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검, 찢어진 경맥
매캐한 불길이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칠성 할멈의 초막을 집어삼킨 화염은 맹렬한 기세로 대나무 숲의 습한 공기를 빨아들였다. 타들어 가는 소나무 장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을음과 매운 연기가 사방을 가득 채웠고, 그 열기 속에서 검붉은 연기가 사마건의 왼팔을 타고 기괴하게 피어올랐다.
“소주인님! 피하십시오!”
바닥에 쓰러진 곽칠의 비명은 절박했다. 그의 양 손바닥은 이미 목강의 무자비한 대검에 쓰러지며 쇠사슬 파편에 맞아 갈가리 찢겨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부러진 한쪽 다리는 기이한 각도로 꺾여 흙먼지 속에 처박혀 있었다. 목강은 그런 곽칠의 목덜미를 향해 거대한 대철검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도 가신의 목숨이 끊어질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사마건의 발이 젖은 진흙바닥을 박차고 나갔다. 전신 관절이 어긋나며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지만, 그의 뇌리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하나, 가문의 마지막 충신을 잃을 수 없다는 처절한 집념뿐이었다.
“하찮은 망령 놈이 기어코 제 무덤을 파는구나!”
목강이 거구의 몸을 비틀며 가학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곽칠을 향해 겨누고 있던 대철검을 가볍게 회전시키며, 돌진해 오는 사마건의 정수리를 향해 무겁게 내려쳤다. 백록검파의 비밀 살수대, 추풍대의 부대장다운 무시무시한 완력이었다. 대검의 날을 따라 백록검파 특유의 묵직한 내력 장벽인 반탄강기(反彈罡氣)가 무형의 기막을 형성하며 사마건의 사방을 짓눌렀다. 그것은 일류 고수가 펼치는 대력벽력참(大力霹靂斬)의 초식이었다.
사마건은 오른손에 쥔 부러진 철검을 대각선으로 치켜세웠다. 무기 대 무기로 정면에서 맞붙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단전이 파괴된 그의 몸에는 적의 내공을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는 기틀이 없었다. 그는 검날을 비스듬히 눕혀 목강의 무지막지한 대검 궤적을 옆으로 흘려보내려 했다.
키이이이잉-!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타오르는 초막 마당을 갈랐다. 그러나 목강의 완력은 사마건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흘려보내려 했던 묵직한 압력이 부러진 철검의 검신을 타고 사마건의 전신 골격으로 고스란히 전도되었다.
쩍, 하는 파공음과 함께 사마건의 오른쪽 무릎 관절이 어긋나며 기이한 각도로 뒤틀렸다. 극심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해로 치솟았다. 사마건은 비명을 삼키며 한쪽 무릎을 진흙바닥에 꿇었다. 무릎뼈가 어긋나며 젖은 흙 속으로 무겁게 처박히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하하! 단전이 깨진 폐인 놈이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그 부러진 고철 한 자루로 내 반탄강기를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더냐!”
목강이 대검을 더욱 강하게 내리누르며 사마건의 머리뼈를 으스러뜨리려 했다. 위에서 가해지는 압도적인 중압감에 부러진 철검의 검신에 새겨진 미세한 균열들이 더욱 넓어지기 시작했다. 검날 끝부분에서 작은 쇳조각들이 툭툭 떨어져 불타는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가문의 마지막 자부심이 손안에서 바스러져 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사마건의 체내에서 지옥 같은 폭발이 일어났다. 극심한 신체적 충격이 가해지자, 심장에 깊숙이 박힌 황금빛 혜명침(慧明針)이 불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혜명침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며 진동할 때마다, 왼팔의 뒤틀린 마맥(魔脈)에서 억눌려 있던 천마대종사의 사악한 마기(魔氣)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검붉은 마기는 사마건의 왼팔을 온통 쇳빛으로 물들였다.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지고 손톱이 야수의 발톱처럼 길게 돋아나는 기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체내였다. 폭출한 마기가 사마건의 우반신 경맥에 남아 흐르던 미세한 정파의 백록정종심법 진기와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뜨거운 불길과 차가운 얼음이 몸 안에서 서로를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이었다. 정사와 사사의 진기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충돌할 때마다 사마건의 전신 경맥이 미세하게 파열되며 모공을 통해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우웁... 쿨럭!”
