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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단죄, 타오르는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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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지배하던 대장간 지하실의 공기가 일순간 멈춘 듯했다.


천장의 깨진 틈새로 떨어지는 횃불은 마치 느리게 흐르는 핏방울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했다. 공기 중에 자욱하게 떠돌던 미세한 석탄 가루들이 횃불의 붉은 불꽃을 집어삼키려는 듯 윙윙거리며 소용돌이쳤다. 일촉즉발의 화약고. 그 한가운데에 선 사마건(司馬乾)은 굳게 쥐고 있던 임시 철검의 자루를 더욱 강하게 움켜잡았다.


검푸른 진기와 검붉은 마기가 기형적으로 얽혀 태극의 형상을 이룬 검신이 그의 손안에서 불길하게 진동했다. 마맥의 사악한 힘과 잔여 도가 진기가 충돌하며 일어나는 미세한 거부반응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비틀린 떨림마저 무서운 살기가 되어 검신을 타고 흘렀.


‘지금이다.’


사마건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오른쪽 발목, 과거 백무기의 철혈검기에 당해 진득한 열독(熱毒)이 박힌 상처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토해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땅을 박찼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가마 바로 앞까지 육박한 그는, 온 힘을 다해 제련 가마의 무거운 무쇠 철문을 걷어찼다.


쾅—!


가마 내부에서 압축되어 있던 수천 도의 초열(初熱)과 붉은 화염이 폭풍처럼 광장에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초열의 아가리가 공기 중에 가득 찬 석탄 분진과 만나는 찰나.


콰아아아아아앙—!!!


지하 대장간 전체가 거대한 태양처럼 폭발했다.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백색의 섬광이 지하실을 가득 채웠고, 뒤이어 고막을 찢어발기는 충격음이 사방의 벽을 흔들었다. 가마에서 분출된 초열과 공기 중의 석탄 가루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만들어낸 분진 폭발(粉塵爆發)이었다.


대장간 내부로 들이닥치려던 흑강적당(黑江賊黨)의 비적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마주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폭발의 충격파가 그들의 고막과 허파를 순식간에 찢어발겼고, 사방을 가득 채운 화염이 그들의 피부를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방패를 들고 진형을 짜던 비적들은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뒤로 날아가 벽면에 처박혔다. 그들의 가죽 갑옷은 순식간에 타들어 가며 살에 눌러붙었고, 지하실은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변했다.


“끄아아아악! 불이다! 몸에 불이 붙었다!”


“도망쳐! 이 지하가 무너진다!”


화염의 장막 너머에서 비적들의 비명이 울부짖는 사이, 사마건은 가마 뒤편의 두꺼운 철판 환기구 안으로 시선을 던졌다. 다행히 두꺼운 현철판으로 방호된 그곳은 폭발의 열기를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임철수와 빈사 상태의 곽칠은 안전할 터였다.


하지만 사마건에게는 안도할 여유가 없었다.


스스스스.


화염 속에서 묵직한 살기가 일어났다. 흑강적당의 두목, 귀두도(鬼頭刀)였다. 그는 일류 초입의 강건한 외가 기공인 강체술(鋼體術)을 지니고 있었기에, 온몸의 진기를 짜내어 반탄강기 장벽을 형성함으로써 폭발의 직격타를 간신히 버텨낸 상태였다. 비록 머리칼이 모두 타버리고 가죽 옷 곳곳이 그을려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의 두 눈에 서린 탐욕과 살기는 오히려 불꽃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내 부하들을!”


귀두도가 포효하며 거대한 참마도(斬馬刀)를 치켜들었다. 붉은 수염이 그을린 채 비틀거리는 그의 신형은 마치 지옥에서 걸어 나온 악귀 같았다. 그가 참마도를 휘두르자, 타오르는 불길을 가르며 묵직한 파공음이 사마건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사마건은 오른손의 임시 철검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검신 깊은 곳에서 정사와 마기의 기운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검이 비명을 지르듯 떨렸다. 불완전한 무기는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철검으로는 저 묵직한 참마도를 받아낼 수 없다.’


사마건은 과단성 있게 임시 철검을 비틀어 검로를 우회했다. 대신 품속에서 차가운 한기(寒氣)를 뿜어내는 북해 한철의 병기, 한철단검(寒鐵劍)을 왼손으로 뽑아 들었다.


