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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대도, 무너지는 방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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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봉대를 몰살한 대가다, 민경훈! 네놈들의 목을 베어 내 도끼 밑에 깔아주마! 전 군단, 벙커 최심부로 진격하라!”


타르크의 무전기 너머로 흘러나온 가르크의 분노 서린 일갈이 좁은 통로의 공기를 차갑게 얼려버렸다.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무전기가 완전히 침묵에 빠진 순간, 벙커 제로의 정적을 깨고 거대한 진동이 바닥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그것은 단순한 기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골드 마스터(Gold Master)급 강자가 뿜어내는 피비린내 나는 혈풍 기공이 대지를 디디며 내는 파멸의 발소리였다.


“스, 스승님……! 가르크 본대가 정말로 밀고 들어옵니다! 방어막 균열 구역을 통해 기계 야수들이 추가로 진입하고 있어요!”


제어실 구석에서 모니터를 주시하던 박지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의 손에 들린 정밀 정비 도구들이 불안하게 덜덜 떨리며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지난 전투에서 정밀 정비 재능을 각성하며 동력 회로를 복구해 낸 그였지만, 아레나 1단계 최악의 살육마인 붉은 이빨 가르크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어린 청년의 영혼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민경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 전체에 새겨진 끔찍한 3도 전기 화상 흉터가 검게 그을린 가죽 장갑의 잔해와 엉겨 붙어 있었다. 심장이 뛸 때마다 신경을 직접 불로 지지는 듯한 극통이 뇌리를 찔렀다. 뇌파 오버클럭의 후유증으로 인한 극심한 편두통까지 겹쳐 눈앞이 이따금 흐려졌지만, 그의 은빛 눈동자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투명했다.


“지수 씨, 제어반에서 물러나세요. 이제부터는 물리적인 장벽을 닫는 수동 제어가 필요합니다.”


경훈이 왼손으로 센티넬 패드를 조작하려 하자, 그의 목 뒤에 연결된 소울 링크 커넥터의 제어 모드가 푸른빛으로 격렬하게 박동했다. 그 순간, 진입로 사수선에 서 있던 강태희와 설아린이 동시에 헉 하고 숨을 들이켜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동조 통증 동기화 법칙에 의해 경훈의 오른손 화상 극통이 그녀들의 신경계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간 것이다.


“경훈 씨……!”


태희가 이를 악물며 아스칼론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부서진 어깨 중갑 사이로 푸른 전격 스파크가 흉포하게 튀었다. 고통이 전해질수록 그녀의 눈동자는 차가운 얼음에서 불타는 뇌전으로 변해갔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스스로를 희생한 남자를 향한 맹목적인 과보호 본능과 집착이 그녀의 마력을 평소의 50% 이상으로 폭증시키고 있었다.


“주인님…… 아프십니까? 감히 주인님의 고결한 육신에 상처를 입힌 기계 사냥개 놈들과 가르크의 목을…… 제가 갈기갈기 찢어놓겠습니다.”


그림자 속에서 스윽 나타난 아린의 목소리 역시 광기 어린 집착으로 들끓고 있었다. 목덜미에 남은 자폭 인장 파괴 흉터가 붉게 타오르며 그녀의 검은 나노 슈트 주변으로 짙은 그림자 오라가 폭풍처럼 일렁였다. 경훈의 심박수와 동기화된 그녀들의 무력은 이미 아레나 1단계의 규격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태희 씨, 아린 씨. 제 목소리를 들으세요.”


경훈이 헤드셋 마이크를 잡고 차갑게 지시했다.


“가르크는 단순한 원주민 살육마가 아닙니다. 놈이 가진 대도 ‘적혈랑아’는 올림포스 코포레이션의 고밀도 나노 제어 기술이 융합된 무기예요. 놈의 무력은 골드 마스터급. 정면에서 모든 충격을 받아내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후퇴하세요. 놈을 벙커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경훈 씨를 두고 물러설 수는……!”


“제 말을 믿으세요, 태희 씨. 벙커 제로의 진짜 힘은 정문이 아니라 최심부 격벽 뒤에 있습니다.”


경훈의 단호한 설득에 태희는 입술을 깨물며 신속하게 뒤로 도약했다. 아린 역시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며 경훈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 퇴로를 확보했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벙커 제로의 거대한 정문이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안쪽으로 터져 나갔다. 두꺼운 티타늄 합금 정문이 단 한 번의 참격에 종잇장처럼 반으로 쪼개져 비산했다. 자욱한 먼지 폭풍 너머로 피비린내 나는 붉은 갑옷을 입은 거구의 사내, 붉은 이빨 가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오른손에는 불길한 붉은빛 광채를 내뿜는 거대한 대도 적혈랑아가 들려 있었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나노 와이어들의 미세한 진동음이 벙커 내부의 전자기 주파수를 교란하고 있었다.


“어디 있느냐, 은빛 눈동자의 쥐새끼 놈!”


가르크가 포효하자 그의 몸 주변에서 붉은색 혈풍 기공 오라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골드 마스터급의 압도적인 기세에 벙커 천장의 전등들이 차례로 터져 나갔다. 가르크 사냥단의 잔당들이 그의 뒤를 따라 벙커 내부로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가르크……!”


태희가 가디언즈 오버클럭 세이버를 치켜들며 정면에서 가르크의 앞길을 막아섰다. 검신에 푸른 고주파 전류가 가속되며 눈이 멀 것 같은 섬광이 일어났다. 그녀는 대검을 수직으로 내리치며 가르크의 머리 위로 전격 참격을 날렸다.


