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절벽(萬丈)의 결전, 폭주의 강을 건너다
위량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사마건을 향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강바람을 타고 차갑게 흩어졌다.
“쥐새끼가 강을 건너려 하는구나. 사마건, 네놈의 퇴로는 이미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착장 주변을 포위한 추풍대 살수들이 일제히 불화살과 기름병을 강물 위로 던졌다. 순식간에 사마건이 타려던 도룻배를 비롯해 수로에 정박해 있던 모든 민간 선박들이 맹렬한 불길에 휩싸였다. 붉은 화염이 새벽안개를 찢어발기며 흑강의 검은 물결을 피처럼 물들였다. 사방에서 타오르는 열기와 강바람의 매서운 한기가 격렬하게 부딪치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사마건은 왼팔로 부상당한 팽배를 안아 든 채 이를 악물었다. 그의 오른쪽 발목에 새겨진 백무기의 기이한 열독(熱毒) 상처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뼈를 태우는 듯한 통증을 뿜어냈다. 무릎 관절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고, 무리하게 신법을 전개한 탓에 상처 틈새로 검붉은 피 안개가 뿜어져 나와 안개 속에 흩어졌다. 왼쪽 뺨 일부는 이미 귀밑까지 딱딱하고 차가운 회색빛으로 변색되어 고착된 상태였다. 마맥의 잠식이 서서히 그의 이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증거였다.
“도련님, 저를 버리고 가십시오…….”
가슴에 깊은 창상을 입은 채 피를 토하는 팽배를 바라보며, 사마건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진 민초를 이 차가운 절벽 끝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사마건은 뒤따라온 호진에게 팽배를 넘겼다.
“호 표두, 팽배를 데리고 배의 잔해라도 붙잡고 강을 건너시오. 저들의 목표는 나요.”
“하지만 도련님! 저자는 추풍대주 위량입니다! 절정의 고수를 상대론 단검 한 자루로 버틸 수 없습니다!”
호진이 만류했으나 사마건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사마건은 품속에서 한철단검을 굳게 쥐었다. 가문의 상징이었던 부러진 철검은 이미 산산조각 나 사라졌고, 오른손에는 방금 전 쓰러진 관군에게서 노획한 평범한 철검 한 자루만이 들려 있을 뿐이었다. 무기조차 온전치 않은 비참한 행색이었지만, 그의 등 뒤에는 물러설 곳 없는 만장절벽(萬丈)의 천길낭떠러지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가시오. 내 반드시 살아남아 사천으로 갈 것이니.”
사마건이 노획한 철검을 비장하게 고쳐 잡으며 절벽 끝 외나무다리 앞으로 걸어 나갔다. 호진은 이빨을 악물며 팽배를 짊어지고 불타는 선착장 아래의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곽칠과 곽두수가 탄 도룻배 역시 거센 물살을 타고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위량은 멀어지는 배들을 굳이 쫓지 않았다. 그의 음산한 안광은 오직 사마건의 왼팔, 검붉게 맥동하는 천마대종사의 마맥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단전이 깨진 폐인 놈이 대종사의 마맥을 훔쳐 연명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네놈의 목을 베어 장문인께 바치고, 그 마맥은 우리 백록검파의 영광을 위한 거름으로 삼겠다.”
스으릉.
위량이 검집에서 무음검(無音劍)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소리 없이 허공을 가르는 바람의 검이었다. 위량이 가볍게 신형을 움직이자, 그의 몸에서 일류 극성의 추풍기공이 발산되며 푸르스름한 청풍검강(靑風劍鋼)이 검신을 뒤덮었다. 절정 하위에 이른 그의 무력은 사방 십보 안의 모든 바람 흐름을 지배하고 있었다.
“죽어라.”
위량의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야행신법(夜行神法)이었다.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마건의 사각지대를 파고든 위량이 무음검을 내지르자, 수십 개의 예리한 바람의 칼날이 청풍검강이 되어 사마건의 전신 사혈을 덮쳐왔다.
사마건은 본능적으로 가문의 비전인 백록송풍검의 초식을 떠올리며 노획한 철검으로 검막을 형성하려 했다. 단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체내에 남아 흐르는 미세한 정파의 잔여 진기를 억지로 짜내었다.
‘백록송풍검 - 청풍영락(靑風零落)!’
그러나 단전이 파괴된 몸에서 뿜어 나온 진기는 허공에서 흩어지며 맥없이 바스러졌다. 위량의 묵직한 청풍검강이 사마건의 검막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쾅! 카강!
소름 끼치는 금속음과 함께 사마건이 노획했던 철검이 위량의 검강을 버티지 못하고 수십 개의 쇳조각으로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사마건의 오른팔 경맥이 검강의 반탄력에 밀려 일시적으로 마비되었고, 전신에 수십 군데의 자상이 생기며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사마건은 절벽 끝 바위에 무겁게 부딪치며 뒤로 밀려났다. 입가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하하하! 내공도 없는 폐인 놈이 감히 내 검강을 막으려 들다니! 사마세가의 검술도 이제 종말이구나!”
위량이 비웃으며 다시 한번 무음검을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사마건의 목을 완전히 베어버릴 기세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등 뒤는 천길낭떠러지였고, 손에는 오직 한철단검 한 자루뿐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정 고수인 위량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사마건의 눈동자가 깊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그는 비장한 결의를 다지며 왼손을 자신의 가슴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
심장 혈도에 깊숙이 박혀 마맥의 대폭주를 억누르고 있던 황금빛 혜명침(慧明針). 사마건은 이빨을 악물며 그 혜명침의 자루를 손가락 끝으로 움켜쥐고 강제로 비틀어 돌렸다.
‘마맥역행결(魔脈逆行決)!’
