하단에 노출된 고밀도 에너지 전력선을 붙잡았다. 왼손으로 두꺼운 구리 도선을 벙커 제로의 송전 포트에 강제로 밀어 넣는 순간, 전신에 미세한 전류가 흐르며 뇌 신경망이 비명을 질렀다.
“연결…… 되어라……!”
경훈이 마지막 육신의 힘을 쥐어짜 송전 레버를 끝까지 밀어 올렸다.
쿠우우웅————!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묵직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송전 포트를 타고 흐르는 천문학적인 동력 에너지가 벙커 제로의 심장부로 완벽하게 주입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저 멀리 지하 방공호 외곽을 둘러싸고 눈이 멀 것 같은 푸른빛의 신화적인 물리 방어막이 거대한 반구 형태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모습이 패드의 홀로그램 화면에 실시간으로 매핑되었다. 동력 공급률 100% 돌파.
요새의 완벽한 기동이었다.
“경훈 씨! 성공했어요! 벙커의 방어막이……!”
태희가 기쁨에 차 소리치며 경훈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경훈의 은빛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흐려졌다. 뇌파 오버클럭의 한계 돌파와 고압 전격의 역류 쇼크가 그의 약한 육체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컥……!”
경훈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와 차가운 철판 바닥을 적셨다. 그의 가느다란 몸이 힘없이 무너지며 앞으로 쓰러졌다.
“주인님————!!!”
“경훈 씨————!!!”
아린과 태희의 절규 어린 비명이 좁은 변전실 내부를 찢어발기는 가운데, 경훈의 시야는 완벽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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