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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死線)의 지도, 사천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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쩍, 쩌적!


관청 지하 밀실의 바닥을 적시고 있던 빗물이 순식간에 하얀 서리로 변하며 갈라졌다. 사마건의 왼팔, 천마대종사의 마맥(魔脈)에서 뿜어져 나온 극음의 한기는 밀실 내부의 공기마저 얼려버릴 듯한 기세로 휘몰아쳤다. 서고의 목조 책장들이 얼어붙으며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고, 서리는 순식간에 정건의 가죽 장화 끝을 타고 올라갔다.


정건의 서늘한 안광이 매섭게 좁혀졌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맹도정종심법(盟道正宗心法)의 푸른 진기가 요동치며 발끝의 서리를 밀어냈다. 정파의 일류 극성에 도달한 고수답게, 그의 내공은 흔들림이 없었다.


“사악한 마기가 결국 네놈의 이성을 삼켰구나. 사마건, 더는 네놈의 궤변을 들을 가치도 없다!”


정건이 집법검을 치켜세웠다. 그의 신형이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밀실의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이 울렸다. 정건이 펼친 무상장법(無上掌法)의 묵직한 장풍이 사방을 압박해 왔다. 장풍이 스칠 때마다 굳어 있던 목조 책장들이 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사마건은 이빨을 악물었다. 오른쪽 옆구리 기기 덫에 찔린 상처에서 뜨거운 선혈이 쉼 없이 흘러내려 바지춤을 적시고 있었다.


‘정면 대결은 자멸이다.’


사마건은 오른손에 쥔 임시 철검을 고쳐 잡았다. 검신 깊은 곳에서 정파의 도가 진기와 마교의 마기가 거칠게 충돌하며 웅웅거리는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불완전한 공명. 이대로 정건의 정순한 내력과 맞부딪친다면 임시 철검은 단 한 격에 산산조각 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부서진 단전의 공백으로 인해 억지로 기공을 전개하려 할 때마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피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우웁……!”


사마건은 솟구치는 피를 삼키며 마맥심안(魔脈心眼)을 개방했다. 눈을 감자 자욱한 먼지와 불꽃 너머로 정건의 기혈 흐름이 선명한 붉은 선이 되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정건의 검세는 빈틈이 없었다. 사방을 촘촘히 메운 집법대원들의 철갑 방패와 쇠사슬이 그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탈출하기 위해선 정건의 방어벽을 단숨에 깨뜨려야만 했다.


쿠르릉!


정건의 무상장법이 서고의 거대한 책장들을 도미노처럼 무너뜨리며 사마건의 숨통을 조여왔다. 무너지는 목재와 석판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사마건은 도망치는 대신, 오히려 무너지는 잔해를 디디며 앞으로 도약했다. 그의 발끝이 부서진 책장 모서리를 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마맥신신법(魔脈神身法)!’


오른쪽 발목에 남은 백무기의 열독 상처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유발하며 다리에서 검붉은 피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전신 경맥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사마건의 신형은 일순간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정건의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극단적인 자살적인 접근이었다.


“무모한 놈!”


정건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마건이 이토록 무방비하게 자신의 검 끝으로 뛰어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정건은 제갈무쌍의 거짓 보고를 굳게 믿고 있었으나, 본래 강직하고 의로운 정파의 무인이었다. 그는 사마건을 마두로 규정했으나, 대역죄인을 생포하여 무림맹의 공정한 법정에 세우는 것이 집법사의 도리라 믿었다. 이대로 검을 내지르면 사마건의 심장이 꿰뚫려 즉사할 터였다.


찰나의 순간, 정건의 고결한 성정이 그의 검로를 흔들었다. 정건은 순간적으로 집법검의 궤적을 약간 꺾어 사마건의 어깨를 찔러 무력화하려 했다. 살생을 피하려는 그 찰나의 흔들림.


사마건은 그 미세한 빈틈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쯧!”


사마건은 왼손에 쥔 극음의 한철단검(한철단검)으로 정건의 비껴간 검날을 안쪽으로 강하게 쳐내며 흘려버렸다. 키이이잉 하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집법검이 허공으로 미끄러졌다. 그와 동시에, 사마건의 오른손 끝이 정건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전광석화처럼 뻗어 나갔다.


