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의 검과 정혼자의 그림자
덜컹거리는 마차 안, 비릿한 피 냄새와 축축한 흙먼지가 뒤섞인 어둠 속에서 사마건은 이빨을 악물었다. 목강의 거대한 신형을 단죄하고 빼앗은 밀서는 가슴 품속에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가문을 파멸시키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배후가 다름 아닌 무림의 정점, 무림맹주 제갈무쌍이었다는 진실은 사마건의 영혼을 송두리째 얼려버렸다. 하지만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육체의 한계였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오른쪽 무릎 관절에서 뼈를 깎아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목강의 대력벽력참을 받아내다 어긋나버린 무릎뼈가 살점을 짓누르고 있었다. 사마건은 왼손으로 허벅지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천마대종사 독고천의 마맥이 이식된 그의 왼손은 이미 손가락 끝부터 딱딱하고 차가운 쇳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기형적으로 굳어버린 쇳빛 손가락 끝으로 어긋난 무릎뼈 주변의 혈도를 짚었다.
"으윽...!"
짧은 신음과 함께 사마건은 뼈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콰드득,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무릎뼈가 제자리로 맞춰졌다. 전신을 관통하는 고통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으나, 사마건은 단 한 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단전이 깨진 폐인의 몸으로 마맥의 광포한 힘을 억지로 끌어다 쓴 대가는 이토록 처절했다. 심장에 박힌 황금빛 혜명침이 불길하게 떨릴 때마다, 마기와 도가 진기가 체내에서 거칠게 부딪치며 각혈을 유발했다.
"소주인님... 저 때문에..."
마차 구석에 누워 있던 곽칠이 피투성이가 된 양 손바닥을 부르르 떨며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그의 다친 다리는 이미 피로 검게 물들어 있었고, 그의 아들 곽두수는 아버지를 안은 채 눈물을 흘리며 숨죽여 울고 있었다. 사마건은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마라, 곽 숙부. 힘을 아껴야 한다."
마차는 흑강현 변두리의 거친 숲길을 지나, 마침내 버려진 허름한 사당 앞에 멈춰 섰. 밤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 사이로 거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마건은 절뚝거리는 다리로 마차에서 내려 곽칠을 부축했다. 곽두수가 낡은 사당의 나무 문을 밀어 열자, 매캐한 먼지 냄새와 썩은 목재의 냄새가 코끝을 찔렀. 사당 한가운데에는 머리가 떨어져 나간 진흙 불상이 쓸쓸하게 서 있었다.
사마건은 곽칠을 불상 뒤편 마른 짚단 위에 눕혔다. 그리고 부러진 철검을 짚은 채 사당 입구를 매서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검신 전체에 거미줄처럼 균열이 가득 차 있어,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무기였지만 사마건의 손아귀에 쥐어진 검은 여전히 서슬 퍼런 살기를 품고 있었다.
스스스슥.
정적을 깨고 사당 바깥의 빗소리 사이로 낯선 발자국 소리가 섞여 들었다. 아주 가볍고 조심스러운 걸음걸이였으나, 마맥심안을 개방한 사마건의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마건의 왼팔 마맥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사당 입구 근처에서 서성이는 기혈의 흐름을 역탐지했다.
사마건은 소리 없이 신형을 움직여 문옆의 음영 속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찰나, 부러진 철검의 끝을 침입자의 목덜미를 향해 전광석화처럼 내질렀다.
"사, 사형! 저입니다!"
검 끝이 목덜미의 살갗을 뚫기 직전, 떨리는 목소리가 사당 내부에 울려 퍼졌다. 횃불도 없는 어둠 속에서 드러난 얼굴은 앳된 흔적이 남아있는 청년이었다. 백록검파의 하급 제자이자, 과거 사마건을 친형처럼 따르며 검술을 배우던 소명이었다.
사마건은 검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안광은 오직 얼음처럼 차가웠다. 왼손의 쇳빛 손톱이 소명의 가슴팍을 향해 반쯤 치켜세워져 있었다.
"소명. 네놈이 나를 사냥하러 왔느냐? 백현태의 사냥개가 되어 내 목을 장문인에게 바치러 온 것이냐."
"아닙니다, 사형! 결코 아닙니다!"
소명은 사마건의 갈라진 쇳소리에 몸을 떨며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어깨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소명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풀어 바닥으로 밀어 던진 뒤, 가슴 품속에서 낡은 목검 한 자루를 꺼내 올렸다. 먼지가 묻고 모서리가 닳아버린 목검, 과거 사마건이 백록검파의 연무장에서 소명의 자세를 교정해 주며 손수 깎아 선물했던 바로 그 목검이었다.
