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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실의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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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방송부 기계실의 퀴퀴한 먼지 냄새 사이로 차가운 기계음이 낮게 깔렸다. 박민우가 조립한 임시 서버의 냉각팬이 불규칙하게 돌아가며 푸른색 LED 불빛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임채원은 그 푸른 빛을 받아 정체 모를 음영이 드리워진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 중앙에는 홍상식 교감의 비밀 메일 주소인 `[email protected]̀과 강남 대치동의 ‘미래가치 입시 컨설팅’ 사설 서버 간에 오간 실시간 통신 로그가 붉은색 경고등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원격으로는 더 이상 무리야.”


민우가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미끄러지자, 화면에 명율고등학교 방화벽의 거대한 보안 구조도가 3D 격자망으로 펼쳐졌다.


“정보센터장 최현석 실장이 구축한 이중 방화벽은 외부망과 완전히 격리된 폐쇄형 내부망을 사용하고 있어. 교감의 이메일 계정이 대치동 사설 학원 서버와 실시간으로 주고받은 암호화된 통신 패킷 데이터의 원본을 확보하려면, 본관 5층에 있는 학교 전산실 메인 서버룸에 물리적으로 직접 침투하는 수밖에 없어. 메인 라우터의 미러링 포트에 패킷 스니퍼를 직접 꽂아야 해.”


물리적 침투. 그 단어가 기계실 내부의 정적을 무겁게 짓눌렀다. 평소 존재감 없는 ‘유령’으로 살아가는 채원에게도, 그리고 기술적 방패 역할을 자처하던 민우에게도 그것은 선을 넘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만약 한밤중에 통제 구역인 서버룸에 침입하다 발각되는 순간, 단순한 교칙 위반을 넘어 무기정학이나 강제 전학, 혹은 그 이상의 사법적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채원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교복 자켓 주머니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는 놋쇠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경비원 강성필이 화분 밑에 남겨두었던 도서관 마스터키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또 하나의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이게 필요할 거야.”


채원이 가방 안쪽 비밀 수납공간에서 얇은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을 꺼내 민우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단정하게 인쇄된 명율고등학교 학생증이었다. 사진과 이름이 기재된 전면은 완벽한 모범생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민우가 카드를 뒤집어 바코드 영역을 스캔하자 모니터에 전혀 다른 이름이 떠올랐.


[ID: 210942 / 성명: 윤동현 / 소속: 컴퓨터실 관리 보조]


“이건…… 동현 선배 학생증이잖아?”


민우가 눈을 크게 뜨며 채원을 바라보았다.


“정다은이 아버지가 운영하는 대명 인쇄소에서 가져온 위조된 학생증 공프레임이야.”


채원의 목소리는 고요하고도 냉철했다.


“거기에 내가 컴퓨터실 관리 보조인 윤동현 선배의 학번 바코드 데이터를 이식했어. 동현 선배는 야간 전산 장비 점검을 핑계로 밤 11시까지 본관 5층 전산실 예비실에 합법적으로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까. 서버룸의 보안 도어락은 이 바코드 신호를 인식하는 즉시 잠금을 해제할 거야.”


민우는 침을 삼키며 위조된 학생증 카드를 손에 쥐었다. 카드의 차가운 촉감이 그의 손끝을 타고 긴장감으로 변해 흘러들었다. 윤동현의 학번 데이터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산실 도어락 서버 로그에 영구히 남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런 리스크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교감과 윤세아는 기말고사 시험지 유출 흔적을 완전히 세탁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갈게.”


민우가 후드티 지퍼를 끝까지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품에는 소형 싱글 보드 컴퓨터와 무선 랜카드를 정밀하게 납땜하여 자체 제작한 ‘라즈베리 파이 패킷 스니퍼’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서버룸 내부로 들어가면 메인 스위칭 허브의 7번 포트가 미러링 포트야. 거기에 스니퍼를 연결하고 전원을 켜면, 내가 아지트에서 7단계 교내 전산망 패킷 실시간 디코딩 알고리즘을 가동할게. 교감이 대치동 학원과 나눈 암호화 이메일 본문과 첨부된 수학 시험지 가안 파일의 바이너리 데이터까지 전부 가로챌 수 있어.”


