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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의 규칙, 설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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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이——”


지독하게 차가운 기계음이 고요한 병실의 정적을 찢어발겼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누워 있는 여동생, 민소희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그녀의 얇은 손목에는 올림포스 코포레이션이 강제로 주입한 나노 머신의 푸른빛 주입선이 기괴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이, 민경훈 씨. 소희 양의 숨통을 붙들어 매는 데 하루에 얼마가 드는지 알고는 있나?”


내 목덜미를 움켜쥔 것은 일신파이낸스의 악질 사채업자, 김태섭이었다. 우람한 체구에 금목걸이를 번쩍이며 험악한 흉터를 일그러뜨린 그가 비열하게 웃었다. 그의 등 뒤에는 네오 서울 중앙병원의 이사장 최성필이 금테 안경을 치켜쓰며 위선적인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소희의 치료비를 미끼로 나를 끌어들이려는 속셈이군.”


경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최성필이 단정한 맞춤 정장의 품 안에서 한 장의 가상 서약서를 꺼내 들었다. 은백색으로 빛나는 홀로그램 패드에는 붉은 낙인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레나 세린 참가 서약서]


“이 서약서에 서명만 한다면, 네 여동생의 치료비는 물론이고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천문학적인 크레딧을 보장하지. 실패하면? 뭐, 영혼이 가상 공간의 데이터 더미로 분해되겠지만…… 소희 양의 산소호흡기를 떼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지 아닌가?”


최성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이면에는 거부할 수 없는 올림포스의 철권 지배가 도사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민병선이 평생을 바쳐 연구했던 특허권을 강탈하고, 이제는 하나뿐인 여동생의 목숨마저 인질로 잡은 자들.


경훈은 떨리는 손으로 홀로그램 패드 위에 지장을 찍었다.


그것이 나락으로의 추락이자, 동시에 거대한 반역의 시작이었다.


***


쿵! 쿵! 쿵!


사방에서 거대한 철창 벽이 솟구쳐 올랐다. 차가운 금속성 냄새와 기름때가 뒤섞인 음습한 공간.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보이는 것은 끝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들과 어두운 가상 데이터의 바다뿐이었다.


[가변형 철창 미로 ‘아레나 세린’에 입장하셨습니다.]

[플레이어 권한을 부여합니다.]

[신분: 데트 플레이어 (Det Player) - F등급]

[고유 특성 및 장비가 부재한 최하위 노예 계급입니다. 생존율은 1% 미만입니다.]


가슴팍에 차갑게 박혀 있는 녹슨 청동색의 아레나 표식이 경훈의 최하위 신분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기 하나 없이, 때 묻은 작업용 가죽 멜빵바지와 스패너 하나만을 쥔 마른 체구의 청년. 그것이 현재 민경훈의 전부였다.


“하하하! 봐라, 이번 판에는 진짜 뼈다귀 같은 놈이 들어왔는데?”

“F등급 데트 플레이어잖아? 무기조차 없네. 저놈 가슴팍의 청동 표식이라도 뜯어서 크레딧으로 바꿔 먹자고!”


어두운 철창 모퉁이 너머에서 거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세 명의 사냥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낡은 철갑을 두르고 조잡한 도끼와 단검을 쥔 그들은 아레나 세린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약자들을 사냥해 연명하는 포식자들이었다.


그들이 경훈의 마른 체구를 보고 비웃으며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했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비린내 나는 살기가 피부를 찔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수첩…… 그리고 내 머릿속의 지식. 무력이 없다면, 이 환경 자체를 무기로 만든다.’


경훈의 심장이 폭발할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극도의 공포와 긴장이 한계점에 달한 순간, 뇌 속 깊은 곳에서 강력한 전기 자극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특이 뇌파가 감지되었습니다.]

[고유 패시브: ‘오버클럭 뇌파’가 강제 활성화됩니다.]


