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에서 건진 목숨
차가운 물살이 귓가를 때리던 감각은 어느새 아득한 이명으로 변해 있었다. 사마건이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낯익은 폐광의 어둠도, 만장절벽의 핏빛 강물도 아니었다. 은은한 약초 향이 매캐하게 풍기는 낯선 천장. 사마건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전신을 관통하는 지독한 통증에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다시 침상 위로 무너져 내렸다.
"무리하게 움직이지 마십시오. 전신의 경맥이 걸레짝처럼 찢겨 나가 가사 상태로 강가에 떠밀려오신 것을 간신히 수습했습니다."
나직하고 단아한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사마건이 고개를 가볍게 돌리자, 단정하게 머리를 땋아 내린 청초한 미모의 의녀가 보였다. 사마세가의 옛 은혜를 기억하고 사마건을 도왔던 혜민약방의 의원 조수, 장소희였다. 그녀의 손에는 은은한 황금빛 침통과 누렇게 바랜 낡은 수첩이 들려 있었다. 사마건의 두 번째 목숨을 구하고 숨진 전대 의선 백무흔이 남긴 비전, 의선수필(醫仙手筆)이었다.
"소희…… 낭자……."
사마건의 목소리는 목구멍에 고인 피 때문에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의 단전이 깨진 아랫배는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갑게 비어 있었고, 위량과의 사투에서 마맥역행결을 무리하게 전개한 대가로 체내의 진기는 형편없이 뒤틀려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왼쪽 뺨이었다. 위량과의 격전 도중 일어난 극심한 진기 충돌의 여파로, 왼쪽 뺨 일부의 회색빛 변색이 귀밑까지 확장되어 죽은 이의 가죽처럼 딱딱하게 고착되어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얼굴이 괴물처럼 변해버렸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 혜민약방 뒷방의 낡은 목조 문이 열리며 절뚝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 가신 곽칠이었다. 전신에 채찍상과 골절상을 입어 만신창이가 된 곽칠은 소가주의 생존을 확인하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
"도련님…… 살아서 눈을 떠주셨군요. 이 늙은 가신은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곽 숙부…… 두수는 어찌 되었습니까?"
"두수는 안전한 곳에 숨겨두었습니다. 지금은 도련님의 몸을 추스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소희 낭자, 도련님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장소희는 무거운 표정으로 의선수필을 침상 옆에 내려놓았다.
"심각합니다. 단전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에서 기형적인 마맥의 기운을 무리하게 역류시키셨습니다. 지금 심장 혈도에 박힌 황금빛 혜명침(慧明針)이 마맥의 폭주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으나, 체내의 사악한 마기가 정파의 청련 진기를 억지로 밀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경맥이 자폭하듯 터져 나갈 것입니다."
장소희는 망설임 없이 은침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백무흔의 의선수필에 적힌 구맥도의 처방에 따라, 사마건의 찢어진 심장 혈도를 봉쇄하기 위한 시술을 시작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정순한 도가 내공을 주입하여 기혈을 돌려야 했지만, 사마건은 단전이 파괴된 몸이었다. 장소희가 기공 치료를 시도하려 하자, 사마건의 아랫배에서 진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격렬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우웁…… 쿨럭!"
사마건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전신 경맥이 뒤틀리는 극심한 통증에 사마건의 몸이 활처럼 꺾였다.
"안 됩니다! 단전이 부서진 상태에서 일반적인 내공 주입법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장소희는 빠르게 판단했다. 그녀는 일반적인 기공 치료를 포기하고, 사마건의 경맥 자체를 확장해 마기를 흘려보내는 천마혈맥결(天魔血脈訣)의 흐름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은침을 사마건의 가슴 주요 혈도에 깊숙이 찌르고 지혈제를 도포했다.
하지만 그 순간, 사마건의 심장부에 깃든 마맥이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폭발적인 열기를 뿜어냈다.
치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사마건의 가슴에 꽂혀 있던 은침들이 검게 변하며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맥의 열독이 은침마저 녹여버린 것이다. 사마건의 피부가 핏빛으로 붉게 달아오르며 다시 폭주하려 했다.
"마맥의 열기가 은침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심장이 타버릴 것입니다!"
