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南宮)의 이면, 피할 수 없는 형제
사천의 대나무 숲은 음습한 습기와 차가운 밤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대나무 잎사귀마다 맺힌 이슬이 툭, 툭 소리를 내며 젖은 흙바닥으로 떨어질 때마다 사마건은 자신의 오른쪽 발목을 움켜쥐었다. 백무기의 철혈검기가 남긴 기이한 열독(熱毒) 상처가 뼈마디를 태우는 듯한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관절이 어긋나며 서걱거리는 마찰음이 뇌해를 찔렀다.
“윽…….”
나직한 신음과 함께 사마건이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단전이 완전히 파괴된 폐인의 몸으로 마맥의 마기를 강제로 순환시키려 한 대가는 매서웠다. 옆구리의 자상에서는 여전히 붉은 피가 배어 나와 백색 무복을 적시고 있었고, 왼쪽 뺨에 고착된 회색빛 괴사 피부는 이제 귀밑을 지나 목덜미까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반년이라는 시한부의 운명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건아, 무리하지 마라. 당가의 살수들을 처단하느라 몸의 기혈이 완전히 뒤틀려 있지 않으냐.”
동굴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남궁설이 차가운 한철검(寒鐵劍)을 검집에 밀어 넣으며 다가왔다. 그의 수려한 이목구비에는 친구를 향한 깊은 연민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사마건은 피 묻은 손으로 품속의 남전옥 노리개를 꽉 쥐었다. 어머니의 유품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한기가 마맥의 타오르는 살기를 억누르는 동안, 사마건은 나직하게 물었다.
“곽 숙부 부자는 안전한 곳에 대피시켰는가.”
“그래. 동굴 가장 깊은 곳의 석실에 숨겨두었다. 당가의 독무가 완전히 걷힐 때까지는 안전할 거다. 하지만 지금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남궁설의 시선이 대나무 숲 너머, 안개가 짙게 깔린 산길 쪽을 향했다. 그의 손가락이 검 자루를 꽉 움켜쥐며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사마건은 마맥심안(魔脈心眼)을 개방했다. 눈을 감자, 왼팔의 마맥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안개 속에서 다가오는 거대하고 정순한 기혈의 흐름을 붉은 선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대지를 울리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 그것은 일반적인 사파의 살수들이 내는 음습한 기척이 아니었다. 도가의 정종 내공이자, 남궁세가 특유의 찬란하고도 무거운 제왕삼합기(帝王三合氣)의 파동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내의 기운은 사마건도 잘 아는 것이었다.
“……남궁진(南宮進).”
사마건의 갈라진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남궁세가의 적자이자 남궁설의 이복 형. 사마세가의 몰락을 기회 삼아 가문의 세력을 확장하려던 권력욕에 눈먼 천재 검사였다. 그가 무림맹의 현상금과 명성을 노리고, 동시에 눈엣가시 같던 서자 남궁설을 처단하기 위해 사천 초입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당도한 것이다.
샤아아아악-!
거센 바람이 대나무 숲을 가르며 자욱한 안개를 단숨에 찢어발겼다. 안개 너머로 황금빛 선이 화려하게 장식된 백의 장포를 걸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춤에는 남궁세가의 보도인 창랑검(滄浪劍)을 차고, 오만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는 남궁진이었다. 그의 뒤로는 전신 철갑을 두른 세가의 정예 무사 십여 명이 삼엄한 포위 진형을 전개하고 있었다.
“내 평생 비천한 서자 놈이 가문의 검을 들고 마두와 어울려 도망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남궁진의 목소리에는 서자를 향한 지독한 멸시와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창랑검의 자루를 가볍게 짚으며 남궁설을 내려다보았다.
“남궁설. 가문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검을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그리고 네놈이 숨겨둔 사마세가의 망령, 사마건의 위치를 자백해라. 그리하면 가문의 법에 따라 네 목숨줄만큼은 구걸할 기회를 주마.”
남궁설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푸른 무복이 강바람에 거칠게 휘날렸다.
“남궁진. 평생을 적자라는 권력 뒤에 숨어 남의 피를 빨아먹던 네놈이 감히 협(俠)을 논하느냐. 사마세가의 멸문이 무림맹주의 추악한 음모 때문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 더러운 이권에 숟가락을 얹으려 사천까지 사냥개를 자처해 내려왔구나.”
“방자한 서자 놈이 감히 아가리를 놀리는구나! 가문의 무공을 훔쳐 배운 주제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남궁진의 안광에 서슬 푸른 살기가 일어났다. 그가 창랑검을 뽑아 들자, 검신을 따라 찬란한 푸른빛의 검강(劍剛)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남궁세가 전승의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이었다. 하늘을 가르는 듯한 거대한 검세가 대나무 숲 전체를 짓눌렀다.