순간, 경훈의 시야가 은빛으로 물들었다. 사방의 소음이 완전히 소거되고, 돌진해 오던 사냥꾼들의 기괴한 비웃음소리가 저 멀리 느려진 테이프 리코더처럼 늘어졌다. 공중에 떠다니던 먼지 한 톨, 바닥의 부식된 철판 틈새로 흐르는 미세한 유압유의 흐름까지 0.1배속의 초저속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뇌의 연산 속도가 일시적으로 5배 폭증한 것이다.


‘시간이 없어. 뇌파 오버클럭의 지속 시간은 단 10초 내외다.’


경훈은 품 안에서 아버지가 남긴 정밀 도면 분석 수첩을 꺼내 드는 대신, 이미 수만 번을 정독해 머릿속에 통째로 각인된 수첩의 3D 도면 공식을 뇌 내에서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오른손에 쥔 센티넬 패드를 가동해 주변 지형을 빠르게 스캔했다.


[주변 고철 원자재 스캔 완료.]

[고탄성 스프링 x2, 고강도 구리 전선, 부식된 철판 조각 감지.]


경훈은 주저 없이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사냥꾼 중 대검을 쥔 선봉장이 경훈의 머리통을 향해 무자비한 가로참격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오버클럭 뇌파 덕분에 참격의 궤적이 붉은 선으로 시각화되어 보였다. 경훈은 기어가듯 몸을 비틀어 대검의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했다.


깡——!


대검이 철창 벽을 강타하며 불꽃을 튕기는 찰나, 경훈은 회피한 반동을 이용해 바닥의 부식된 철판을 스패너로 힘껏 뜯어냈다.


‘즉석 고철 기계 장치법, 기동.’


스패너를 쥔 경훈의 손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뜯어낸 철판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고탄성 스프링을 장착하고, 터미널 배전반에서 뜯어낸 고강도 구리 전선을 팽팽하게 인장시켜 묶었다. 단 3초 만에 밟으면 고압의 가시 철판이 튀어 오르는 ‘급조 탄성 압축 가시 덫’이 어두운 바닥 틈새에 매립되었다.


하지만 첫 번째로 급조한 느슨한 와이어 덫은 적들의 시야에 걸릴 위험이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어딜 기어 다니는 거야!”


대검을 휘두른 사냥꾼이 신경질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경훈은 적의 돌진 경로를 완벽하게 제어하기 위해 미끼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품 안에서 아레나 세린의 기본 보급 식량인 딱딱하고 무거운 ‘합성 영양 블록’을 꺼내 적의 발밑 대각선 방향으로 강하게 내던졌다.


툭, 떼구르르.


“어? 저거 식량 블록이잖아!”


배고픔에 허덕이던 사냥꾼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합성 영양 블록으로 쏠렸다. 탐욕에 눈이 먼 선봉장이 블록을 줍기 위해 무게 중심을 앞으로 기울이며 도약하듯 한 걸음을 크게 내디뎠다.


그 발끝이 향하는 곳은 정확히 경훈이 설계한 3D 궤적의 중심부였다.


적의 발목이 보이지 않는 구리 전선에 걸렸다.


투둑——!


적의 강력한 악력과 관성에 의해 첫 번째 급조 와이어는 거칠게 끊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경훈이 노린 교묘한 미끼였다. 와이어가 끊어지며 발생한 탄성의 반동이, 그 바로 아래 숨겨져 있던 두 번째 이중 압축 스프링 가시 덫의 유압 고정 고리를 정확히 튕겨냈다.


찰칵——!


철판의 날카로운 이빨이 기괴한 기계음을 내며 수직으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콰콰콰콰쾅!”


바로 그 순간, 경훈이 조립한 최초의 덫이 격발되기 직전, 미로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과 함께 사방의 철창 벽이 요란한 기계음을 내뿜으며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면이 무작위로 회전하며 경훈과 사냥꾼들 사이의 공간을 강제로 비틀어 막아서기 시작한 것이다.


“커어어억! 머리가……!”


과도한 뇌 연산의 대가로 우지끈거리는 편두통이 경훈의 머리를 짓눌렀고, 그의 콧날을 타고 뜨겁고 붉은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시야가 흐려지는 가운데, 미로가 닫히기 시작하는 거대한 철창의 그림자가 경훈의 눈앞을 어둡게 가로막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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