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맥박
어스름한 새벽빛이 무림맹주부의 창살을 타고 낮게 깔릴 때까지, 고소어는 침전 바닥에 고여 있는 악취와 핏물의 흔적을 지우느라 단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어깨의 타박상은 시간이 갈수록 시퍼렇게 부풀어 올랐고, 남궁휘의 술잔을 받아내기 위해 삼켰던 천금환(千金丸)의 부작용은 가슴속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허파 깊은 곳에서부터 쇠비린내가 섞인 뜨거운 기운이 울컥거리며 치밀어 오를 때마다, 고소어는 휠체어 바퀴를 움켜잡고 마른기침을 뱉어냈다.
“억…… 끄응.”
“움직이지 말게. 기혈을 억지로 누르려다간 단전이 먼저 터져 나갈 걸세.”
침전 구석의 어두운 병풍 뒤에서 꼬장꼬장한 목소리와 함께 제갈경(제갈경)이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은침이 가득 꽂힌 자개 침통과 기괴한 보랏빛 약병이 들려 있었다. 제갈경은 고소어의 창백한 안색을 살피더니 혀를 차며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천금환을 삼킨 대가가 이리도 빨리 올 줄은 몰랐군. 장기가 이미 안쪽에서부터 헐어 가고 있네. 당장이라도 요양을 해야 하거늘, 밖의 상황이 그리 녹록지가 않구만.”
“무슨 일이요? 또 독고용이 쥐새끼들을 보냈소?”
고소어가 쇳소리 섞인 거친 숨을 내쉬며 묻자, 제갈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늙은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독고용이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더 골치 아픈 일이 터졌네. 숭산파(嵩山派)의 지법선사(지법선사)가 아침 일찍 장로들을 이끌고 정의전(正義殿)에 들이닥쳤네. 맹주가 한빙독의 후유증으로 내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직접 검증하겠다더군.”
고소어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법선사. 숭산파의 최고 원로이자, 상대의 단전에 직접 내력을 불어넣어 기혈의 깊이를 재는 데 도가 튼 절정 고수였다. 남궁휘처럼 기교 섞인 술잔 따위로 속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늙은 승려의 거친 손끝이 자신의 단전에 닿는 순간, 한 줌의 내력도 없는 저잣거리 소매치기의 실체가 단 한 호흡 만에 천하에 폭로될 터였다.
“내, 내 단전을 직접 만지겠다고 말이요? 그 늙은이가 미쳤소?”
“독고용이 뒤에서 부추긴 게 분명하네. 맹주의 건재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장로회에서 탄핵을 발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피할 길도 없네.”
고소어는 이를 악물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비단 속옷을 축축하게 적셨다.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도망칠 구멍은 없었다. 맹주부 사방이 독고용의 밀정들과 숭산파의 무사들로 포위되어 있었다.
“제갈 어르신, 방법이 없소? 내 맥박을…… 진짜 고수의 맥박처럼 속일 방법 말이요.”
제갈경은 침묵했다. 그의 시선이 손에 쥔 보랏빛 약병으로 향했다. 약병 안에는 점성이 가득한 검푸른 액체가 담겨 있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네만…… 그 대가가 너무나도 참혹하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요? 내가 가짜인 게 들통나면 나도 죽고, 낙양 슬럼가에 있는 내 어머니도 독고용의 손에 죽소!”
고소어의 절박한 외침에 제갈경이 나직이 한숨을 쉬며 약병을 들어 올렸다.
“이것은 혈맥응고액(血脈凝固液)이라 하네. 사천당가의 방계 소녀에게서 은밀히 구한 극독 성분의 약재지. 이 약액을 은침 끝에 발라 자네의 전신 열두 개 주요 혈도에 찌르는 환맥십이침법(換脈十二針法)을 시전할 걸세. 그러면 일시적으로 자네의 경맥이 얼어붙듯 굳어지며 심박수가 분당 열 번 이하로 떨어지게 되지.”
제갈경의 목소리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그 상태에서 타인의 내력이 단전에 들어오면, 굳어버린 혈맥이 기묘한 공명을 일으켜 마치 심연 속에 엄청난 내공이 갈무리되어 있는 듯한 환맥(換脈)의 상태를 연출할 수 있네. 하지만…….”
“하지만?”
