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 속의 어린 양, 그리고 늑대
안전 가옥 A-3의 두꺼운 철문 너머로 수십 마리의 기계 사냥개들이 철창 바닥을 긁어대는 쇠붙이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쉭, 쉭, 거친 기계음이 문틈 사이로 새어들 때마다 방 안의 긴장감은 칼날처럼 팽팽해졌다.
경훈은 침상에 기댄 채 센티넬 패드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뇌파 오버클럭의 여파로 오른쪽 귀와 코에서 흘러내린 피는 대충 가죽 소매로 닦아냈지만,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극통과 고막을 찌르는 이명은 여전했다. 입안 가득 맴도는 비린 쇠맛은 미각이 완전히 마비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주인님, 몸을 더 웅크리셔야 합니다. 제가 저 조잡한 철문 뒤의 기계 생명체들을 전부 어둠 속으로 끌고 가 찢어발기겠습니다.”
아린이 경훈의 무릎맡에 엎드린 채 은밀한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속삭였다. 그녀의 목덜미에는 올림포스의 계약 인장이 파괴되며 남긴 시뻘건 화상 흉터가 선명했다. 그 흉터는 이제 그녀가 경훈에게 바치는 맹목적인 복종의 징표이자, 족쇄에서 벗어난 야성의 증거였다.
“웃기지 마라, 암살자.”
태희가 대검 아스칼론을 바닥에 꽂아 넣으며 차갑게 끼어들었다. 그녀의 전신에서는 여전히 동맹 금지 패널티로 인한 붉은색 감쇄 오라가 미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경훈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질투로 이글거렸다.
“경훈 씨의 방패는 나다. 네가 멋대로 그림자 속에서 설치는 동안 경훈 씨에게 튈 먼지 한 톨도 내가 용납하지 않아. 경훈 씨,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두 분 다 그만해요.”
경훈이 쉭쉭거리는 거친 숨을 내쉬며 패드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목소리가 조금 크게 나왔지만, 그의 은빛 눈동자는 냉철하게 빛나고 있었다.
“블레이크가 가동한 사냥개들의 수색 주기는 12분입니다. 지금 문을 열고 싸우는 건 자살행위예요. 패드의 고스트 프로토콜을 가동해 우리 데이터 신호를 일시 왜곡시켰으니, 놈들이 이 구역을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여야 합니다.”
경훈의 지시에 태희와 아린은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던 눈빛을 거두고 경훈의 양옆으로 밀착했다. 태희는 경훈의 왼팔을, 아린은 경훈의 오른편 그림자를 차지한 채 숨을 죽였다. 양옆에서 전해지는 두 여전사의 체온과 묘한 소유욕의 무게가 경훈의 어깨를 짓눌렀지만, 지금은 뇌의 연산을 멈출 때가 아니었다.
철문 너머의 긁는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고, 이윽고 감시 드론들의 붉은 레이저 스캔 광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경훈은 몸을 일으켰다.
“이제 움직여야 합니다. 이 안전 가옥은 임시방편일 뿐이에요. 블레이크의 감시망이 완전히 고정되기 전에, 장기적으로 요새화할 수 있는 우리만의 본거지가 필요합니다.”
“생각해 두신 곳이 있나요?”
태희가 대검을 등에 메며 물었다.
“미로 3구역의 ‘정크야드’입니다. 그곳은 아레나 시스템이 미로 복구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들을 버려두는 거대한 고철 수집장이에요.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가 가장 많고, 무엇보다 내가 설계할 함정의 원자재인 고품질 전선과 기계 기판, 고압 콘덴서가 널려 있는 곳이죠.”
아린이 경훈의 가죽 코트 자락을 살며시 쥐며 눈을 빛냈다.
“주인님이 가시는 길이라면, 그곳이 쓰레기더미든 지옥이든 제 단검이 길을 열 것입니다.”
경훈은 아린의 과도한 집착에 뒷목이 조금 서늘해졌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안전 가옥의 비밀 통로를 열었다. 세 사람은 어두운 철창 미로의 틈새를 따라 은밀하게 3구역 정크야드로 향했다.
