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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唐家)의 독수, 살기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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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입구로 스며드는 녹색 독무의 향취가 사마건의 심장에 박힌 혜명침을 다시 한번 서늘하게 자극했다.


매캐하면서도 기이하게 달콤한 향. 사천당가 특유의 만독독무(萬毒毒霧)가 지면을 타고 뱀처럼 기어들고 있었다. 동굴 바닥의 축축한 이끼 위로 초록색 이슬이 맺히는가 싶더니, 안개 속에서 수십 마리의 독지네와 검은 거미들이 스스스 소리를 내며 들이닥쳤다.


“도련님……!”


안쪽에 누워 있던 곽칠이 신음하며 마차 벽을 짚으려 했으나, 부러진 다리와 파열된 손바닥의 통증 때문에 다시 바닥으로 무너졌다. 그의 아들 곽두수가 아버지를 감싸 안으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동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남궁설이 대지 위에 꽂아두었던 한철검을 뽑아 들었다. 푸른 검강이 대나무 숲의 안개를 가르며 일어났지만, 무형의 독무는 검강으로 베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베어낼 때마다 독무는 더 미세하게 갈라져 동굴 내부로 깊숙이 스며들 뿐이었다.


“물러서라, 남궁설. 정공(正功)의 진기로 독무를 흩뿌리려 하면 안개 속의 독소들이 열기와 반응해 더 빠르게 퍼진다.”


사마건이 가부좌를 틀고 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어긋났던 무릎 관절과 오른쪽 발목에 새겨진 백무기의 열독(熱毒) 상처가 욱신거리며 지독한 마찰음을 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뼈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오직 냉혹한 살기만이 감돌았다.


그의 왼쪽 뺨은 이미 귀밑을 지나 목덜미까지 딱딱하게 괴사한 회색빛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마맥의 침식이 빚어낸 기형적인 흔적. 사마건은 왼손 품속에서 낡고 누렇게 바랜 가죽 책자를 꺼냈다. 과거 남궁설이 가문의 눈을 피해 전해주었던 ‘사천당가 독경 잔본(四川唐家 毒經 殘本)’이었다.


사마건은 독경 잔본에 적혀 있던 기초 구결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되뇌었다.


‘당가의 독문 무공은 기혈의 흐름을 타고 전파된다. 독무를 만났을 때는 폐맥을 닫고, 체내의 온도를 극도로 낮추어 혈류의 속도를 정지시켜야 한다…….’


단전이 파괴된 폐인의 몸으로는 정파의 정순한 내공으로 독기를 밀어낼 수 없었다. 억지로 도가의 기공을 운용하려 했다간 또다시 기혈이 뒤틀려 선혈을 토해낼 터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스스로를 얼려 독의 순환을 강제로 멈추는 것.


사마건은 품속에서 차가운 음기가 서린 서리빛 약초를 꺼냈다. 국경을 넘어오며 흑강 음사곡의 빙벽에서 채집해 두었던 희귀 한초, 음신초(陰神草)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음신초를 입에 넣고 씹어 삼켰.


“우드득……!”


극음(極陰)의 성질을 지닌 음신초의 약효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마자 전신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혈관이 푸른 서리빛으로 변하며 혈류가 얼어붙듯 느려졌다. 폐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동굴 입구로 유입되던 독무의 독성이 폐맥에 닿자마자 하얗게 결정화되어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스스로의 몸을 가사 상태에 가깝게 만드는 처절한 해독법이었다.


“남궁설, 곽 숙부 부자를 동굴 가장 깊은 석실 안쪽으로 피신시켜라. 바깥에 당가의 살수들이 당도했다.”


사마건은 오른손으로 허리춤의 임시 철검(臨時 鐵劍) 자루를 쥐었다. 대장간 가마에서 새로 벼려낸 검붉은 검신이었지만, 지난 격전의 여파로 내부의 미세한 균열이 극도에 달해 있어 언제 산산조각 날지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기를 가릴 때가 아니었다.


스스스슥.


축축한 안개 속에서 나뭇잎을 밟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마건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맥심안(魔脈心眼).’


왼팔의 마맥이 미세하게 맥동하며 그의 머릿속에 주변의 생명체들이 내뿜는 기혈의 흐름을 붉은 선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안개 속에서 기척을 죽인 채 동굴 입구를 향해 좁혀오는 다섯 개의 박동이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사천당가의 독공 천재 당운(唐雲)이 보낸 정예 살수들이었다.


그들은 사마건이 흑사당과의 격전으로 인해 완전히 쓰러져 있을 것이라 믿고 방심하고 있었다. 독무가 동굴 내부를 완전히 장악했으니, 안쪽의 생명체들은 이미 사지가 마비되었을 것이라 확신한 터였다.


첫 번째 살수가 동굴 입구의 덩굴을 헤치고 발을 디디는 찰나.


