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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는 검의(劍意), 푸른 매화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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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서라, 설아! 내 오늘 화산의 이름으로 이 마두의 목을 벨 것이다!”


진무경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자하봉(紫霞峰)의 밤안개를 찢어발겼다. 그의 매화검 끝에서 피어오른 자색 검강이 허공을 자줏빛으로 물들이며 유설아의 아미파 전승 옥검을 거칠게 밀쳐냈다. 올곧은 정파의 의협심과 편협한 흑백논리가 한데 뒤섞인 진무경의 안광은 타협을 모르는 서슬 푸른 불꽃과 같았다.


유설아는 뒤로 밀려나며 옥검을 고쳐 잡았지만, 차마 사마건을 향해 검을 겨누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사마건의 왼쪽 뺨, 귀밑까지 검푸른 회색빛으로 괴사해 고착된 흉터에 머물러 있었다. 한때 백록검파의 가장 고결하고 영민했던 후기지수 사마건. 지금 그의 몰골은 나락에서 기어 나온 악귀 같았으나, 그 깊고 어두운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꺾이지 않은 고결한 영혼의 흔적이 일렁이고 있었다.


“진 사형, 제발 멈추십시오! 그의 검에는 살기가 없습니다! 마공에 침식된 자의 검로가 어찌 이토록 정순할 수 있단 말입니까!”


유설아의 애절한 외침도 진무경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진무경에게 사마건은 오직 무림맹의 공식 수배령에 적힌 ‘마교의 세작’이자 정파의 배신자일 뿐이었다.


“마두가 도가의 기리를 흉내 내어 정파의 눈을 속이려는 얄팍한 수작일 뿐이다! 설아, 더 이상 나를 가로막는다면 너 역시 맹법(盟法)에 따라 처단할 것이다!”


진무경이 기함을 토하며 자하공(紫霞功)의 자색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발밑에서부터 자하봉의 축축한 흙먼지가 소용돌이치며 피어올랐고, 매화검의 검신은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자색 빛으로 뒤덮였다. 화산파 비전 매화삼십육검(梅花三十六劍)의 최후 일격이 사마건의 심장 정중앙을 향해 짓쳐 들어왔다.


쿠구구구-


압도적인 일류 극성의 검강이 뿜어내는 바람이 사마건의 전신을 짓눌렀다. 옆구리의 자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무복을 적시고 있었고, 오른쪽 발목에 남은 백무기의 기이한 열독 상처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뼈를 태우는 듯한 고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여기서 마기를 쓰면…… 진정으로 마두가 될 뿐이다.’


사마건은 이빨을 악물었다. 그의 왼팔에서 천마대종사 독고천의 마맥(魔脈)이 요동치며 검붉은 마기를 뿜어내려 발악했다. 심장 혈도에 깊숙이 박힌 황금빛 혜명침(慧明針)이 비명을 지르며 진동했고, 체내의 사악한 마기가 정파의 청련 진기를 억지로 밀어내려 하며 정사 충돌 임계점(正邪 衝突 臨界點)의 지옥 같은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오른쪽 무릎과 발목이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 속에서 사마건은 왼팔의 마맥을 억지로 억눌렀다. 마기의 흐름을 완벽히 차단하자, 체내의 기혈이 거꾸로 치솟으며 목구멍으로 뜨거운 선혈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사마건은 입가로 배어 나오는 피를 삼키며, 부서진 단전 주변의 찢어진 경맥 틈새에 남아 흐르는 미세한 정파의 잔여 진기를 한곳으로 긁어모았다.


그것은 뼈를 깎아내고 모래를 씹는 듯한 참혹한 고통이었다. 단전이 깨진 폐인에게 정종 도가의 기공을 운용하는 것은 경맥을 스스로 찢어발기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스으으.


사마건의 오른손에 쥔 검붉은 임시 철검 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발생했다. 검푸른 빛과 붉은빛이 기이하게 공존하는 태극 형상의 무늬 위로, 마기가 아닌 오직 맑고 정순한 도가의 푸른 기류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사마건은 아버지가 가르쳐주었던 백록송풍검보(白鹿松風劍譜)의 구결을 마음속으로 나직하게 되뇌었다.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은 거칠지 아니하며, 떨어지는 잎새를 부드럽게 감싸 안나니…….’


진무경의 매화검 끝에서 발사된 자색 검강이 사마건의 목전에 도달한 찰나, 사마건은 임시 철검을 가볍게 회전시켰다.


백록송풍검(白鹿松風劍) - 청풍영락(靑風零落).


