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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미끼와 가상 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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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가 아지트 모니터 앞에 앉아 볼펜형 녹음기의 잭을 연결하는 순간, 화면에 기괴한 패킷 신호가 잡히기 시작했다.


구 방송부 기계실의 퀴퀴한 먼지 냄새 사이로 노트북 쿨러가 윙윙거리며 차가운 기계음을 뿜어냈다. 어두컴컴한 지하 아지트를 밝히는 것은 오직 민우의 노트북 모니터와 테이블 위에서 깜빡이는 VPN 다중 우회 라우터의 푸른 LED 빛뿐이었다. 채원은 긴 앞머리 아래로 눈빛을 숨긴 채, 민우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디코딩 시작한다.”


민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기민하게 움직였다. 김현우가 목숨을 걸고 배정태의 체육복 자켓 안감에서 회수해 온 초소형 고음질 보이스 레코더. 그 은빛 볼펜 내부의 플래시 메모리로부터 추출된 오디오 파형이 화면에 길게 늘어섰다. 민우가 스페이스바를 누르자, 지익거리는 주파수 노이즈 필터를 거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서윤이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대나무숲 어드민 이 자식…… 가만히 둘 순 없어.


차갑고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 전교 1등이자 명율고의 실질적인 지배자, 학생회장 윤세아의 음성이었다. 이어폰을 나눠 낀 채원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성민아, 전산실 준비는 끝났어?


—예, 회장님. 어드민이 접속할 수밖에 없는 가짜 예약 제보 파일을 심어놨습니다. ‘학생회비 횡령 의혹 비공개 문서’라는 이름으로요. 어드민이 이 제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관리자 계정으로 접속해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순간, 파일 내부에 숨겨진 트래커 스크립트가 활성화됩니다. 그 즉시 녀석이 사용하는 기기의 실제 MAC 주소와 교내 와이파이 AP의 물리적 위치가 우리 추적 서버로 전송될 겁니다.


최성민의 오만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윤세아의 사냥개이자 학생회 기획부장다운 치밀한 덫이었다.


“미끼를 던졌네.”


민우가 헛웃음을 지으며 안경테를 밀어 올렸다.


“어드민의 지적 호기심과 정의감을 역이용한 함정이야. 6단계: 인지 심리 유도 및 텍스트 덫이지. 우리가 이 파일을 열어보는 순간, 우리 위치는 본관 5층 컴퓨터실이든 여기 구 방송실이든 10초 만에 털려.”


딩동.


마치 그들의 대화를 증명이라도 하듯, 채원의 교복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어드민 전용 구형 스마트폰이 짧은 진동을 울렸다. 채원이 화면을 켜자, 대나무숲 관리자 대기열에 새로운 비공개 제보가 도착해 있었다.


[제보: 학생회비 횡령 의혹 비공개 문서 공유합니다. 학생회 임원 전용 드라이브에서 직접 내려받은 PDF 파일입니다. 어드민님, 반드시 확인하고 올려주세요.]


첨부파일 명은 ‘student_council_budget_leak.pdf’.


“어떡할래, 임채원?”


민우가 채원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긴장감과 동시에, 이 거대한 함정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에 대한 천재 코더 특유의 열망이 일렁이고 있었다.


“도망칠까? 이 제보를 무시하면 저들도 더는 추적할 수 없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나무숲이 학생회의 횡령 의혹을 무서워해서 묻었다는 여론이 돌기 시작하겠지. 윤세아는 그걸 노린 거야. 올리면 위치가 털리고, 안 올리면 공신력이 뒤흔들리는 외통수.”


채원은 가만히 긴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푸른 액정 반사광이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에 내려앉았다. 중학교 시절, 무고한 친구가 사이버 불링을 당할 때 방관했던 기억이 가슴을 찔렀지만, 지금의 그녀는 무력한 방관자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실을 저격하는 어드민이었다.


“도망치지 않아.”


채원의 목소리는 고요했으나 단단했다.


“윤세아는 자기가 판 함정에 우리가 걸려들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사람이 가장 방심할 때는 자신의 설계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이야. 그 방심의 틈을 찔러야 해.”


“방법이 있어?”


“우리가 직접 접속하지 않는다면?”


채원이 노트북 화면의 소스코드를 가리켰다.


“가상 에뮬레이터 세션을 열어. 마스터 폰으로 직접 접근하는 대신, 가상의 단말기를 네트워크에 띄우는 거야. 그리고 그들이 쳐놓은 덫의 수신 서버에 우리가 원하는 데이터를 던져주는 거지.”


민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채원의 의도를 즉각 알아챈 것이다.


“가상 세션 난반사……! 녀석들이 우리 MAC 주소 하나를 기다릴 때, 가짜 패킷 수백 개를 동시에 흩뿌려 버리자는 거구나?”


“맞아. VPN 다중 우회 라우터를 최대로 가동해.”