사마건의 입에서 걸쭉한 선혈이 뿜어져 나와 진흙바닥을 적셨다. 눈앞이 붉게 물들고,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을 도륙하고 파괴하라는 마맥의 사악한 환청이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되어 자폭할 것이 뻔했다.
바로 그 순간, 가슴 품속에서 은은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인 남전옥 노리개(南田玉)였다. 삼칠근의 약효가 남아있던 육체와 남전옥 노리개의 푸른 영기가 기적적으로 공명하며, 사마건의 불타는 가슴속으로 극도로 맑고 차가운 한기를 불어넣었다. 마맥의 살기가 뇌해를 완전히 삼키기 직전, 남전옥의 온기가 그의 영혼을 현실로 붙잡아두었다.
사마건은 피 묻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마음속으로 도가의 정심주를 외우기 시작했다.
‘태을정명, 원형이정... 내외명철, 사마불침...’
태을정심주(태을정심주)의 구결이 심장 주변의 꼬인 기혈을 강제로 묶어주었다. 뇌해가 다시 맑아지자, 사마건의 안광에 서늘한 이성이 돌아왔. 그는 자신이 처한 한계를 정확히 인지했다. 단전이 깨진 지금, 내공의 깊이로는 일류 고수인 목강의 반탄강기를 정면으로 뚫을 수 없다. 질질 끌면 자신의 심장이 먼저 터져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뿐이었다. 몸 안에서 충돌하는 두 가지 상반된 기운을 억지로 억누르는 대신, 그 충돌의 파괴력을 검 끝에 한순간에 폭발시키는 것.
사마건은 오른손의 부러진 철검과 왼팔의 마맥을 동시에 쥐어짜 냈다. 왼팔의 검붉은 마기가 어깨를 타고 오른팔로 역류했고, 오른팔에 남아있던 백록의 정순한 진기가 검신으로 흘러들었다. 두 기운이 검날 위에서 격렬하게 대치하며 흑색과 청색의 기괴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것은 정파의 검사도, 사파의 마인도 상상할 수 없는 정사 과도기(이류)의 변칙적인 힘이었다. 사마건은 아버지가 가르쳐준 백록송풍검(白鹿松風劍)의 비전 초식, 송풍파랑(송풍파랑)을 머릿속에 그렸다.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거대한 파도를 가르듯 내려치는 초식이었으나, 지금 사마건이 펼치는 검로는 마맥의 괴력이 더해져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파멸의 궤적을 그리며 뻗어나갔.
“송풍... 파랑(松風破浪)!”
사마건이 기합과 함께 무릎을 꿇은 채로 검을 위로 찔러 올렸다.
쿠구구구궁-!
검붉은 마기와 푸른 진기가 뒤섞인 폭발적인 기류가 부러진 철검 끝에서 회오리쳤다. 그 기괴한 힘의 소용돌이는 목강의 대철검을 감싸고 있던 견고한 반탄강기 장벽을 이빨로 물어뜯듯 순식간에 해체해 버렸다.
“무, 무슨 이런 해괴한 힘이...!”
목강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가 대검을 거두거나 방어 초식을 취하기도 전에, 사마건의 철검 끝이 목강의 대철검 중심부를 정면으로 관통했다.
쨍강-!
일류 고수의 내력이 담겨 있던 두껍고 무거운 대철검이, 사마건의 기형적인 검의 앞에 마치 얼어붙은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조각나 허공으로 흩어졌다. 목강의 거대한 신형이 충격으로 뒤로 밀려나는 찰나, 사마건은 몸을 비틀어 그의 품 안 사각지대로 완전히 파고들었다.
푸우욱!
부러진 철검의 날카로운 단면이 목강의 가슴팍 한가운데를 깊숙이 관통했다. 뜨거운 피가 사마건의 얼굴과 백색 무복을 적셨다. 가문의 원수를 향한 첫 번째 처단이 집행되는 순간이었다.