***
미로 3구역 정크야드는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고 음산한 고철의 무덤이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기계 톱니바퀴들 아래로, 파괴된 경비 드론의 잔해와 녹슨 철판, 얽히고설킨 구리 전선 더미가 산맥처럼 솟아 있었다. 사방에서 뚝, 뚝 떨어지는 정체불명의 기계 오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경훈은 센티넬 패드를 켜고 ‘함정 예측안’을 발동했다. 그의 은빛 눈동자에 정크야드 도처에 널린 고철들의 잔류 전력 수치와 물리적 인장 강도가 데이터 스트리밍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저기 버려진 고압 콘덴서 더미…… 그리고 구리 전선 타래. 저것들을 융합하면 훌륭한 고전압 덫을 만들 수 있겠어.’
경훈이 스패너를 쥐고 고철 더미로 다가가려던 찰나, 정크야드 깊은 곳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려주세요! 제발…… 누가 좀 살려줘요!”
녹슨 철판 더미 사이로 낡은 안경을 쓰고 잔뜩 주눅 든 표정을 한 청년이 허둥지둥 도망쳐 나오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은빛 철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1단계 미로에서 간신히 몇 번 살아남은 ‘아이-01’ 등급의 일반 플레이어, 박지수였다.
지수의 등 뒤로, 시뻘건 안광을 번뜩이는 기계 늑대 세 마리가 날카로운 금속 이빨을 드러내며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침을 흘리는 기계 늑대들의 구동 관절음이 스산하게 정크야드를 울렸다.
그리고 그 기계 늑대들의 뒤편, 야수 가죽을 덧댄 철갑을 입은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사슬 채찍을 휘두르며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붉은 이빨 가르크의 최측근이자 기계 야수 조련사, 바르그였다.
“하하하! 뛰어라, 약한 양새끼야! 더 빨리 뛰지 않으면 내 아이들의 이빨이 네 목덜미를 먼저 찢어발길 거다!”
바르그는 약자 플레이어들을 사냥감으로 방류해 기계 야수들을 훈련시키는 잔혹한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지수의 다리는 이미 공포로 풀려 있었고, 도망치는 방향은 사방이 무너져 내리는 고철 벽으로 막힌 막다른 골목이었다.
“경훈 씨, 관여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태희가 냉정하게 경훈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아레나에서 약자의 도태는 일상이에요. 저 청년을 구하려다 우리의 위치가 가르크 사냥단에게 노출되면 벙커 구축 계획 자체가 수포로 돌아갑니다.”
아린 역시 어둠 속에서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차갑게 읊조렸다.
“주인님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저런 가치 없는 쓰레기 하나 때문에 주인님의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무시하고 우회하시지요.”
두 여전사의 말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이곳은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데스게임의 현장이다. 타인을 돕는 행위는 곧 자신의 파멸을 자초하는 짓이었다.
하지만 경훈은 패드로 지수의 생체 신호와 고유 주파수를 스캔했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상: 박지수 - E등급 아이언 러너]
[고유 유틸리티: 정밀 분해 및 기계 정비 지수 우수]
‘저 청년의 눈…… 공포에 질려 있으면서도 살고자 하는 갈망이 꺾이지 않았어. 그리고 저 정밀 정비 재능은 향후 내가 구축할 벙커 제로의 자동 센트리 포탑 정비와 함정 재장전을 도울 최고의 부사수가 될 자질이다.’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었다. 철저한 공학적 계산과 연맹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아니요, 저 청년은 구해야 합니다.”
경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 청년은 우리의 손발이 되어 줄 가치 있는 동료가 될 겁니다. 내 눈은 틀리지 않아요. 태희 씨, 아린 씨. 제 지시에 따라 움직여 주세요.”
경훈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태희와 아린은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했다. 아린은 경훈의 단호함에 묘한 황홀경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고, 태희는 한숨을 쉬며 아스칼론의 자루를 꽉 쥐었다.
