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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俠)과 마(魔)의 경계, 화산의 푸른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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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덜컹.


마차 바퀴가 사천의 축축한 흙길을 디딜 때마다 사마건의 가슴속에서 일렁이는 붉은 광채는 더욱 서늘하게 타올랐다. 가죽 주머니 틈새로 비어져 나오는 붉은빛은 은은한 금빛 불력이 서려 있어야 할 혜명선사의 사리가 완전히 핏빛으로 충혈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사마건의 심장에 박힌 마맥(魔脈)이 두 번째 대폭주를 일으키기 직전이라는 가혹한 경고였다.


“으윽……!”


사마건은 마차 바닥에 엎드린 채 가슴을 쥐어짰다. 하수를 돌파할 때 전신 경맥으로 침투했던 수중 독소와 옆구리의 자상, 그리고 억지로 정건의 기혈을 묶기 위해 맥상타혈술을 시전했던 반동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단전이 파괴된 몸뚱이는 정순한 도가의 진기를 축적하지 못해 흘러넘치는 마기의 광포한 기운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몸의 오른쪽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왼손 끝은 쇳빛으로 딱딱하게 변해 얼음처럼 차가웠다. 극단적인 정사(正邪)의 충돌이 그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있었다.


“도련님……!”


짚단 위에 누워 신음하던 외다리 가신 곽칠이 떨리는 손을 뻗어 사마건의 무릎을 잡았다. 고문의 여파로 손바닥이 파열되고 다리뼈가 으스러진 늙은 가신은 자신의 고통보다 소가주의 몸 상태가 무너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곽두수가 아버지를 붙잡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형님, 가슴에서 피가…… 피가 계속 나와요.”


사마건은 혀를 깨물며 고통을 참았다. 입가로 울컥 배어 나오는 검붉은 선혈을 소매로 닦아내며, 가슴 깊숙이 박힌 황금빛 혜명침의 위치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었다. 혜명침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마맥의 폭주를 붙잡고 있었지만, 침 주변의 살갗은 이미 검붉게 죽어 있었다. 왼쪽 뺨 귀밑까지 고착된 회색빛 괴사 흉터가 차가운 새벽안개 속에서 기괴하게 일렁였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사천 당가 부근에 살아있을 혜를 찾기 전까지는…….’


사마건은 가슴 품속에 보관된 제갈무쌍의 친필 서신을 매만졌다. 가문을 멸문시키고 아버지를 마두로 몰아 죽인 무림맹주의 추악한 음모가 담긴 물증. 그리고 제갈린에게 비리 장부만을 넘겨주고 얻어낸 사천성의 밀수 지도와 통행증이 그의 품안에서 단단한 무게감을 전하고 있었다. 복수의 열망과 누이를 구하겠다는 집념이 마맥의 지옥 같은 거부반응을 억지로 억누르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쿠우우우-


바로 그 순간, 마차의 전진이 기이할 정도로 부드럽게 멈춰 섰다. 험준한 산길을 달리던 마필들이 겁에 질린 듯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나직하게 울부짖었다. 차가운 새벽안개가 마차 안으로 밀려드는 동시에, 살을 에어내는 듯한 날카롭고도 정순한 검기(劍氣)의 파동이 마차 벽면을 투과해 사마건의 살갗을 자극했다.


사마건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좁혀졌다.


‘정파(正派)의 기운…… 그것도 화산(華山)의 자색 검강이다.’


사마건은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이끌고 마차 문을 밀어 열었다. 발목에 남은 백무기의 열독 상처가 Grind(마찰)되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지면에 발을 디뎠다. 오른손에는 임철수가 대장간 지하실에서 새로이 벼려준 검붉은 임시 철검을 쥐고 있었고, 왼손 품속에는 극음의 한철단검을 단단히 숨겨둔 상태였다.


자하봉(紫霞峰)의 가파른 산길 자락. 자욱한 밤안개 너머로 청색과 백색의 무복을 입은 두 남녀가 우뚝 서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단정한 도포와 매화 문양이 새겨진 검을 찬 사내. 굳센 턱선과 타협을 모르는 형형한 안광을 지닌 그는 화산파의 대제자이자 매화검객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진무경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백색 면사를 쓰고 아미파의 전승 옥검을 쥔 채 흔들리는 눈빛으로 사마건을 응시하고 있는 여검수, 유설아가 서 있었다.