“커헉... 네놈이... 감히...”
목강은 입가로 피를 쏟아내면서도 마지막 발악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 가학적인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등 뒤로 넘어가는 오른손 끝으로 품속에 숨겨둔 치명적인 암기, 무영침(無影針)을 꺼내 사마건의 안면을 향해 날리려 했다.
하지만 사마건의 마맥심안(魔脈心眼)은 이미 목강의 미세한 근육 떨림과 기혈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마건은 오른손의 검을 그대로 둔 채, 왼손을 뻗었다. 완전히 쇳빛으로 물든 그의 왼손이 허공을 가르며 천마혈마조(天魔血魔爪)의 궤적을 그렸다.
콰드득!
사마건의 야수 같은 손가락이 무영침을 쥐려던 목강의 오른쪽 손목을 통째로 움켜쥐었다. 쇳빛 손톱이 살점을 뚫고 들어가 뼈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뼈가 으스러지고 힘줄이 끊어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목강의 손목이 wet pulp처럼 으깨어졌다. 무영침은 발사되지 못한 채 흙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아아악!”
목강의 비명은 길지 않았다. 사마건이 가슴에 박힌 철검을 우악스럽게 비틀어 뽑아내자, 목강의 거구는 힘없이 진흙바닥 위로 고꾸라졌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그 아래로 붉은 피가 웅덩이를 이루며 퍼져나갔.
사마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렸다. 어긋난 오른쪽 무릎 관절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뒤늦게 전신을 덮쳐왔다. 그는 무너지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부러진 철검을 지면에 깊숙이 꽂았다. 검신 전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득 차 있어, 이제는 한 번만 더 힘을 쓰면 완전히 산산조각 날 것 같았다.
“소주인님... 해내셨군요...”
바닥에 누워 있던 곽칠이 피 묻은 얼굴로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수풀 속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곽두수가 아버지를 향해 달려와 품에 안겼다. 사마건은 피 묻은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혜명침이 여전히 진동하고 있었지만, 남전옥의 차가운 보광 덕분에 마맥의 광기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는 쓰러진 목강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그의 품속을 거칠게 수색했다. 복수의 첫걸음을 떼었으니, 가문을 멸문한 백록검파의 배후를 밝혀줄 단서를 찾아야 했다.
목강의 피 묻은 내의 안쪽에서 은밀하게 숨겨진 가죽 주머니가 손끝에 걸렸다. 주머니를 열자, 정갈하게 접힌 밀서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마건은 떨리는 손으로 밀서를 펼쳤다.
밀서의 하단에는 백록검파의 장문인 백현태의 서명뿐만 아니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황금빛 태양이 새겨진 무림맹주(武林盟主)의 공식 인장이었다.
사마건의 안광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밀서에 적힌 내용은 가혹하리만큼 명확했다.
‘사마세가가 흑강광산의 이권을 황실에 독점 납품하려 하니, 백록검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멸문하여 광산을 장악하라. 무림맹은 이를 묵인하고 사마가문에게 마교의 세작이라는 누명을 씌워 강호의 눈을 가릴 것이다. - 무림맹주 제갈무쌍(諸葛無雙)’
가문을 파멸로 몰아넣고 아버지를 죽인 진짜 원흉은 백록검파뿐만이 아니었다. 정파의 수장이자 강호의 정의를 대변한다는 무림맹주 제갈무쌍, 바로 그 위선의 정점이 모든 음모를 설계한 배후였다.
충격적인 진실 앞에 사마건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복수의 칼날이 향해야 할 종착지가 너무도 거대하고 아득했다.
뿌우우우-!
그때, 불타는 초막 뒤편, 흑강산의 깊은 숲속에서 백록검파의 본대가 불어대는 삼엄한 신호용 뿔나팔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메아리쳤다. 나팔 소리는 숲속의 어둠을 흔들며 사마건 일행의 숨통을 다시 한번 죄어오기 시작했다. 추격대의 본진이 폭발 소리와 불길을 보고 이곳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사마건은 붉게 물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부러진 철검의 자루를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어둠이 불길보다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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