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련(靑蓮)을 향한 걸음
쏴아아아아—!
하늘을 집어삼킨 먹구름 사이로 장대비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사당의 깨진 기와 틈새로 흘러내린 빗물이 바닥의 흙먼지를 진흙탕으로 만들며 흘러갔다. 무너진 벽 너머, 쏟아지는 빗속에서 청색 검강을 내뿜는 자영검(紫影劍)을 쥔 독고영의 눈빛은 얼음보다 더 차가웠다. 한때 사마세가의 정혼자로서 서로의 검을 마주 보며 미소 짓던 여인의 얼굴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직 마두를 처단하겠다는 정파의 단호한 살기만이 그녀의 백색 무복 위로 서늘하게 흘러내릴 뿐이었다.
“사마 사형…… 아니, 사마건.”
독고영의 입술이 가볍게 열렸다. 빗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사마건의 귀에는 천둥소리보다 더 무겁게 박혔다.
“네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믿지 않았다. 하지만 네 왼팔에 흐르는 그 불길한 기운을 보니, 소문이 사실이었군. 너는 정말로 마교의 사악한 힘을 받아들여 괴물이 된 것이냐.”
사마건은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잡으며 오른손에 쥔 부러진 철검의 자루를 고쳐 잡았다. 어긋났던 오른쪽 무릎 관절을 억지로 끼워 맞춘 탓에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뼈가 어긋나는 듯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를 괴롭히는 것은 심장부에서 미친 듯이 소동을 일으키는 마맥(魔脈)의 거부반응이었다. 황금빛 혜명침(慧明針)이 핏빛으로 물든 채 비명을 지르듯 진동하고 있었고, 체내에서는 정파의 잔여 진기와 마교의 탁한 마기가 서로를 찢어발기듯 충돌하고 있었다.
“마두라…….”
사마건의 갈라진 목소리에서 피비린내 섞인 냉소가 흘러나왔다.
“백현태가 내 단전을 깨부수고 우리 가문을 불태울 때, 무림맹이 위선적인 가면에 숨어 그 만행을 방관할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영아? 이제 와서 정파의 정의를 운운하며 내 목을 베려 하는가.”
“닥쳐라! 장문인께서는 무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리신 것이다. 네가 마교의 세작이라는 사실은 이미 무림맹주의 직인으로 천하에 선포되었다!”
독고영의 차가운 외침과 함께 자영검이 허공을 갈랐다.
쉬이이익!
푸른 검강이 빗줄기를 가르며 매화꽃잎처럼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백록검파의 비전인 청련낙화검(靑蓮落花劍)이었다. 사방에서 날카롭게 조여오는 검강의 궤적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사마건의 목덜미와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사마건은 이빨을 악물었다. 단전이 파괴된 몸으로는 정통 도가의 기공을 펼칠 수 없었다.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왼팔의 마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변칙적인 마기뿐이었다. 사마건은 왼손의 쇳빛 손톱을 움켜쥐며 마맥의 힘을 오른손의 부러진 철검으로 강제로 밀어 넣었다. 검붉은 연기가 검신을 휘감아 올랐다.
카아아아앙—!
두 사람의 검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소름 끼치는 금속음이 사당 내부를 뒤흔들며 사방으로 충격파를 뿜어냈다. 빗방울들이 검풍에 밀려 사방으로 비산했다. 사마건은 뒤로 세 걸음 밀려나며 젖은 흙바닥에 무릎을 꿇을 뻔했다. 오른쪽 무릎의 관절이 다시 어긋나려는 듯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손안에 있었다. 목강과의 사투에서 이미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득 차 있던 부러진 철검이, 자영검의 예리한 청색 검강과 마맥의 사악한 마기를 동시에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검신 중앙에 깊게 파인 균열 사이로 불길한 붉은 빛이 새어 나오며 쇳조각들이 툭툭 떨어져 나갔다.
‘이 검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사마건의 이성이 경고했다. 독고영은 그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신형이 바람처럼 가벼운 보법을 밟으며 다시 한번 자영검을 찔러왔다. 이번에는 매화꽃잎이 낙화하듯 수십 개의 예리한 검끝이 사마건의 전신 사혈을 향해 쏟아졌다.
사마건은 혀를 깨물며 고통을 참아내고 백록송풍검의 방어 초식으로 검날을 튕겨내려 했다.
쩍—!
검과 검이 다시 한번 격돌하는 찰나, 귀를 찢는 듯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사마건의 손에 쥐어져 있던 부러진 철검이 자영검의 검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순간에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쇳조각들이 사마건의 뺨과 어깨를 스치며 붉은 선혈을 뿜어냈다. 가문의 마지막 자부심이자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유일한 철검이 완벽한 종말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끝이다, 사마건.”