진무경이 천천히 장검의 자루를 쥐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류 극성의 내공이 실려 있어 자하봉 전체를 울렸다.


“천하공적(天下公敵)이자 마교의 세작인 사마건. 무림맹의 집법사 정건을 타격하고 관청의 밀실을 더럽힌 마두가 결국 이 사선(死線)의 험로로 기어들어 왔구나.”


진무경의 검 끝에서 은은한 자색 빛의 검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화산파 비전의 자하공(紫霞功) 내력이 벼려진 매화검은 새벽안개를 자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반면, 유설아는 사마건의 창백한 안색과 왼쪽 얼굴의 반을 뒤덮은 회색빛 괴사 흉터를 보며 깊은 고뇌에 빠진 듯 검을 쥔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과거 고결하고 올곧았던 사마세가의 후기지수 사마건의 모습과, 지금 눈앞에 서 있는 피비린내 나는 복수자의 괴물 같은 형상이 그녀의 뇌리 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사마 소협…… 정말 무림맹의 수배령에 적힌 대로 마교의 마공을 받아들여 마두가 되신 것입니까? 당신의 그 눈빛은…… 정녕 이성을 잃은 괴물의 그것이란 말입니까?”


유설아의 목소리에는 지울 수 없는 슬픔과 의구심이 깃들어 있었다. 사마건은 그녀의 흔들리는 시선을 마주하며 나직하게 냉소했다.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안개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위선으로 가득 찬 무림맹의 수배령이 정의를 대변한다고 믿는가, 아미의 검수여.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오직 피와 배신뿐이었다.”


“방자하도다!”


진무경이 기함을 토하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가 보법을 밟는 순간, 자하봉의 젖은 흙바닥에 스며들어 있던 안개가 순식간에 양옆으로 갈라졌다.


“마공을 부려 가문의 비밀을 묻고 정파의 장로들을 도륙한 자가 맹의 법도를 논하려 들다니! 내 오늘 화산의 이름으로 네놈의 목을 베어 천하의 법도를 바로잡겠다!”


스으릉!


매화검이 검집을 빠져나오는 맑은 파공음과 함께, 자하공의 자색 검기가 허공에 찬란하게 흩뿌려졌다. 진무경의 신형이 바람처럼 짓쳐왔다. 그의 검 끝이 사마건의 목덜미를 향해 예리한 궤적을 그리며 쇄도했다.


사마건은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깊이 태을정심주(태을정심주)의 구결을 읊조렸다.


‘도가의 마음은 물과 같고, 정(靜)함은 대지와 같으니…….’


마맥의 폭발적인 살기가 뇌해를 잠식하려 할 때마다 태을정심주의 정순한 주문이 그의 이성을 강제로 붙잡아 주었다. 사마건은 오른손에 쥔 임시 철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 깊은 곳에서 정파의 도가 진기와 마맥의 마기가 서로 격돌하며 웅웅거리는 불안정한 진동이 전해졌다. 불완전한 공명. 진무경의 정순한 자색 검강을 정면으로 받아낸다면 검이 파손될 뿐만 아니라 단전이 깨진 그의 신체 역시 반동으로 파열될 터였다.


사마건은 정면으로 맞붙는 대신, 가문의 비전인 백록송풍검의 부드러운 회전 초식을 전개했다.


카아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찰나, 사마건은 임시 철검을 비스듬히 눕혀 진무경의 매화검 끝을 옆으로 미끄러뜨렸다. 정종 도가의 부드러운 기리로 적의 강력을 흘려보내는 기법이었다. 매화검에 실린 묵직한 자색 내력이 사마건의 검날을 타고 허공으로 흘러나갔다.


“이것은…… 백록송풍검의 기리?”


진무경의 안광에 경악의 빛이 스쳤다. 마교의 마공을 부린다는 수배령 속 마두가 화산파의 정종 검초를 이토록 완벽하게 흘려보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진무경은 화산의 천재였다. 그는 즉시 보법을 밟으며 검로를 바꾸었다.


“매화삼십육검(梅花三十六劍)!”


진무경의 매화검이 허공을 가르며 수십 개의 자색 검화(劍花)를 피워 올렸다. 매화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듯 화려하면서도 치밀한 검망이 사마건의 전신 사혈을 촘촘히 에워쌌다. 사방에서 날카롭게 조여오는 자색 검기는 시각을 완벽히 마비시킬 정도로 눈부셨다.


사마건은 소리 없이 눈을 감았다.