부드러우면서도 신속한 도가의 방어 초식이 허공에 둥근 호를 그리며 전개되었다. 정풍(正風)의 맑고 정순한 검의(劍意)가 사마건의 임시 철검 끝에서 흘러나와 진무경의 매서운 자색 검강을 향해 부드럽게 뻗어 나갔다.


깡! 카아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맑은 계곡물이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듯한 청아한 파공음이 자하봉의 밤안개를 뒤흔들었다.


진무경은 자신의 장검이 사마건의 검날에 닿는 순간, 온몸의 털끝이 소스라치게 돋아나는 전율을 느꼈다. 자신이 쏟아부은 자하공의 강력한 자색 내력이 사마건의 부드러운 검의에 휘감겨 허공으로 미끄러지듯 흡수되어 소멸하고 있었다. 사마건의 검에 서린 기운은 사악한 마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화산파의 자하공보다도 더 맑고 정순한 도가의 정기(正氣)였다.


“이, 이 정순한 기운은…… 어찌 마두의 검에서 정종 도가의 검의가 뿜어져 나온단 말이냐!”


진무경이 경악하며 검을 고쳐 잡으려 했으나, 이미 사마건의 청풍영락 검세는 진무경의 매화검을 완벽하게 휘감아 쥐고 있었다. 사마건은 손목을 가볍게 튕겼다.


휘이이잉!


강렬한 회전력이 진무경의 손목 기맥을 부드럽게 타격했고, 진무경의 손아귀에서 매화검이 탈탈 떨리며 허공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검을 잃은 진무경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흔들렸다.


스윽.


하늘 높이 솟구친 매화검이 회전하며 자하봉의 흙바닥에 서늘하게 꽂히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리고 진무경의 목덜미 바로 앞 한 치 거리에, 사마건의 검붉은 임시 철검 끝이 정확히 멈춰 서 있었다. 검 끝에 서린 푸른 도가의 기운이 진무경의 목덜미를 가볍게 스쳤지만, 사마건은 검을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았다.


사마건의 입가에서 참아왔던 검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려 턱 끝을 적셨다. 단전이 파괴된 몸으로 도가의 정순한 검의를 무리하게 짜내어 펼친 대가는 가혹했다. 체내 경맥이 사정없이 찢어지는 고통에 사마건의 전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그의 안광만큼은 흐려지지 않은 채 진무경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


진무경은 목덜미에 닿은 차가운 검날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마건이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의 목은 이미 자하봉의 진흙탕 위로 굴러떨어졌을 터였다. 게다가 사마건의 검에 서린 정순함은 무림맹의 수배령이 완벽한 거짓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교의 세작이 어찌 이토록 고결한 도가의 검의를 펼칠 수 있단 말인가.


유설아 역시 옥검을 거두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십시오, 사형…… 제가 무엇이라 했습니까. 사마 소협은 결코 마두가 아닙니다. 그의 검의는 여전히 맑고 푸릅니다.”


사마건은 천천히 임시 철검을 거두었다. 검신 내부에서 정사와 마기의 진기가 충돌하며 웅웅거리는 불완전한 떨림이 전해졌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포권을 취해 무인의 예를 표했다. 변명도, 원망도 없는 침묵의 포권이었다. 그 모습은 맹목적인 정의에 눈이 멀어 검을 휘둘렀던 진무경을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진무경은 바닥에 꽂힌 매화검을 뽑아 검집에 넣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자존심과 편협한 정의관이 사마건의 초탈한 검의 앞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내 패배다. 그리고 내 눈이 멀었었음을 인정하지. 사마 소협, 그대의 검에 깃든 도가의 정순함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더 이상 그대를 마두라 부르지 않겠소.”


진무경이 유설아와 함께 길 옆으로 물러서며 자하봉 관문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유설아는 사마건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눈물을 흘렸고, 사마건은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이끌고 마차를 향해 걸어갔.


“가자, 두수야. 노를 저어라.”


사마건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마차가 자하봉의 국경 관문을 넘어 사천성으로 진입하는 순간, 뒤를 돌아본 유설아와 진무경의 모습이 자욱한 새벽안개 너머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하지만 안도감은 찰나에 불과했다.


털썩.


마차 바닥에 주저앉는 순간, 사마건의 왼팔 마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기를 강제로 억누르고 도가의 검의만을 고집했던 대가가 분풀이를 하듯 역류해 온 것이다. 심장 혈도에 박혀 있던 황금빛 혜명침이 불길하게 떨리며 핏빛으로 붉게 점멸했고, 심장 주변에 칠흑 같은 검붉은 마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으어어억……!”


사마건은 가슴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왼팔의 피부가 쇳빛으로 급격히 물들어가며 전신에 극심한 마비와 오한이 찾아왔다. 마맥의 2차 대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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