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과 자객
연회가 끝나고 깊은 밤이 찾아왔지만, 무림맹주부의 침전에는 가시 돋친 침묵만이 가득했다.
고소어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침상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질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연회장에서 남궁휘의 창궁신공을 기만하기 위해 삼켰던 비약, 천금환(千金丸)의 부작용이었다. 단전이 불타는 듯 뜨거웠고, 목구멍에서는 계속해서 비린 핏물이 울컥거리며 솟구쳤다. 가슴팍에 껴입은 호심철갑(護心鐵甲)의 묵직한 무게마저 지금은 천근만근의 칼날처럼 그의 허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조금만 참거라. 기혈이 꼬인 것을 억지로 풀다간 단전이 먼저 터질 것이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의원 제갈경이 고소어의 전신 혈도에 빠르게 은침을 꽂아 내렸다. 침끝이 피부를 찌를 때마다 검붉은 피가 한 방울씩 흘러나왔고, 불타는 듯한 뜨거운 열감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고소어는 핏물이 묻은 입술을 닦아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목구멍 안쪽의 청동 후두 장치(靑銅 喉頭 裝置)가 미세하게 덜컹거리며 성대를 긁어댔다. 가만히 있어도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제갈 어르신…… 독고용의 눈빛을 보셨소? 그 늙은 여우는 남궁휘가 무릎을 꿇었음에도 내 정체를 의심하고 있소. 오늘 밤을 그냥 넘기지 않을 거요.”
제갈경은 자개 침통을 챙기며 음산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겠지. 독고용은 치밀한 자다. 남궁휘의 시험이 실패했으니, 이제는 법도나 체면을 모두 버리고 가장 확실한 무력으로 네놈의 실체를 검증하려 들 것이다. 오늘 밤, 맹주부의 경비망에 미세한 구멍이 뚫릴 게다. 독고용이 길을 열어줄 테니까.”
“그럴 줄 알고…… 이미 손을 써두었소.”
고소어는 입꼬리를 뒤틀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무공이 없는 좀도둑이 절정 고수들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적이 정통 무학의 합(合)을 생각할 때, 자신은 저잣거리 슬럼가의 가장 비열하고 더러운 야바위로 판을 뒤흔드는 것.
제갈경이 밀실을 통해 사라진 후, 고소어는 침전 내부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이미 낮 동안 Socheol(소철)을 통해 개똥이에게 비밀 연락을 취해 두었다. 개똥이와 묘수회의 동료들은 철검대의 감시망을 피해 맹주부 지하 통로로 침전 바닥 아래에 기상천외한 ‘함정’을 설계해 두었다.
고소어는 휠체어에서 내려와 침상 주변의 장치들을 점검했다.
진짜 사공백이 쓰던 화려한 비단 침상. 그 침대 바로 아래의 대리석 바닥은 정교한 기계식 가죽 끈과 황동 쐐기로 연결되어 있었다. 고소어가 침대 머리맡의 숨겨진 황동 고리를 가볍게 당기자, 철컥하는 미세한 소리와 함께 바닥판이 아래로 꺼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 바닥 아래, 깊이 오 척이 넘는 거대한 나무 구덩이 속에는…… 낙양 슬럼가에서 개똥이가 밤새 수거해 온 가장 정통적이고 부패한 똥독 오물(똥통)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코를 찌르는 지독한 악취가 지하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지만, 고소어는 냄새를 차단하기 위해 코끝에 특수 향료를 바른 뒤 바닥판을 다시 단단히 닫았다.
‘일류 살수일수록 바람 소리와 기척에 예민하지. 하지만 이런 비열하고 더러운 오물 덫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고소어는 침상 주변의 얇은 장막 틈새에 대장장이 맹돌이 제작해 준 초미세 화약통(微細 火藥筒)을 실처럼 얇은 인화선에 연결해 두었다. 기습이 가해지는 순간, 이 미세한 화약들이 터지며 순간적인 불꽃과 소음으로 적의 시선을 분산시킬 터였다. 품속에는 최후의 보루인 소형 뇌화탄(雷華彈) 한 발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고소어는 겉옷을 벗고 얇은 야행의 차림으로 침상 위에 누웠다. 가슴팍의 호심철갑이 차갑게 닿았지만, 심장 박동은 기묘할 정도로 차분해졌다. 저잣거리에서 포졸들에게 쫓길 때마다 다져진 생존 본능이 그의 온몸의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어두운 천장의 나뭇결을 샅샅이 훑었다. 동체시력에 가까운 안구 추적 감각이 어둠 속의 미세한 공기 흐름을 쫓았다.
스스스…….
자정이 지나고 가장 깊은 어둠이 침전을 삼켰을 때, 천장의 기와 틈새에서 미세한 흙먼지가 떨어졌다. 일반인이라면 결코 인지하지 못할, 바람결보다 가벼운 진동이었다.
왔다.
고소어는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극도로 낮추었다. 가사일시맥의 호흡법을 흉내 내며 심박수를 떨어뜨렸다. 천장 너머에서 기척조차 지운 채 하강하는 그림자가 느껴졌다. 흑도 제일의 살수이자, 독고용이 고소어의 목을 베어 반사신경을 시험하기 위해 보낸 칼날, 무명(無名)이었다.
