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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촌 대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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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무의 적혈쌍단도가 붉은 화염을 반사하며 칠복이의 무방비한 목덜미를 향해 은밀하게 쇄도하고 있었다.


“안 돼...!”

목구멍을 찢고 터져 나와야 할 비명은 벙어리 행세에 묶여 둔탁한 신음으로 화했을 뿐이었다. 육무봉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왼팔에 고정된 화덕 가림막 무쇠방패를 들어 올리며 몸을 날리려 했으나, 숯가루 속에서 회복한 살수 쇠돌이가 거대한 전도끼를 가로지르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


“어딜 보느냐, 외팔이 놈아!”


지독한 쇳소리와 함께 무거운 도끼날이 무방비한 무봉의 측면을 겨냥해 내리눌렀다. 쾅! 무봉은 본능적으로 왼팔의 방패를 비틀어 도끼의 궤적을 튕겨냈다. 전신의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이 어깨 경맥을 타고 전해졌다. 오른팔의 끊어진 경맥이 비틀리며 뜨거운 피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무봉은 이를 악물고 피를 삼켰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무너진 대장간 구석, 칠복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형님...!”


칠복이의 마지막 목소리는 너무나 가냘팠다.

서걱.

연기 속에서 번쩍인 혈무의 적혈쌍단도가 칠복이의 가슴 깊숙한 곳을 관통했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대장간의 흙바닥을 적셨다. 평소 호쾌하게 웃으며 무봉을 친형처럼 따르던 순박한 청년의 눈동자에서 빠르게 생기가 사그라들었다. 칠복이는 손에 쥐고 있던 나무 자루를 떨어뜨린 채,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순간, 무봉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끈이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 어어어...!”


무봉은 짐승 같은 신음을 토해내며 무쇠방패를 강하게 휘둘렀다. 내공이 실리지 않은 순수한 완력만으로도 쇠돌이의 거구는 옆으로 크게 비틀거렸다. 무봉은 붕괴하는 대장간의 들보를 등지고, 아내 설아와 방울이가 숨어 있는 화덕 아래의 비밀 대피소, ‘귀은실’을 향해 폭풍처럼 질주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불타는 짚더미가 그의 어깨를 덮쳤으나 가죽 앞치마가 타들어 가는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귀은실 입구에 도달했을 때, 무봉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이 서방이 넘겨준 상세 지도가 빛을 발한 것일까. 혈무는 이미 귀은실의 비밀 돌판을 강제로 들어 올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 입구 앞에는 설아가 가슴을 움켜쥔 채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설아는 남편의 정체도 모른 채, 단지 아래에 숨은 방울이를 지키기 위해 몸으로 돌판을 막아서다 혈무의 칼날에 찔린 것이 분명했다.


“크하하! 쥐새끼들이 여기 숨어 있었구나!”


혈무가 피 묻은 단도를 치켜들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무봉은 눈이 뒤집힌 채 혈무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혈무는 영악하게도 신형을 흔들며 대장간의 자욱한 연기 속으로 몸을 숨겼다.


무봉은 바닥에 쓰러진 설아를 급히 안아 올렸다. 그녀의 가슴팍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가 무봉의 가죽 앞치마와 손을 검붉게 물들였다. 설아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꺼져가는 숨을 몰아쉬며, 품속에서 낡고 단단한 대추나무 빗을 꺼내 무봉의 거친 손에 쥐여주었다. 그것은 무봉이 그녀에게 처음으로 선물했던 수공예품이었다.


“무봉 씨... 복수를... 복수를 하더라도... 우리 방울이만은... 어둠에 물들지 않게... 지켜... 주세요...”


설아의 피맺힌 마지막 부탁이 불길 속에 흩어졌다. 그녀의 맑았던 눈망울이 서서히 빛을 잃고 초점을 잃었다. 무봉의 품 안에서 설아의 차가운 체온만이 남았다.


“어... 어어...”


무봉의 입에서 비명조차 되지 못한 신음이 샜다. 그는 아내의 시신을 안고 굳어버렸다.


그때, 대장간 뒷마당과 연결된 약방 쪽에서 늙은 의원 혜관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무봉은 설아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아내의 나무 빗을 품속 깊이 밀어 넣은 채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렸다. 약방 문이 박살 나 있었고, 안개처럼 자욱한 독기가 마당을 메우고 있었다.


철혈지부의 일류 살수 귀영이 독사가 그려진 긴 창을 치켜들고 서 있었다. 그 발밑에는 늙은 의원 혜관이 방울이를 가로막은 채 창날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혜관의 가슴을 관통한 귀영창 끝에서 푸른 빛의 기괴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교의 비전 기독, 골식독(骨食毒)이었다.


“의원 영감, 비키라고 했을 텐데.”


귀영이 차갑게 비웃으며 창을 뒤틀어 뽑았다. 혜관은 각혈하며 쓰러지면서도 지하실 귀은실의 출구로 도망치려던 방울이의 옷자락을 밀어 넣었다.


“방울아... 도망...!”


그러나 귀영은 이미 창끝을 방울이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창끝에서 뿜어지던 푸른 골식독의 맹독 가스가 방울이의 어린 얼굴을 완전히 덮쳤다.


“아아악! 아저씨! 눈이... 눈이 안 보여요! 뜨거워요!”


방울이가 작은 손으로 눈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골식독 가스에 노출된 방울이의 맑았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며 초점을 잃어갔다. 혜관 의원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방울이를 안아 안쪽의 작은 틈새로 밀어 넣으며 숨을 거두었다.


칠복이의 죽음.

설아의 참살.

혜관의 희생.

그리고 실명해 버린 방울이의 비명.


그 모든 비극이 육무봉의 눈앞에서 단 한 순간에 휘몰아쳤다.


무봉의 심장 속에서 무언가 거대하고 무거운 것이 완전히 깨져 나갔다. 5년 동안 아내와 약속했던 불살(不殺)의 맹세, 살성을 누르고 평범한 대장장이로 살아가려던 스스로의 계약이 피비린내 나는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 나 먼지가 되었다.


쿠우우웅—!


무봉의 전신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차가운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대장간을 집어삼키던 붉은 화염이 그의 주변에서 일순간 기가 죽으며 사그라들었다. 그의 눈빛이 온기 없는 차가운 칠흑색으로 변했다. 과거 천하를 공포에 떨게 했던 제일의 살수, ‘도살자’의 진정한 살계가 깨어난 것이다.


무영살계(無影殺界).


사방의 공기가 얼어붙듯 굳어졌다. 마당에 서 있던 귀영과 연기 속의 혈무조차 그 압도적인 살기의 밀도에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심연의 살의였다.


하늘에서 갑자기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며 우각촌의 타오르는 불길 위로 떨어졌다. 빗물이 무봉의 얼굴에 묻은 숯검댕이와 피를 씻어내렸다.


무봉은 불타는 대장간의 잔해 속에서 아내 설아의 차가운 시신을 단단히 안아 올렸다. 그의 품속에는 피 묻은 나무 빗이 심장 부근을 차갑게 누르고 있었다. 그는 실명하여 흐느끼는 방울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향해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목구멍 속에서 굳어 있던 가혹한 침묵을 찢어발기며, 하늘을 향해 소리 없는 포효를 내질렀다.


전설의 살수, 도살자의 분노가 마침내 우각촌의 핏물 속에서 완전히 각성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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