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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死線)의 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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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흑강 나루터의 새벽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강바람이 울부짖을 때마다 선착장의 낡은 목조 기둥들이 삐걱거리며 기괴한 소리를 내어 울었다. 하지만 그 어떤 바람 소리도 선착장 앞을 가득 메운 무림맹 철기대(鐵騎隊)가 뿜어내는 서늘한 쇳소리를 가릴 수는 없었다.


쿵. 쿵. 쿵.


철갑을 두른 거마(巨馬)들이 대지를 짓밟으며 반보씩 좁혀왔다. 그 중심에 선 무림맹 철기대장 조웅(趙雄)의 형상은 바위산처럼 거대했다. 전신을 감싼 흑철 갑옷 사이로 흘러나오는 붉은 철혈강기(鐵血強氣)가 주변의 강안개를 붉게 물들이며 타올랐다. 그가 쥔 거대한 흑철창(黑鐵槍)의 끝이 사마건의 목덜미를 가리켰다.


“마교의 세작 사마건. 네놈의 도주로는 여기까지다.”


조웅의 목소리는 쇠가 울리는 듯 묵직했고, 그의 말 한마디에 철기대원 수십 명이 일제히 철창을 고쳐 잡았다. 서슬 퍼런 창날들이 새벽빛을 받아 푸르스름한 살기를 흘렸다.


사마건은 비틀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지탱하며 조웅을 응시했다. 그의 왼쪽 뺨은 이미 귀밑까지 죽은 송장의 가죽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회색빛으로 변색되어 고착된 상태였다. 왼팔의 마맥(魔脈)에서 흘러나온 탁한 마기가 그의 육체를 서서히 잠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비참한 증표였다. 설상가상으로, 과거 백록검파의 집법 장로 백무기가 남긴 발목의 열독(熱毒) 상처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유발했다. 오른쪽 무릎 관절 역시 어긋났던 흔적 때문에 서걱거리는 마찰음을 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사마건의 오른손에 쥔 한철단검(寒鐵劍)만이 북해 한철의 시린 한기를 뿜어내며 그의 마지막 기력을 붙잡아두고 있었다. 가문의 상징이었던 부러진 철검은 이미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 나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에게 남은 무기는 오직 이 단검 한 자루와 품속의 조잡한 투척용 비도(飛刀) 몇 개뿐이었다.


“단전이 깨진 폐인 놈이 마교의 마맥을 이식받아 목숨을 연명하다니. 사마세가의 마지막 핏줄이 이토록 추잡하게 연명할 줄은 몰랐구나.”


조웅이 가소롭다는 듯 흑철창을 가볍게 휘둘렀다.


쉬이이익! 쾅!


창끝에서 방출된 붉은 강기창(罡氣槍) 한 줄기가 사마건의 발치 앞 대지를 가차 없이 찢어발겼다. 흙바닥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돌멩이가 비산했다. 사마건은 몸을 비틀어 충격파를 피하려 했으나, 찢어지는 듯한 무릎 통증에 결국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입가로 검붉은 선혈이 울컥 배어 나왔다. 단전이 파괴된 상태에서 억지로 마맥의 기운을 끌어올려 기혈을 순환시키려 한 대가였다.


“도련님!”


마차에 누워 빈사 상태로 신음하던 외다리 가신 곽칠이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 그의 아들 곽두수가 아버지를 붙잡은 채 부들부들 떨며 조웅을 노려보았지만, 십여 세 소년의 눈빛은 철기대의 압도적인 위압감 앞에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조웅이 차갑게 명령했다.


“철기대, 진형을 전개하라. 사지를 잘라 맹으로 압송한다.”


“하앗!”


철기대원들이 기함을 토하며 사마건을 향해 들이닥쳤다. 그들은 개인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철갑 마필들이 어깨를 맞대고 좁혀오며,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기가 서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철기대원들의 주위를 감싸는 푸르스름한 기막이 형성되었다. 무림맹 철기대 고유의 연합 방어 진법인 반탄강기 장벽(反彈罡氣 壁)이었다. 시전자의 내력을 연합하여 적의 모든 외력을 반사해내는 철옹성 같은 장벽이었다.