쿠르릉! 쾅!


하지만 가르크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비웃음을 흘리며 적혈랑아를 비스듬히 치켜 올렸을 뿐이었다. 붉은 대도와 푸른 대검이 격돌하는 순간, 고압의 충격파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벙커의 강철 벽면들을 찌그러뜨렸다.


“겨우 이 정도 힘으로 내 선봉대를 전멸시켰단 말이냐!”


가르크가 적혈랑아에 내장된 오버클럭 주파수를 해제했다. 붉은 칼날에서 뿜어져 나온 나노 진동파가 태희의 아스칼론을 타고 흘러 그녀의 마력 순환을 강제로 교란했다. 무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태희의 신체가 뒤로 크게 밀려나며 바닥을 굴렀다. 그녀의 입가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태희 씨!”


경훈이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그의 심장이 터질 듯한 극통에 휩싸였다. 동조 통증 동기화 법칙으로 인해 태희가 입은 내상의 고통이 경훈의 신경계로 고스란히 전이된 것이다. 경훈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쥐며 핏덩이를 토해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비린 쇠맛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려 했다.


“주인님을 아프게 하지 마라!”


태희의 부상과 경훈의 각혈을 본 아린이 이성을 잃고 폭주했다. 그녀는 그림자 습격을 가동하여 가르크의 등 뒤 사각지대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소음 차단 필터가 장착된 단검 두 자루가 가르크의 경동맥을 향해 무음으로 쇄도했다.


서걱!


그러나 가르크의 몸 주변을 감싸고 있던 피비린내 나는 혈풍 오라 장벽이 아린의 단검을 가로막았다. 붉은 기공 폭풍이 단검의 궤적을 강제로 비틀어버렸고, 아린의 신체는 그 반동으로 인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가르크가 적혈랑아를 가볍게 휘두르자, 붉은 검풍이 아린의 가죽 슈트를 찢으며 그녀의 어깨에 깊은 자상을 남겼다.


“아으윽!”


아린의 비명과 함께 경훈의 어깨에서도 보이지 않는 칼날에 베인 듯한 타는 듯한 통증이 발생했다. 경훈은 제어실 콘솔을 붙잡으며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두 아내의 상처가 소울 링크를 통해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대로 정면 승부를 계속하다간 아내들은 물론, 자신의 육체마저 고통의 과부하로 쇼크사할 터였다.


‘냉정해져야 해. 놈의 무기는 올림포스의 기술이 융합된 하이브리드 병기다. 일반적인 물리 참격이나 전격 방어막으로는 찢을 수 없어. 놈을 완전히 요새 최심부의 킬존으로 유인해야 한다.’


경훈은 왼손으로 패드를 거칠게 두드리며 수동 제어 코드를 활성화했다.


“철수 형님! 지금입니다! 발전실 에너지 코어를 사수해야 합니다! 제어반의 이중 강철 격벽을 강제로 내리세요!”


벙커 지하 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기 제조 전문가 강철수가 경훈의 절박한 목소리를 듣고 수동 레버를 힘껏 잡아당겼다.


“알았네, 경훈 군! 모두 격벽 아래로 피해!”


쿠구구구구궁————!


제어실과 진입로 사이의 천장에서 수십 톤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 격벽이 무서운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가르크 사냥단의 약탈자들이 격벽에 깔리지 않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태희와 아린은 경훈의 지휘에 맞춰 격벽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몸을 날려 제어실 안쪽으로 슬라이딩 돌파했다.


쾅!


첫 번째 강철 격벽이 바닥에 처박히며 가르크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다. 벙커 제로의 심장부인 발전실 '에너지 코어'로 향하는 통로가 무거운 강철 벽으로 차단된 것이다. 경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태희와 아린을 부축했다. 그녀들의 목덜미에서 소울 링크 커넥터가 붉은색 노이즈를 일으키며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경훈 씨…… 오른손이…… 너무 아파요…….”


태희가 경훈의 화상 흉터가 남은 오른손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다친 것보다 경훈이 고통을 분산받아 아파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 큰 지옥이었다. 아린 역시 경훈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그의 가죽 코트를 피 묻은 손으로 꽉 쥐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그놈의 목을 베지 못해서…… 주인님께 더 큰 고통을 드렸습니다…….”


“아닙니다. 두 분 덕분에 시간을 벌었어요. 이제 가르크를 우리 판 위로 올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경훈은 기침을 토해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도 잠시였다.


쿠웅! 쿠웅! 쿠웅!


닫힌 강철 격벽 너머에서 소름 끼치는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가르크가 적혈랑아를 휘둘러 수십 톤의 격벽을 두들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격벽의 표면이 안쪽으로 둥글게 찌그러지며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기계식 호흡 보조기가 아직 이식되지 않은 경훈의 얕은 숨소리가 좁은 통로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침내.


쩌어어어어억————!


귀를 찢는 기계음과 함께 첫 번째 강철 격벽의 중앙이 세로로 길게 갈라졌다. 올림포스의 고밀도 나노 와이어 진동이 주입된 적혈랑아의 붉은 검날이 종잇장처럼 찢어진 격벽의 틈새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르크의 피비린내 나는 광기 어린 안광이 찢어진 강철 틈새 너머로 정확히 경훈의 은빛 눈동자를 조준했다.


“찾았다, 쥐새끼 놈.”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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