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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전의 경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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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교실 앞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굳어 있던 공기가 찢어졌다. 엎드린 채 숨을 죽이고 있던 임채원의 귓가로 익숙하고도 오만한 구두 굽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강서윤이었다. 그 뒤를 따르는 신미소의 얄팍한 웃음소리와 배정태의 껄렁한 발걸음 소리가 교실 바닥을 울렸다.


채원은 자켓 오른쪽 주머니 속에서 마스터 폰의 미세한 온기를 느꼈다. 액정은 꺼져 있었지만, 방금 전 한소희의 저격글을 ‘보류’ 상태로 바꾼 직후였다. 배터리는 겨우 12%.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꺼질 것 같은 위태로운 수치였다. 채원은 ‘투명 인간 은신술’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어깨를 둥글게 말고, 긴 앞머리가 책상 바닥을 향하도록 고개를 푹 숙였다. 숨소리조차 일정하게 제어하며 교실의 사물함과 책상들 사이에 자신의 존재감을 완벽히 녹여냈다. 명율고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아웃사이더라는 타이틀은 이럴 때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었다.


“……어? 뭐야?”


교실 중앙에서 강서윤의 사나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마트폰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왜 안 올라와? 분명 6시에 자동으로 올라가게 예약 제보 걸어놨는데! 미소 너 똑바로 확인한 거 맞아?”


신미소가 당황한 듯 폰을 확인하며 더듬거렸다.


“어, 어? 이상하다. 서윤아, 나 분명히 서버 전송 완료 뜨는 거 보고 폰 껐는데……. 대나무숲 페이지 새로고침 아무리 해도 새 글이 안 떠.”


“아 씨, 짜증 나게.”


강서윤이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책상 위에 던졌다. 가죽 가방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채원의 귓전을 때렸다. 채원은 엎드린 채 눈동자만 살짝 굴려 그들의 동태를 살폈다. 강서윤은 이성을 잃은 것처럼 화면을 새로고침하고 있었고, 배정태는 교실 창문에 비스듬히 기대어 껌을 씹고 있었다.


“대나무숲 어드민 년이 잠수 탄 거 아냐? 아니면 필터링에 걸렸거나.”


배정태가 귀찮다는 듯 뱉어냈다. 그의 큼직한 덩치가 노을빛을 가로막아 교실 구석에 어두운 음영을 드리웠다.


“그럴 리가 없어.”


강서윤이 이를 갈았다.


“내가 일부러 학교 외부 우회 IP까지 써서 보낸 거야. 게다가 사진까지 첨부했으니까 어드민이 조회수 올리려고 바로 승인했을 텐데……. 갑자기 대기열에서 사라졌어. 이건 어드민이 고의로 보류를 걸었거나 삭제했다는 뜻이야.”


채원은 속으로 읊조렸다.


‘정답이야, 강서윤. 하지만 반만 맞았어. 어드민이 고의로 보류를 걸었지만, 그 어드민이 네 바로 옆자리에 엎드려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르겠지.’


강서윤의 미간이 좁혀지며 교실 안을 날카롭게 훑었다. 채원의 어깨 위로 그녀의 시선이 아주 찰나 동안 머물렀으나, 이내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 듯 비껴갔다. 엎드려 잠이나 자는 유령 학생 따위는 그녀의 인지 영역 밖에 존재했다.


“그럼 어쩌게? 한소희 그 년, 오늘 완전히 매장해 버리기로 약속했잖아. 우리 단톡방에서 애들 선동할 준비 다 끝내놨는데.”


배정태가 손가락 관절을 꺾으며 뚝뚝 소리를 냈다. 그의 말에 강서윤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잔인하고도 기괴한 미소였다.


“페이지가 안 올려주면, 우리가 직접 찍어서 올리면 돼.”


“직접?”


신미소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내가 아까 한소희한테 부계정으로 톡 보냈어. 중학교 때 소문 다 까발리기 전에 오늘 방과 후 18시 30분까지 체육관 뒤편 사각지대로 나오라고. 그 년, 겁먹어서 무조건 기어 나올 거야.”