상대의 내력 흐름을 간파해 기혈을 마비시키는 실전 살상술, 맥상타혈술(맥상타혈술)이었다.


팍! 팍!


사마건의 두 손가락이 정건의 어깨 견정혈(肩井穴)과 기맥의 연결 고리를 정확하게 타격했다. 마맥의 변칙적인 마기와 도가의 잔여 진기가 뒤섞인 이질적인 기운이 정건의 경맥 속으로 침투했다.


“윽……!”


정건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깨를 타고 흐르던 맹도정종의 내력이 일순간에 딱딱하게 마비되며 흘러가지 않았다. 정순하던 경맥의 흐름이 단숨에 막혀버리자, 정건의 오른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그의 손에 쥐여 있던 무림맹 집법검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석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정건은 바닥에 떨어진 검과 자신의 마비된 팔을 내려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것은…… 사파의 기운이 아니다. 도가의 정순한 검의(劍意)가 어찌 네놈의 손끝에서…….”


정건의 눈빛에 지울 수 없는 의혹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사마건의 타혈술 끝에 깃든 백록송풍검의 맑은 잔재를 정순한 무인인 그가 알아챈 것이다. 하지만 사마건에게는 그의 의문을 풀어줄 여유가 없었다.


“위선의 사슬에서 깨어나라, 집법사.”


사마건은 차갑게 읊조리며 신형을 돌렸다. 무너진 책장 뒤편, 석실 벽면 하단에 위치한 비밀 수로의 철제 차단막이 눈에 들어왔. 사마건은 왼손의 한철단검을 역수로 쥐고 차단막의 이음새를 사정없이 내리쳤. 북해 한철의 차가운 예기가 철판을 두부 베듯 찢어발겼다.


쾅! 콰르릉!


무너진 차단막 너머로 관청 지하를 흐르는 거센 물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적을 놓치지 마라! 사슬을 던져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집법대원들이 쇠사슬을 허공으로 날렸다. 수십 개의 쇠사슬이 뱀처럼 요동치며 도주하려는 사마건의 등 뒤를 덮쳐왔다. 사마건은 몸을 돌려 수로 아래로 몸을 던지는 찰나, 남은 마기를 양다리에 집중시켰다.


그는 수중 보법의 기리를 응용하여 다리를 휘저으며 날아오는 쇠사슬들을 자신의 다리에 감아 챘다. 그리고 마맥의 무지막지한 역근 완력으로 쇠사슬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으아악!”


쇠사슬을 쥐고 있던 집법대원 서너 명이 사마건의 괴력에 끌려 중심을 잃고 차가운 수로 속으로 비명과 함께 추락했다. 밀실 내부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사이, 사마건의 신형은 어둡고 깊은 수로의 거센 급류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


푸하학!


흑강현 외곽의 외진 canal(수로) 토출구에서 사마건이 물을 뿜으며 기어 나왔다. 관청 지하의 썩은 물과 유독 가스가 섞인 하수는 그의 찢어진 옆구리 상처와 파열된 경맥 속으로 스며들어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자아냈다.


“커헉…… 쿨럭!”


사마건은 진흙바닥에 엎드린 채 검붉은 피를 연신 토해냈다. 마기를 무리하게 끌어다 쓴 대가로 왼팔의 마맥은 쇳빛으로 차갑게 굳어 있었고, 심장 혈도의 혜명침은 부들부들 떨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게 만들었다. 그의 왼쪽 뺨 귀밑까지 고착된 회색빛 괴사 흉터가 차가운 밤안개 속에서 한층 더 창백하게 빛났다.


사마건은 비틀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어둠 속을 걸었다. 오른쪽 발목의 열독 상처가 Grind(마찰)되는 통증에 걸음걸이가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품속에 단단히 찔러 넣은 제갈무쌍의 비밀 서신만큼은 그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 서신이 있는 한, 가문의 원한을 갚을 기회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도착한 곳은 흑강현 변두리의 버려진 밀수 창고였다. 빗물에 젖은 목조 문을 밀고 들어가자, 매캐한 먼지 냄새 사이로 은은한 향취가 풍겨왔다. 창고 안쪽 낡은 상자 위에, 정갈한 청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한가로이 깃털 부채를 흔들며 앉아 있었다. 정보 상인 제갈린(제갈린)이었다.


