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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약초꾼과 쇠고기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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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익, 치이익!


석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황록색 유황 독연이 사마건의 폐부를 가차 없이 찔러왔다. 한 모금 들이마실 때마다 목구멍에서부터 불덩이를 삼킨 듯한 격통이 일었다. 단전이 깨진 그의 몸은 해독 진기를 운용할 수 없었고, 심장에 박힌 혜명침은 독기의 침입에 반응해 미친 듯이 진동하며 전신 경맥을 뒤흔들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독기에 질식해 죽거나, 폭주하는 마맥의 기운에 심장이 터져 죽을 판이었다.


‘살아야 한다. 여기서 개처럼 죽을 수는 없다.’


사마건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벽면을 훑었다. 마맥심안(魔脈心眼)의 붉은 시야 너머로, 무너진 석벽 틈새에 아주 미세한 환기구 구멍이 박동하듯 보였다. 사람의 머리통 하나 겨우 들어갈 법한 좁은 틈새였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바위 틈새였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생명줄이었다.


사마건은 이빨을 악물며 부러진 철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왼손을 뻗었다.


우득, 우드득!


소름 끼치는 뼈 어긋나는 소리가 폐쇄된 석실 안을 가득 메웠다. 관절탈골술(關節脫骨術). 사마건은 스스로 오른쪽 어깨와 쇄골, 그리고 골반의 관절을 꺾어 몸을 기형적으로 구겼다. 뼈가 제자리에서 벗어날 때마다 전신을 찢는 듯한 고통이 밀려와 비명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으나, 그는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리며 신음을 참아냈다.


그는 흑강 보법(黑綱步法)의 신속한 발놀림을 응용해, 꺾인 몸을 뱀처럼 비틀며 환기구 틈새로 기어 들어갔다. 거친 바위 표면이 그의 찢어진 무복과 살결을 사정없이 긁어놓아 붉은 피가 암벽을 적셨다. 폐가 타들어 가고 의식이 흐려지는 한계의 순간, 사마건은 마침내 유황 독연이 가득한 석실을 극적으로 빠져나와 흑강산의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기어 나왔다.


“허억... 헉...!”


차가운 빗방울이 사마건의 뺨을 때렸다. 탈출의 대가는 가혹했다. 온몸의 관절이 어긋나 있었고, 오른팔의 근육은 완전히 파열되어 피가 멈추지 않았다. 마맥의 거부반응으로 인해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가, 이내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극단적인 열병이 그를 덮쳤. 사마건은 흑강산 자락의 진흙탕 위로 쓰러지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멀어지는 이성의 끝자락에서, 흙냄새 섞인 은은한 풀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마건은 기이할 정도로 따뜻하고 아늑한 감각에 눈을 떴다. 타들어 가던 폐부의 통증이 가라앉아 있었고, 전신을 찢어발기던 마맥의 열기도 거짓말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코끝을 자극하는 것은 지독한 유황 냄새가 아니었다. 장작이 타들어 가는 구수한 냄새와, 맑은 약초 향, 그리고 뭉근하게 끓고 있는 고기 국물의 냄새였다.


“정신이 드는가, 젊은이.”


낮고 나직한, 주름진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사마건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그를 침상에 묶어두었다.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게. 온몸의 뼈가 어긋나고 경맥이 걸레짝처럼 찢겨 있더군.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야.”


사마건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응시했다. 낡은 무명옷을 입고 화로 앞에 앉아 있는 노파였다. 그녀의 눈은 흐릿하게 탁해져 있어 초점이 없었다. 눈먼 약초꾼, 칠성 할멈이었다.


칠성 할멈은 사마건이 깨어난 것을 눈이 아닌 손끝의 감각과 호흡소리로 눈치챈 듯했다. 그녀는 화로 옆에 놓인 사발에서 초록색 즙을 낸 약초 더미를 집어 들었다.


“이건 흑강산 자락 깊은 곳에서만 자라는 삼칠근(三七根)이라네. 지혈에는 이만한 영약이 없지. 젊은이의 찢어진 가슴과 왼팔 상처에 발라두었으니, 따가워도 참아야 하네.”


노파가 거친 손으로 사마건의 왼팔을 만지려 했다. 사마건은 순간 움찔하며 왼손을 뒤로 빼려 했다. 그의 왼손은 천마대종사의 마맥이 이식되어 손가락 끝부터 딱딱하고 차가운 쇳빛으로 물들어 있는 기형적인 상태였다. 정파의 인물들이 본다면 당장 마두라며 목을 벨 흉측한 외형이었다.


