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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의 피, 붉은 얼음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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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니었다. 언제, 어느 방향에서 다시 한번 소리 없는 비수가 들이밀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감이 얼음 동굴 내부를 무겁게 짓눌렀다. 사마건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숨소리를 찾기 위해 마맥심안(魔脈心眼)을 다시 한번 한계까지 넓히기 시작했다.


동굴 내부의 만년 한기가 사마건의 피부를 파고들었지만, 그의 왼팔에서 끓어오르는 검붉은 마기는 그 한기마저 집어삼킬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단전이 깨진 허무한 심연 속에서 오직 경맥을 타고 흐르는 천마대종사의 마맥만이 그의 유일한 동력이었다.


‘거기다.’


마맥심안의 붉은 시야 속에서, 빙벽의 모퉁이 뒤편에 숨어 숨결을 죽이고 있는 살오(殺五)의 기혈 흐름이 포착되었다. 그의 심장박동은 분당 오십 회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극도로 가라앉아 있었으나, 그의 손끝에 쥔 무영침통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금속의 진동은 숨길 수 없었다.


스스스.


살오가 다시 한번 소리 없는 보법으로 신형을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그의 신형은 완벽하게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마건의 뇌해에 각인된 마맥심안은 그의 궤적을 실시간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살오가 허공을 디디며 사마건의 사각지대인 왼쪽 어깨 뒤편으로 파고들었다.


퓩!


소리도 없이 어둠을 가르는 독침이 사마건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했다.


사마건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하는 척하며 한철단검(한철단검)의 검신을 비스듬히 세웠다.


깡!


어둠 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독침이 북해 한철로 주조된 단검의 날에 부딪쳐 튕겨 나갔다. 살오는 자신의 완벽한 기습이 다시 한번 막히자 경악하며 신형을 뒤로 물리려 했으나, 사마건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사마건은 관절탈골술(관절탈골술)을 시전하여 자신의 오른쪽 어깨 관절을 순간적으로 비틀어 꺾었다. 뼈가 어긋나는 끔찍한 고통이 어깨를 타고 뇌해를 찔렀지만, 그 대가로 그의 팔 길이는 한 치 더 늘어났다.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사마건의 오른손이 살오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어, 어떻게……!”


살오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사마건은 왼손에 쥔 한철단검을 그대로 그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푸학!


단검이 살오의 가슴뼈를 관통하여 심장에 박히는 서늘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한철단검에서 뿜어져 나온 극음의 한기가 살오의 심장 기혈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살오는 눈을 크게 뜬 채, 단 한 마디의 단명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쓰러졌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얼음 바닥에 닿자마자 붉은 얼음꽃이 되어 굳어갔다.


“커헉……!”


살오를 처단한 순간, 사마건 역시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입가로 검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심장의 혜명침(慧明針)을 억지로 흔들어 마비를 풀었던 대가는 가혹했다. 심장 주변의 주요 기맥들이 파열되어 뜨거운 피가 가슴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흡입했던 유황 독 가스의 잔여물이 폐부를 사정없이 부식시키며 숨을 쉴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여기에 태을청련의 극양 진기와 마맥의 극음 마기가 체내에서 융합되지 못한 채 정사 충돌 임계점(정사 충돌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몸의 오른쪽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왼쪽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사마건의 왼쪽 뺨 일부는 이미 핏기가 완전히 사라진 채, 죽은 이의 가죽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회색빛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마맥의 잠식이 서서히 그의 얼굴까지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이성을 잃고 광마가 되거나, 전신 경맥이 폭사해 죽을 판이었다.


그때였다.


동굴 바깥, 흑강 음사곡(흑강 음사곡)의 험준한 골짜기 사이로 낯익고도 소름 끼치는 음성이 메아리쳤다.


“사마세가의 망령 놈이 이 춥고 음습한 구멍 속에 숨어 있었구나.”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사마건의 심장이 멈추는 듯한 충격이 일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 과거 백록검파의 하급 연무장에서 자신의 사지를 묶고, 가슴을 짓밟으며 아랫배의 단전을 무자비하게 깨부수었던 장본인.


백록검파의 사형집행 장로, 백무기(백무기)였다.


“아악! 아버지! 아버지!”


이어서 들려온 것은 어린 소년의 처절한 울음소리였다. 곽두수(곽두수)의 목소리였다.


“으윽…… 소, 소가주님…… 도망…… 끄아아악!”


