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正邪)의 강을 건너다, 사천의 밤
남궁설의 한철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강기가 사천의 어두운 안개를 찢어발기는 순간, 야율극이 다시 피리를 입에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피이이이이-
대나무 숲의 습한 공기를 타고 흐르는 음률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칼날이자, 사마건의 왼팔에 이식된 천마대종사의 마맥(魔脈)을 정조준하는 마도(魔道)의 파동이었다. 피리 소리가 귓가를 스치기도 전에 사마건의 가슴 정중앙에 박힌 황금빛 혜명침이 비명을 지르듯 진동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왼팔의 마맥이 검붉은 마기를 미친 듯이 토해내며 사마건의 체내에 남아 있던 정순한 도가의 진기를 무자비하게 찢어발겼다. 몸 안에서 일어난 정사와 사사의 격렬한 충돌은 전신 경맥을 사정없이 파열시켰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선혈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커흑……!”
사마건은 부서진 마차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했다. 전신 마비의 고통이 그의 사지를 단단히 묶었다. 눈앞이 붉은 피안개로 물들며 이성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려 했다. 정사 충돌 임계점(正邪 衝突 臨界點)의 파멸이 코앞이었다.
“도련님!”
바닥에 쓰러진 곽칠이 절규했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사무귀는 쇠사슬이 박살 난 것에 경악하면서도, 이내 이빨을 드러내며 기괴하게 웃었다.
“남궁세가의 창공무애검기라니! 하지만 단전이 깨진 폐인 놈을 구하기엔 너무 늦었다!”
사무귀가 부서진 귀철사슬의 잔해를 털어내며 품속에서 또 다른 검은 사슬을 꺼내 들었다. 대나무 꼭대기에 앉은 야율극의 피리 소리는 한층 더 날카롭고 빠르게 숲을 메워갔다.
남궁설은 사마건의 비참한 몰골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날카롭고 수려한 이목구비에 분노가 서렸다. 그녀는 신형을 날려 사마건의 곁으로 다가왔다. 왼손으로 사마건의 등을 짚으며 남궁세가 비전의 제왕삼합기(帝王三合氣) 내력을 주입하려 했다. 어떻게든 친구의 폭주하는 진기를 가라앉히기 위함이었다.
치이이익!
그러나 남궁설의 푸른 진기가 사마건의 몸 안으로 밀려드는 순간, 기이한 마찰음과 함께 사마건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사마건의 왼팔에 흐르는 마기가 남궁설의 정순한 내력을 거대한 적대 세력으로 인지하고 포효하듯 밀어낸 것이다. 두 기운이 사마건의 부서진 단전 부근에서 격돌하자, 오히려 그의 경맥 충돌만 심해질 뿐이었다.
“아윽……!”
사마건의 입에서 더 많은 피가 뿜어져 나왔고, 남궁설 역시 강한 반탄력에 밀려 손을 떼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고결한 이목구비에 경악이 스쳤다. 사마건의 체내 마기는 정파의 내력으로 정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주입하려 할수록 오히려 사마건의 심장을 터뜨릴 뿐이었다.
‘이대로는…… 개처럼 죽는다.’
사마건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이를 갈았다. 야율극의 음공은 고막을 막는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마맥 자체와 공명하는 음파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기혈을 완전히 닫아걸어야 했다.
사마건의 눈동자가 마차 바닥으로 향했다. 음공 마비로 인해 떨어뜨렸던 맑은 한기의 한철단검(寒鐵劍)이 빗물에 젖은 나무판 위에 뒹굴고 있었다. 사마건은 피 묻은 오른손을 뻗어 한철단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품속을 더듬어 백무흔이 남겼던 특수 은침 세 자루를 꺼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푸욱! 푸욱! 푸욱!
사마건은 은침 세 자루를 자신의 심장 주변 핵심 혈도와 머리의 백회(百會)에 가차 없이 깊숙이 찔러 넣었다.
금침봉맥(金針封脈).
스스로의 기맥과 감각을 강제로 폐쇄하여 외부의 모든 음공 파동을 원천 차단하는 자학적인 비술이었다. 뼈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관통했다. 뇌해를 찌르는 통증에 사마건의 몸이 활처럼 꺾였고, 그의 왼쪽 뺨에 고착되어 있던 회색빛 괴사 피부가 귀밑까지 급격히 확장되며 굳어졌다.