강서윤이 배정태를 향해 턱짓을 했다.


“정태 너는 소희가 오면 바로 가방이랑 스마트폰 빼앗아. 페이스 아이디 강제로 풀어서 폰 열어두고. 미소 너는 카메라 켜. 소희가 돈 빌려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우리 발밑에 무릎 꿇고 있는 것처럼 구도 잡아서 사진 찍어. 그 사진을 소희 지 폰으로 직접 대나무숲에 제보하게 만드는 거야. 본인 계정으로 올리는 자학 제보는 필터링도 우회하니까.”


“와, 대박……. 진짜 천재다, 강서윤.”


신미소가 킥킥거리며 박수를 쳤다. 배정태 역시 껄걸 웃으며 창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간 다 됐네. 지금 18시 10분이니까 슬슬 체육관 뒤로 가 있자. 한소희 그 년, 질질 짜는 얼굴 볼 생각 하니까 벌써 재밌네.”


세 사람의 발걸음이 교실 앞문으로 향했다. 문이 닫히고 그들의 거친 웃음소리가 복도 멀리 사라질 때까지, 채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정적이 찾아온 것을 확인한 후에야 채원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긴 앞머리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체육관 뒤편 사각지대…….”


채원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명율고 체육관 뒤편은 노후 장비들이 방치된 야외 공터로, 본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CCTV의 회전 반경에서도 완전히 벗어난 교내 최고의 우물 구역이었다. 그곳에서 소희의 폰을 빼앗아 사생활을 조작하겠다는 발상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가학적이었다.


채원은 주머니에서 마스터 폰을 꺼냈다. 화면을 켜자 대나무숲 관리자 데이터베이스가 푸른 빛을 뿜어냈다. 배터리는 어느새 11%로 내려앉아 있었다.


‘시간이 없어. 하지만 방법은 있어.’


채원은 아버지가 남겨준 노트를 복기했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완벽하게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을 때 가장 방심한다. 그 방심의 틈새에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직접적인 증거를 던져라.’


채원은 대나무숲 서버 데이터베이스의 캐시 메모리 폴더를 열었다. 강서윤이 방금 전 제보를 보낼 때 발생했던 데이터 로그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강서윤은 철저하게 가상 IP를 쓰고 사진을 합성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급하게 제보를 작성하고 첨부 파일을 올리는 과정에서, 그녀의 갤러리에 저장되어 있던 진짜 단톡방 캡처본이 시스템 캐시 오류로 인해 임시 파일 폴더에 함께 업로드되어 있었던 것이다. 채원은 이 캐시 파일들을 역추적하여 한 장의 이미지 파일을 복원해 냈다.


[서윤파 단톡방]

- 강서윤: 오늘 6시에 소희 원조교제 찌라시 대숲에 올라감. 올라가자마자 미소 너 부계정으로 댓글 도배해.

- 배정태: ㅋㅋㅋ 소희 년 반응 볼만하겠네. 폰 뺏어서 울리는 건 언제 함?

- 강서윤: 대숲 터지면 멘탈 나갔을 때 체육관 뒤로 불러서 폰 뺏고 무릎 꿇려야지.


이것은 조작이 불가능한, 강서윤과 배정태, 신미소의 프로필 사진과 실명이 고스란히 박힌 진짜 음모의 증거였다. 강서윤은 제보를 보낸 직후 이 파일이 잘못 전송된 것을 눈치채고 즉각 삭제 요청을 보냈겠지만, 대나무숲의 마스터 서버는 관리자의 승인 없이는 그 어떤 캐시 데이터도 영구 삭제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전임 어드민 이은수가 남긴 시스템의 철저함 덕분이었다.


채원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10단계: 여론 역풍 설계 및 타이밍 제어.”


채원은 도서실 창가 구석 자리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가방에서 무선 충전 패드를 꺼내 마스터 폰을 밀착시킨 뒤, 복원된 단톡방 캡처본을 대나무숲 예약 업로드 대기열에 올렸다.


그녀는 텍스트 창에 차갑고 정교한 경고장을 작성해 내려갔다.