‘마맥심안(魔脈心眼).’


심장과 연결된 왼팔의 마맥이 미세하게 맥동하며 자하봉의 공기 흐름을 진동시켰다. 시각이 차단되자, 머릿속으로 진무경의 기혈 흐름과 매화검이 그리는 진짜 살기의 궤적이 붉은 선이 되어 선명하게 재구성되었다. 화려하게 피어난 수십 개의 자색 검화는 모두 잔상에 불과했다. 진짜 검날은 오직 사마건의 왼쪽 어깨와 심장 정중앙을 찌르고 들어오는 두 줄기의 서늘한 궤적뿐이었다.


사마건은 몸을 비틀었다. 오른쪽 발목의 열독 상처와 무릎 부상으로 인해 걸음걸이가 절뚝거렸지만, 흑강 보법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진짜 검날의 궤적만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냈다.


스쳐 지나가는 자색 검강이 사마건의 왼쪽 뺨을 스치며 깊은 자상을 남겼고, 그 틈으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사마건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차갑게 침묵했다. 그는 왼손의 마기를 실어 진무경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진무경은 위선적인 백현태나 제갈무쌍과 달리, 오직 정파의 올곧은 정의만을 믿고 움직이는 무인이었다. 그를 마공으로 죽인다면 자신은 진짜 마두가 될 뿐이었다.


사마건은 도가의 검리로 스스로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임시 철검의 검날을 가볍게 회전시키며 진무경의 검신을 부드럽게 감싸 쥐듯 휘감아 올렸다. 검과 검이 얽히며 발생하는 미세한 마찰음이 자하봉의 밤안개를 흔들었다.


“그만두십시오, 사형! 저 검의에는 사악함이 전혀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유설아가 두 사람의 격렬한 검투를 바라보며 절규하듯 외쳤다. 그녀의 눈에는 사마건이 마기를 억누르며 오직 정종 도가의 검리로만 진무경의 공격을 무력화하려 애쓰는 처절한 모습이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진무경의 편협한 정의감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사마건의 검에 서린 도가의 흔적을 느꼈으면서도, 그것이 마교의 세작이 정파를 기만하기 위해 부리는 기괴한 수법이라 확신했다.


“닥쳐라, 설아! 마교의 세작놈이 도가의 검리를 흉내 내어 정파의 눈을 속이려 하는구나! 내 오늘 화산의 비전으로 이 위선을 완전히 찢어발기겠다!”


진무경이 기함을 토하며 전신의 자하공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매화검 끝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자색 검강이 대검처럼 솟구쳐 올랐다. 매화삼십육검의 가장 파괴적인 초식이 사마건의 가슴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짓쳐 들어왔다.


쿠구구구-


압도적인 내공의 장벽이 사마건의 전신 골격을 짓눌렀다. 단전이 파괴된 사마건의 몸뚱이는 그 위압감을 버티지 못하고 전신 경맥에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입가로 뜨거운 선혈이 울컥 치밀어 올랐고, 심장의 혜명침이 요동치며 마맥의 한기가 폭발적으로 역류하려 했다.


‘이대로 정면으로 받으면 임시 철검이 파괴되고 내 경맥도 터진다……!’


사마건이 최후의 수단으로 왼손의 한철단검을 뽑아 들어 마맥의 기운을 역류시키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그만 멈추란 말입니다!”


유설아가 절규하며 신형을 날렸다. 그녀의 손에 쥔 아미파 전승 옥검이 새벽 달빛을 받아 청아한 녹색 빛을 발하며 두 사람의 검로 한가운데를 가로막았다.


칭--!


소름 끼치도록 맑고 높은 금속음이 자하봉의 안개 속을 찢어발겼다. 유설아의 옥검이 진무경의 매화검 끝을 정확히 가로막으며 자색 검강의 흐름을 양옆으로 산산이 흩뜨려 놓았다. 급격하게 꺾인 검풍이 사방의 대나무들을 단숨에 베어 넘기며 거대한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진무경은 자신의 검로가 사매의 손에 막히자 경악하며 신형을 뒤로 물러섰다.


“설아! 네놈이 미쳤느냐? 어찌 정파의 대제자가 마교의 세작을 구하기 위해 본문의 검을 가로막는단 말이냐!”


진무경의 매서운 질타 속에서, 유설아는 옥검을 쥔 채 사마건의 창백한 얼굴과 흔들림 없는 고독한 안광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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