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심장, 요새의 기초
“제발……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스승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정크야드의 차가운 고철 바닥에 이마를 찧은 박지수의 어깨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은빛 철제 문양이 불안한 호흡을 따라 잘게 흔들렸다. 방금 전, 무력이 전혀 없는 최약체 F등급 데트 플레이어인 민경훈이 오직 말 한마디와 즉석에서 조립한 고전압 덫만으로 바르그의 기계 늑대 군단을 몰살하는 광경을 똑똑히 목도한 직후였다. 그것은 지수에게 단순한 충격을 넘어, 이 잔혹한 데스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동아줄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경훈은 뇌파 오버클럭의 후유증으로 깨질 듯한 편두통을 느끼며, 한쪽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의 오른쪽 귀와 코끝에서 흘러내린 선혈이 턱선에 굳어 있었고, 입안은 여전히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는 완벽한 미각 상실 상태였다. 비린 쇠맛만이 혀끝을 자극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은빛 눈동자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무릎을 꿇은 청년을 응시했다.
경훈은 센티넬 패드를 들어 지수를 스캔했다.
[플레이어 정보: 박지수(아이언 러너 - E등급)]
[유틸리티 특성: 정밀 정비 및 기계 분해 재능 (잠재력 S)]
‘정밀 정비 재능이라…….’
경훈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무력이 약한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함정을 직접 제작하고 유지 보수해 줄 신뢰할 수 있는 조력자였다. 지수가 가진 재능은 향후 구축할 요새의 설비를 지탱할 완벽한 퍼즐 조각이었다.
“일어서세요, 지수 씨.”
경훈이 마른 손을 뻗어 지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는 앞으로 증명하셔야 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우선입니다. 바르그가 본대로 도망쳤으니, 가르크 사냥단이 우리를 찾아내기 전에 장기적으로 요새화할 수 있는 우리만의 본거지를 구축해야 합니다.”
“네, 네! 스승님! 시키시는 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지수가 눈물을 훔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낡은 공구 주머니가 달랑거리며 소리를 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태희의 은빛 대검 아스칼론이 바닥을 긁으며 차가운 마찰음을 냈다. 태희는 파손된 어깨 중갑 사이로 푸른 스파크를 흘리며, 지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경훈 씨, 몸도 성치 않으면서 왜 자꾸 무리하시는 겁니까? 저런 겁쟁이 청년까지 거두다간 우리의 보급품만 축날 뿐입니다.”
태희의 목소리에는 경훈을 향한 깊은 걱정과 함께, 그의 관심 영역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온 것에 대한 본능적인 질투심이 섞여 있었다.
“태희 씨 말이 맞습니다. 주인님의 안전을 위협하는 짐덩이는 제 단검으로 미리 처리하는 것이 깔끔합니다.”
아린 역시 그림자 속에서 스윽 나타나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목덜미에 선명하게 남은 자폭 장치 파괴 흉터가 붉게 일렁였다. 경훈의 그림자를 자처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오직 경훈만을 독점하겠다는 맹목적인 안광이 서려 있었다.
두 여전사의 살벌한 기세에 지수가 다시 사시나무 떨듯 떨며 경훈의 등 뒤로 숨었다. 경훈은 진땀을 흘리며 두 사람을 만류했다.
“두 분 다 진정하세요. 지수 씨는 단순한 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축할 기지의 기계 설비를 정비해 줄 핵심 인력이에요. 제 결정을 믿어주십시오.”
경훈의 단호한 태도에 태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고, 아린은 뺨을 붉히며 뒤로 물러섰다.
“주인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따르겠습니다.”
***
경훈 일행은 정크야드 최심부에서 수거한 고철 원자재들을 수송 로봇 스위퍼-02에 싣고, 미로 지하 깊숙한 곳에 방치되어 있던 폐기 통제실로 향했다. 그곳은 시스템의 감시 카메라가 미치지 않는 완벽한 사각지대이자, 과거 아레나 개발진이 사용하다 버린 지하 방공호였다.