천마대종사 독고천이 남긴 금단의 구결이 그의 뇌해를 두드렸다. 심장의 고삐가 풀리는 순간, 지옥의 문이 열렸다.
쿠우우웅!
사마건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 같은 마기가 전신의 경맥을 역류하며 대폭주를 일으켰다. 전신의 경맥이 갈갈이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물리적 고통에 사마건은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닌, 심연의 괴수처럼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아아아악!”
사마건의 전신에서 검붉은 마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와 만장절벽의 강풍을 집어삼켰다. 그의 왼손은 이제 손가락 끝을 넘어 전신이 쇳빛으로 물들었고, 손톱은 야수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돋아나 천마혈마조(天魔血魔爪)의 기형적인 형태로 변모했다. 눈동자는 핏빛 서린 살기로 붉게 충혈되었고, 이성은 어둠 속으로 빠르게 가라앉았다. 오직 눈앞의 적을 도륙하겠다는 절대적인 살의만이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이, 이 기운은 대체……!”
위량의 안색이 처음으로 경악으로 물들었다. 사마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그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압도적이고 사악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위량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무음검을 양손으로 쥐고 청풍검강의 출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추풍검뢰(追風劍雷)!”
위량의 최후의 일격이 사마건의 심장을 향해 벼락처럼 쏟아졌다. 청색 검강이 대기를 찢으며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뿜었다.
하지만 대폭주 상태에 돌입한 사마건에게는 그 검강조차 느리게 보였다. 사마건은 마맥신신법의 기괴한 속도로 신형을 움직였다. 그의 오른쪽 발목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피 안개가 검은 마기와 뒤섞여 기이한 궤적을 그렸다.
파앗!
사마건은 위량의 검강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왼손의 천마혈마조를 뻗어 위량의 청풍검강을 정면으로 움켜쥐었다.
콰드드득! 쨍강!
쇳빛으로 단단해진 사마건의 손톱이 위량의 검강을 유리창 깨뜨리듯 맨손으로 찢어발겼다. 무음검의 날이 사마건의 악력 앞에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비산했다. 위량이 경악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이미 사마건의 붉은 눈동자가 그의 턱밑까지 육박해 있었다.
“사마세가의 원수…….”
사마건의 쇳소리 섞인 목소리와 함께, 그의 왼손 천마혈마조가 위량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두꺼운 가죽 갑옷과 골격이 종이장처럼 찢겨 나가며 사마건의 검은 손가락들이 위량의 심장 기맥을 정확히 관통했다.
푸학!
“커헉…… 어, 어떻게 폐인 놈이…….”
위량이 입으로 대량의 선혈을 토해내며 눈을 크게 떴다. 사마건은 자비 없이 그의 가슴에서 손을 빼낸 뒤, 위량의 신형을 만장절벽 아래의 거센 강물 속으로 사정없이 던져버렸다. 백록검파 최고의 사냥개이자 가문의 원수였던 위량의 최후였다. 주변을 지키던 추풍대 살수들 역시 사마건의 폭발적인 마기 충격파에 밀려 절벽 아래로 추락하거나 현장에서 전멸당했다.
그러나 승리의 대가는 잔혹했다.
“으아아아!”
위량과 추풍대를 몰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마건의 체내에서 역류한 마기는 멈추지 않았다. 혜명침의 제어가 완전히 풀린 마맥은 사마건의 전신 경맥을 완전히 파괴하며 뇌해를 삼키려 들었다. 눈앞이 온통 붉은 피빛으로 물들었고, 심장이 터져 나갈 듯한 고열이 전신을 덮쳤다. 이성을 완전히 잃고 피에 미친 괴물이 되어 스스로 자멸할 위기였다.
그때였다.
사마건의 품속, 잿더미가 된 사마세가의 옛 영지에서 거두어 간직하고 있던 불가 고승의 비물, 혜명선사의 사리(舍利)가 은은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웅웅웅.
사마건의 가슴팍에서 따뜻하고 평온한 황금빛 보광(寶光)이 흘러나와 그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사악한 마기로 가득 차 있던 동굴 같은 절벽 끝에 은은한 불력(佛力)의 수호 장벽이 형성되었다. 그 맑고 정순한 기운이 사마건의 뇌해를 침범하던 마기의 광기를 강제로 흔들어 깨우며 날뛰던 마맥의 흐름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헉!”
사마건의 붉게 충혈되었던 눈동자가 서서히 본래의 검은 빛을 되찾았다. 전신을 찢어발기던 고열이 가라앉자, 뼈를 깎는 듯한 극심한 피로감과 내상의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사마건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며 비틀거렸다.
“도련님! 손을 잡으십시오!”
절벽 아래, 거센 강물 위로 다가온 도룻배에서 외다리 가신 곽칠이 절박하게 소리치며 마차의 가죽 채찍을 던졌다. 사마건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마지막 남은 악력으로 채찍 끝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만장절벽 끝자락에서 몸을 던져 차가운 강물 속으로 뛰어내렸다.
풍덩!
차가운 강물이 전신의 상처를 적셨지만, 사마건은 곽칠과 호진의 손에 이끌려 극적으로 도룻배 위로 인양되었다.
피비린내 나는 흑강현을 뒤로하고, 배는 거센 물살을 타고 사천 지방을 향해 빠르게 흘러갔다. 사마건은 배 바닥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 주변의 경맥이 심각하게 침식되어 앞으로 반년밖에 살지 못하는 시한부 상태가 되었음을 직감했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마건은 가슴속에 깊숙이 박힌 황금빛 혜명침의 미세한 온기를 느끼며, 마맥의 두 번째 폭주를 막아줄 영약 한음고란이 기다리는 사천 지방을 향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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