[제보 예약 예고 - 18시 30분 실행 대조]

현재 2학년 3반 일부 학생들이 동급생 한소희를 체육관 뒤편 사각지대로 유인하여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고 스마트폰을 강탈하려는 모의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본 어드민은 해당 음모의 직접적인 증거인 가해자들의 사적 단톡방 캡처본을 확보하였으며, 이를 실시간으로 공개합니다. 가해자 배정태, 신미소, 강서윤. 당신들의 오프라인 동선은 지금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행동을 멈추십시오.


채원은 예약 시간을 정확히 ‘18시 25분’으로 설정했다. 일진들이 소희를 가두고 폭력을 실행하기 정확히 5분 전이었다.


“엔터.”


채원이 화면을 터치하자, 푸른색 게이지가 차오르며 예약 설정이 완료되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 * *


18시 23분. 명율고 체육관 뒤편 사각지대.


어스름한 노을빛조차 닿지 않는 거대한 체육관 외벽 그늘 아래는 서늘하고 낡은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버려진 넙데데한 매트리스들과 녹슨 철제 캐비닛들이 무덤처럼 늘어선 공간.


한소희는 낡은 가방끈을 두 손으로 꽉 쥔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어깨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동자는 극도의 공포로 흔들렸다.


“어머, 진짜 기어 나왔네?”


녹슨 캐비닛 뒤편에서 강서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뒤로 신미소가 비죽이 웃으며 스마트폰 카메라를 만지작거렸고, 배정태는 큼직한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펴며 소희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서, 서윤아…….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소희의 목소리가 젖은 낙엽처럼 떨렸다.


“네 존재 자체가 잘못이야, 소희야.”


강서윤이 소희의 턱밑까지 다가와 차갑게 읊조렸다.


“너 중학교 때 소문, 내가 대나무숲에 올리려고 했는데 어드민이 잠깐 장난을 쳐놨더라고. 그래서 계획을 좀 바꿨어. 정태야, 폰 뺏어.”


배정태가 위압적인 덩치로 소희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소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녹슨 철문에 등이 부딪혔다. 배정태의 거친 손이 소희의 가방을 낚아채려는 찰나였다.


시간은 정확히 18시 25분.


웅, 우웅—!


체육관 뒤편의 서늘한 정적 속에서, 날카롭고 동시다발적인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배정태의 바지 주머니, 신미소의 손바닥 위, 그리고 강서윤의 가방 안에서 스마트폰 액정들이 일제히 푸른빛을 내뿜으며 무섭게 떨리기 시작했다.


진동 소리는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기괴한 공명음을 만들어냈다. 배정태가 멈칫하며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 이 시간에 누구야?”


신미소 역시 자신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액정 위에는 대나무숲 공식 어플리케이션의 실시간 핫 베스트 알림 팝업이 띄워져 있었다.


[대나무숲 긴급 예고글: 2학년 3반 학폭 모의 현장 실시간 대조]


배정태가 인상을 쓰며 알림을 터치했다. 화면이 열리는 순간, 그의 동공이 찢어질 듯 커졌다. 화면 가득 떠오른 것은 그가 오늘 점심시간에 강서윤, 신미소와 함께 소희를 어떻게 유인하고 폰을 빼앗을지 낄낄거리며 모의했던 단톡방의 원본 캡처 화면이었다. 프로필 사진 속 자신의 멍청한 얼굴과 배정태라는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배정태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큼직한 손이 이전에 본 적 없는 공포로 미세하게 떨렸다.


“서윤아……. 이거 우리 단톡방이잖아. 이게 왜 대숲에 올라와 있어?”


신미소의 얼굴은 이미 핏기를 잃고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강서윤 역시 자신의 폰 화면을 응시한 채, 마치 보이지 않는 유령에게 목덜미를 잡힌 것처럼 굳어 버렸다.


그들의 머리 위로, 보이지 않는 어드민의 거대한 눈이 실시간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지독한 공포가 체육관 뒤편 사각지대를 무겁게 짓눌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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