“이곳을 ‘벙커 제로(Bunker Zero)’라 명명하겠습니다.”
먼지가 가득 쌓인 철제 콘솔 앞에 선 경훈이 선언했다. 지수는 경훈의 지시에 따라 낡은 공구들을 꺼내 들고 방공호 내부의 부식된 배선들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지수의 손놀림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빨랐다. 경훈이 패드로 건넨 기초 도면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기계식 유압 프레스와 자동 센트리 포탑의 기초 뼈대를 막힘없이 조립해 나갔.
“스승님, 이 기어 축의 유격을 3밀리미터 정도 더 조이면 포탑의 회전 속도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분석입니다, 지수 씨. 그대로 진행하세요.”
경훈의 칭찬에 지수의 얼굴에 자부심 섞인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요새의 기초 공사가 끝나갈 무렵, 치명적인 한계에 봉착했다. 벙커 전체를 보호할 물리 방어막과 자동 센트리 포탑을 기동하기에는, 현재 보유한 소형 에너지 코어들의 잔류 전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메인 콘솔의 전력 표시등이 붉은색으로 깜빡이며 경보음을 울렸다.
[경고: 벙커 제로의 동력원 공급률 12%. 방어막 가동 불가.]
“동력이 부족하군요.”
태희가 파손된 어깨 장갑을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동맹 금지 패널티로 인해 그녀와 경훈의 신체 주변에는 여전히 무거운 붉은색 감쇄 오라가 흘러 다니고 있어, 가뜩이나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경훈은 차분하게 센티넬 패드를 켜고 1구역의 지도를 펼쳤다. 그의 은빛 눈동자가 지도의 특정 구역을 락온했다.
“방법이 있습니다. 미로 4구역에 위치한 수직 통로, ‘라이트닝 로드(Lightning Road)’입니다.”
“라이트닝 로드라고요?”
지수가 경악하며 침을 삼켰다.
“그곳은 수만 볼트의 초고압 전류가 그물처럼 방전되는 죽음의 변전 구역입니다! 진입한 플레이어들이 흔적도 없이 타 죽는 곳으로 유명한데…….”
“그 수만 볼트의 전류가 바로 우리가 필요한 동력원입니다.”
경훈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스템이 방류하는 전력을 역해킹하여 우리 벙커 제로로 끌어오는 전력선을 연결할 겁니다. 블레이크의 전력망을 통째로 훔쳐오는 거죠. 태희 씨, 아린 씨. 준비하세요.”
경훈은 출발 전, 시스템이 보급한 맛없는 합성 영양 블록을 씹어 삼켰다. 미각 상실로 인해 마치 마른 모래를 씹는 듯한 불쾌한 식감이었지만, 그는 억지로 삼켜내며 체력을 보충했다. 그런 경훈의 모습을 바라보던 태희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꺼내 그의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주었다.
“경훈 씨…… 제발 자신을 더 아끼세요. 당신의 몸은 이미 한계입니다.”
아린 역시 경훈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가죽 멜빵바지 밑단을 정리하며 속삭였다.
“주인님, 제 그림자 속에 숨어 계십시오. 어떤 번개도 주인님의 몸에 닿지 못하도록 제가 목숨을 바쳐 수호하겠습니다.”
두 여전사의 뜨거운 집착이 섞인 시선이 경훈의 심장을 찔렀다. 경훈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저에게는 두 분이 있으니까요. 가죠.”
***
미로 4구역, 라이트닝 로드의 입구에 도달하자마자 압도적인 전자기적 위압감이 온몸을 짓눌렀.
“콰르릉! 콰아아앙!”
사방이 뚫린 거대한 수직 통로 내부에는 굵은 구리 케이블들이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었고, 그 사이로 눈이 멀 것 같은 청백색의 번개 스파크가 불규칙하게 대기를 찢으며 방전되고 있었다.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사나운 전자기적 파동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다. 공기 중에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정전기와 타는 듯한 오존 냄새가 자욱했다.