“온몸의 뼈가 시리다 못해 깎여 나가는 듯한 극통을 견뎌야 하네. 장기가 실제로 얼어붙어 심장이 영구히 멈출 수도 있고, 살아남는다 해도 오장육부가 완전히 망가져 수명이 급격히 단축될 걸세. 자네의 몸은 이미 천금환으로 인해 만신창이인 상태란 말일세.”
제갈경의 경고는 살벌하기 그지없었으나, 고소어는 씁쓸하게 웃었다. 저잣거리의 좀도둑으로 살며 굶어 죽으나, 가짜 맹주 노릇을 하다 칼에 맞아 죽으나 목숨의 무게는 같았다. 하지만 눈먼 어머니를 지키겠다는 약속만큼은 깨뜨릴 수 없었다.
“찌르시오.”
고소어가 휠체어 팔걸이를 꽉 움켜쥐며 말했다.
“지옥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해봅시다.”
제갈경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보랏빛 혈맥응고액을 은침 끝에 묻혔다. 푸르스름한 독기가 침끝에서 아른거렸다.
쉬익! 푹!
첫 번째 은침이 고소어의 인중을 꿰뚫는 순간, 고소어의 두 눈이 뒤집어질 듯 커졌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극도의 고통이 전신을 강타했다. 그것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차가운 얼음 송곳이 기경팔맥을 타고 들어가 뼈마디 하나하나를 잘게 부수어 놓는 듯한 육체적 파멸의 감각이었다.
푹! 푹! 푹!
제갈경의 손놀림은 무자비할 정도로 빨랐다. 어깨, 가슴, 명치, 그리고 단전 주변의 관원혈까지 정확히 열두 개의 침이 고소어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혈맥응고액이 핏줄을 타고 흐를 때마다 고소어의 피부 위로 퍼런 독선이 핏줄을 따라 기괴하게 솟구쳤다. 이가 덜덜 떨렸고, 전신에 극심한 오한이 밀려와 숨이 턱턱 막혔다. 심장이 꺼질 듯이 느리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버텨야 하네.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시체가 되는 걸세.”
제갈경의 목소리가 아득한 심연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멀어졌다. 고소어는 입술을 깨물어 피를 내며 억지로 정신의 끈을 붙잡았다.
잠시 후, 침전의 문이 열리고 철검대장 진무(진무)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맹주님, 지법선사와 장로들이 정의전에서 대기하고 있사옵니다.”
고소어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갈경이 침을 뽑아낸 자리를 넓은 소매 속에 감추고, 무릎 위에 두꺼운 비단 담요(휠체어 무릎 담요)를 덮었다. 담요 밑의 다리는 이미 오한으로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으나, 상체만큼은 윤의선회보의 요령을 발휘해 단단히 고정했다.
정의전의 거대한 문이 열리자, 장내를 가득 채운 백여 명의 정파 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고소어에게 쏠렸다. 대청 한가운데에는 황금빛 가사를 걸치고 거대한 황금석장(황금석장)을 짚은 노승, 지법선사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매서운 눈빛은 마치 고소어의 영혼까지 꿰뚫어 볼 듯이 날카로웠다.
고소어는 휠체어를 천천히 굴려 단상 위에 멈춰 세웠다. 전신을 엄습하는 오한과 단전의 극통 때문에 당장이라도 피를 토하며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는 심연부동 안면제어(深淵不動)를 극한으로 가동했다. 얼굴에는 차갑고 고고한 미소를 띄운 채, 목구멍의 청동 고리를 조여 웅장한 쇳소리를 내뿜었다.
“지법선사. 이른 아침부터 숭산의 석장 소리가 요란하구려. 무슨 일로 이리 무리를 이끌고 정의전을 더럽히는가?”
그 거칠고 당당한 기세에 장내의 온도가 한층 더 가라앉았다. 그러나 지법선사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석장으로 바닥을 쿵 내리쳤다.
“맹주님. 강호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사옵니다. 사공 맹주께서 만성 한빙독에 중독되어 단전의 내력을 완전히 잃으셨다는 소문이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다가올 무림대회에서 정파의 위엄은 땅에 떨어질 터. 소승이 정파의 안위를 위해 직접 맹주님의 기혈을 짚어 소문을 불식시키고자 합니다.”