하지만 칠성 할멈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 그녀는 앞이 보이지 않기에 사마건의 손이 어떤 색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손끝으로 전해지는 거칠고 차가운 감각만을 어루만질 뿐이었다.


“손이 참 차갑군. 얼음 골짜기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젊은이의 손이 이토록 굳어 있단 말인가.”


노파의 다정한 혼잣말에 사마건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배신당하고 파멸한 이후, 그의 육체를 만진 자들은 모두 그를 짓밟거나 그 안에 깃든 힘을 탐내던 자들뿐이었다. 오직 이 눈먼 노파만이 아무런 대가 없이 그의 상처를 걱정하고 있었다.


칠성 할멈은 삼칠근을 짓이겨 사마건의 왼팔과 가슴의 상처에 꼼꼼히 발라주었다. 지독한 쓰라림과 함께 묘한 청량함이 번지며 마맥의 뒤틀린 열기가 진정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마건은 품속에 있던 남전옥 노리개(南田玉)를 꽉 쥐었다. 어머니의 유품인 남전옥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한기가 삼칠근의 약효와 조화를 이루며, 폭주하려던 심장의 혜명침을 은은하게 가라앉혔다. 찢어졌던 경맥이 일시적으로 아물며 체내의 기혈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자, 이걸 좀 먹어보게.”


칠성 할멈이 화로 위에서 가마솥 뚜껑을 열고 솥바닥에 남은 온기를 모아 정성스레 끓인 쇠고기 죽 한 사발을 건넸다. 구수한 고기 냄새가 좁은 초막 안을 가득 채웠다.


사마건은 떨리는 오른손으로 사발을 받아들었다. 부러진 철검을 쥐고 사람의 목을 벨 때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던 손끝이, 따뜻한 죽 사발을 받아들자 사정없이 흔들렸다. 숟가락을 들 힘조차 없어 사발을 입에 대고 조심스레 들이켰다.


따뜻한 미음과 잘게 다진 쇠고기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위장을 채웠다. 그 온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사마건의 눈가에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린 시절, 백록검파의 하급 연무장에서 온종일 검을 휘두르고 지쳐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끓여주던 소박한 죽의 맛과 똑같았다. 가문이 멸문당하고 단전이 깨져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 사마건의 가슴은 오직 복수와 증오라는 얼음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박한 쇠고기 죽 한 사발이, 그리고 눈먼 노파의 조건 없는 온정이 그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여내렸다. 사마건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죽을 삼켰다. 그는 여전히 인간이었다. 피를 흘리고, 아픔을 느끼고, 온기를 갈망하는 나약한 인간.


“천천히 먹게. 젊은이. 세상이 아무리 가혹해도,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나면 살아갈 힘이 생기는 법이라네.”


칠성 할멈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마건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사마건은 사발을 내려놓고 갈라진 목소리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그것은 사마건이 나락에 떨어진 이후 처음으로 내뱉은, 증오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초막 안은 장작 타는 소리와 따뜻한 음식 냄새로 평화로웠다. 앞선 피비린내 나는 전투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짧고 정적이며 눈물겨운 안식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강호의 가혹한 운명은 몰락한 복수자에게 그리 긴 평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바스락.


초막 바깥을 둘러싸고 있던 삼면의 대나무 숲에서 기이한 정적이 감돌았다. 한여름 밤의 풀벌레 소리가 일시에 뚝 끊겼다. 대나무 숲 깊은 곳에서 서식하던 산새들이 비명을 지르며 밤하늘로 황급히 날아올랐다. 본능적인 살기(殺氣)였다.


사마건의 마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마맥심안을 개방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피부가 먼저 소름 돋으며 반응했다.


스으으으-


대나무 숲 너머에서 맹수들의 으르렁거리는 울음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묵직하고 거대한 쇳덩어리가 흙바닥을 질질 끄는 기분 나쁜 쇳소리가 들려왔다.


즈으으윽, 즈으윽.


대검(大劍)의 날이 거친 돌바닥과 대나무 뿌리를 긁으며 다가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칠성 할멈의 초막을 향해 좁혀져 오고 있었다.


덜컥, 덜컥!


거대한 살기의 파동이 초막을 덮치자, 허름한 사당의 나무 문이 바람도 불지 않는데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마건의 눈동자가 다시 차가운 검은 빛으로 가라앉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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