채원이 민우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시간은 정확히 15분이야. 강성필 경비원 아저씨의 야간 순찰 동선상, 5층 전산실 주변을 지나가는 시간은 밤 11시 20분. 우리는 11시 정각에 움직인다. 11시 15분에는 무조건 서버룸 밖으로 빠져나와야 해.”


“걱정 마. 10분이면 충분해.”


민우가 단단한 목소리로 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무언의 신뢰를 나누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실을 저격하는 대나무숲의 스파이들이 마침내 학교의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침투할 시간이었다.


***


밤 11시 02분, 명율고등학교 본관 5층 복도.


낮 동안 학생들의 발소리로 소란스럽던 복도는 칠흑 같은 어둠과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벽면의 인조 대리석을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민우는 소리 없는 걸음걸이로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걸어갔다. 그의 심장 소리가 빈 복도에 크게 울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고요했다.


마침내 전산실 메인 서버룸의 두꺼운 철문 앞에 도달했다. 문옆에 설치된 디지털 바코드 리더기가 푸른색 대기등을 깜빡이며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민우는 숨을 죽이고 주머니에서 위조된 학생증 카드를 꺼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내 단단히 힘을 주어 카드의 바코드를 리더기에 접촉했다.


띠릭—.


가벼운 비프음과 함께 리더기의 표시등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철컥.


무거운 전자식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민우는 신속하게 문을 열고 내부로 몸을 밀어 넣은 뒤, 문을 소리 없이 닫았다.


서버룸 내부의 공기는 서늘하고 건조했다. 장비들의 과열을 막기 위해 가동 중인 에어컨이 내뿜는 섭씨 18도의 인공적인 냉기가 민우의 뺨을 스쳤다. 우웅— 하는 거대한 기계 소음이 사방에서 고막을 때렸다. 수십 대의 서버 랙들이 내뿜는 열기와 팬의 진동이 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어둠 속에서 빨갛고 파란 LED 불빛들이 마치 살아 있는 디지털 야수의 눈동자처럼 섬뜩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민우는 허리를 숙인 채 메인 서버 랙 뒤편으로 기어 들어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수백 개의 랜선 케이블 사이에서, 그는 명율고 전체의 인터넷 회선을 총괄하는 메인 스위칭 허브를 찾아냈다.


그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품에서 라즈베리 파이 패킷 스니퍼를 꺼내 허브의 7번 미러링 포트에 부착된 빈 슬롯에 정밀하게 연결했다. 파란색 랜선이 스니퍼의 포트에 꽂히는 순간, 스니퍼의 녹색 동작 지시등이 빠르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연결 성공했어.”


민우가 귓가에 꽂힌 초소형 무선 이어폰을 통해 아지트에 대기 중인 채원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확인했어. 지금부터 7단계 실시간 디코딩 알고리즘 가동한다.”


아지트 모니터 앞에 앉은 채원의 손가락이 엔터키를 두드렸다.


동시에 민우가 들고 있던 휴대용 단말기 화면 위로 암호화된 이메일 패킷 데이터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0과 1로 이루어진 바이너리 코드의 바다 속에서, 채원이 설계한 디코딩 스크립트가 홍상식 교감의 메일 주소를 정확히 필터링해 내고 있었다.


[SMTP Packet Captured: [email protected]]

[Decrypting TLS Payload... 12%... 34%...]


화면의 진행률 그래프가 올라갈 때마다 민우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차가운 서버룸의 냉기 속에서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메일 본문 복호화 완료.”


채원의 차분한 음성이 이어폰을 통해 들려왔다.


“홍상식 교감이 대치동 미래가치 컨설팅 학원 원장에게 보낸 메일이야. 첨부파일 명은 `2학년_기말고사_수학_서술형_가안_최종.pdf̀. 교감의 친필 수정 흔적이 담긴 원본 파일이 확실해. 지금 패킷 스니퍼를 통해 기기 내부의 고속 USB 메모리로 데이터 다운로드를 개시했어.”


다운로드 진행률: 45%…… 58%…… 72%…….


