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뒤에 감춘 그림자
텅, 텅, 텅.
무겁고 둔탁한 철음(鐵音)이 북서쪽 변방의 메마른 대기를 찢었다. 붉게 달아오른 무쇠 괴가 거구의 사내, 육무봉의 메질 아래에서 조금씩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화덕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불꽃이 그의 검게 그을린 얼굴과 이마에 깊게 파인 칼흉터를 붉게 물들였다.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흘러내린 땀방울이 뜨거운 모루 위로 떨어져 치직 소리를 내며 증발했다.
무봉은 오른팔 소매가 뭉뚝하게 잘려 나가 가죽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는 외팔이였다. 하지만 왼손 하나로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그의 완력은 웬만한 장정 서넛을 합친 것보다 강했다. 우각촌 사람들에게 그는 그저 말 못 하고 손재주 좋은 착한 외팔이 대장장이일 뿐이었다.
"형님! 오늘따라 메질 소리가 아주 우렁찹니다요! 이 보습은 옆집 배 서방네 논밭을 일구는 데 쓰일 텐데, 아주 단단하게 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거대한 풀무를 젓고 있던 조수 칠복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칠복이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무봉을 친형처럼 따르며 대장간 일을 돕는 순박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다. 무봉은 대답 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투박하게 웃어 보였다.
입을 닫고 벙어리 행세를 한 지 벌써 5년이었다. 한때 천하를 공포에 떨게 했던 무영각의 제일 살수, '도살자'라는 이름은 이 황량한 우각촌의 흙먼지 속에 묻어둔 지 오래였다. 무봉은 마음속으로 매일같이 백발도인의 가르침을 되뇌었다.
'살기를 가라앉히고, 쇠를 두드려 생명을 이롭게 하는 도구를 만들어라. 그것이 네 손에 묻은 피를 씻는 유일한 길이다.'
그 고요한 명상법 덕분에 무봉은 전신 경맥이 뒤틀리는 격통 속에서도 살성을 누르고 평범한 대장장이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것은 아내 설아와 맺은 피맺힌 불살의 약조이기도 했다.
해질녘이 되자 대장간 옆 작은 초가집에서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풍겨왔다. 문가에 기댄 채 무봉을 바라보는 여인, 설아의 눈망울은 언제나처럼 따뜻했다.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던 열두 살 난 소녀 방울이가 무봉을 보자마자 은방울 같은 목소리로 외치며 달려왔다.
"아저씨! 오늘 칠복이 오빠랑 같이 먹으려고 엄마가 맛있는 보리밥이랑 된장 끓여놨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무봉은 숯검댕이가 묻은 왼손을 서둘러 가죽 앞치마에 문질러 닦고는, 방울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아직 독기에 물들지 않은 방울이의 맑은 눈망울을 바라볼 때마다, 무봉은 자신이 선택한 은거의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소박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칠복이는 설아의 음식 솜씨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설아는 수줍게 웃었고, 무봉은 그저 허허거리며 벙어리 시늉으로 밥을 우적우적 씹었다. 이 소박하고 가난한 평화가 무봉에게는 천하의 그 어떤 기연보다 소중했다.
그러나 평화의 이면에는 언제나 썩은 냄새가 풍기는 법이었다.
밤이 깊어 화덕의 불씨를 정리하던 무봉의 귀에 주춤거리는 발소리가 감지되었다. 무봉의 청철안(聽鐵眼) 감각이 미세하게 작동했다. 쇠의 울림을 듣는 초감각은 대장간 주변을 서성이는 자의 불규칙한 심장 박동과 떨리는 맥박 소리까지 잡아내고 있었다.
서성이는 자는 마을의 소작농인 이 서방이었다. 최근 도박 빚에 쪼들려 가산을 탕진했다는 소문이 돌던 사내였다. 이 서방의 발걸음은 극도로 불안정했고, 그의 시선은 대장간 내부의 지리와 무봉의 잘려 나간 오른팔 소매를 집요하게 훑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밀고하기 위해 나를 살피는구나.'
무봉의 뼈에 새겨진 살수의 감각이 경고를 보냈다. 당장 저 자의 목덜미를 낚아채 뼈를 부러뜨리고 배후를 캐내야 마땅했다. 하지만 무봉의 가슴속에 굳건히 자리 잡은 불살의 봉인이 그의 움직임을 억제했다. 무봉은 조용히 호흡을 가라앉히며 화덕가에 놓아두었던 따뜻하게 구운 감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무봉은 이 서방에게 다가가 투박한 손으로 감자를 내밀었다.
"어, 어.
말 대신 나직한 Grunt 소리와 함께 건네진 따뜻한 온기. 이 서방은 깜짝 놀라며 감자를 받아들였다. 감자의 온기가 손바닥에 닿자, 이 서방의 눈동자에 짙은 죄책감과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무... 무봉이 형씨...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이 서방은 감자를 쥔 채 황급히 뒤돌아 어둠 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멀어지는 찰나, 무봉의 청철안은 이 서방의 품속 가죽 주머니에서 나는 둔탁한 마찰음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황무지의 엽전 소리가 아니었다. 무영각의 살수들이 은밀한 거래를 할 때 사용하는 정순한 본단의 금자 소리였다. 이 서방은 이미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무영각 철혈지부의 사냥개들에게 대장간의 위치와 무봉의 정체를 밀고한 뒤였다.
이 서방이 완전히 사라진 후, 무봉은 대장간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밤바람이 북서쪽 국경 지대의 메마른 황무지 냄새를 풍기며 불어왔다. 우각촌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밀밭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 사이로, 아주 미세한 지면의 울림이 무봉의 발바닥을 타고 단전으로 전해졌다.
*두두두두...*
수십 리 밖에서 들려오는 조직적인 말발굽 소리. 그리고 바람 끝에 실려 오는,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익숙하고 잔혹한 살기(殺氣)였다. 무영각 철혈지부의 살수들이 마침내 이곳을 향해 좁혀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벙어리 대장장이 육무봉의 눈동자가 차가운 심연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