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비수
완전히 무방비해진 사마건의 머리맡으로, 어둠을 가르는 가느다란 쇳소리가 스며들었다.
그것은 바람 소리도, 천장에서 떨어지는 고드름의 물방울 소리도 아니었다. 극도로 살기를 압축한 자만이 낼 수 있는, 소름 끼치도록 가늘고 날카로운 철기(鐵器)의 마찰음이었다.
‘온다.’
사마건은 얼음 동굴 바닥에 쓰러진 채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의 육체는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끝 하나, 눈꺼풀 하나조차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체내에서는 가혹한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금 삼킨 정파의 영약, 태을청련(태을청련)의 정순하고 뜨거운 극양(極陽)의 진기가 심장부를 장악하고 있던 천마대종사의 사악한 극음(極陰)의 마기와 정면으로 충돌한 탓이었다. 두 극단의 기운은 사마건의 뒤틀리고 부서진 경맥을 전장 삼아 미친 듯이 날뛰었다.
몸의 오른쪽은 살가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열로 붉은 핏줄이 터져 나갔고, 왼쪽은 뼈마디까지 얼려버리는 한기로 인해 푸르스름한 얼음이 얼어붙었다. 이 지독한 빙화(氷火)의 대충돌은 사마건의 전신 신경을 마비시켰다. 설상가상으로, 격렬한 진기 충돌의 여파로 사마건의 왼쪽 뺨 일부의 핏기가 완전히 사라지며 굳어지는 듯한 기이한 회색빛 변색의 예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굴의 절반이 죽은 이의 피부처럼 딱딱하게 변해가는 감각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완벽한 무방비 상태.
그때, 동굴 내부의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한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백록검파의 비밀 암살 조직 추풍대(추풍대)의 기습 살수, 살오(殺五)였다.
살오는 숨결마저 지운 채 사마건의 등 뒤로 다가왔다. 그의 손목에는 여러 개의 암기 통이 장착되어 있었고, 그 손끝에는 치명적인 독침이 장전된 무영침통(無영침통)이 쥐어져 있었다. 살오는 쓰러진 사마건의 목덜미와 심장 혈도를 정확히 겨누었다. 단전이 깨진 폐인이 영약을 삼키고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살오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비틀려 올라갔. 그에게 사마건은 그저 손쉬운 현상금 덩어리에 불과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시각은 차단되었고 몸은 묶였다. 그러나 사마건의 영혼마저 마비된 것은 아니었다.
두근! 두근!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사마건은 눈을 감은 채 마맥심안(魔脈心眼)을 개방했다. 심장과 연결된 왼팔의 마맥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공기 중의 미세한 기류 변화와 살오가 내뿜는 차가운 살기의 궤적을 붉은색의 실선으로 머릿속에 그려내기 시작했다.
다섯 걸음.
살오가 무영침통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는 순간, 그 손가락의 미세한 근육 떨림마저 마맥심안의 감각에 포착되었다. 살오의 기혈 흐름이 일순간 팽창했다. 발사하려는 신호였다.
퓩! 퓩! 퓩!
소리도 없이, 공기를 가르는 세 자루의 은침이 사마건의 주요 사혈을 향해 날아왔. 침 끝에는 살사가 쓰던 것과 다름없는 치명적인 마교의 독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움직여야 했다. 단 한 치라도 움직여야 살 수 있었다.
사마건은 마지막 남은 도가의 찌꺼기 진기를 억지로 짜내어 심장부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심장 혈도에 깊숙이 꽂혀 있던 황금빛 혜명침(혜명침)을 향해 강제로 근육을 수축시켰다. 혜명침을 인위적으로 뒤흔들어 마맥의 고삐를 일시적으로 풀고, 그 충격으로 전신 마비를 깨뜨리려는 극단적인 자학 수법이었다.
콰드득!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 전신을 관통했다. 심장 주변 기맥에서 대량의 피가 솟구치며 목구멍으로 뜨거운 선혈이 울컥 넘어왔다. 전신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는 극심한 열병이 그를 덮쳤지만, 그 지옥 같은 통증은 역설적이게도 굳어 있던 그의 신경을 일순간에 깨워놓았다.
찰나의 순간, 사마건은 고개를 옆으로 강하게 꺾었다.
쉬익! 팍!
세 자루의 은침이 사마건의 목덜미 가죽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가 빙벽에 깊숙이 박혔다. 은침이 박힌 자리가 푸른 독기에 의해 치익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
완벽한 마비 상태라 확신했던 사냥감이 움직이자, 살오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하지만 사마건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비가 풀린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한철단검(한철단검)의 자루를 오른손으로 낚아챘다. 그리고 얼음 동굴의 차가운 빙벽을 짚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 어긋난 오른쪽 무릎 관절이 비명을 질렀고, 왼손가락의 뼈가 드러난 자상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으나 그의 눈빛만큼은 귀신처럼 형형하게 빛났다.
살오는 기습이 실패했음을 직감하고 즉시 소매 속에서 짧은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이류 극성의 은신공을 익힌 살수답게 소리 없는 보법으로 사마건의 품을 파고들며 목덜미를 베어왔다.
사마건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다리가 없었다.
그는 제자리에서 한철단검을 거꾸로 쥔 채 살오의 단검 날을 맞받아쳤다. 그와 동시에 왼팔의 마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음기(陰氣)를 한철단검의 검신으로 폭발적으로 흘려보냈다.
깡—!
두 단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살오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격렬하게 흔들렸다. 한철단검을 타고 흘러간 극음의 한기가 살오의 단검 날을 순식간에 하얗게 얼려버린 것이다.
바지직!
얼어붙은 살오의 단검 날에 미세한 균열이 가더니, 사마건이 힘을 주어 밀어붙이자 쇳조각이 되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단검의 궤적이 기이하게 비틀어지며 살오의 가슴팍이 무방비하게 열렸다.
사마건은 이 기세를 몰아 도가의 경공인 송풍유운보를 전개해 동굴 밖으로 탈출하려 했다. 적의 구원 부대가 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발끝에 힘을 주는 순간, 다리 경맥에 남아 있던 지독한 한기와 어긋난 무릎이 족쇄가 되었다. 첫 걸음을 내딛자마자 전신 기혈이 뒤틀리며 사마건은 빙벽에 거칠게 부딪치며 쓰러지고 말았다. 입가로 다시 한번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쿠헉……!”
그 짧은 지체는 살수에게 기회를 주기에 충분했다.
살오는 부서진 단검 자루를 버리고 뒤로 크게 도약하며 어둠 속으로 자신의 신형을 완전히 숨겼다. 동굴 내부의 절대적인 암흑이 다시 한번 살오의 신형을 삼켜버렸다.
고요함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니었다. 언제, 어느 방향에서 다시 한번 소리 없는 비수가 들이밀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감이 얼음 동굴 내부를 무겁게 짓눌렀다. 사마건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숨소리를 찾기 위해 마맥심안을 다시 한번 한계까지 넓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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