"그때... 사형의 단전이 깨지고 가문이 불탈 때, 저는 두려움에 눈을 감았습니다. 힘이 없다는 핑계로 사형이 개처럼 끌려가는 것을 방관했습니다. 그 죄책감이 매일 밤 제 목을 죄어왔습니다. 사형, 저를 베어 속죄하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제발 제 이야기는 들어주셔야 합니다!"
소명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의 목소리에 거짓은 없었다. 사마건은 마맥심안을 통해 소명의 심장박동이 불규칙한 떨림 없이 진실된 속죄의 감정으로 요동치고 있음을 간파했다. 사마건은 천천히 검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어조에는 여전히 냉소가 서려 있었다.
"일어나라. 약자의 눈물 따위는 강호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 네가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나를 찾아온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
소명은 이마에 흙을 묻힌 채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장문인 백현태가 사형의 생존을 확인하고 격분했습니다. 사형이 마교의 사악한 무공을 훔쳐 장로들을 살해했다는 거짓 보고를 무림맹에 올렸습니다. 그 결과, 무림맹주 제갈무쌍의 직인으로 사형에게 천하수배령(天下Message)이 내려졌습니다. 이제 온 강호의 정파 무인들이 사형을 마두로 규정하고 목을 노릴 것입니다."
사마건의 눈동자가 깊게 침잠했다. 제갈무쌍, 그 위선적인 자가 자신의 추악한 음모를 덮기 위해 대대적인 사냥을 개시한 것이다. 천하공적의 누명이라니, 참으로 정파다운 비열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독고영 사매가 백태양 사형의 정혼자가 되기를 자청했습니다."
소명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사마건의 가슴 속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독고영. 과거 백록검파 최고의 여검수이자 사마건의 정혼자였던 여인. 사마세가가 멸문당하자마자 자신을 버리고 원수의 아들인 백태양의 품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직접 자신의 목을 베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
"그녀가... 나를 죽이러 온단 말이냐?"
"예, 사형. 독고 사매가 백록검파의 정예 검사들을 이끌고 사형의 흔적을 밟아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사형의 목을 직접 베어 장문인에게 충성을 증명하겠다며... 하지만 사형, 지금 사형의 몸 상태로는 그들의 추격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소명은 급히 품안에서 누렇게 바랜 가죽 지도 한 장을 꺼내 사마건에게 건넸다.
"사형의 몸에 흐르는 그 기이한 기운... 마맥의 거부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약이 있습니다. 백록검파 최고의 금지인 청련곡(靑蓮谷) 깊은 곳에 자생하는 태을청련(太乙靑蓮)입니다. 이 지도는 제가 문파의 서고에서 목숨을 걸고 훔쳐낸 청련곡의 비밀 통로가 표시된 지도입니다. 이 통로를 통하면 삼엄한 검진을 피해 영약이 자생하는 연못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가죽 지도를 받아드는 사마건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태을청련. 백무흔의 의선수필에도 적혀 있던, 마맥의 첫 폭주를 막아줄 유일한 극양의 영약이었다. 소명은 정말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마건에게 생존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소명... 너는 이 일로 문파의 반역자가 될 것이다.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사형을 배신하고 살아가던 구차한 삶보다, 이 속죄의 검을 쥐고 죽는 것이 제게는 더 가치 있습니다."
소명은 비로소 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거의 상처 입은 동문과의 짧은 화해였다. 사마건이 가죽 지도를 품속 깊은 곳에 넣으려는 바로 그 순간.
스아아아아아-
사당 바깥의 빗소리가 일순간 기이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아니, 빗소리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검압(劍壓)이 사당 주변의 대기 자체를 억누르고 있었다. 사마건의 마맥심안이 비명을 지르듯 요동쳤다.
"피해라!"
사마건이 소명의 덜미를 잡아채어 불상 뒤편으로 몸을 던진 찰나.
쿠구구구궁-!
사당을 둘러싸고 있던 푸른 대나무 숲이 날카로운 청색 검기에 의해 일제히 베여 나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쐐애액 하는 파공음과 함께 서늘하고 예리한 검강이 사당의 낡은 목조 벽을 단숨에 베어 넘겼다. 먼지와 빗줄기가 사당 내부로 세차게 몰아쳤다.
무너진 벽 너머, 쏟아지는 빗속에서 차가운 달빛을 등진 채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순백의 백록검파 무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녀의 손에는 푸른 안광을 발하는 보검, 자영검(紫影劍)이 쥐어져 있었다. 흩날리는 빗방울조차 그녀가 뿜어내는 서늘한 검기에 닿기 전에 증발해 버렸다.
전 정혼자, 독고영이었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사마건을 똑바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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