채원은 키로깅 우회 타이핑 기술을 사용해 마스터 폰의 관리자 세션을 안전하게 가상 에뮬레이터로 복제했다. 민우는 라즈베리 파이 패킷 스니퍼를 라우터에 연결하고, 전산실의 추적 시스템을 교란할 다중 터널링 스크립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민우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준비 완료.”


민우가 엔터키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가상 세션 500개 생성. 서울, 런던, 도쿄, 파리…… 전 세계 12개국 가상 IP 대역으로 쪼개서 전산망에 동시에 주입한다. 윤세아의 추적 서버가 감당할 수 없는 난수 트래픽 폭탄이야.”


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행해.”


* * *


같은 시각, 명율고 본관 5층 전산실 메인 서버룸 옆 제어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학생회 기획부장 최성민이 모니터 화면을 뚫어질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학생회장 윤세아가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녀의 차갑고 이지적인 눈빛이 모니터의 IP 대역폭 동시성 대조 프로그램 화면을 주시했다.


“제보가 대나무숲 대기열에 들어간 지 10분이 지났습니다.”


최성민이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속삭였다.


“어드민이 제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파일 링크를 클릭하는 순간, 우리 트래커 스크립트가 켜집니다. MAC 주소만 확보하면, 교내 AP 로그와 대조해서 현재 어느 건물, 몇 층에 숨어 있는지 실시간으로 특정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무조건 잡힙니다, 회장님.”


윤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완벽한 통제 아래 명율고의 질서가 유지되어야만 했다. 감히 익명의 장막 뒤에 숨어 학생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드민이라는 유령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사냥해 교단 아래 무릎 꿇릴 생각이었다.


삐비빅—!


갑자기 제어실 모니터 화면에 적색 경고등이 켜지며 요란한 부저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최성민이 흥분한 목소리로 마우스를 꽉 쥐었다.


“어드민이 횡령 문서를 열었습니다! 지금 수신 서버로 MAC 주소와 IP 패킷이 들어옵니다! 위치는…… 어?”


최성민의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의 오만한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흔들렸다.


화면에 뜬 수신 로그는 단 하나의 주소가 아니었다.


[경고: 다중 접속 세션 감지]

[IP: 192.168.1.102 (서울)]

[IP: 82.165.12.45 (런던)]

[IP: 210.140.10.99 (도쿄)]

[IP: 104.244.42.1 (뉴욕)]

……


“이, 이게 뭐야? 왜 접속 신호가 사방에서 터지는 거지?”


최성민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찢어졌다. 화면 위로 붉은색 경고 창들이 끊임없이 팝업되며 제어 프로그램의 처리 속도를 잠식해 들어갔다. 가상 에뮬레이터를 통해 복제된 500개의 가짜 접속 패킷이 전산실의 추적 서버로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성민아, 어떻게 된 거야?”


윤세아의 차가운 목소리에 균열이 일었다.


“어드민의 위치는? 어디야?”


“그게…… 추적 서버가 감당할 수 없는 난수 데이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IP 대역폭 동시성 대조 알고리즘이 완전히 꼬여버렸습니다! 서울, 런던, 도쿄…… 전 세계 12개국 가상 주소로 동시에 찢어지고 있어요!”


최성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가 구축한 정교한 추적 시스템의 모니터 화면이 빠르게 난수 코드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어드민이 자신들의 함정을 미리 간파하고, 역으로 시스템을 비웃으며 트래픽 폭탄을 던진 것이 분명했다.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전산실 모니터 화면이 일시에 블랙아웃되며, 서버 랙의 냉각팬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위이이이잉—!


제어실 천장의 적색 경고등이 회전하며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최성민은 패닉에 빠진 채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모니터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시스템의 완벽한 다운이었다.


윤세아는 굳어진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완벽한 설계가, 보이지 않는 어드민의 정교한 역공 앞에 단 30초 만에 무참히 분쇄당했다는 사실이 지독한 모욕감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하얗게 질린 손가락이 옷깃을 강하게 쥐었다.


같은 시각, 구 방송부 기계실 아지트.


민우와 채원은 모니터 화면에 흐르는 ‘전산실 추적 서버 다운’ 로그를 보며 조용히 미소를 나누었다. 비록 가상 패킷 대량 방출로 인해 마스터 폰의 무선 인터넷 접속 속도가 일시적으로 느려지는 페널티를 감수해야 했지만, 학생회의 심장에 날린 일격은 완벽했다.


“완벽한 승리네, 임채원.”


민우가 노트북을 닫으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의 얼굴에는 지적 쾌감이 가득했다.


채원은 주머니 속에서 어드민 전용 구형 스마트폰을 꺼내 쥐었다. 비록 기술적 추적은 완벽히 차단하고 덫을 망가뜨렸으나, 이것으로 끝이 아님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윤세아와 교감 홍상식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위기에 처할수록 더 가혹하고 거친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차가운 정적 속에서, 채원의 스마트폰 액정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학생회 전산실의 경보음이 멈추지 않는 한밤중의 교정 너머로, 더 거대한 전쟁의 서막이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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