장소희의 다급한 외침에, 곽칠이 다급히 품을 뒤적였다.
"이걸 쓰십시오! 지난번 음사곡 빙벽에서 채집해 둔 음신초(陰神草)입니다!"
장소희는 곽칠이 건넨 극음의 한초인 음신초를 망설임 없이 짓이겨 사마건의 가슴 상처 위에 두껍게 발랐다.
스으으으.
얼음보다 차가운 음신초의 냉기가 사마건의 피부를 타고 스며들자, 전신을 태워버릴 듯 요동치던 마맥의 열기가 강제로 식어가기 시작했다. 뼈가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오한이 척추를 타고 흘렀으나, 폭주하던 마기는 서서히 진정세를 보였다. 사마건은 전신에 지울 수 없는 내상과 흉터를 남긴 채 간신히 정사 과도기(이류)의 불완전한 상태로 안정을 찾았다.
몇 시간 후, 열기가 완전히 가라앉자 사마건은 곽칠의 부축을 받아 침상에서 내려왔. 무기는 유실되어 품속의 한철단검 한 자루뿐이었고, 오른쪽 발목에는 여전히 백무기의 열독 상처가 남아 있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통증이 밀려왔다.
"무기가 필요합니다. 위량과의 싸움에서 철검이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사마건의 말에 곽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이 약방 지하 통로를 통해 나가면 변방 대장장이 임철수(임철수)의 철공소 지하와 연결됩니다. 그자가 도련님의 부러진 철검 파편들을 수습해 두었습니다."
사마건은 곽칠의 인도를 받아 임철수의 철공소 지하로 향했다. 시뻘건 화로의 열기가 가득한 지하 공방에서, 거구의 대장장이 임철수가 땀을 흘리며 가마를 지키고 있었다. 바닥에는 만장절벽에서 산산조각 났던 사마건의 부러진 철검 파편들이 모여 있었다.
"오셨소, 사마 도련님. 가문의 비참한 소식은 들었소. 내 비록 일개 대장장이에 불과하나, 사마혁 장로님께 은혜를 입은 몸이오. 도련님의 검을 다시 벼려드리겠소."
임철수는 단단한 검은색 철괴를 화로에 던져 넣었다. 북해 한철과 현철을 합금하여, 마맥의 음기와 독기를 견딜 수 있는 특수한 임시 철검을 주조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망치가 달구어진 쇠붙이를 때릴 때마다 지하 공방 전체가 웅장하게 울렸다.
깡! 깡! 깡!
수천 번의 매질 끝에, 마침내 검푸른 빛과 붉은빛이 묘하게 뒤섞인 임시 철검이 완성되었다. 완벽한 영물은 아니었으나, 사마건의 몸 안에 흐르는 불완전한 정사의 기운을 대변하듯 기이한 기품을 풍기는 검이었다.
"받으시오. 도련님의 새로운 동반자요."
사마건이 천천히 손을 뻗어 새로 주조된 철검의 자루를 움켜쥐었다.
스으으으.
그가 검을 쥐는 순간, 사마건의 왼팔 마맥에서 검붉은 마기가 뿜어져 나와 검신을 타고 흘렀고, 동시에 경맥에 남아 흐르던 푸른 도가 진기가 검날의 반대편을 채웠다. 검붉은 마기와 푸른 진기가 검신 위에서 서로를 밀어내며 격렬하게 소용돌이쳤고, 이내 기이한 태극의 형상을 닮은 무늬를 형성하며 검날에 각인되었다. 불완전하지만 가공할 만한 힘의 발현이었다.
바로 그 순간, 사마건의 심장 혈도에 깊숙이 박혀 있던 황금빛 혜명침이 불길하게 떨리며 날카로운 공명을 일으켰다.
웅웅웅!
침의 진동은 사마건의 뇌해로 차가운 살기를 전달했다. 마맥심안이 스스로 개방되며, 대장간 지하실 천장 너머, 혜민약방 주변의 숲속에서 수십 개의 정순하고 날카로운 기혈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낯익은 백록검파 정파 무사들의 살기 어린 기척이었다. 적들의 포위망이 이미 목전까지 들이닥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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