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사슬을 깨부수다
흑강현의 밤은 깊었고, 강바람은 칼날처럼 차가웠다. 어둠이 짙게 깔린 숲길을 헤치며 나아가는 사마건의 걸음걸이는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오른쪽 발목에서부터 뼈를 태워버릴 듯한 극심한 열독(熱毒)이 치솟았다. 과거 백록검파의 집행 장로 백무기가 남긴 붉은 철혈검기의 잔재였다. 어긋나 있던 오른쪽 무릎 관절마저 걸을 때마다 서걱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사마건은 이빨이 깨져라 악물며 통증을 참아냈다. 그의 왼쪽 뺨은 이미 귀밑까지 죽은 송장의 가죽처럼 차갑고 딱딱한 회색빛으로 변색되어 고착된 상태였다. 마맥의 침식이 서서히 그의 육체를 갉아먹고 있었으나, 사마건의 안광만큼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서슬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전신이 붕괴된 채 말 한 마리 겨우 끄는 마차에 누워 신음하는 충직한 가신 곽칠과, 그의 아들 곽두수가 긴장으로 숨을 죽인 채 따르고 있었다. 사천 지방에 살아있다는 누이 사마혜의 서신을 품에 품은 이상,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흑강 나루터만 돌파한다면 사천으로 향하는 수로를 열 수 있었다.
바스락.
대나무 숲의 정적을 깨고 기이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사마건은 즉시 걸음을 멈추고 오른손에 쥔 한철단검(寒鐵劍)의 자루를 꽉 쥐었다. 오른팔의 경맥은 여전히 백무기와의 혈투 여파로 반쯤 마비되어 둔감했으나, 단검에서 흘러나오는 북해 한철의 음기가 그의 손바닥을 차갑게 자극하며 감각을 억지로 깨웠다.
파아앗!
순식간에 사방에서 수십 개의 횃불이 불꽃을 피워 올리며 어둠을 몰아냈다. 횃불의 붉은 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철갑 방패와 장창을 든 수십 명의 관군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화려한 포교 의복을 걸치고 입꼬리를 비틀어 웃고 있는 사내, 흑강현의 부패한 포교 최동수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백록검파에게서 뇌물로 받은 막대한 은자 주머니가 묵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크하하하! 쥐새끼처럼 숨어 다니더니 결국 나루터 길목에서 걸려드는구나, 사마건!”
최동수의 목소리에는 탐욕과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은자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는 시퍼런 관청 도를 뽑아 들며 사마건을 가리켰다.
“무림맹주 제갈무쌍 님의 직인이 찍힌 천하수배령이 내려졌으니, 네놈은 이제 강호 전체의 공적이다! 네 목을 황실에 바치면 내 평생의 부귀영화가 보장되거라. 얌전히 무릎을 꿇고 목을 내놓아라!”
“부패한 사슬의 개새끼가 짖는 소리가 시끄럽구나.”
사마건의 갈라진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의 왼쪽 뺨에 고착된 회색빛 피부가 횃불 빛을 받아 기괴한 무늬처럼 일렁였다.
“관군들을 방패막이 삼아 은자를 챙긴 대가가 네 목숨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가.”
“방자한 놈! 쏴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최동수의 외침과 함께 관군들이 철갑 방패를 앞세워 조밀한 방어벽을 형성했다. 그 뒤에 숨은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댔다. 밤공기를 가르는 수십 발의 화살이 사마건 일행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사마건은 더 이상의 지체를 막아야 했다. 곽칠 부자가 있는 마차로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전신의 마맥을 강제로 깨웠다. 심장 혈도에 박힌 황금빛 혜명침이 불길하게 떨리며 마맥의 폭발적인 기운을 다리로 전도했다.
‘마맥신신법(魔脈神身法)!’
오른쪽 무릎과 발목의 열독 상처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발목 관절에서 미세한 마찰음이 들리며, 그의 모공에서 붉은 피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처절하기 짝이 없는 연출이었으나, 그 대가로 얻은 속도는 기괴할 정도로 빨랐다. 사마건의 신형은 찰나의 순간에 안개 속에서 소리 없이 지워졌다.
쉬이이익!
화살들이 사마건이 서 있던 잔상을 꿰뚫고 땅바닥에 박히는 사이, 사마건은 이미 관군들의 방패벽 상공으로 도약해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마기로 물들어 있었다.
사마건은 오른손에 쥔 한철단검을 아래로 내리꽂았다. 단검 끝에서 방출된 극음의 한기가 공기를 얼려버릴 듯 서늘하게 뿜어졌다.
콰아앙!
방패벽 사이의 미세한 틈새를 정확히 파고든 단검의 일격에 관군 두 명의 어깨뼈가 얼어붙으며 으스러졌다. 비명 소리와 함께 견고하던 방패 진형에 균열이 생겼다. 사마건은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흑강 보법을 전개하며 적들의 사각지대를 헤집어놓았다.
“이놈이! 그물을 던져라!”
관군 대장이 외치며 사마건의 사지를 묶기 위해 쇠사슬 그물을 던졌다. 사슬이 허공을 가르며 사마건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사마건은 땅에 떨어져 있던 죽은 관군의 철검을 왼손으로 낚아챘다. 그리고 백록검파의 기초 검리를 전개해 사슬을 베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의 단전은 이미 깨져 있었고, 손에 쥔 철검은 평범한 고철에 불과했다. 예리함이 부족한 철검의 날은 관군들이 펼친 철갑 방패의 단단한 표면에 부딪쳐 튕겨 나갔고, 검신 전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며 허무하게 부러져 버렸다.
