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날카로운 창과의 조우
쿵, 쿵, 쿠구구구구—!
가변형 철창 미로 ‘아레나 세린’의 벽면이 기괴한 기계음을 내며 좁혀오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편두통에 관자놀이를 움켜쥔 채, 민경훈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1단계 최하위 등급인 ‘데트 플레이어’의 청동 표식이 가슴팍에서 차갑게 덜컹거렸다. 오른손에 쥔 센티넬 패드의 화면에는 미로의 통로들이 실시간으로 뒤틀리며 폐쇄되는 경로가 붉은 빛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에이전트 블레이크…… 시스템 관리자 놈이 직접 개입했군.’
단순한 지형 변동이 아니었다. 명백히 자신을 겨냥한 악의적인 조작이었다. 사방에서 솟구치는 거대한 강철 격벽들이 경훈의 도주로를 하나씩 차단했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막다른 골목으로 밀려드는 순간, 거대한 철문이 등 뒤에서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와 동시에 사방의 벽면이 육각형 모양으로 맞물리며 완벽한 밀실을 형성했다. 차갑고 두꺼운 티타늄 합금 장벽. 탈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경고. 시스템 강제 이벤트가 활성화됩니다.]
[이벤트명: 미로의 강제 1대1 매칭]
[규칙: ‘최후의 1인 생존 규칙’이 적용됩니다. 격리실 내부의 플레이어 중 오직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아야 문이 열립니다. 제한 시간은 10분입니다.]
기계적인 시스템 안내 방송이 사방의 벽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오직 한 사람만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죽음의 격리실.
경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 좁고 어두운 방 안에 자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방 중앙,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조명 아래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생머리가 허리춤까지 흘러내려 있었고, 그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얼음 조각상처럼 차갑고도 기품이 넘쳤다. 그녀의 손에는 자신의 키만 한 거대한 은빛 대검 ‘아스칼론’이 들려 있었다. 대검의 검신을 따라 흐르는 푸른 마력 오라는 그녀가 1단계 최강의 검사로 군림하는 ‘실버 엘리트(Silver Elite)’ 강태희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스윽.
태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경훈을 바라보았다.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는 타인을 향한 극도의 불신과 서늘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F등급 데트 플레이어라니.”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마치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시선이 경훈의 낡은 가죽 멜빵바지와 가슴팍의 녹슨 청동 표식에 머물렀다.
“올림포스의 사냥개들이 내놓은 제물이 겨우 이 정도인가. 가련하군.”
그녀의 말에는 단순한 오만이 아닌, 뼈아픈 방어 기제가 깔려 있었다. 현실에서 가문이 파산하고 억지로 이 지옥 같은 아레나에 끌려와 동료들의 배신을 겪으며 쌓아 올린, 세상 전체를 향한 불신의 벽. 그녀는 지금 경훈을 시스템이 보낸 비열한 암살자나 소모품으로 여기고 있었다.
서걱.
태희가 대검을 가볍게 고쳐 쥐었다. 그 사소한 움직임만으로도 좁은 격리실의 공기가 찢어질 듯 팽팽해졌다. 대검의 끝이 경훈의 목울대를 정확히 겨냥했다.
“포기해라. 발악해 봤자 고통만 늘어날 뿐이다. 차라리 단 한 칼에 끝내주지.”
강태희의 마력이 가속되기 시작하자, 은빛 대검 주변의 공기가 푸른색 전격 스파크를 일으키며 일그러졌다. A등급 검사다운 압도적인 무력의 위압감에 경훈의 숨이 턱 막혔다. 정면 대결은 자살행위였다. 경훈의 신체 능력으로는 그녀의 검끝이 움직이는 궤적조차 눈으로 쫓을 수 없었다.
경훈은 천천히 양손을 들어 올렸다. 어떠한 무기도 쥐지 않은, 완벽한 비전투의 몸짓이었다.
“나는 싸울 생각이 없어.”
경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비록 다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은빛 눈동자만큼은 흔들림 없이 태희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싸울 생각이 없다고 해서 살려둘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여기는. 시스템의 룰을 듣지 못했나? 오직 한 사람만 살아서 나갈 수 있다.”
“그 룰을 만든 건 올림포스의 시스템이지, 우리가 아니야.”
경훈은 말을 건네며 필사적으로 시간을 벌었다. 동시에 등 뒤로 슬그머니 내린 왼손으로 센티넬 패드의 측면 기동 버튼을 조용히 터치했다. 화면이 켜지며 미세한 진동이 그의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오라클, 시스템 제어 단말기에 접속해.’