완전히 딱딱하고 차가운 쇳빛으로 물든 그의 기형적인 왼손이 한철단검의 자루를 움켜쥐는 순간, 왼팔의 마맥(魔脈)에서 칠흑 같은 마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마맥의 음기와 한철단검의 북해 한기가 공명하며 단검의 날 끝에 서슬 퍼런 서리 서린 검강(劍罡)이 맺혔다.


카아아앙—!


귀두도의 참마도와 사마건의 한철단검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극도의 초열 속에서 믿을 수 없는 극음(極陰)의 한기가 충돌한 것이다.


쩌저적, 하는 소름 끼치는 균열음이 울려 퍼졌다. 귀두도의 참마도 날에 푸른 서리가 급속도로 번져가더니, 이내 한기를 견디지 못하고 유리창이 깨지듯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비산했다. 자신의 명도가 파괴되는 것을 본 귀두도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떻게 이런 한기가……!”


“배신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사마건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경악하는 귀두도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의 통증을 무시한 채, 왼손의 한철단검을 그대로 귀두도의 가슴 정중앙에 밀어 넣었다.


푸학!


예리한 한철의 날이 귀두도의 강체술 장벽을 두부 베듯 찢어발기며 심장에 박혔다. 단검에 서려 있던 극음의 마기가 귀두도의 체내 기혈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귀두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온몸이 하얗게 얼어붙으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심장은 이미 차가운 얼음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마건의 시선은 쓰러진 비적 두목에게 머물지 않았다. 그의 마맥심안(魔脈心眼)은 이미 지하실 뒤편, 무너진 벽 틈새로 은밀히 도망치려는 비겁한 기혈의 흐름을 쫓고 있었다.


과거 가문의 대문을 지키며 평생 충성을 맹세했던 호위, 그러나 가문이 무너지자 가장 먼저 백록검파의 사냥개가 되어 은인들의 위치를 밀고한 배신자 강무(姜武)였다.


강무는 분진 폭발의 여파로 가벼운 화상을 입은 채, 지하실 뒤편의 비밀 통로를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사마건이 귀두도를 단숨에 도륙하는 모습을 보고 극도의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도, 도망쳐야 해…… 저놈은 괴물이다……!”


강무가 비틀거리며 통로 문을 열려 하는 순간, 사마건의 차가운 음성이 그의 등 뒤를 때렸다.


“강무.”


강무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화염의 붉은 빛 속에서, 왼쪽 얼굴의 절반이 딱딱한 회색빛 괴사 피부로 뒤덮인 사마건이 귀신 같은 형상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절뚝거리는 그의 걸음걸이가 바닥의 재를 밟을 때마다 스산한 소리가 울렸다.


“도련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백현태 장문인이 제 가솔들을 인질로 잡고 협박했습니다! 가문의 마지막 핏줄이신 도련님을 제가 어찌 배신하고 싶었겠습니까!”


강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으며 애원했다. 그의 눈에는 비열한 눈물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남아 도망치겠다는 간사한 계산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사마건은 그 모습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뇌리 속에서 어릴 적 자신에게 검술의 기초를 가르쳐주며 환하게 웃던 강무의 모습과, 가문이 불타던 날 밤 비겁하게 백록검파의 앞잡이가 되어 동료들의 목을 베던 강무의 모습이 겹쳐졌다.


가장 믿었던 자의 비열한 변절. 그것이 가슴을 짓눌렀지만, 사마건의 안광은 오직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내 아버님은 배신자의 변명을 듣기 위해 죽은 것이 아니다. 가문의 영혼들이 네놈의 피를 원한다.”


“도, 도련님—!”


강무가 품속에서 은밀히 숨겨둔 단검을 꺼내 사마건의 무릎을 찌르려 발악했다. 그 비열한 기습을 예측한 듯, 사마건의 왼손 끝에 검붉은 마기가 응축되었다.


‘음기탄(陰氣彈).’


사마건이 손가락을 튕겼다. 소리도 흔적도 없이, condensed된 두 발의 차가운 마기 탄환이 강무의 양 무릎을 정확히 꿰뚫었다.