서버 랙의 냉각팬 소음 속에서 민우는 모니터의 푸른 빛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거대 비리 카르텔의 가장 추악하고 치명적인 물증이 그들의 손끝에서 실시간으로 복원되고 있었다. 이 패킷 데이터만 있으면 윤세아와 홍상식 교감의 시험지 유출 비리를 전교생 앞에 완벽하게 입증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웅웅거리는 기계 소음 이면에서, 전혀 다른 성질의 이질적인 소리가 민우의 예리한 감각에 포착되었다.


복도 끝에서부터 들려오는 아주 미세하고 규칙적인 소리.


철컥, 철컥. 짤랑—.


금속 열쇠 뭉치가 부딪치는 쇳소리였다.


민우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명율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야간 경비원의 존재를 알리는 죽음의 전조였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무겁고 불규칙한 발소리.


텁…… 슥…… 텁…… 슥…….


오른쪽 다리를 미세하게 절뚝거리며 걷는 특유의 걸음걸이. 경비원 강성필 아저씨였다.


‘말도 안 돼.’


민우는 휴대용 단말기 구석의 시계를 확인했다. 밤 11시 10분이었다. 강성필 경비원의 야간 순찰 스케줄보다 정확히 10분이 빨랐다. 오늘따라 순찰 동선을 조기에 가동한 것이 분명했다.


“민우야, 발소리가 들려. 경비 아저씨가 5층 복도로 진입했어.”


이어폰 너머 채원의 목소리에도 전에 없던 미세한 떨림과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알고 있어…… 하지만 다운로드가 아직 안 끝났어!”


민우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단말기 화면을 노려보았다.


다운로드 진행률: 84%…… 88%…….


지금 USB를 강제로 뽑아버리면 전송 중이던 패킷 데이터가 완전히 깨져버려 복구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오늘 밤의 목숨을 건 침투는 아무런 소득 없이 위험만을 남긴 채 실패로 끝나게 된다. 단 1분의 시간만 더 있으면 완벽한 물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텁…… 슥…… 텁…… 슥…….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산실 문앞 복도 바닥을 쓸어내리는 젖은 발자국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들려왔다.


짤랑, 짤랑.


경비 아저씨가 허리춤에 찬 열쇠 뭉치를 만지는 소리가 서버룸 철문 바로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문틈 사이의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강한 손전등 불빛이 번쩍이며 내부를 비추기 시작했다. 하얀 불빛이 서버룸의 어두운 천장과 벽면을 가차 없이 쓸어내렸다.


다운로드 진행률: 93%…… 96%…….


민우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단말기 액정 위로 툭 떨어졌다. 이제 선택을 해야 했다. 데이터를 포기하고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발각될 위험을 감수하고 마지막 프레임까지 받아낼 것인가.


“민우야, 당장 피해! 문앞이야!”


채원의 다급한 경고가 이어폰을 찢을 듯 울렸다.


철컥, 철컥.


마침내 전산실 철문의 열쇠 구멍 속으로 묵직한 놋쇠 열쇠가 들어가 회전하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서버룸 내부의 기계 소음을 뚫고 민우의 귀에 꽂혔다.


스르륵하며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찰나, 민우는 이성을 잃지 않고 스니퍼 장비와 연결된 단말기의 화면을 껐다. 하지만 메인 라우터 콘솔에 꽂혀 있는 은빛 USB 메모리는 여전히 푸른색 표시등을 깜빡이며 마지막 패킷 데이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민우는 USB를 뽑을 시간이 없음을 직감했다. 그는 콘솔에 꽂힌 USB를 그대로 둔 채, 몸을 날려 높이 2미터가 넘는 거대한 검은색 서버 캐비닛 뒤편의 어두운 사각지대로 몸을 숨겼다. 먼지 쌓인 좁은 틈새로 몸을 밀어 넣은 민우는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꽉 틀어막았다.


스으으—.


무거운 철문이 완전히 열리며, 차가운 복도의 공기가 서버룸 내부로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그 문턱 너머로, 강성필 경비원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와 함께 눈이 멀 것 같은 손전등의 하얀 광선이 서버룸 내부의 깜빡이는 LED 불빛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민우가 숨어 있는 캐비닛 방향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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