무명은 검은 가죽 옷에 붉은 악귀 가면을 쓴 채, 소리 없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의 손에 쥔 흑철 암검이 어둠 속에서 빛 한 점 반사하지 않고 고소어의 심장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했다. 일격필살의 쾌검이었다. 검끝이 공기를 가르는 미세한 파찰음이 고소어의 귀에 닿는 순간.
“지금이다!”
고소어는 눈을 번쩍 뜨며, 안구 추적으로 검의 궤도를 읽어냈다. 그는 침상 위에서 몸을 꼿꼿이 세우는 대신, 소매치기 시절 담벼락에서 떨어질 때 쓰던 비정통적인 낙법으로 몸을 던져 침대 아래 바닥으로 사정없이 굴렀.
스어어억- 콰아앙!
무명의 흑철 암검이 고소어가 누워 있던 비단 이불을 사정없이 꿰뚫으며 침대 한가운데에 내리꽂혔다. 가공할 만한 절정 고수의 내력이 실린 검타였기에 침대의 나무 프레임이 쩍 갈라졌다.
하지만 무명이 고소어의 빈자리를 확인하고 안색을 바꾸기도 전, 고소어는 바닥을 구르며 머리맡의 황동 고리를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철컥! 슈우우웅-
침상 바로 아래의 대리석 바닥판이 양옆으로 번개처럼 갈라지며 열렸다. 무공의 디딤돌이라 믿었던 단단한 침대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변하자, 무명의 신형이 중심을 잃고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앗……!”
무명은 절정 고수답게 공중에서 신법을 전개해 벽을 차고 오르려 했다. 그러나 고소어가 미리 설치해 둔 초미세 화약통이 무명의 발끝 마찰에 의해 인화선과 부딪치며 사방에서 폭발했다.
퍼퍼퍼펑!
화려한 불꽃과 함께 자욱한 연기가 무명의 시야를 가로막았고, 순간적인 충격파가 그의 기혈 흐름을 흐트러뜨렸다. 공중에서 신법의 흐름이 끊긴 무명은 그대로 수직 낙하했다.
출렁! 푸화아악!
지하 구덩이에서 터져 나온 둔탁하고 끈적한 파찰음과 함께, 지독하기 짝이 없는 낙양 슬럼가산 오물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썩은 가축의 사체와 분뇨가 뒤섞여 수개월 동안 밀폐된 독 속에서 발효된 최악의 오물이었다.
“으, 으그극! 끄아아악!”
검은 복면 틈새로 들이친 끈적한 오물에 무명이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렸다. 일류 살수로서의 기품과 자부심, 그리고 그림자은신공의 고고한 아우라는 단 한 순간에 시커먼 똥독 속에 가라앉았다. 오물이 눈과 입으로 들어가자 무명은 검을 내팽개친 채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울부짖었다. 피부가 똥독에 독이 올라 시뻘갛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감히 맹주부의 침전에 발을 들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고소어는 코를 막은 채 바닥에서 일어나, 품속에 쥐고 있던 소형 뇌화탄을 구덩이 안을 향해 사정없이 투척했다.
콰아아앙!
눈이 멀 정도의 강렬한 섬광과 함께 짙은 보라색 연기가 똥통 내부에서 폭발했다. 섬광과 연기에 정면으로 노출된 무명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똥통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해 버렸다.
바로 그 순간, 침전의 거대한 청동 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열렸다.
쾅!
“맹주님! 기습이옵니다!”
검은 갑옷을 입은 철검대장 진무(진무)가 거대한 철검을 뽑아 든 채 정예 철검대 무사 수십 명을 이끌고 침전 안으로 난입했다. 장내에 가득 찬 형용할 수 없는 지독한 악취와 보라색 연막에 무사들이 일제히 코를 쥐며 주춤했다.
진무는 깨진 바닥 구덩이 속에서 시커먼 오물을 뒤집어쓴 채 기절해 있는 붉은 가면의 살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옷자락이 미세하게 젖은 채 휠체어 옆에 당당하게 서 있는(사실은 낙법의 여파로 어깨 통증을 참으며 억지로 버티고 있는) 고소어를 바라보았다.
진무의 두 눈이 믿기지 않는 경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찼다.
“이, 이자는 흑도 제일의 살수이자 그림자은신공을 익혀 기척조차 내지 못한다는 무명이 아닙니까? 그런 최상급 살수의 침투 경로를 완벽히 예측하시고, 단 한 줌의 내력도 소모하지 않으신 채 기문진법(奇門陣法)의 함정만으로 제압하시다니……!”
진무는 철검을 바닥에 꽂고 고소어를 향해 쿵 소리가 나도록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맹주님의 그 신화적인 혜안과 지략에, 이 진무…… 다시 한번 뼛속 깊이 감복했사옵니다!”
뒤이어 난입한 철검대 무사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맹주의 천재적인 전술에 찬사를 보냈다. 고소어는 속으로 헛구역질을 참아내며, 짐짓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청동 후두 장치를 조여 웅장한 저음을 내뿜었다.
“독고용의 쥐새끼를 생포했으니, 맹주부의 법도에 따라 심문하라.”
“존명!”
진무가 이끄는 철검대가 오물 속에서 무명을 끌어올리는 사이, 고소어는 멀리 어둠 속에서 이를 갈고 있을 독고용의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리며 차갑게 눈빛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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