퍽! 퍽!


“아아아아악!!!”


강무의 양 무릎뼈가 일순간에 얼어붙으며 산산조각이 났다. 비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구는 강무의 머리채를 사마건의 쇳빛 왼손이 움켜잡았다. 강무의 목이 뒤로 꺾이며 그의 비겁한 눈동자가 사마건의 차가운 시선과 마주했다.


서늘한 쇠 냄새와 함께 한철단검의 날카로운 날이 강무의 목덜미를 스쳤다. 사마건은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단검을 그어 내렸다.


스사사삭.


뜨거운 선혈이 뿜어져 나와 사마건의 회색빛 뺨을 적셨으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가문을 배신한 사냥개의 비참한 최후였다. 강무의 신형이 경련을 일으키다 이내 조용해졌다.


배신자를 처단했다는 씁쓸한 만족감이 가슴을 채우기도 전, 지하실 전체가 기이한 진동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대장간 바닥 아래 매설되어 있던 철제 기기 장치들이 비정상적인 굉음을 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제갈세가의 천재 제갈휘가 매설해 둔 지하 기기관문들이 분진 폭발의 충격과 화염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연쇄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바닥이 갈라지며 뜨거운 증기와 불꽃이 치솟았고, 대장간을 지탱하던 거대한 목조 기둥들이 쩍쩍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도련님! 어서 피하십시오! 이 지하가 완전히 무너집니다!”


환기구 안에서 임철수가 곽칠을 짊어진 채 소리쳤다. 사마건은 무너지는 돌더미를 피하며 출구를 향해 신형을 움직이려 했다.


‘마맥신신법(魔脈神身法).’


그는 마맥의 기운을 다리에 집중시켜 신속하게 도약하려 했다. 그러나 전날 위량과의 혈투에서 입은 내상과, 오른쪽 발목에 남은 백무기의 기이한 열독 상처가 순간적으로 그의 다리 경맥을 강타했다. 극심한 Grinding 통증에 다리의 진기가 어긋나며 보법이 흐트러졌다.


“크윽……!”


사마건의 신형이 비틀거리는 찰나, 머리 위에서 거대한 들보가 불타며 떨어져 내렸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사마건은 바닥을 굴러 간신히 깔리는 것을 피했으나, 등 뒤에 쏟아지는 불꽃과 파편에 깊은 화상 자국이 새겨졌다. 등 뒤의 가죽 옷이 타들어가며 살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지하실은 이미 완벽한 붕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사마건은 무너지는 대장간의 잔해를 디디며, 완전히 딱딱하게 굳은 왼손으로 떨어지는 바위를 쳐내고 천장의 깨진 틈새를 향해 몸을 날렸다. 가슴속 혜명침이 터질 듯한 진동을 일으키며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콰아아앙—!


대장간 지붕을 뚫고 사마건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뒤이어 그가 서 있던 대장간 전체가 거대한 먼지 폭풍과 화염을 뿜어내며 완전히 주저앉아 잿더미가 되었다.


툭.


사마건은 불타는 파편들이 흩날리는 차가운 진흙 바닥 위에 착지했다. 등 뒤의 깊은 화상과 전신 경맥의 파열로 인해 그는 무릎을 꿇으며 한 움큼의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단전이 파괴된 육체가 한계에 다다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불타는 화염의 붉은 빛과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던 사마건의 눈앞에, 자욱한 연막을 가르며 한 사내의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사마건은 경계하며 한철단검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연기 너머로 드러난 사내의 모습은 백록검파의 살수도, 관청의 군졸도 아니었다.


풀어진 청색 도포를 대충 걸치고, 손에는 천기운행도가 그려진 낡은 깃털 부채를 든 채 한가로이 미소 짓고 있는 사내. 제갈세가에서 파문당해 강호를 떠도는 신비롭고 영민한 정보 상인, 제갈린(諸葛麟)이었다.


제갈린은 불타오르는 대장간의 화염을 등진 채, 부채를 가볍게 흔들며 사마건을 향해 깊이 있는 눈빛을 던졌다.


“허어, 내 평생 이토록 아름답고 처절한 불꽃놀이는 처음 보는구려, 사마 소협.”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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