사마건은 이빨을 악물며 왼손의 마맥을 깨웠다. 심장 혈도에 깊숙이 박힌 황금빛 혜명침이 비명을 지르며 진동했다. 쇳빛으로 딱딱하게 변색된 그의 왼손 끝에서 검붉은 마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와 한철단검의 검신을 휘감았다.


‘철검도강(鐵劍渡江)!’


단검 한 자루에 마맥의 광포한 완력을 실어 대검의 중량감으로 찔러 들어가는 가문의 비전 초식이었다. 사마건의 신형이 조웅의 선두 대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단검 끝에서 뿜어진 검붉은 마기가 반탄강기 장벽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앙!


철공소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나루터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장벽은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연합된 반탄력의 묵직한 충격이 사마건의 손목을 타고 역류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사마건의 오른손 손목뼈가 어긋나는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한철단검의 끝이 단단한 강철 벽에 부딪친 것처럼 튕겨 나갔고, 사마건은 허공에서 피를 토하며 뒤로 굴러떨어졌다. 단전이 파괴된 폐인의 몸으로는 절정 고수들이 연합해 만든 내공 장벽을 정면으로 뚫을 수 없었다.


“어리석은 놈. 철기대의 갑옷은 황실의 현철로 주조되었고, 우리의 반탄강기는 천하제일이다. 네놈의 조잡한 마기로는 흠집 하나 낼 수 없다!”


조웅이 말을 몰아 사마건의 머리 위로 흑철창을 내리찍었다. 창끝에 실린 철혈강기가 붉은 폭풍을 일으키며 대지를 짓눌렀다. 사마건은 바닥을 구르며 간신히 창날을 피했다. 창이 박힌 자리에 깊이 한 자가 넘는 구덩이가 파였다.


그때였다.


“이 부패한 무림맹의 개새끼들아! 우리 나루터에서 행패 부리지 마라!”


우렁찬 고함 소리와 함께, 횃불을 든 수십 명의 사내들이 안개 속에서 들이닥쳤다. 흑강 나루터의 힘센 부두 노동자 팽배(彭排)였다. 그을린 피부에 탄탄한 가슴 근육을 드러낸 그는 단단한 나무 노(櫓)를 어깨에 멘 채 동료들을 이끌고 철기대의 측면을 기습했다.


“사마 장로님께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 도련님을 그냥 죽게 둘 줄 알았더냐!”


팽배와 노동자들이 던진 횃불들이 철기대의 군마들의 눈앞에서 터졌다. 불꽃과 매캐한 연기에 놀란 기마들이 앞다리를 치켜들며 히힝거렸다. 철기대의 견고하던 진형이 일순간에 흔들리며 반탄강기 장벽에 균열이 생겼다.


“천한 광부와 뱃놈들이 감히 반역을 꾀하는구나!”


조웅이 분노하여 흑철창을 휘둘렀다. 창날이 팽배의 가슴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뻗어 나갔다. 팽배는 나무 노를 가로막으며 버텼으나, 절정 고수의 강기가 실린 철창 앞에 나무 노는 단숨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흑철창의 끝이 팽배의 가슴팍을 깊숙이 꿰뚫었다.


“커헉!”


팽배의 입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조웅이 창을 휘둘러 팽배를 바닥에 내던지려 하자, 사마건의 눈동자가 분노로 뒤집혔.


‘살려야 한다!’


사마건은 품속에서 임철수가 만들어 준 투척용 비도(飛刀) 한 자루를 왼손으로 낚아챘다. 그리고 마맥의 광포한 힘을 손가락 끝에 집중시켰다.


슈우우우웅!


사마건의 손을 떠난 비도가 검붉은 마기의 궤적을 그리며 밤공기를 찢었다. 비도는 조웅의 흑철창을 쥐고 있는 오른쪽 손목의 틈새, 철갑이 덮이지 않은 가죽 끈 부위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푸학!


“으음!”


조웅이 짧은 신음을 뱉으며 흑철창을 쥐고 있던 손가락의 힘을 잃었다. 비도가 그의 손목 힘줄을 정확히 저격한 것이다. 창끝이 흐트러진 덕분에 팽배는 심장이 꿰뚫리는 치명상을 피한 채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비록 가슴에 깊은 창상을 입었으나 목숨은 건진 것이다.