제갈린은 사마건의 피투성이가 된 꼴을 보면서도 놀라지 않고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어, 맹의 집법사 정건의 손아귀에서 살아서 돌아오다니. 사마 소협의 목숨줄은 천마의 마맥만큼이나 질기구려.”


사마건은 대답 대신 품속에서 관청 밀실에서 확보한 현령의 부패 장부와 일부 비리 문서들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제갈무쌍의 친필 서신 원본은 여전히 그의 안쪽 품속 깊은 곳에 숨겨둔 채였다. 제갈린에게 모든 패를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제갈린은 바닥에 떨어진 문서들을 깃털 부채 끝으로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오. 이 장부들이라면 흑강현의 이권을 둘러싼 백록검파와 관청의 추악한 밀약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약속한 대가를 드려야겠구려.”


제갈린이 품속에서 낡은 양가죽 지도 한 장과 무림맹의 공식 도장이 찍힌 forged(위조된) 국경 통행증을 꺼내 밀어놓았다. 그것이 바로 사천성으로 향하는 은밀한 통로가 적힌 ‘밀수 정보(밀수 정보)’였다.


“이 지도는 사선(死線)이라 불리는 험로요. 관군과 무림맹의 눈은 피할 수 있겠지만, 험준한 산악 지형과 지독한 장독(瘴毒)이 가득해 보통 무인들은 진입조차 꺼리는 곳이지. 단전이 깨진 소협의 몸으로 그곳을 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도박이 될 거요.”


사마건은 양가죽 지도를 낚아채 품에 넣었다.


“내 목숨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사천으로 가는 길만 열린다면 지옥이라도 걷겠다.”


“그 기개, 마음에 드는구려. 부디 사천에서 누이동생을 무사히 찾기를 바라겠소.”


제갈린의 배웅을 뒤로하고, 사마건은 창고 뒷문을 통해 대기하고 있던 낡은 마차에 몸을 실었다. 마차 안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짚단 위에 누워 신음하는 외다리 가신 곽칠과, 그의 손을 꼭 쥔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린 전령 곽두수가 있었다.


곽두수는 사마건의 피투성이 몰골을 보며 숨을 죽였다.


“형님……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사마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곽두수의 머리를 거친 손으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의 시선은 짚단 위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는 곽칠에게로 향했다. 가문의 멸망 속에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다 만신창이가 된 가신. 사마건은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꼈지만, 이내 냉혹한 이성으로 감정을 억눌렀. 슬퍼할 시간조차 그에게는 사치였다.


덜컹, 덜컹.


마차가 흑강현의 경계를 넘어 사천으로 향하는 험준한 산악 도로인 ‘사선(死線)’의 초입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어느새 가늘어졌으나, 산맥을 타고 내려오는 밤바람은 살을 에듯 차가웠다. 마차의 삐걱거리는 바퀴 소리만이 고요한 어둠을 가를 뿐이었다.


사마건은 마차 구석에 기댄 채 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흑강현의 지옥 같은 포위망을 뚫고 누이가 있는 사천성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선 것이다. 가문의 원한을 갚고 뒤틀린 마맥을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이 드디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사마건의 품속 깊은 곳, 혜명선사의 사리(혜명선사의 사리)가 보관된 가죽 주머니에서 기이한 진동이 일어났다. 평소 사마건의 마기를 정화하며 은은하고 따뜻한 온기를 내뿜던 사리가 갑자기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내렸다.


두근!


사마건의 심장이 멎을 듯한 거대한 충격과 함께, 품속의 사리가 핏빛처럼 붉은 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은은한 금빛 불력은 간데없고, 기괴하고도 불길한 붉은 광채가 가죽 주머니 틈새로 흘러나왔다.


“윽……!”


동시에 사마건의 전신 경맥에 가득 차 있던 천마대종사의 마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수를 돌파하며 흡입했던 수중 독소와 무리한 기맥 봉쇄의 반동이 겹쳐, 마맥의 두 번째 거부반응이 그의 전신을 찢어발기기 시작한 것이다.


meridian(경맥) 마디마디가 불타는 동시에 얼어붙는 극단적인 고통에 사마건은 가슴을 움켜쥐며 마차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눈동자가 칠흑 같은 마기로 물들어가는 순간, 마차는 더 깊은 사선(死線)의 어둠 속으로 덜컹거리며 나아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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