독고영의 자영검 끝이 사마건의 목덜미를 향해 무자비하게 짓쳐 들어왔. 검강의 서늘한 기운이 이미 그의 피부를 찢고 피를 흘리게 만들고 있었다. 사마건은 왼손의 천마혈마조(天魔血魔爪)를 전개해 검날을 맨손으로 움켜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체내의 마맥이 완전히 폭주하여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될 것이 뻔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소가주님! 이 비천한 곽칠이 주가를 모시러 왔습니다!”
사당 벽 너머에서 짐승의 포효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쿠구구구궁—!
사당의 낡은 나무 벽이 형편없이 부서져 나가며 흙먼지와 잔해들이 폭풍처럼 사방으로 흩날렸다. 곽칠이 한쪽 다리로 마차의 고삐를 움켜쥔 채, 미친 듯이 날뛰는 두 마리의 마차를 몰아 사당 내부로 들이받은 것이다. 마차가 무너지며 거대한 먼지 구덩이와 나무 파편들이 독고영과 백록검파 무사들의 시야를 완벽하게 가려버렸다.
“무슨 일냐! 적의 기습이다!”
“사마건을 놓치지 마라!”
백록검파 무사들이 당황하여 소리쳤지만, 이미 자욱한 흙먼지와 빗줄기가 사당 내부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형! 어서 피하십시오!”
불상 뒤에 숨어 있던 소명이 급히 사마건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사마건은 어긋난 오른쪽 무릎의 고통을 억누르며 소명이 건넸던 가죽 지도를 품속 깊은 곳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절뚝거리는 다리에 마맥의 한기를 강제로 집중시켰다.
‘마맥신신법(魔脈神身法).’
다리 경맥의 인대가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과 함께, 사마건의 발목 주변으로 검붉은 피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는 흑강 보법과 마맥신신법의 기괴한 조화를 이루며 독고영의 시야에서 소리 없이, 그리고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일순간에 사라졌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자영검을 휘두르던 독고영이 검을 멈추었을 때, 사당 내부에는 오직 부서진 철검의 파편들만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
사마건은 어두운 대나무 숲속을 질주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뺨을 때렸지만, 그의 폐부에서는 이미 타오르는 듯한 열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무리하게 마맥신신법을 전개한 대가로 발목 관절에서는 피 안개가 멈추지 않았고, 심장의 혜명침은 미친 듯이 진동하며 가슴을 짓눌렀다.
‘태을청련(太乙靑蓮)…… 그 영약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소명이 전해준 가죽 지도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사마건은 백록검파의 금지인 청련곡(靑蓮谷) 입구에 도달했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거친 수로가 어둠 속에서 하얗게 포효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곡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사마건은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코끝을 찌르는 것은 맑은 계곡의 냄새가 아니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지독하고 비릿한 냄새, 황산과 유황이 뒤섞인 듯한 치명적인 독기(毒氣)가 수로 주변의 안개와 섞여 흐르고 있었다.
“큭…… 우웁!”
사마건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입안에서 걸쭉한 선혈이 뿜어져 나와 젖은 대지를 적셨다. 추풍대의 독공 전문가, 독인 살사(殺四)가 그의 도주 경로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청련곡 입구의 유일한 수로에 치명적인 만독 독연(萬毒 毒煙)을 살포해 둔 것이 틀림없었다.
유독 가스가 피부의 모공을 타고 침투할 때마다 왼팔의 마맥이 그 독소와 반응하여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며 자멸적인 대폭주를 일으키려 하는 최악의 임계점이었다. 사마건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의 남전옥 노리개를 꽉 쥐었다. 어머니의 유품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푸른 한기가 삼칠근의 약효와 공명하며 타들어 가는 그의 폐부를 간신히 진정시켰지만, 밀려드는 독 가스의 양은 점차 늘어만 갔다.
의식이 흐려져 가는 절망적인 순간.
스아아아아—
매캐한 독안개 너머, 청련곡 깊은 계곡 안쪽에서 은은하고 맑은 푸른 보광(寶光)이 피어올랐다. 백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정파 최고의 영약, 태을청련이 어둠 속에서 마침내 개화한 것이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청초하고 고결한 연꽃 향기가 사마건의 타들어 가던 폐부를 순간적으로 맑게 씻어내렸다.
하지만 안도할 틈은 없었다.
서스스스슥—!
독안개 속에서 차가운 쇠 냄새와 함께 살기가 폭출했다. 청련곡을 수호하는 36인의 정예 검사들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거대한 백록검진(靑蓮劍陣)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침입자다! 무기를 버려라!”
삼십여 자루의 서슬 푸른 도신들이 차가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독연이 가득 찬 계곡 입구에서,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은 사마건의 머리 위로 예리한 백색 검날들이 무자비한 벼락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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