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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날카로운 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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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곡(白花谷)의 바람은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기암괴석 사이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하얀 매화 꽃잎들이 폭설처럼 휘날리며 계곡 전체를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휠체어 바퀴가 자갈밭을 짓누르는 둔탁한 소리만이 고요한 계곡의 정적을 깨뜨렸다. 고소어는 휠체어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무릎 위에 덮인 두꺼운 비단 담요를 매만졌다.


정의전에서 지법선사를 기세로 꺾어놓은 지 채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았다. 승리의 단맛을 느끼기도 전에, 사공향은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아버지를 이 아찔한 절벽 계곡으로 끌고 왔다.


스스릉-


귀를 찢는 듯한 맑은 쇳소리가 백화곡의 바람을 가르는 순간, 고소어의 목덜미에 서리처럼 차가운 검기가 닿았다.


화산파의 비전 보검, 한매검(寒梅劍)의 푸른 검신이 고소어의 목 경맥 바로 앞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류 검객의 살기가 피부를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고소어는 등 뒤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얼굴 근육을 차갑게 굳히며 심연부동 안면제어를 가동했다.


검을 쥔 사공향의 눈빛은 백화곡의 얼어붙은 얼음보다 더 차가웠다. 그녀의 백색 화산파 도복이 거센 바람에 휘날리며 매서운 기세를 더했다.


“정의전에서 장로들을 물리친 기세는 과연 천하제일인다웠습니다.”


사공향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다. 존경하는 아버지를 향한 목소리라기엔 지나치게 날카로운 가시가 돋쳐 있었다.


“하지만 내 눈은 속이지 못합니다. 당신은 누구죠?”


고소어는 목구멍 안쪽에서 청동 후두 장치가 쇠살을 짓누르는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말을 꺼낼 때마다 성대가 파열되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지금 입을 열지 않으면 저 예리한 한매검이 자신의 목줄기를 단숨에 꿰뚫을 터였다. 고소어는 소매 속에 떨리는 두 손을 감춘 채, 진짜 사공백이 긴장할 때 하던 버릇을 떠올렸다.


그는 오른손 약지를 미세하게 떨며, 신체동조 습관 복제 기술을 시전했다. 그리고 목구멍 깊은 곳의 성대 근육을 조여 사공백 특유의 거칠고 웅장한 저음을 내뿜었다.


“향아야. 화산파의 검은 주군과 부모의 목을 겨누라고 배운 것이냐?”


청동 고리의 공명이 백화곡의 절벽을 울렸다. 하지만 사공향의 검끝은 단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동자에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교차했다.


“내 질문에 헛기침으로 얼버무릴 생각 마십시오. 오늘 아침, 춘향이 올린 차 잔을 받을 때 당신의 손끝은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아버지는 차 잔을 세 번 흔들 때 항상 시선을 허공에 두셨지, 결코 시녀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걸음걸이…… 비록 윤의선회보로 바퀴를 굴려 기세를 가장했으나, 내력을 지닌 자라면 결코 휠체어 바퀴 축에 그런 불균형한 진동을 남기지 않습니다.”


‘제길, 이 계집애의 안력이 생각보다 훨씬 예리하구나.’


고소어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일류 검객의 눈은 미세한 호흡과 움직임의 불일치까지 잡아낸다더니, 진짜 사공백을 평생 지켜본 딸의 눈은 기만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사공향은 검끝을 고소어의 목덜미에 바짝 밀착시키며 마지막 통첩을 던졌다.


“결정적으로, 내 아버지는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평생을 가문의 명예와 무림맹의 권력만을 위해 살아오신 차가운 분이셨지. 그런데 독에서 깨어난 당신의 눈빛에는…… 기묘한 잔정과 나약함이 서려 있더군요. 진짜 내 아버지라면, 지법선사의 무례함에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아 목을 베었을 것입니다. 대답하십시오. 내 진짜 아버지는 어디 있습니까?”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며 하얀 매화 꽃잎들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고소어의 머릿속이 번개처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도망칠 곳은 없다. 뒤는 천길낭떠러지 절벽이었다. 오직 사공백의 비망록 속 기억만이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고소어는 밤새 피를 토하며 외웠던 일기장의 ‘사공설(망처)’ 항목과 ‘사공향의 유년 시절’ 기록을 필사적으로 검색했다.