“좋습니다. 경훈 씨의 지시라면 따르겠어요.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마세요.”
“즉석 고철 기계 장치법을 전개합니다. 3초 뒤에 격발할 테니, 타이밍을 맞추세요.”
경훈이 센티넬 패드를 조작하자, 그의 시야에 정크야드의 폐기 고압 콘덴서와 구리 전선 더미가 붉은색 전력 전도 궤적으로 매핑되었다. 경훈은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스패너를 휘둘러 녹슨 구리 전선을 콘덴서의 고압 출력 단자에 직결했다. 그리고 전선 그물의 끝을 기계 늑대들이 돌진해 올 젖은 철판 바닥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지수 씨! 12시 방향의 파란색 철판 더미 쪽으로 뛰지 말고, 내 목소리가 들리는 오른쪽 고무 호스 구역으로 뛰어 내려요!”
경훈이 목청껏 외쳤다.
그러나 겁에 질린 지수는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경훈의 외침을 듣지 못한 채, 그는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워 보이는 붕괴하는 고철 타워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고철 타워의 지반은 이미 늑대들의 충격으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치앗!”
태희가 이를 갈며 신속하게 도약했다. 그녀는 동맹 패널티로 인해 무거워진 신체를 억지로 이끌고 가속하여,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철제 빔 아래에서 지수의 덜미를 잡아채 옆으로 강하게 밀쳐냈다.
쾅!
거대한 철골이 바닥을 때리며 자욱한 먼지를 일으켰다. 태희는 지수를 구해냈지만, 그 여파로 그녀의 중갑 장갑판 일부가 파손되며 푸른 마력 오라가 일시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크르릉!”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르그의 기계 늑대 세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지수의 등 뒤로 동시에 도약했다. 늑대들의 붉은 안광이 지수의 절망적인 눈동자에 가득 찼다.
“지금이다, 아린 씨!”
경훈이 외침과 동시에 패드의 원격 격발 버튼을 눌렀.
동시에 어둠 속에서 대기하던 아린이 그림자 속에서 비치듯 나타나 바르그의 안면을 향해 세 자루의 단검을 고속 투척했다.
“쉭! 쉭!”
“이년이……!”
바르그가 비명을 지르며 사슬 채찍을 휘둘러 단검을 튕겨내는 0.5초의 찰나, 기계 늑대들의 발바닥이 경훈이 깔아둔 구리 전선 그물에 닿았다.
콰르릉!
경훈이 격발시킨 폐기 콘덴서의 수만 볼트 잔류 고전압 전류가 젖은 철판 바닥을 전도체 삼아 기계 늑대들의 전신으로 사납게 뿜어져 나갔다. 눈을 멀게 할 듯한 푸른 전류 스파크가 정크야드의 어둠을 찢어발겼다.
“께갱! 깽!”
강력한 고전압 펄스가 기계 늑대들의 내부 제어 회로를 완벽하게 태워버렸다. 전선 그물에 얽힌 늑대들은 전신을 경련하다가, 이내 안광의 붉은 불빛이 스러지며 바닥으로 무겁게 고꾸라졌다. 완벽한 회로 전소였다.
“내 아이들이……!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감히!”
자신의 정예 늑대들이 단 한 방에 고철 더미로 변하자, 바르그는 눈이 뒤집혀 광분했다. 그는 품속에서 기괴한 뼈 모양의 ‘음파 피리’를 꺼내 들었다.
삐이이이이익————!
정크야드 전체를 찢어발길 듯한 고주파의 기괴한 소음이 고철 산맥에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와 함께, 사방의 고철 더미 속에서 수십 개의 붉은 안광이 일제히 켜지기 시작했다. 바르그가 기계 야수 군단의 본대를 호출한 것이다.
수십 마리의 기계 늑대 무리가 쇠붙이를 긁는 소리를 내며 경훈 일행이 서 있는 정크야드의 사방 퇴로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탈출구는 완벽히 차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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