사마건의 신형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였다. 절뚝거리는 다리였지만, 마맥의 폭발적인 완력이 그의 육체를 강제로 앞으로 밀어냈다. 오른손에 쥔 임시 철검이 허공을 가르며 푸른 검풍을 일으켰다. 백록송풍검(白鹿松風劍)의 쾌검 초식이었다.


스사삭!


“커헉……!”


살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목덜미가 잘려 나갔다. 검붉은 피가 안개 속으로 비산하는 순간, 뒤따라오던 세 명의 살수들이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이놈! 분명 단전이 깨지고 독무에 중독되었을 텐데 어떻게 움직이는 거냐!”


“흩어져라! 암기를 투척해라!”


살수들이 소매 안에서 무영침통을 겨누며 치명적인 침들을 사방으로 방출하려 했다. 하지만 사마건은 그들이 손가락을 튕기기 전, 이미 마맥심안으로 그들의 기혈 흐름과 암침의 궤적을 완벽하게 읽고 있었다.


사마건은 왼손 품속에서 차가운 음기를 뿜어내는 한철단검(寒鐵劍)을 뽑아 들었다. 북해 한철로 주조되어 마맥의 폭발적인 한기를 온전히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사마건은 한철단검의 검신을 따라 체내의 차가운 마기를 급격히 흘려보냈다.


“음기탄(陰氣彈)!”


사마건이 손끝을 튕기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음기의 탄환 세 발이 안개를 찢고 날아갔다. 소리도 흔적도 없는 원거리 기습이었다.


팍! 팍! 팍!


“으아악!”


암기를 날리려던 두 명의 살수의 손목 관절이 일순간에 얼어붙으며 뼈가 으스러졌다. 그들이 쥐고 있던 무영침통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오발된 독침들이 자신들의 다리를 꿰뚫었다. 당가의 치명적인 마비독이 역으로 그들의 체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사마건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도약했다. 오른쪽 무릎에서 뼈가 어긋나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다시 한번 몰려왔지만, 이빨을 악물며 참아냈다. 그는 한철단검을 거꾸로 쥐고 첫 번째 살수의 심장을 찔러 넣었다. 극음의 한기가 살수의 심장 기맥을 순식간에 동결시켰다.


그때, 마지막 남은 한 명의 살수가 어둠 속에서 독이 발린 비수를 던지며 기습해 왔다. 비수가 사마건의 목덜미를 향해 날카롭게 짓쳐오는 절체절명의 순간.


사마건은 피하는 대신, 스스로의 관절을 꺾어 어긋나게 만드는 관절탈골술(關節脫骨術)을 전개했다. 콰드득 소리와 함께 그의 왼쪽 어깨와 척추의 뼈가 기이한 각도로 비틀리며 비수의 궤적을 간발의 차이로 흘려보냈다. 어깨 인대가 찢어지는 듯한 지옥 같은 통증이 밀려왔지만, 사마건의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뼈가 어긋난 상태에서 기형적으로 늘어난 왼손을 뻗어, 기습한 살수의 덜덜 떨리는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쥔 한철단검으로 살수의 오른쪽 어깨 기맥을 정확히 찔러 그의 내공 운용을 순간적으로 마비시켰.


“당운이…… 어디에 있느냐.”


사마건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차갑게 갈라져 있었다. 살수는 전신이 얼어붙는 오한 속에서 공포에 질린 눈으로 사마건의 회색빛 뺨을 올려다보았다.


“끄, 끄윽…… 당 소가주님은…… 이미 네놈의 마맥을 적출하기 위해 사천 초입의 약재 시장에…… 함정을 설계해 두셨다…… 네놈은 결코 살아남지 못해……!”


사마건은 대답 대신 왼손에 힘을 주었다.


콰드득!


마지막 살수의 목뼈가 허망하게 꺾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동굴 내부에 가득 차 있던 초록색 독무가 살수들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사마건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거칠게 각혈했다. 음신초의 약효가 떨어지며 체내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자, 얼어붙어 있던 정사 진기가 다시 한번 그의 부서진 단전 부근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옆구리의 자상과 발목의 열독 상처가 다시 피를 뿜어냈다.


그는 비틀거리며 쓰러진 살수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살수의 무복 품안에서 붉은 비단으로 포장된 얇은 서류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사마건은 피 묻은 손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사천당가의 붉은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기밀 밀지(密旨)였다.


밀지를 펼쳐 내려가던 사마건의 눈동자가 일순간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곳에는 당운이 내린 은밀한 명령과 함께, 사천성 변두리의 약재 시장에서 신분을 숨긴 채 은거하고 있는 한 소녀의 인상착의와 감시 보고가 적혀 있었다.


‘사마혜(司馬慧).’


그토록 찾아 헤매던 누이동생의 생존 단서와 그녀가 갇혀 있는 구체적인 위치가 그 붉은 밀지 속에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사마건의 입꼬리가 나직하게 올라갔다. 절망의 나락 끝에서, 마침내 복수와 구원의 서광이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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