“지수 씨, 여기서부터는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경훈이 센티넬 패드를 가동하며 말했다.
“네, 네! 스승님!”
지수가 땀에 젖은 공구 가방을 움켜쥐며 대답했다. 동맹 패널티의 영향으로 경훈과 태희의 주변을 맴도는 붉은 감쇄 오라가 이 전자기장 속에서 더욱 짙게 일렁이며 두 사람의 신체 기동력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었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평소보다 배의 힘이 들었다.
경훈은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은빛 눈동자가 더욱 투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고유 액티브: ‘함정 예측안’이 활성화됩니다.]
순간, 경훈의 시야가 3차원 데이터 맵으로 전환되었다. 불규칙하게 몰아치는 청백색 번개들의 궤적이 붉은색 실선으로 시각화되었고, 낙뢰가 발생하는 폭발 지점들이 주황색 원형으로 뚜렷하게 표시되었다.
‘라이트닝 로드의 방전 주기는 무작위가 아니야. 이 미로 벽면의 유압 기계가 움직이는 가변 엔진 주파수와 정확히 동기화되어 있어.’
경훈은 바닥과 벽면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진동 소리를 역추적해 연산했다. 뇌파 오버클럭이 기동하며 그의 머릿속에서 수만 개의 데이터가 초고속으로 나열되었다. 관자놀이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는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분석 완료되었습니다. 방전 주파수의 틈새, 번개가 치지 않는 정확히 0.5초의 안전 발판 경로가 도출되었습니다. 제가 지시하는 타이밍에 맞춰 한 걸음씩만 움직이세요.”
경훈의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전술 헤드셋이 없는 아내들의 귓가에 다이렉트로 꽂혔다.
“태희 씨, 지금 앞의 철판으로 도약하세요! 아린 씨는 그 뒤를 따라 우측 파이프로!”
“하앗!”
태희가 파손된 어깨 장갑의 통증을 참아내며 가뿐하게 도약했다. 그녀가 발을 디딘 지 0.1초 후, 그녀가 방금 서 있던 뒤편 철골로 굵직한 번개 줄기가 콰르릉 소리를 내며 내리꽂혔다. 소름 끼치는 타이밍이었다.
“지수 씨,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제 발자국만 밟고 따라오세요.”
“스, 스승님만 믿겠습니다!”
지수는 다리를 벌덜 떨면서도, 경훈의 오차 없는 가이드에 몸을 맡긴 채 수직 통로의 아슬아슬한 발판들을 딛고 전진했다. 태희와 아린은 경훈의 좌우에 밀착하여, 혹시 모를 미세한 잔류 전류 스파크를 대검과 나노 장갑으로 쳐내며 그를 철저하게 보호했다.
마침내 네 사람은 통로 중앙에 위치한 초고압 변전 콘솔 제어반 앞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지수 씨, 지금입니다. 변전소의 1차 전압 안정기에 서브 케이블을 연결하세요. 제가 패드로 전압을 유도할 테니, 떨지 말고 정밀하게 고정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지수가 공구 주머니에서 정밀 핀셋과 고탄성 구리 와이어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수만 볼트의 번개들이 번쩍이는 광경에 압도당한 지수의 손끝이 심하게 흔들렸다.
탁!
지수가 긴장한 나머지 전선 피복을 벗기던 정밀 공구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뻔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수 씨.”
경훈이 지수의 떨리는 어깨를 한 손으로 꽉 쥐었다.
“제 목소리에 주파수를 맞추세요. 당신의 정밀 정비 재능은 이 아레나에서 독보적입니다. 당신의 손길이 없으면 이 벙커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저를 믿고, 당신의 손을 믿으세요.”