사마건은 조용히 신형을 움직여 대나무 숲의 음영 속으로 몸을 숨겼다.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이끌고 흑강 보법(黑강 步法)의 구결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소리 없이 적의 사각지대로 침투했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남궁진과 그의 철갑 무사들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었다. 철저하게 그림자가 되어 남궁설을 지원해야 했다.
‘마맥심안(魔脈心眼).’
사마건은 눈을 감고 왼팔의 마맥을 개방했다. 붉은색 기혈 지도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남궁진의 몸 안에서 제왕삼합기의 기운이 창랑검 끝으로 흘러가는 궤적이 한눈에 들어왔. 그 찬란한 검로의 틈새, 남궁진이 창궁무애검법의 세 번째 초식에서 네 번째 초식으로 전환할 때 오른쪽 손목 기맥이 일순간 위축되는 미세한 약점이 포착되었다.
콰아아앙-!
그 순간, 남궁설과 남궁진의 검이 공중에서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푸른 검강과 한철검의 음기가 대치하며 사방으로 엄청난 충격파를 뿜어냈다. 대나무 기둥들이 쩍쩍 갈라지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서자라는 굴레 속에서 평생을 억눌려온 남궁설의 검 끝은 비장하고 예리했으나, 가문의 모든 영광과 자원을 독점해 온 적자의 내력은 너무도 찬란하고 무거웠다. 남궁진의 창랑검이 그리는 궤적은 하늘의 그물망처럼 남궁설의 사방 퇴로를 조밀하게 옥죄어갔다.
“서자 놈의 한계다! 네놈의 비천한 피로는 결코 이 창궁무애검법의 진의를 담아낼 수 없다!”
남궁진이 기합을 토하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수십 자루의 푸른 검날이 환영처럼 피어오르며 남궁설의 어깨와 허벅지를 사정없이 짓쳐왔다. 남궁설은 한철검으로 필사적으로 검막을 형성했으나, 묵직한 내력의 격차에 밀려 무릎을 꿇으며 뒤로 밀려났다. 그의 입가로 붉은 선혈이 울컥 흘러내렸다.
남궁진이 가소롭다는 듯 창랑검을 치켜들며 남궁설의 손목을 베어 무력화하려 했다.
그 찰나의 순간, 대나무 숲 어둠 속에서 사마건의 왼손 끝이 미세하게 맥동했다. 쇳빛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손가락 끝에 극음의 마기를 집중시켰다.
‘음기탄(陰氣彈).’
쉬이익!
소리도 흔적도 없는 투명한 음기의 탄환 한 발이 안개를 찢고 남궁진의 오른쪽 손목 관절을 향해 날아갔다.
깡-!
“……?!”
검을 내리치려던 남궁진의 손목에 소름 끼치는 한기가 덮쳐왔다. 일순간 손목 기맥이 얼어붙으며 창랑검의 궤적이 반 치 비껴 나갔다. 남궁설의 목덜미를 겨냥했던 검날이 허공을 가르며 대나무 기둥을 두 토막 내는 데 그쳤다.
“어떤 쥐새끼가 감히 암습을 하는 거냐!”
남궁진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숲속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사마건은 이미 흑강 보법을 전개하여 다른 대나무 그늘로 소리 없이 신형을 옮긴 뒤였다. 마맥심안을 통해 적들의 동태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남궁설! 정신 차려라! 가문의 위선 앞에 무릎 꿇지 마라!”
사마건의 전음이 남궁설의 귓가를 울렸다. 남궁설은 이빨을 악물며 한철검을 짚고 다시 일어섰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서자로서의 한(恨)과 투지가 한철검의 서리빛 음기와 공명하며 더욱 차갑게 일렁였다.
“비겁한 서자 놈이 외부의 도움을 빌려 목숨을 연명하는구나! 단숨에 으스러뜨려 주마!”
남궁진이 분노로 격분하여 전신의 제왕삼합기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주위로 푸른 폭풍 같은 반탄강기 장벽이 형성되며 사방의 대나무 잎들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창랑검 끝에서 피어오른 청색 검강은 이제 사방 십보 안의 모든 생명체를 소멸시킬 듯한 거대한 파괴력을 품고 있었다.
남궁진이 대지를 밟으며 허공으로 도약했다. 창궁무애검법의 최종 살초가 남궁설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 전체가 푸른 검강의 빛으로 뒤덮이는 장엄하고도 비정한 광경이었다.
사마건은 더 이상 숨어서 음기탄만 날릴 수 없음을 직감했다. 남궁설의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균열이 극도에 달해 언제 산산조각 날지 모르는 임시 철검(臨時 鐵劍)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검신 내부에서 정사와 마기가 격렬하게 충돌하며 미세한 진동이 그의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남궁진이 최후의 검강을 뿜어내며 남궁설의 심장을 노리는 순간, 사마건은 더 이상 정체를 숨기지 못하고 대나무 숲을 가르며 전면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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