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서고, 숨겨진 진실
쏴아아아아.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흑강 관청의 기와지붕을 사정없이 때려눕히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관청 담벼락 아래, 사마건은 그림자처럼 몸을 밀착시켰다. 가죽 옷 틈새로 스며든 차가운 빗물이 등 뒤에 남은 깊은 화상 자국을 자극해 찌르는 듯한 쓰라림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혹한 것은 오른쪽 발목이었다. 백무기의 철혈검기가 남겨놓은 기이한 열독 상처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뼈마디를 녹여버릴 듯한 이질적인 열기를 뿜어내며 사마건의 무릎 관절을 짓눌렀다.
사마건은 이빨을 악물며 신음소리를 삼켰다. 오른손에 쥔 임시 철검의 검신에서 정사(正邪)의 진기가 충돌하며 미세한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제 가치를 다하지 못하고 웅웅거리는 불완전한 공명.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멈출 수 없었다. 제갈린이 건넨 가죽 지도가 품속에서 그의 가슴을 차갑게 누르고 있었다. 사천에 살아있을 누이 사마혜를 만나기 위해선, 이 위선의 구렁텅이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마건은 마맥심안(魔脈心眼)을 미세하게 개방했다. 눈을 감자 빗소리 너머로 관청 내부를 순찰하는 포졸들의 기혈 흐름이 붉은 실선이 되어 머릿속에 그려졌다. 묘시(卯時) 직전, 경비가 교대되는 찰나의 틈. 사마건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소리 없이 담을 넘었다. 흑강 보법의 무음(無音)의 궤적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활개 쳤다.
지도가 가리킨 곳은 관청 깊숙한 곳에 위치한 외진 서고였다. 사마건은 서고 뒤편의 허름한 벽면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일반적인 벽돌처럼 보였지만, 마맥심안을 통해 들여다본 벽 너머에는 정교하게 설계된 기기관문이 숨겨져 있었다. 사마건은 왼손의 딱딱하게 굳은 쇳빛 손가락을 틈새로 밀어 넣었다. 기어의 맞물림을 느끼며 쇠추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철컥. 미세한 파공음과 함께 벽면 일부가 소리 없이 안쪽으로 밀려났다. 그 틈새로 매캐한 먼지 냄새와 썩은 종이 냄새가 뒤섞인 탁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흑강 관청 밀실의 입구였다.
사마건은 몸을 굽혀 밀실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사방이 거대한 현철판으로 방호된 밀실 내부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완벽한 암흑이었다. 사마건은 손끝의 감각과 심안에 의지해 서랍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비적들과 뇌물을 주고받은 현령의 추악한 장부들이 널려 있었으나, 그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사마세가의 파멸을 사주한 진짜 원흉의 증거.
서고 가장 깊은 곳, 철제 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마건이 함의 덮개를 열려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쇠줄의 진동이 심안에 포착되었다. 치명적인 기기 덫이었다. 사마건은 본능적으로 신형을 뒤로 꺾었으나, 함에서 발사된 가느다란 강철 침 한 자루가 그의 오른쪽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
"윽……!"
뜨거운 피가 옆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깊은 자상이었으나 사마건은 개의치 않고 함 안의 서류를 움켜쥐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 뭉치 한가운데, 서슬 푸른 무림맹주의 인장과 백록검파의 신비로운 백록 문양이 선명하게 찍힌 서신 한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무림맹주 제갈무쌍이 백록검파의 장문인 백현태에게 보낸 비밀 친필 서신이었다.
[……사마세가의 백록철 광맥은 맹의 대업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오. 그들이 마교와 내통했다는 명분을 조작하여 멸문시키고 광산을 장악하시오. 맹의 이름으로 모든 뒤처리를 보장하겠소. ]
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사마건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전신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가문이 하룻밤 사이에 피바다로 변하고, 아버지가 마교의 세작이라는 더러운 누명을 쓴 채 죽어간 진짜 이유가 고작 무림맹주의 탐욕과 이권 다툼 때문이었다니. 정파의 위대한 수호자이자 정의의 화신이라 칭송받던 제갈무쌍의 가면에 가려진 추악한 민낯을 마주한 순간, 사마건의 가슴속에서 억눌려 있던 뜨거운 선혈이 울컥 목구멍을 타고 솟구쳤다.
"우웁…… 쿨럭!"