경훈의 나직하고 신뢰가 담긴 목소리가 지수의 귓가를 울렸다. 지수의 떨리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그의 호흡이 가라앉으며, 가슴의 철제 문양이 차분한 은빛으로 빛났다.
“……네, 스승님. 연결하겠습니다.”
지수의 손놀림이 순식간에 정교해졌다. 그는 마치 기계의 일부가 된 것처럼 빠른 속도로 전압 안정기의 캡을 열고 케이블을 노드에 밀착시켰다.
그 순간, 경훈은 센티넬 패드를 변전 콘솔의 메인 데이터 포트에 연결했다.
[외부 기기 접속 감지. 시스템 방화벽 가동.]
[해킹 시도 차단 프로토콜이 작동합니다.]
제어반 화면에 붉은색 경고 루프가 떠오르며 강력한 전자기 방화벽이 경훈의 해킹을 가로막았다. 경훈은 이빨을 악물며 오버클럭 연산 속도를 5배로 폭증시켰다. 그의 뇌 세포가 비명을 지르며 관자놀이에서 뜨거운 열감이 느껴졌다.
“오라클! 백도어 주입해!”
경훈이 마음속으로 외치자, 패드 화면에 푸른색 홀로그램 노이즈가 튀며 오라클의 암호화 코드가 방화벽의 틈새로 빠르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변전소 마스터 서버의 제어권이 경훈의 손끝에서 야금야금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지수가 전압 안정기의 마지막 접지 케이블을 연결하려던 찰나, 주변 구리 케이블에서 미세한 역전류 스파크가 발생해 제어반 내부로 튀었다. 지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지려 했다.
“위험해!”
경훈은 본능적으로 지수를 밀쳐내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제어반 콘솔을 붙잡아 버텼다.
치지지지직————!
“아아악!”
엄청난 고압의 역전류가 경훈의 오른손을 관통했다. 타들어 가는 고통과 함께 그의 가죽 장갑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날아갔고, 손바닥 전체에 시커먼 전기 화상이 새겨지며 살이 타는 냄새가 공기 중에 진동했다.
“경훈 씨!!”
태희가 비명을 지르며 경훈을 붙잡으려 했으나, 경훈은 왼손으로 그녀를 제지하며 패드의 엔터 키를 강하게 눌렀.
[변전소 마스터 제어권 획득 완료.]
[전력 역방향 송전 가동. 송전 대상: 벙커 제로.]
[센티넬 패드 배터리 잔량: 35% (30% 급감)]
엄청난 전류 쇼크의 대가로 경훈의 오른손은 피투성이 화상으로 뒤덮였고 패드의 배터리는 바닥을 드러냈지만, 마침내 변전소의 방화벽이 완전히 마비되며 벙커 제로로 향하는 거대한 전력선이 성공적으로 연결되었다.
수만 볼트의 푸른 전력 에너지가 지하 배관을 타고 벙커 제로의 동력실로 무섭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에덴의 요새가 기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지수가 눈물을 흘리며 경훈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경훈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기침을 토해냈다.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타버린 장갑 위로 떨어졌다.
“괜찮습니다, 지수 씨…… 전력은 확보했으니…….”
경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바로 그 순간.
“위이이이이이이잉————!”
라이트닝 로드의 수직 통로 벽면에 설치된 시스템 비상 사이렌들이 일제히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경보음이 좁은 변전실 내부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경고: 인가되지 않은 전력 무단 탈취 감지.]
[시스템 관리국 소속 정찰 드론 군단 ‘하이브’ 강제 기동.]
[침입자 즉결 처단 프로토콜을 실행합니다.]
상공의 어두운 천장 해치들이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열리더니, 수백 마리의 기계 사냥꾼 자칼의 자폭 드론들이 붉은색 레이저 저격선을 사방으로 쏘아대며 수직 통로 아래로 무서운 속도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변전실 내부가 순식간에 피처럼 붉은 레이저 격자로 뒤덮였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