지법선사가 당당하게 명분을 내세우며 단상 위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 진무가 검자루를 쥐며 막아서려 했으나, 고소어는 가볍게 손을 들어 진무를 제지했다. 오히려 뻔뻔할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
“내 몸에는 한빙독을 억누르기 위해 극단의 진기가 요동치고 있네. 단전 접촉 절대 금지율(丹田 接觸 禁忌)을 모르는 바는 아닐 텐데? 타인의 이질적인 내력이 내 단전에 닿는 순간, 잠재된 독기가 폭발하여 자네마저 경맥이 뒤틀릴 수 있음을 경고하겠네.”
고소어의 싸늘한 경고에 지법선사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독고용의 은밀한 사주를 받은 늙은 승려는 고집스럽게 손을 뻗었다.
“소승의 순양기공(純陽氣功)은 한빙의 독기를 다스리는 데 특효가 있사옵니다. 설령 독기가 폭발한다 해도 소승이 감당할 터이니, 부디 몸을 맡겨 주시옵소서.”
지법선사의 거친 손끝이 고소어의 단전 부근으로 쏘아져 왔다.
‘제길, 올 테면 와라!’
고소어는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지법선사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의 심장은 가사일시맥의 한계에 도달해 겨우 분당 몇 번 수준으로 헐떡이고 있었다.
턱!
지법선사의 두껍고 단단한 손가락이 고소어의 단전 혈도에 정확히 닿았다.
그 순간, 지법선사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손끝을 타고 숭산파의 뜨거운 순양내력이 고소어의 단전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보통의 일반인이라면 텅 빈 단전이 드러나며 내력이 그대로 몸을 관통해 장기를 파괴했겠지만, 고소어의 단전은 달랐다. 제갈경이 주입한 혈맥응고액과 환맥십이침법의 기운이 지법선사의 순양내력과 충돌하는 찰나, 기묘한 공명 반응이 일어났다.
웅웅웅웅-!
고소어의 단전 안쪽에서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심연의 소용돌이가 요동치는 듯한 진동이 발생했다. 지법선사가 불어넣은 뜨거운 내력은 고소어의 단전에 닿자마자, 얼어붙은 빙산의 구덩이 속으로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소멸해 버렸다. 침투한 기운이 깊은 공동(空洞) 속에서 반사되어 기이하고 웅장한 공명맥을 역으로 뿜어냈다.
지법선사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가 느낀 것은 텅 빈 범인의 단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만년 한빙의 심연 속에 거대한 내공을 숨겨둔 채, 외부의 자극을 무자비하게 삼켜버리는 초인의 단전이었다.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던 맹주의 몸 안에서, 우주와도 같은 깊고 고요한 맥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이 맥박은……!”
지법선사는 급히 손을 거두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고, 뻗었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위자연(無位自然)의 극의…… 기를 전신에 완벽히 갈무리하여 기척조차 지워버리신 경지이옵니까? 소승의 얕은 내력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심연의 맥박이로군요.”
지법선사는 황금석장을 바닥에 내려놓고,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맹주님의 무학이 이미 천하를 초탈한 경지에 이르렀거늘, 소승이 얄팍한 소문에 휘둘려 대고수의 체면을 상하게 만들었사옵니다. 소승의 무례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정의전에 모인 백여 명의 무사들이 일제히 술렁이며 고소어를 향해 경탄의 시선을 보냈다. 독고용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고, 진무를 비롯한 철검대원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 찼다.
고소어는 겉으로는 차가운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무림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나, 두 번 다시 내 몸에 손을 대는 무례는 범하지 말게.”
“소승, 명심하겠나이다.”
지법선사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서자, 고소어는 휠체어를 돌려 침전으로 향했다. 정의전의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상체를 꼿꼿이 세웠던 고소어는, 침전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커헉!”
입안에서 참아왔던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전신에 박혔던 침 구멍에서 검은 피가 배어 나왔고, 그의 심장은 당장이라도 멈출 듯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극독 성분의 혈맥응고액이 그의 오장육부를 실제로 굳혀가며 생명줄을 갉아먹고 있었다. 제갈경이 급히 달려와 그를 부축하는 순간, 고소어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이를 갈았다.
이 망가진 몸을 고치려면 맹주부 영약고의 만년설삼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그리고 그 너머, 독고용의 일그러진 얼굴이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음산하게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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