“하하! 이빨 빠진 호랑이가 고철을 휘두르는구나!”
최동수가 비웃었다.
하지만 사마건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부러진 철검을 내던지고, 왼팔의 마맥이 지닌 압도적인 완력을 이끌어냈다. 쇳빛으로 딱딱하게 변색된 왼손 끝에 검붉은 마기를 집중시켰다. 사마가문 고유의 묵직한 검초를 단검에 실어 방출하는 비전의 구결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철검도강(鐵劍渡江)!’
비록 손에 쥔 것은 단검이었으나, 마맥의 광포한 완력이 더해지자 그 찌르기는 거대한 대검의 중량감을 품게 되었다. 한철단검의 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마기와 서리 낀 음기가 소용돌이치며 날아오는 쇠사슬 그물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콰드드득! 쨍강!
강철로 주조된 쇠사슬 연결 고리들이 사마건의 파괴적인 일격 앞에 맥없이 조각나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 충격파에 방패를 들고 서 있던 관군들 역시 가슴뼈가 함몰되며 뒤로 자빠졌다. 단 한 번의 찌르기로 관군의 정예 방어선이 완전히 와해된 것이다.
“어, 어떻게 저런 괴력을……!”
최동수의 얼굴에서 비열한 비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단전이 깨진 폐인이라 얕잡아보았던 사마건이 보여준 무서운 살상력과 기괴한 마기는 그의 얄팍한 담력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막아라! 저놈을 막아라!”
최동수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부하들을 사지로 밀어 넣은 채 홀로 나루터 방향을 향해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관청 포교로서의 위엄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비겁한 탐욕만이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마건의 눈동자에 차가운 냉소가 서렸다. 가문의 멸문을 방조하고, 백록검파의 은자에 눈이 멀어 자신을 사냥하려 한 위선자의 퇴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마건은 땅에 떨어져 있던 관군의 장창을 오른발 끝으로 툭 차올렸다. 공중으로 솟구친 장창의 자루를 왼손으로 꽉 움켜쥔 사마건은, 전신의 근육을 활처럼 뒤틀며 조준했다. 마맥의 기운이 창대를 타고 흐르며 창끝이 검붉게 물들었다.
슈우우우웅—!
사마건의 손을 떠난 장창이 어둠을 찢어발기는 파공음과 함께 날아갔다.
“커헉!”
도망치던 최동수의 등 정중앙을 장창이 관통했다. 창끝은 그의 가슴을 뚫고 나와 차가운 대지 깊숙이 박혀버렸다. 최동수는 창대에 꿰뚫린 채 나루터 길목 바닥에 비참하게 고정되어 허우적거렸다. 입가로 끊임없이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사마건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천천히 최동수에게 다가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의 열독 상처가 욱신거렸으나, 그의 표정은 얼음처럼 차분했다.
“사, 사마 도련님…… 살려주십시오…… 제발…… 백록검파가 시킨 일입니다…….”
최동수는 바닥에 피를 토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그의 허리춤에 차여 있던 은자 주머니가 흙먼지 속에 굴러떨어졌다.
사마건은 대답 대신 왼손을 뻗어 최동수의 턱덜미를 움켜쥐었다. 쇳빛으로 변한 손가락 끝이 그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독고천의 마맥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살기가 최동수의 전신 기혈을 얼려버리는 순간, 사마건은 가차 없이 손목을 비틀었다.
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최동수의 고개가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비겁한 탐욕으로 가득 찼던 포교의 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잃고 흐려졌다. 사마건은 그의 시신을 쓰레기처럼 내팽개치고, 곽칠 부자의 마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자. 나루터로.”
관군들의 시신을 뒤로하고, 사마건 일행은 마침내 흑강 나루터 입구에 당도했다. 강바람이 자욱한 물안개를 몰고 와 시야를 흐려놓고 있었다. 강물 너머로 사천성으로 향할 배들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나루터의 선착장 안개 너머에서, 기이할 정도로 묵직하고 서늘한 쇳소리가 대지를 울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신에 시커먼 흑철 갑옷을 두른 수십 명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이 걸치고 있는 갑옷에는 무림맹을 상징하는 금선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무림맹주 직속의 철기대(鐵騎隊)였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바위처럼 거대한 체구를 지닌 장수풍의 무인이 서 있었다. 전신에 검은 철갑을 두르고, 한 손에는 웬만한 무인은 들기조차 힘든 거대한 흑철창(黑鐵槍)을 쥔 사내. 무림맹 철기대장 조웅(趙雄)이었다.
조웅은 흑철창의 끝을 천천히 들어 올려 사마건의 목덜미를 겨누었다. 그의 갑옷 사이로 흐르는 붉은 철혈강기(鐵血強氣)의 기운이 자욱한 물안개를 증발시키며 위압적으로 소용돌이쳤다.
“마교의 세작 사마건. 네놈의 도주로는 여기까지다.”
조웅의 무겁고 웅장한 목소리가 나루터 전체를 뒤흔들며, 수십 자루의 철창 끝이 일제히 사마건을 향해 서늘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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