하지만 대가는 확실했다. 귓가를 찢던 야율극의 피리 소리가 일순간에 멀어지더니, 이내 완벽한 적막이 사마건의 세계를 지배했다. 음공의 지배에서 벗어난 사마건은 한철단검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동자는 빛 한 점 없는 칠흑(漆黑)으로 물들어 있었다.
“남궁설, 내 등 뒤를 맡아라.”
사마건의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가 적막한 대나무 숲에 울려 퍼졌다. 남궁설은 그의 비장한 안광을 보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등 뒤로 섰다. 두 사람은 등을 맞댄 채, 사방에서 조여오는 흑사당의 살수들을 매섭게 응시했다.
“죽어라, 마두 놈들!”
사무귀가 검은 쇠사슬을 휘두르며 돌격해 왔고, 대나무 위의 야율극은 음공이 통하지 않자 피리를 거두고 예리한 암침들을 비 오듯 쏟아부었다.
사마건은 왼팔의 마맥에 흐르는 모든 검붉은 마기를 한철단검 끝으로 끌어모았다. 금침봉맥으로 가두어둔 마기가 한계까지 압축되며 단검의 검신이 검붉은 빛으로 폭렬하듯 진동했다. 사마건은 단검을 거꾸로 쥐고 대지를 향해 사정없이 꽂아 넣었다.
광역 폭발기, 마기폭쇄(魔氣暴碎).
콰아아아앙-!
사마건을 중심으로 사방 십보 안의 대지가 거대한 폭음과 함께 뒤집어졌다. 검붉은 마기의 충격파가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사방의 대나무들을 뿌리째 뽑아버렸고, 들이닥치던 Heuksadang(흑사당) 살수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사지가 찢겨 나가며 폭사했다. 대나무 꼭대기에서 암기를 날리던 야율극 역시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이 괴물 같은 년놈들이……!”
폭발의 중심에서 비껴선 사무귀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남궁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제왕삼합기의 내력을 실은 Changgung-muae-geomgi(창공무애검기)가 푸른 궤적을 그리며 사무귀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어디를 가느냐.”
남궁설의 서늘한 검날이 사무귀의 어깨를 깊숙이 베어 넘겼다. 사무귀가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은 찰나, 사마건의 신형이 안개 속에서 귀신처럼 솟구쳤다.
사마건의 왼손은 이미 완전히 검게 물들어 쇳빛 손톱이 야수처럼 돋아나 있었다.
천마혈마조(天魔血魔爪).
사마건의 기형적인 왼손이 사무귀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콰득,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사무귀의 튼튼한 가슴뼈가 두부처럼 으스러졌고, 그의 심장 기맥이 사마건의 손끝에 완전히 관통당했다.
“꺼, 꺽…….”
사무귀는 귀신 가면 너머로 한 움큼의 피를 쏟아내며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굳어 쓰러졌다. 사천 초입을 피로 물들였던 흑사당의 행동대장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순간이었다.
사무귀의 숨통이 끊어지자, 사마건 역시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전신 경맥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숨을 쉴 때마다 칼로 허파를 찌르는 듯했다. 금침봉맥의 가혹한 부작용이 그의 신체를 안쪽에서부터 파괴하고 있었다. 그의 심장 마맥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침식되어 있었다. 앞으로 남은 수명은 길어야 반년, 시한부의 운명이 각인된 것이다.
스으으.
검붉은 마기와 남궁설의 푸른 검기가 융합된 대폭발의 먼지가 가라앉은 사천의 깊은 밤.
사마건은 피 묻은 손으로 남궁설의 어깨를 짚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의 시선이, 어둠에 잠긴 대나무 숲 한가운데 굳건히 서 있는 거대한 대나무 줄기로 향했다.
그곳에는 칼날로 정교하게 음각된 기괴한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독충의 형상과 함께 새겨진 사천당가(四川唐家)의 비밀 표식.
어둠 속에서 은밀히 자신들을 감시하고 지켜보던 눈길의 정체를 발견한 사마건은, 입가에 묻은 피를 거칠게 닦아내며 서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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