사마건은 입가를 피로 물들인 채 비틀거렸다. 단전이 깨진 상태에서 솟구친 분노는 체내의 마기를 미친 듯이 날뛰게 만들었다. 위선적인 정파의 정의를 향한 극도의 멸시와 슬픔이 그의 뇌해를 잠식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무거운 석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자욱한 먼지 안개 너머로, 백색과 청색이 정갈하게 조화된 무림맹의 공식 집법복을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림맹 본단에서 파견된 무자비한 집법사, 정건(鄭健)이었다. 그의 뒤로는 쇠사슬과 철갑 방패를 든 정예 집법대원들이 밀실의 출구를 완벽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정건의 차가운 안광이 사마건의 피 묻은 얼굴과 그가 쥐고 있는 서신을 꿰뚫어 보았다.
"마교의 세작 사마건. 결국 쥐새끼처럼 이곳까지 기어 들어와 맹의 기밀을 훔치려 하는구나."
정건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의혹도 없었다. 그는 제갈무쌍의 거짓 보고를 완벽히 믿고 있는 강직한 원칙주의자였다. 사마건은 그 위선적인 확신을 바라보며 피 묻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위선의 사냥개가 제 주인의 더러운 똥을 지키러 왔군."
"방자한 놈. 네놈의 사악한 무공 흔적은 이미 흑강현 전역에 가득하다. 집법대, 포위하라!"
정건의 명령과 함께 집법대원들이 일제히 철갑 방패를 바닥에 내리찍으며 사마건의 사각지대를 좁혀왔다. 쇠사슬이 뱀처럼 요동치며 사마건의 발목을 노렸다. 사마건은 품속에 서신을 급히 밀어 넣고 한철단검과 임시 철검을 고쳐 잡았다.
정건이 맹도정종심법(맹도정종)의 정순하고도 압도적인 도가 내공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밀실 전체가 그의 푸른 기운으로 가득 차며 사마건의 숨통을 조여왔다. 사마건은 정면 돌파를 위해 부서진 단전 주변의 잔여 진기를 억지로 끌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가슴 정중앙에서 지옥 같은 반동이 일어났다. 단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채 무리하게 도가의 진기를 쓰려 하자, 혈도가 거꾸로 치솟으며 전신 경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커헉!"
사마건은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검붉은 피를 한 움큼 쏟아냈다. 정건의 정순한 내공 압박에 단전의 찌꺼기 진기가 완전히 밀려나며 내상이 깊어졌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었다.
사마건은 빠르게 이성을 가다듬었다. 그는 눈을 감고 마맥심안을 완전히 개방했다. 밀실의 먼지 속에서 정건의 흔들림 없는 단단한 기혈 흐름과 검 끝의 궤적이 붉은 선이 되어 감지되었다.
정건이 무림맹 집법검을 내뿜으며 예리한 청색 검강으로 사마건의 가슴을 베어왔다. 바람을 가르는 예리한 검격이 밀실의 공기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사마건은 왼손에 쥔 극음의 한철단검을 가로막아 정건의 검 끝을 아슬아슬하게 미끄러뜨렸다.
챙-! 캉!
단검과 검강이 부딪치며 소름 끼치는 불꽃이 암흑 속에서 번뜩였다. 정건은 사마건의 마기를 보며 차갑게 일갈했다.
"사파의 더러운 요술을 쓰는구나. 맹법의 이름으로 즉결 단죄하겠다!"
사마건은 단검을 타고 흐르는 묵직한 반탄력에 뒤로 밀려나며 석조 책장에 등을 부딪쳤다. 옆구리의 자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적셨다. 정면 돌파가 불가능하다면, 지형을 이용해야 했다. 사마건은 마맥심안으로 서고 내부에 가득 찬 거대한 목조 책장들의 무게중심을 분석했다. 마맥의 폭발적인 완력으로 책장들을 무너뜨려 시야를 차단한 뒤 탈출할 전술을 구상하는 찰나였다.
정건이 허리춤에서 무림맹 집법령(執法令) 철패를 높이 들어 올렸다. 철패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보광이 어두운 밀실을 환하게 비추며 사마건의 잔상을 옥죄었다.
"천하공적 사마건, 현장에서 즉결 처형을 선포한다!"
그 준엄한 선포가 떨어지는 순간, 사마건의 심장 혈도에 박혀 있던 황금빛 혜명침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진동했다. 죽음의 위협을 감지한 천마대종사의 마맥이 마침내 폭발적인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사마건의 왼손 끝부터 검붉은 마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마건의 왼팔 전체가 쇳빛으로 딱딱하게 물들며 핏빛 혈무가 그의 모공을 뚫고 피어올랐다.
검붉은 피 안개가 폭발하듯 밀실 전체를 휘감아 돌았다. 그와 동시에, 뼈를 깎아내는 듯한 극음의 마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축축하게 젖어 있던 석실 벽면과 바닥의 빗물들을 순식간에 차갑게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서리가 순식간에 책장과 바닥을 뒤덮으며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밀실 내부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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