[백도어 포트 검색 중…….]
[경고. 시스템 방화벽에 감지되었습니다. 역추적 격발 발생.]
“으윽……!”
순간, 경훈의 뇌리를 강타하는 극심한 전기 충격이 발생했다. 시스템의 방화벽이 경훈의 무단 접속을 감지하고 뇌파 역류(뇌파 역류) 공격을 가한 것이다. 머릿속이 통째로 불타는 듯한 고통에 경훈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입안에서 비린 맛이 느껴졌지만, 뇌의 과부하로 인해 일시적인 미각 상실이 찾아와 피비린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태희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무슨 수작이지? 손을 뒤로 내리고 뭘 하는 거냐.”
그녀의 검끝이 경훈의 목줄기를 향해 한 치 더 좁혀졌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리한 검풍이 경훈의 어깨 가죽 끈을 스치며 얕은 검창을 남겼다. 붉은 선혈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더 이상 소프트웨어적인 해킹으로 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했다. 방화벽의 감시가 너무나 삼엄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물리적 하드웨어를 과부하시켜 격리실 자체의 전제를 파괴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시스템의 판 자체를 깨부순다.’
경훈은 마음을 굳게 먹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안구가 일시적으로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며 ‘함정 예측안’이 기동되었다.
오버클럭된 뇌파가 주변의 시간을 극도로 느리게 지연시켰다. 0.1배속으로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격리실의 회색 벽면 내부에 숨겨진 복잡한 공학적 구조가 붉은색 실선과 주황색 원형 궤적으로 시각화되어 경훈의 시야에 투영되었다.
티타늄 합금 벽면 뒤쪽, 가변형 미로를 움직이기 위해 쉴 새 없이 압축 유압을 공급하는 고압 배관과 전력 분배 장치들이 집중된 ‘허점’이 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저기다. 격리실 가변 벽의 동력 회로가 집중된 노드.’
경훈은 센티넬 패드의 화면을 빠르게 쓸어 넘겼다. 직접 제어 코드를 뚫는 대신, 벽면의 물리적 유압 고정 장치에 강제 오버로드 신호를 보내는 하드웨어 파괴 공식을 입력했다.
“시간 끄는 것은 여기까지다.”
태희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마력이 대검 ‘아스칼론’의 검신으로 응축되었다. 가문의 비전 무공인 ‘아르카나 검결’의 시동 주파수가 방 안의 공기를 웅웅거리게 만들었다.
그녀가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눈이 멀 정도의 백색 섬광과 함께, 경훈의 목을 향해 푸른 전류가 서린 일격이 날아왔다.
바로 그 찰나.
경훈의 손가락이 센티넬 패드의 중앙 실행 버튼을 강하게 짓눌렀다.
“터져라.”
피지이이익—! 콰아아앙—!
격리실 천장과 좌측 벽면의 유압 밸브들이 일제히 과부하를 일으키며 붉은색 유압유와 초고압의 증기를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50톤에 달하는 기계식 고정 장치가 통째로 파열되면서 육각형의 격리실 벽면이 기우뚱하며 박살 나기 시작했다.
급격한 압력 강하와 함께 터져 나온 고압의 증기 폭풍이 도약하던 강태희의 궤적을 강제로 밀어냈다. 그녀의 대검에서 뿜어져 나온 날카로운 전격 검기가 엉뚱한 허공을 가르며 무너져 내리는 강철 벽면을 두 동강 냈다.
벽면이 폭발적으로 열리며 외부의 가변 미로로 통하는 거대한 탈출 통로가 강제로 개방되었다. 자욱한 백색 증기 속에서 경훈과 태희의 신체가 바깥쪽 바닥으로 거칠게 굴러떨어졌다.
“콜록, 콜록……!”
경훈은 찢어지는 듯한 편두통을 느끼며 차가운 바닥을 짚고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어깨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의 철판을 적셨다. 그의 옆에는 대검을 바닥에 꽂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태희가 서 있었다.
격리실을 무너뜨려 생존 규칙 자체를 무력화한 최하위 등급의 남자.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을 느낄 시간은 없었다.
미로 상공의 전등들이 일제히 불길한 붉은색으로 점멸하며, 고막을 찢을 듯한 경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위험. 시스템이 인가되지 않은 동맹 행위를 감지했습니다.]
[‘동맹 금지의 패널티 법칙’을 발동합니다.]
[경고. 시스템 사냥개들의 추격이 시작됩니다.]
차가운 붉은색 오라가 경훈과 태희의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고, 저 멀리 미로의 어둠 속에서 기계 사냥개들의 불길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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