그 순간, 나루터 입구의 안개를 뚫고 거대한 마차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들어왔. 흑강표국의 표두 호진(胡進)이었다. 가죽 갑옷을 입고 수염을 기른 그는 이 빠진 철채찍을 휘두르며 조웅의 철기대 진형 중심부를 향해 마차를 몰았다.


“도련님! 배로 가십시오! 수로는 열어두었습니다!”


호진이 이끄는 표행 마차가 조웅의 철기대 중심부를 가로막으며 전차처럼 들이받았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철기대의 기마 두 마리가 마차의 충격에 쓸려 쓰러졌고, 나루터 광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조웅은 분노로 얼굴을 붉히며 손목에 박힌 비도를 뽑아 던졌다. 그리고 왼손으로 창을 고쳐 잡으며 호진을 향해 철혈강기를 대량으로 방출했다. 조웅의 분노한 일격에 호진의 마차가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호진 역시 대량의 내상을 입고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가십시오! 도련님!”


호진이 쓰러지면서도 소리쳤다.


사마건은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솟구쳤다. 평범한 민초들과 의리 있는 표사들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었다. 가문의 멸문 당시 힘이 없어 침묵해야 했던 이들이, 이제는 피를 흘리며 길을 열고 있었다. 이 희생을 결코 헛되이 할 수 없었다.


사마건은 전신의 마맥을 한계까지 짜내었다. 발목의 열독 상처가 터지며 가죽 장화 틈새로 검붉은 피 안개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무릎 관절이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마맥신신법(魔脈神身法)을 시전했다.


파아앗!


붉은 피 안개만을 남긴 채, 사마건의 신형이 바람처럼 나루터 선착장을 향해 질주했다. 그는 무리하게 철기대의 철갑을 뚫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한철단검을 낮게 휘두르며, 기마병들의 허벅지와 갑옷 이음새의 가죽 끈만을 베어 넘겼다.


서걱! 서걱!


가죽 끈이 잘려 나가자 기마병들의 철갑이 무너져 내렸고, 그 틈을 타 사마건은 조웅의 저지선을 완벽하게 돌파했다. 그는 쓰러진 팽배를 왼팔로 안아 올리고, 호진의 부축을 받으며 선착장 끝자락에 대기 중이던 마지막 도룻배를 향해 달렸다. 마차에 타고 있던 곽칠과 곽두수 역시 이미 배에 탑승한 상태였다.


“탈출한다! 노를 저어라!”


호진이 소리치며 배의 밧줄을 풀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배에 오르려던 바로 그 순간, 거친 강바람이 불어오며 강의 수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물안개가 기이하게 걷히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물안개 너머에서 수십 개의 붉은 불꽃이 일시에 피어올랐다. 그것은 횃불이 아니었다. 불타오르는 화살들과 기름병들이었다.


“……!”


사마건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수로 주변에 정박해 있던 모든 나룻배와 민간 선박들이 이미 붉은 화염에 휩싸인 채 타들어 가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이 어두운 강물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넘실거렸다.


그리고 그 타오르는 불길을 등진 채, 선착장의 유일한 수로 출구 앞 목조 다리 위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회색 가죽 경장갑을 끼고, 소리 없이 적을 베는 무음검(無音劍)을 느슨하게 쥔 사내. 백록검파의 비밀 암살 조직 ‘추풍대’의 대주 위량(魏量)이었다. 그의 뒤로는 전신을 복면으로 감싼 추풍대의 최정예 자객 수십 명이 검을 뽑아 든 채 그림자처럼 늘어서 있었다.


위량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사마건을 향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강바람을 타고 차갑게 흩어졌다.


“쥐새끼가 강을 건너려 하는구나. 사마건, 네놈의 퇴로는 이미 재가 되어 사라졌다.”


타오르는 배들의 불꽃이 위량의 검푸른 무음검 날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수로를 가득 메운 화염의 열기와 강바람의 한기가 사마건의 전신을 압박해 왔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사선의 나루터 끝자락에서, 사마건은 다시 한번 피 묻은 한철단검을 움켜쥐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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