그리고 외다리 가신 곽칠(곽칠)의 비명이 얼음 동굴 내부를 날카롭게 찢어발겼다. 둔탁한 가죽 채찍이 살을 찢고 뼈를 때리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동굴 안으로 흘러들었다.


사마건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칠흑 같은 마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단전 파괴와 가문 멸문지화(멸문지화) 당시의 끔찍한 기억들이 붉은 불꽃이 되어 솟구쳐 올랐. 믿었던 스승과 사형제들의 위선적인 얼굴, 불타오르던 가문의 전경, 그리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던 부친 사마혁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그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해 다리까지 잃고 마부가 되어 살아온 충직한 가신 곽칠마저 찢어발기려 하고 있었다.


“백…… 무…… 기……”


사마건의 목구멍에서 짐승의 것과 다름없는 거친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한철단검을 움켜쥐었다. 어긋난 오른쪽 무릎 관절이 비명을 질렀고, 왼손가락의 뼈가 드러난 자상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사마건은 피눈물을 흘리며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어두운 얼음 동굴 밖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동굴 밖은 태양이 들지 않는 흑강 음사곡의 차가운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동굴 입구의 평평한 빙판 위에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외다리 가신 곽칠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얼음 바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그의 목덜미는 백무기의 두꺼운 가죽 장화 아래 짓눌려 있었다. 백무기의 손에는 쇠가시가 박힌 붉은 가죽 채찍이 쥐어져 있었고, 채찍 끝에서는 곽칠의 신선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열두 살 난 곽두수가 무사들에게 양팔이 붙잡힌 채 자지러지게 울부짖고 있었다.


“사마세가의 개새끼를 어디에 숨겼느냐. 이 다리 병신 놈아. 끝까지 입을 열지 않겠다면 네 자식놈의 사지를 먼저 잘라 이 골짜기에 던져주마.”


백무기가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곽칠의 머리를 밟아 뭉개려 했다. 곽칠은 입안 가득 고인 피를 바닥에 뱉어내며 신음하면서도, 동굴 입구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눈짓을 보냈다. 나오지 말라는, 제발 도망치라는 충신(忠臣)의 마지막 무언의 절규였다.


“내가 여기 있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골짜기를 울렸다.


백무기의 채찍질이 멈추었다. 붙잡혀 있던 곽두수의 울음소리도 멎었다. 백록검파의 무사들과 백무기의 시선이 일제히 얼음 동굴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안색, 왼쪽 뺨의 절반을 뒤덮은 기괴한 회색빛 죽은 피부, 그리고 쇳빛으로 딱딱하게 변색되어 야수의 발톱처럼 손톱이 돋아난 왼손. 사내의 오른손에는 장검도 아닌, 오직 자그마한 한철단검 한 자루만이 쥐어져 있었다.


백무기는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오는 사마건을 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사마건은 과거 촉망받던 백록검파의 후기지수가 아니었다. 단전이 깨진 채 기어 다니던 폐인이자, 이제는 정체불명의 사악한 마기를 두른 기괴한 괴물에 불과했다.


백무기의 입꼬리가 가소롭다는 듯 비틀려 올라갔다. 그는 곽칠의 목을 밟은 발에 힘을 주며, 가죽 채찍을 바닥에 툭 던졌다.


“하하하! 정말로 살아있었구나, 사마건. 단전이 깨진 개새끼가 용케도 목숨을 부지해 쥐새끼처럼 구는구나.”


백무기는 천천히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 그의 손끝이 닿은 것은 시퍼런 검광을 발산하는 백록검파의 공식 집법검(執法劍)이었다. 과거 사마건의 단전을 무자비하게 찔러 울부짖게 만들었던, 바로 그 비정한 쇠붙이였다.


서릉릉.


검이 검집을 빠져나오는 서늘한 마찰음이 음사곡의 칼바람을 찢었다. 백무기는 집법검을 천천히 뽑아 들어 사마건의 심장을 향해 겨누었다.


“그 기괴한 왼손은 무엇이냐? 결국 살기 위해 마교의 더러운 야수 놈들에게 영혼이라도 판 것이냐? 내 오늘 정파의 이름으로 네놈의 남은 사지를 마저 자르고, 사마세가의 추악한 망령을 이곳에 영원히 묻어주마.”


백무기의 집법검 끝에서 철혈기공(鐵血氣功)의 묵직하고 붉은 검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살기의 무게는 동굴 안의 공기마저 얼려버릴 듯이 차가웠다. 사마건은 피 묻은 한철단검의 자루를 부러질 듯 꽉 쥐며, 원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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