‘7년 전, 설이 세상을 떠나던 해…… 사공백은 백화곡에서 향아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그때 사공백이 향아에게 남긴 말이 있었어.’


기억의 파편들이 맞춰지는 순간, 고소어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사공향의 한매검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죽음의 공포를 억누르는 포커페이스였다.


“네 어머니, 사공설을 기억하느냐?”


사공백의 거친 저음이 바람을 뚫고 사공향의 귀에 닿았다. 사공향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갑자기 어머니의 이야기는 왜 꺼내시는 겁니까?”


“이 백화곡은 내가 네 어머니를 처음 만난 곳이자, 그녀가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걸었던 장소다. 나는 남들 앞에서는 네 어머니를 항상 ‘부인’이라 칭하며 격식을 차렸지만…… 단둘이 이 계곡에 있을 때만큼은 오직 ‘아설(阿雪)’이라는 비밀스러운 이름으로 불렀지.”


사공향의 검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이름은 진짜 사공백과 요절한 아내, 그리고 아주 어린 시절의 사공향만이 알고 있는 가문의 극비 중의 극비였다.


고소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휠체어 바퀴를 미세하게 굴려 한매검의 날카로운 검끝 쪽으로 다가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고수의 대담함을 가장한 도박이었다.


“그리고 네 왼쪽 어깨에 남은 흉터…… 기억하느냐? 아홉 살 되던 해, 너는 내게 칭찬을 받고 싶어 이 백화곡 절벽에 핀 백매화를 꺾으려다 굴러떨어졌지. 어깨가 찢어져 피를 흘리는 너를 보며,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화산의 검수가 될 아이가 고작 이딴 생채기에 눈물을 보이느냐. 화산의 검은 흉터를 훈장으로 여겨야 한다’라고.”


사공향의 두 눈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리 같던 검기가 순식간에 흩어지며, 한매검의 검끝이 아래로 가볍게 처졌다.


고소어는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피를 삼키며, 사공백의 위선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가짜 후회’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야말로 낯설어진 자신의 따뜻함을 합리화할 유일한 열쇠였다.


“독고용의 음모에 빠져 진짜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며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친 것은 맹주의 권위가 아니었다. 평생을 차갑게 대했던 내 아내 아설과, 상처 입은 어깨를 안아주지도 못했던 내 딸 향아…… 너의 우는 얼굴뿐이었지.”


고소어는 천천히 오른손을 뻗어, 떨리고 있는 사공향의 차가운 검신을 가볍게 밀어냈다.


“지옥에서 돌아온 후, 내가 조금 유순해진 것이 그리도 의심스러웠더냐? 평생을 냉혹한 무인으로 살아야 했던 아비가, 죽음 끝에서 겨우 인간의 정을 깨달은 것이 네게는 그토록 낯설었단 말이냐……”


툭-


사공향의 손에서 한매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갈밭에 부딪치는 검 소리와 함께, 그녀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쪽 같던 여검객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애정결핍에 시달리던 나약한 딸의 모습만이 남았다.


“아…… 아버지……”


사공향이 주저앉아 고소어의 무릎 담요를 붙잡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고소어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진짜 가족의 온기를 갈망하는 그녀를 속였다는 죄책감이 가슴을 찔렀지만, 살기 위해서는 이 기만극을 완벽하게 끝마쳐야만 했다.


가짜 부녀의 눈물겨운 정이 백화곡의 하얀 매화 꽃잎 속에서 연출되던 바로 그 순간.


스스슥-


절벽 위 울창한 매화나무 수풀 너머에서 미세한 인기척과 함께, 누군가의 질투 어린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화산파의 천재 설천우(설천우)가 어둠 속에서 그 광경을 집요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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